1) J. V. Goudoever은 라오디게아 주교 Anatolius(약 A.D. 282)에 대해 언급하면서 에녹과 희년의 고대 달력들의 초기 기독교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주장한다(
Biblical Calenders, 1959, 161-162). 주교는 Philo와 Josephus,
“에녹서의 가르침”(
the teaching of the Book of Enoch)과 같은 유대교 권위들에 호소하며 춘분(vernal equinox) 이후에 14일주 의자들의 유월절 기념을 옹호한다(Eusebius,
HE 7, 32, 14-20에서 인용). 그러나 Anatolius가 부활절 일요일 대신 14일주의자들의 유월절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후자의 기념을 정당화하기위해 주교는 에녹서 뿐 아니라 Philo, Josephus, Musaeus, Agathobuli와 같은 몇 유대인 저자들도 인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출애굽기와 관련한 의문들을 설명하며 모두 똑같이 첫 달 중순에 춘분 이후로 유월절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Eusebius,
HE 7, 23, 17). 언급된 일부 저자들이 종파 유대교의 대표격의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춘분 이후의 유월절 기념에 대한 주장이 종파적 유대교와 규범적 유대교 모두에 생소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2) W. Rordorf,
Sunday, 181. C. S. Mosna도 같은 견해를 밝힌다.
“[태양 숭배]가 일요일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태양에 바쳐진 그 날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매주 반복되는 고정된 날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 날이 정확히 안식일 다음날과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C. S. Mosna,
Storia della domenica, 33.
3) W. Rordorf, Sunday, 37. Rordorf의 범주적 진술에 주목해보면,
“그리스도인들의 일요일 준수의 기원이 어떤 식으로든 태양신의 일요일 숭배와 관련이 있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 한다면, 분명 답은 ‘아니다’가 될 것이다” ibid.
4) 인도와 페르시아, 시리아, 그리스, 로마에서의 태양 숭배와 관련해서는 F. J. Dolger,
Sol Salutis, 19252, 20이하와 38이하를 참고하라. 팔레스타인 경우는
“Sonne, bei den Hebraäern”라는 단어를 보라. H. Baumann,
Realencyklopädie für protestantische Theologie und Kirche, 1963
3. F. J. Hollis,
“The Sun-cult and the Temple at Jerusalem,” Myth and Ritual, 1933, 87-110. 태양 숭배가 요시아의 개혁 이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은 열왕기하 23장 11절과 같은 본문들을 통해 발견된다.
“[요시아]가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에스겔 8:16과 지혜서 16:28도 참고하라.
“우리는 태양을 마주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 동일 틀 때에 그분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림.” Philo는 치유자들(Therapeutae)이 하늘의 빛을 구하며 동일 틀 때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Philo,
De vita contemplativa 3, 27.
5) Gaston H. Halsberghe,
The Cult of Sol Invictus, 1972, 26. 이 논의는 일찍이 A. von Domaszewski가 제안하였다. A. von Domaszewski,
Abhandlungen zur Romischen Religion, 1909, 173.
6) Gaston H. Halsberghe, 27, 35.
7)
Fasti of Philocalus, CIL I, 2, 324 or
Fasti of Amiternum, CIL IX, 419
2. F. Altheim 일찍이 B.C. 4세기에 로마에서
“고향 땅의 태양”(Sol Indiges)을 숭배했다는 것과 관련한 풍부한 근거를 제시한다. F. Altheim,
Italien und Rom, 1941, II, 24-25. 태양신의 가장 오래된 달력에서는 목성과 연관이 되어 있다. Marcus Terentius Varro(116-약 26 B.C., De re rustica 1, 1, 5)는 태양과 달이 대개 목성과 지구 바로 다음으로 생겨났다고 기록 한다. Tacitus(약 A.D. 55-120)는 원형 극장에 태양을 숭배하기 위한 오래된 성전이 있었다고 진술한다(
Annales 15, 74, 1; 참고, 15, 41, 1).
8) G. Wissowa는
“indigiti-native”라는 표현은 동방의 태양신들이 생겨났을 때 오직 태양신만을 표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G. Wissowa,
Religion and Kultus der Romer, 1912, 315이하.
9)
CIL VI, 701; A. Piganiol은 Augustus가 태양 숭배를 장려했으며,
“빛의 신들에게 우선권을 허락했다”고 주장한다. A. Piganiol,
Histoire de Rome, 1954
4, 229. Halsberghe는 Augustus가 이집트의 태양신을 로마로 수입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고대의 로마인들의 태양신(
Sol)에게 승리의 명례를 돌리고자 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로마의 만신전에 있는 그 어떤 신도 고대 로마의 태양신(Sol)보다 이 영광스러운 승리를 누릴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특별한 중재와 보호를 통해 성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상징하는 두 개의 오벨리스크들은 이러한 해석을 보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Caston H. Halsberghe, 30. Augustus 전에 Anthony도 그의 동전에 태양신을 주조하였으며,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 후에 그는 그녀의 두 아들의 이름을 Helios와 Selene로 개명하였다(A. Piganiol, 239. H. Cohen,
Description historigue des monnaies frappées sous l’
empire romain, I, 44. W. W. Tarn,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2
nd ed., X, 68. 참고. Dio Cassius,
Historia 9,4 and 50,2,5,25). Cicero(106-43 B.C.)는 태양을
“다른 빛들과 마음과 지도 원리의 주인이자 우두머리이자 통치자이며, 빛과 함께 모든 사물들을 나타내고 채우시는 위대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태양숭배에 대한 문명화된 로마인들의 높은 존중감을 보여주고 있다. Cicero,
De republica 6, 17,
LCL, 271.
10) Tertullian,
De spectaculis 8, ANF III, 83쪽; Tacitus는 원형 극장에 태양을 숭배하는 성전이 존재했음을 근거를 통해 보여준다(
Annales 15, 74, 1).
11) 참고,
CIL I 327; XIV, 4089; V, 3917; VI, 371. 이 본문들은 Halsberghe가 33쪽에서 논하고 있다.
12) H. Mattingly,
Coins of the Roman Empire in the British Museum, 1940 I, 134, 171. 참고. Tacitus,
Annales 15, 74.
13) Elius Spartianus, Hadrianus 19, LCL Scriptores Historiae Augustae I, 61. 참고, A. Piganiol, 228, 332-333. 이 본문에서 Hadrian은 자신을
“마지막 동전들에 그 이미지가 나타나는” 태양과 연관시킨다. 참고, H. Cohen, II, 38, n. 187, 188.
14) Tacitus,
Historiae 3, 24.
15) Caston H. Halsberghe, 35. 2. A. von Domaszewski, 173.
16) Plutarch(A.D. 46-125)에 따르면, 미트라가 로마에 소개된 것은 기원전 67년 폼페이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시실리아의 해적들을 통해서였다(
Vita Pompeii, 24). Papinius Statius(약 A.D. 96)는 Thebaid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미트라, 바위투성이의 페르시아 동굴 아래서 마지못해 따르는 황소의 뿔을 잡아당기네”라고 기록했다(
Thebaid I, 718-720,
LCL I, 393). Turchi Nicola,
La Religione di Roma Antica, 1939, 273.
“미트라 종교는 해적들을 통해 알려졌다. ∙∙∙ 그러나 특히 그리스도 이후 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영향을 미쳤다.” Franz Cumont도 동일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두 종교 [즉, 미트라교와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거의 같은 시기였다”(
The Mysteries of Mithra, 1956, 37). Ž. 1. M. J. Vermaseren,
Enciclopedia Cattolica, 1952,
“Mithra a Mithraismo” 라는 단어를 보라.
“미트라는 시실리아의 죄수들을 통해 로마에 들어왔다(67 B.C.). ∙∙∙ 그것은 Flavii, 나아가 Antoninii와 Sererii 아래서도 확산되어 갔다.” 17) Caston H. Halsberghe, 44.
18) Franz Cumont는 이 견해를 잘 기술하고 있다. Franz Cumont,
The Mysteries of Mithra, 1956, 101.
19) E. Schürer는 행성 주간이 유대 주간 제도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했으며, 그것은 일곱 행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옹호한다(
“Die siebentagige Woche im Gebrauch der christlichen Kirche der ersten Jahrhunderte,”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6 [1905]:18이하). W. Rordorf는
“행성주간제도 전체로서는 유대력과 공동으로 발전했다”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Sunday, 33). 그리스로마 세계에 유대인들의 안식일의 보급은 도성의 사악한 영향력에 대한 점성술적 믿음을 끌어들였다. 이어 다른 행성들도 그 주의 다른 날과 연관 지어졌다. F. H. Colson은 행성 주간제도가
“유대인들의 주간 제도에 대한 이교적 해석”이 아니며, 이는 행성의 순서가 각 날의 개별적 시간이 한 행성의 주관아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하나의 점성술적 발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The Week, 1926, 42). Dio Cassius(약 A.D. 220) 또한 동일한 설명을 제시한다(
Historia 37, 18-19). 한 주의 168시간을 그들의 과학적 체계에 따라 각 행성에 분배하면, 토요일의 첫 시간은 토성의 보호 아래 놓이는데, 토성이 바로 그 날의 주관을 맡는 것이다. 두 번째 날의 첫 시간은 태양, 셋째 날의 첫 시간은 달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첫 시간을 지배하는 행성이 그 날의 보호자가 되어 그 날에 전념하는 것이다. 동일한 설명은 A.D. 354년의 시간기록자에서도 발견된다(
Chronica minora: Monumenta Germaniae Hist., acutores antiquissimi, IX, 1892), F. Boll은 행성 주간 제도가 바벨론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는 상세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Hebdomas,” Pauly-Wissowa VII
2, col. 2556이하).
20) S. D. Waterhouse,
“The Interpretation of the Planetary Week into the West,” The Sabbath in Scripture and History (Review and Herald 출판):
“그러므로 행성의 주간 에 필요한 구성 요소들, 즉 바빌로니아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행성 신들의 개념, 헬라인들의 수학, 이집트인들의 dekans 또는 시간 등의 개념이 함께 모여져 영향력 있는 토착의 유대인들이 많았던 알렉산드리아 또한 히브리인들의 주간순환체계라는 마지막 구성 요소로 접합했다.” 21) Dio Cassius,
Historia 49, 22, LCL 5, 389. 참고,
Historia 37, 16; 37, 17; Josephus 는 Dia Cassius의 설명을 더욱 분명히 하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만 유일하게 방어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로마인들이 알았기 때문에 도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Wars of the Jews 1, 7, 3;
Antiquities of the Jews 14, 4).
22) Horace는 다음의 맹세를 하며 미신적 어머니에 대해 묘사한다.
“‘오, 주피터, 쓰라린 고통을 주기도 뺏기도 하는 이여’, 아이의 어미는 다섯 달 동안 누운 아이를 위해 눈물을 쏟네, ‘나흘마다 찾아드는 오한이 내 아이 곁을 떠나면, 그대가 금식을 정한 그 날 아침에 그는 발가벗은 채로 티베르 강에 서 있으리’”(
Satirae 2, 3, 288-290,
LCL 177). 번역가 H. R. Fairelough은 설명한다.
“이는 우리의 목요일에 해당하는 dies jovis [목성의 날]일 것이다”(Ibid.). 참고, J. Hastings,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1928,
“Sunday” 라는 단어를 보라. Ovid(43 B.C.-A.D. 18)는 7일주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한다.
“그대는 그 날에 시작하게 될 것인데 ∙∙∙ 이는 일을 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날로, 그 날에 팔레스티인의 시리아인들이 지키는 제7일의 축제가 돌아온다”(
Ars Anatoria 1, 413-416. 참고, 1, 75-80.
Remedia Amoris 217-220).
23) Tertullian은 자신의 시에서 그의 정인 Delia와 함께 로마에 머물기 위해 찾아낸 변명들에 대해 설명한다.
“사악한 징조의 새들이나 말들은 나의 변명들이었다네, 그것도 아니면 나를 지체케 할 토성의 성스러운 날도 있었다네”(
Carmina 1, 3, 15-18). 토성의 날은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운이 좋지 않은 날(dies nefastus)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Tibullus와 동시대 인물은 Sextus Propertius는
“한 사람뿐 아니라 모두에게 슬픔을 가져다주는 토성의 징후”라는 언급을 한다(
Elegies 4, 1, 81-86).
24) Dio Cassius,
Historia 37, 18,
LCL, 130.
“행성들로 불린 일곱 개의 별에 날을 비친 것은 이집트인들로 인해 확립되었고, 그러 머지않아 모든 인류에 퍼져나갔다. 그 시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적어도 내가 보기에 고대 헬라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체계가 다른 이들과 로마인들 자신에게도 보급되었기 때문에 ∙∙∙ 그것은 그들에게 이미 오랜 선조들의 관습이었다.” W. Rordorf는 Dio Cassius의 진술을 끌어와 행성주간제도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A.D. 1세기 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Sunday, 27, 37).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행성주간이 곳곳에 알려졌고 로마 인들이 그것을 하나의 선조들의 관습으로 여겼다는(새롭게 생겨난 시간순환제도는 하룻 밤 사이에 널리 퍼지지 않는다) Dio 자신의 진술이다. 두 번째, 이미 기원전 37년, 즉 예루살렘이 Sosius와 Herod에게 사로잡혔을 때, 안식일이
“그때부터 이미 토성의 날”로 불렸다는 그의 언급이다(
Historia 49, 22). 게다가 Dio는 행성 주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련해 로마인들이 아닌 헬라인들을 그 상한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해 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성주간제도는 이미 기원전 1세기 때 분명 유래되었다”는 C. S. Mosna의 의견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25) 사빈 달력들은 T. Mommsen에 의하면 약 기원전 19년과 기원후 14년 사이의 것들로 추정된다(
CIL 12, 220). Attilio Degrassi도 이 연대에 동의한다(
“Un Nuovo frammento di calendario Romano e la settimana planetaria dei sette giorni,” Atti del Terzo Congresso Internationale de Epigrafia Greca e Latina, Rome, 1957, 103). 이 아티클은 다음의 자료에도 포함되어 있다(
Scritti vari di antichitá, 1962, 681-6910. Degrassi는 새로 발견된 Nola 달력조차도
“Tiberius 시기 이전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26) A. Degrassi의 진술처럼, A부터 G까지의 문자는 각각 행성주간제도의 일곱 날을 상징한다는 것은 그 체계가
“오래전부터 인정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A.D. 354년의 필로칼리안력(Philocalian calender)에서 한해를 통틀어 그 표현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Ibid., 26). Herbert Thurston은 사빈 달력에 대해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방의 제7의 기간 혹은 주간이 소개되었을 때, Augustus의 시기에 시간의 새로운 분할의 날짜들을 가리키기 위해 눈디나이(nundinae, 로마달력)에 동일한 방법으로 알파벳의 첫 다섯 문자를 사용했다. 눈디나이를 가리키는 8개의 문자(A-H), 주간을 보여 주는 7개의 문자(A-G)가 나란히 사용되었고, 그 안에 사실상 바위에 적힌 부분적인 달력들도 포함되어 지속되었다(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 2nd ed., I, 220. A.D. 356년의 필로칼리안력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발견된다, Ibid., 256).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고안을 모방했는데, 그들의 달력에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일곱 개의 문자들(A-G)이 반복적으로 순환되고 있다”(
The Catholic Encyclopedia, 1911,
“Dominical Letter”라는 단어를 보라).
27) A. Degrassi, 103-104. 참고,
CIL 12, 218. 하나는 폼페이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곧 A.D. 79년 이전이라는 것이다.
CIL IN, 8863. 이 달력들은 또한 A. Degrassi에 의해 재
현되었다(
Inscriptiones Italiae, 1963, XIII, ns. 49, 52, 53, 55, 56).
28) A. Degrassi, 104.
29)
CIL X, part 1, 199(No. 1605).
30) Philostratus,
Life of Apollonius of Tyana 3, 41,
LCL I, 321, 323.
31) Petronius,
Satyricon 30,
LCL, 45.
32) Frontinus,
Strategemata 2, 1, 17,
LCL, 98. Dio Cassius의 설명은 더욱 유사하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토성의 날에 파괴되었으며, 그 날은 심지어 현재 유대인들이 가장 숭
배하는 날이다”(Historia 65, 7,
LCL, 271).
33) 폼페이인들의 행성 신들의 그림의 선명한 복제본은 다음을 보라. Erasmo Pistolesi,
Real Miseo Borbonico, 1836, VII, 116-130, 삽화 27. 참고,
“Le Pitture Antiche d’Ercolano,” Real Accademia de Archeologia, III, 257-263. H. Roux Ainé,
Herculanum et Pompei: recueil général des peintures, bronzes, mosaiques, 1862, 106-109. 1. J. Hastings,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 1928,
“Sunday”라는 단어를 보라.
34)
CIL I, part 1, 342.
CIL IV, part 2, 515, no. 4182. Herculaneum에서는 한 벽에 헬라어로
“신들의 날”고 새겨져 있는데, 그 뒤로는 소유격 형식으로 일곱 행성의 신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CIL IV, part 2, 582, no. 5202. 참고,
CIL IV, 712, no. 6779. E. Schürer, 270157. R. L. Odom,
Sunday in Roman Paganism, 1994, 88-94.
35)
CIL IV, part 2, 717, no. 6338. 1
36) Attilio Degrassi,
Inscriptiones Italiae, 1963, XIII, 308-309, 삽화 56. Troianus Marulli,
Sopra un’antica cappella cristiana, scoperta de fresco in Roma nelle terme di Tito, 1813. I. A. Guattani,
Memorie enciclopediche per il 1816, 153이하, 표 22. Antonius De Romanis,
Le Antiche camere esquiline, 1822, 21, 59이하.
37)
Plutarch’s Complete Works, III, 230.
38) 그 시기의 천문학 지심체계(geocentric system)에 따르면, 행성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앞에서부터 가장 먼 행성). 그러나 행성 주간에서 날들은 다음의 순서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토성,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관련 논의는 R. L. Odom, 11-17을 참고하라.
39) R. L. Odom은 A.D, 3세기까지의 행성주간제도에 대한 증거들을 살펴보고 있다. R. L. Odom, 54-124쪽.
40) 몇 학자들도 이 결론을 공유한다. F. H. Colson, 36:
“위에서 논의된 증거들을 볼 때, 행성주간제도가 어떤 측면에서는 폼페이가 파괴된 시기에 제국에 이미 알려져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세기를 더 빠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 Botte,
“Les Denominations du dimanche dans la tradition chrétienne,” Le Dimanche, Lex Oriandi 39, 1965, 16:
“Tibullus가 그의 애가(Elegy)를 썼을 당시, 행성주간제도는 이미 하나의 관례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연대 이전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다는 것, 반면 2세기부터 관련 암시들이 방대하게 발견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러한 변화가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면서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참고, H. Dumain,
“Dimanche,” DACL IV, 911.
41) F. H. Colson, 75.
“최고의 숭배 대상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종교는 그것이 태양과 동일시되지 않고서는 비-미트라교도들 조자도 태양의 날로 묘사하는 대상에게 특별한 경외를 바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42) W. Rordorf,
Sunday, 35. 본래 태양의 날은 행성주간제도에서 첫 날 토성의 날 다음인 둘째 날이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몇 비석 달력들(흔히 indices nundinarii 로 불림)에서는 주간의 날들이 수평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이 역시 토성의 날로 시작하고 있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한 벽화에는
“신들의 날”(Days of the Gods)라고 헬라어로 쓰여 있고, 이 역시
“kronou [토성의], Heliou [태양의]∙∙∙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CIL IV, part 2, 582, no. 5202). 폼페이에서도 라틴어로
“Saturni[토성의]”로 시작하고 있다(CIL IV, part 2, 712, no. 6779). W. Rordorf는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러나 행성주간제도에서 일요일이 언제나 순서적으로 두 번째 위치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Sunday, 35)
43) V. Monachino,
De persecutionibus in imperio Romano saec. I-VI et de polemica pagano-christiana saec, II-III, Gregorian University, 1962, 147.
44) 321년 3월 3일의 첫 법령의 본문은
Codex Justinanus III, 12, 3에서, 321년 7월 21일의 법령 본문은
Codex Theodosianuus II, 8, 1에서 발견된다. 하나의 사회적 관습이 공공의 복지를 위태롭게 할 때, 안식의 날과 같이 그 관습을 법으로 제정하자는 요구가 생겨 났다. 이로써 태양의 날에 대한 숭배가 이미 제대로 뿌리내린 하나의 전통이었다고 보는 것은 꽤나 그럴싸한 추측이다.
45) Arthur Weigall,
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 1928, 236.
46) Eusebius에 따르면, Constantine은 군인들을 포함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의 예배에 참석” 하라고 권고했다(
The Life of Our Christianity, 1928, 236). 이교도 군인들에 대해 황제는 포괄적 기도문을 주어 야외 들판에서 암송하도록 명령했다(참고. Sozomen,
HE 1, 8, 12). 제국의 명령은 전통적인 이교도 일요일 예배의 본보기가 될 수 없었는데, 이는 법의 제정 동기가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기록된바 인류의 구주께서 성취하신 것을 ∙∙∙ 기념하며”(
NPNF 2nd, I, 544). 더욱이 콘스탄틴의 법은 공공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농업이나 사적 활동들은 허용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 당시에도 일요일의 이교적 숭배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47) Tertullian,
Ad Nationes 1, 13,
ANF III, 123. W. Rordorf는 Tertullian이 태양의 날이 아닌 토성의 날을 언급한 것이며, 이는 그가 이후에 이교들이 채택한 안식일과 같은 유대 인들의 규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Sunday, 37). 안타깝게도 Rordorf는 Tertullian이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숭배자라는 비난에 대응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와 같은 비난은 첫째, 이교도들로 하여금 태양을 숭배하고 그 날을 채택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두 번째로 그들이 안식일과 같은 유대인 규례들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어떻게 그들의 전통에서 멀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야기된 것이었다. 이 본문에 대한 분석은 본서 저자의 이탈리안 논문의 445-449쪽을 참고하라. F. A. Regan은 Tertullian이 일요일을 언급하고 있다고 인정한다(Dies Dominica, 35).
48) Pliny the Elder,
Naturalis historia 2, 4, LCL, 177.
49) 보노니아 부조에서 행성의 신들은 토럭톤(tauroctone; tauroctony, 미트라가 황소를 죽이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 아치에 위치해 있으며, 그들은 오른 쪽의 달(월요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달리고, 그들 뒤로 화성(화요일)이 뒤따르고 ∙∙∙ 왼쪽의 태양(일요일)으로 끝나고 있다. F. Cumont,
Textes et Monuments, 1886-1889, II, 261; I, 119. 참고. L. A.
Campbell, 342.
50) Samuel Laechli,
Mithraism in Ostia, 1967, 11, 13, 14, 38-45, 72-73. 일곱 개의 문에 대한 Mithraeum(미트라의 신전)은 A.D. 160-179년경, 반면 일곱 개의 구는 2세기 후반으로 연대가 추정된다. 전자의 경우, 태양의
‘문’은 가장 길고 넓고; 반면 태양의 구는 짐작컨대 가장 마지막 것이다. Leroy A. Campbell,
Mithraic Iconography and Ideology, 1968, 300-307, 사진 19, 20. 1
51) Origen,
Contra Celsumm 6, 21-22. Celsus는 역순으로 행성들을 나열시켜(토성,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태양) 태양을 일곱 번째 자리에 배치시킨다. 미트라교의 도상 연구에서 주간의 날과 신의 배열은 다양할 수 있으나, 행성 신들의 순차적인 순서는 동일하게 유지되며 태양은 언제나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다. Priscillian(약 A.D. 370)은 조금 다른 나열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태양은 가장 높은 위치에 놓인다(
Tractatus 1, 15). 브리게티오 부조(Brigetio relief)에는 행성의 신들이 토성에서 금성으로 행성주간제도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L. A. Campbell, 삽화 33.
52) F. Cumont,
Astrology and Religion Among the Greeks and Romans, 1912, 163. Cumont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한 주의 각 날, 곧 그 행성에 대한 거룩한 날은 어두운 곳에서부터 정해진 장소로 불러져왔다. 그 위로 태양이 주재하는 일요일은 특히나 거룩했다”(
The Mysteries of Mithra, 1956, 167). 참고, Textes I, 119쪽.
“태양의 날(dies Solis)은 분명 미트라신의 숭배자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며, 그리스도 인들과 같이 그들도 안식일이 아닌 거룩한 일요일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참고, 325쪽). Isidore of Seville는 일요일 예배가 태양의 날에 부여한 우월성에 대해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신들은 로마인들이 각 별들에 이름을 받친 한 주의 각 날들을 배열했다. 그들은 첫 날을 태양의 날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태양이 모든 별들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Etymologiae 5, 30,
PL 82, 216).
53) 시기는 Otto Neugehauer과 Henry B. Van Hoesen의
Greek Horoscopes, 1959, 117쪽에 밝혀진 내용에 기초하고 있다.
54) Vettius Valens,
Anthologiarum 5, 10, ed. G. Kroll, 26. Rober L. Odom. Vettius Valens가 사용한 달력체계원칙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며
“분명 이교도였던 Vettius Valens는 7일로 된 주를 사용하고 7일의 주(the seven-day week)가 태양의 날(일요일)과 함께 시작되고 안식의 날(안식일)로 마무리 된다고 여겼다”(
“Vettius Valens and the Planetary Week,” AUSS 3(1965): 110-137). H. Dumaine은 다른 근거들을 기반으로 동일한 견해를 변호하고 있다(
“Dimanche” DACL IV 912). 참고, W. H. Roscher,
“Planeten,” Allgemeines Lexikon der griech. und röm. Mythologies, 1909, col. 2538.
55) B. Botte, 21.
56) Jacquetta Hawkes,
Man and the Sun, 1962, 199쪽.
57) Tertullian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기뻐하는 것이 태양 숭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교도의 비난을 강하게 거부한다(
Apology 16, 1.
Ad Natione 1, 13, 1-5,
ANF III, 31, 122). Origen 역시 Celsus가 기독교를 미트라교 포함 및 이교도의 신비종교에 비유하는 것을 터무니없고 반박이나 반복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여겼다(
Against Celsus 1, 9. 6,
22,
ANF IV, 399-400, 583).
58) Tertullian,
On Idolatry 14
ANF III, 70.
“어떻게 ∙∙∙ 신도들 가운데서 그것들 [즉, 이교의 축제들]을 기념하는 사악한 일을 행할 수 있는가! 빈번하게 찾아오는 농신제와 새해, 하겨울의 축제들, 마트로날리아 축제들 선물이 오고 가고 새해 선물들 놀이로 소음이 가득하고 만찬이 그들의 요란함과 함께하니, 그리스도인 자신들을 위해서는 조금의 엄숙함도 보이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종파에게는 더 나은 충절을 바치는도다!” 59) Jack Linsay는 20장
“이교도와 그리스도인들”(Pagan and Christians)에 초기 기독교에 대한 점성술적 신념의 영향에 대해 중요하고 간결한 분석을 담고 있다(
Origin of Astrology, 1972). Origen은 별들의 명령이 아니면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한탄한다(
Philocalia 23). H. Dumain과 De Rossi는 그리스도인들의 비석에 새겨진 문구들에 쓰인 행정주간제도의 명칭들이 당시의 보편적인 미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언급된 날이 그 날을 보호하는 별에 속해있다는 미신에 따른 것이었다.(
“Dimanche” DACL IV, 872-875. 참고, E. Schürer, 35-39). 교부들은 그와 같은 믿음에 반대한다. 브레시아의 주교 Philaster(약 A.D. 397)는 다음과 같은 당시의 지배적 신념을 이교라고 비난한다.
“태양, 달의 날 등에 대한 명칭이 ∙∙∙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 이교들, 즉 헬라인들이 그와 같은 명칭들을 확립시키고 인류의 운명이 하늘 별들에 달려 있다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Liber de haeresibus 113,
PL 12, 1257). Priscillian(약 A.D. 340-385)의 것으로 보이는 한 문서에서는
“자신들의 신성한 의식에서 태양, 달 등과 ∙∙∙ 지옥이 마땅한 가증스러운 우상들인 하늘에 떠 있는 모든 무리들을 신으로 인정하고 숭배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절대적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Tractatus undecim, CSEL 18, 14). 참고, Martin of Braga,
De correntione rusticorum, ed. C. W. Barlow, 1950, 189. Augustin,
In Psalmos 61, 23,
CCL 39, 792.
60) 상당히 많은 예들을 다음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F. Cumont,
Textes et monuments II, 202, no. 29. 210, no. 38. 241, no. 73. 290, no. 145. 211, no. 169. 350, no. 248. 434, no, 379.
61) 3-1. E. Kirschlbaum,
The Tomb of St. Peter and St. Paul, 1959, 35쪽. P. Testini,
Archaelogia Cristiana, 1958, 167. 그 모자이크는 성 베드로의 성당 아래에서 최근의 발굴 작업을 통해(1954-1957) 발견되었다. 참고, 그리스도를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으로 묘사한 미술 복제물(F. Cumont, I, 123, table no. 6).
62) Justin은 대양신 숭배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을 대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태양보다 더 뜨겁고 밝게 타오”른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해 ∙∙∙.
“그분에 대한 믿음을 거부 하게 될 때보다 더한 고통과 온갖 종류의 고문을 이제까지 겪고 있다”고 했다(
Dialogue 121,
ANF I, 109). 사르디스의 주교 Melito(약 A.D. 190)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 문헌에서는 그리스도와 태양을 분명한 병렬구조로 대비시키고 있다.
“태양이 별과 달과 함께 바다에서 씻는다면, 그리스도는 왜 요단강에서 씻으면 안 되겠는가? 하늘의 왕과 동쪽의 태양인 창조의 대표자 둘 모두 하데스에서 죽고 세상에서 다신 살아났으며, 이 유일한 태양은 하늘로부터 떠오른다”(
On Baptism, ed. J. B. Pitra,
Anaelcta Sara Spicilegio Solemensi 1884, 2, 5). Clement of Alexandria (약 A.D. 150-215)는 참 빛과 참 태양의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하늘의 신에 대한 이교의 공통적 명칭을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킨다.
“παντεπόπτης” -모두를 내려다보는 유일한 자. Clement는 이교도들에게 그들의 점치는 의식을 버리고 진정한 태양과 빛(the true Sun and Light)이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라고 촉구한다(
Protrepticus II, 114, 1,
GCS 1, 80, 16.
Stromateis 7, 3, 21, 6,
GCS 3, 15, 28.
Paedagogue 3, 8, 44, 1,
GCS, 1, 262, 7). Origen(약 A.D. 185-254)은
“의의 태양”이라는 명칭에 대해 동일한 호감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의의 태양이시며, 달, 즉 교회가 연합하면 그분의 빛으로 그곳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
In Numeros homilia 23, 5,
GCS 7, 217, 24. 참고,
In Leviticum homilia 9,
GCS 6, 438, 19). 카르타고의 주교 Cyprian(A.D. 339-397)은 신도들에게
“부활의 기념으로 일출 시간에 기도를 하고 ∙∙∙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는 일몰 때에 기도” 하라고 권고한다(
De oratione 35,
CSEL 3, 292). 밀란의 주교였던 Ambrose(A.D. 339-397)는 널리 퍼진 태양 숭배에 대응하기위해 종종 그리스도의
“lumen verum et Sol justitiae—의의 참된 빛이자 태양(true light and Sun of Justice)”과
“Sol iniquitatis—불의의 태양(Sun of iniquity)”을 대조했다(
In Psalimos 118,
sermo 19, 6
CSEL 62, 425, 4f), A. J. Vermeulen은 그리스도인들인 배타적인 변증론적 태도를 택하지 않았으며, 대신
“그들은 특정 이교적 관습과 규례, 상(images)을 받아들였다. 그 안에서 이교적 내용들을 제거하고 그것을 기독교적 사상에 적용시킨 후로 그와 관련한 이의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The Semantic Development of Gloria in Early Christian Latin, 1956, 170). J. Daniélous 비슷한 견해를 제시한다(
Bible and Liturgy, 299). Eusebius of Alexandria(약 A.D. 500)는 이렇게 기록한다.
“많은 이들이 태양을 놓고 예배하고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양이 떠오를 때 그들은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를 허락하소서’라고 말한다. 이는 태양 숭배자들뿐 아니라 이단자들도 마찬가지며, 나아가 믿음에서 출발한 그리스도인들도 이교자들 사이에 섞여있다”(
PG 86, 453). 이 문제가 띠고 있는 걱정스러운 부분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을 숭배한다는데 대한 교황 Leo the Great(A.D. 461)의 격렬한 공격을 통해 암시되고 있다(
Sermon 27,
In Nativitate Domini, PL 54, 218). F. J. Diger은 특별히 20장과 21장에서 기독교 예배식에 태양 숭배가 미친 영향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들을 제공하고 있다(
Sol Salutis. Gebet und Gesang in christlichen Altertum. Mit besonderer Rücksicht auf die Ostung in Gebet und Liturgies, 1925).
63) 단 6:11; 역대하 6:43이하.
Jewish Encyclopedia, 1907,
“Prayer”이라는 단어를 보라.
64) Irenaeus,
Adversus haereses 1, 26, ANF I, 352.
65)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eis 7, 7, 43, GCS 3, 32.
66) Origen,
De Oratione 32,
GCS 2, 400, 23.
67)
Apostolic Constitutions, 2, 57, 2와 14에는 교회 건물과 신자들 모두 동방을 향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제시되어 있다. 게다가 신자들로 하여금
“동쪽의 고대 낙원을 기억하고 동쪽의 하늘로 승천하신, 곧 동쪽으로부터의 하나님께 기도” 하라고 촉구한다.(ANF VII, 42). 참고.
Didascalia 2, 57, 3. Hippolytus,
De Antichristo 59,
GCS 1, 2, 39-40.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Cyril(A.D. 315-386)은 침례 후보자들에게 악의 영역인 서쪽을 우선 향한 다음
“나는 사단 당신과의 절교를 선언합니다”라고 말하도록 했다. 이후 그들은
“지옥과 함께 모든 고대의 유대(bonds)를 끊고 동쪽에 놓인 하나님의 천국이 당신 앞에 열려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Catechesibus 1, 9,
Monumenta eucharistia, ed. J. Quasten, 2, 79). 어느 한 초기 기독교 시리아 저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대들이 동쪽을 향해 기도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이는 ‘동쪽에서부터 비추는 빛이 서쪽에서도 보이듯이 인자의 오심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께서 불현 듯 동쪽에서부터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Didascalie d’Addai 2, 1, F. Dölger, 72, n. 3을 보라), 참고, Basil,
De Spiritu Sancto 27, 64,
PG 32, 189. Gregory of Nyssa,
De oratione Domini 5,
PG 44, 1184; Augustine,
De sermone Domini in morte 2, 5, 18, PL 34, 1277.
68) F. A. Regan,
Dies Dominica, 196.
69) 필로칼리안력(A.D. 354)에서 12월 25일은
“N[atalis] Invicti-무적의 탄생일(the birthday of the invincible one)”로 명칭되고 있다(
CIL I, part 2, 236). Constantine의 조카인 배교자, 도한 미트라 숭배자였던 Julian은 이교도 축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해가 시작하기 전, 토성[12월]에서 이름을 딴 한 달의 끝에서 우리는 Helios [태양]을 기리며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기념하네. 그 축제는 무적의 태양에게 바치는 것이며 ∙∙∙ 통치의 신들이 주신 것으로 우리는 제물로 그들을 찬양하고 기념하네! 가장 위대하신 Helios는 스스로 모든 만물의 왕이 되시며 우리에게 이를 허락하신다네”(Julian,
The Orations of Julian, Hymn to King Helios 155,
LCL, 429). Franz Cumont,
Astrology and Religion Among Greeks and Romans, 1960, 89.
“매우 일반적 준수의 형식은 동지 이후에 날이 길어지고 ‘무적의’ 별이 어둠과 싸워 다시 승리를 얻었을 때 12월 25일에 ‘새로운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다.” 12월 25일에 미트라교의 기념일에 대한 본문은
CIL I, 140을 참고하라. Gordon J. Laing은 고대 로마 농신제(12월 17-23일)의 관습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기간으로 옮겨갔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Survival of Roman Religion, 1931, 58-65), G. Brumer와 K. Prumm은 12월 25일 축제를 태양 숭배를 즐겨했던 것으로 유명한 황제 Aurelian(A.D. 270-275)에게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G. Brumer,
Jahrbuch für Liturgiewissenschaft, 1935, 178이하, K. Prumm,
Stimmen der Zeit, 1939, 215. 그 가설은 도나투스파(Donatists)가 1월 6일을 준수하지 못한데 대한 Augustine의 견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PL 38, 1033). 그러나 이것이 당시 12월 25일이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70) 예외의 경우가 있는데, 무명의 한 시리아 저자는 Bar-salibaeus(A.D. 1171)의
Expositio in Evangelia의 여백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므로 왜 앞선 의식이 교부들에 의해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이동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로 그 날, 즉 12월 25 일에 태양 일출(the rising of the sun)에 대한 축제를 기념하는 것은 이교도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더군다나 그 날의 의식의 엄숙함을 더하기 위해 불을 밝히고, 그 날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고로 교부들은 그들이 그 관습을 친숙하게 여긴다고 본 것이며, 나아가 의회를 마련해 그 날을 실제 죽음에서 일어나신 분(the true Rising)에 대한 축일로 정했다”(J. S. Assemanus,
Bibliotheca orientalis 2, 164, trans. by P. Cotton,
From Sabbath to Sunday, 1933, 144-145).
71) Augustine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크리스마스에 태양이 아닌 창조주를 예배하라고 명령한다(
Sermo in Nativitate Domini 7,
PL 38, 1007 and 1032). 교황 대 레오는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탄생 대신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질책했다(
Sermon 27,
in Nativitate Domini, PL 54, 218).
72) L. Duchesne는 하나의 가능성의 차원에서 그 가설을 제시한다(
Christian Worship: Its Origin and Evolution, 1919, 260이하), M. Righetti는 3월 25일이라는 날짜가
“역사적으로 근거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우화적 사려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이는 즉 춘분에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Manuale di Storia Liturgica, 1955, II, 68-69). 이 이론에 따르면, 동일한 날에 창초가 시작되었고, Augustine의 말처럼 그리스도가
“붙잡혀 십자가형을 당”했다(
De trinitate 4, 5, PL 42, 894). 참고, Hippolytus는
In Danielem commentarius 4, 23에서 유사한 견해를 제시한다.
73) O. Cullmann,
The Early Church, 1956, 29. Cullmann은 두 가지 요소 모두
“공현 대축일(Epiphany, 1월 6일)로부터 그리스도 탄생의 축일을 분리시키고, 전자를 12월 25일로 이동시킨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는
“4세기 초반에 그리스도론의 교리적 발전”을 도모하고 12월 25일 태양—신을 기리기 위해 열린 이교도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Cullmann은 교리에 관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시기에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비난 이후로, 공현 대축일로부터 탄생의 축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두 축일 모두 특히 동방에서는 1월 5-6일(탄생—침례로써)에 기념되었는데, 이것에 반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
“Epiphany=현현(appearing)”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기념되는 날인만큼 이설로 흔히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적 설명이 기발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특히 서방에서의 12월 25일 채택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사실상 두 축일의 분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전에 1월 6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적이 있는지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다.
74) Joseph A. Jungmann,
The Early Liturgy to the Time of Gregory the Great, 1962, 147. L. Duchesne, 26.
“필로칼리안력의 12월 25일 아래 기록된 무적의 태양신(Natalis Invicti)의 축제에 기반해 ∙∙∙ 로마 가톨릭이 미트라교와 경쟁하기 위해 12월 25일을 선택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John Ferguson도 동일한 견해를 밝힌다(
The Religions of the Roman Empire, 1970, 239). 참고. Franz Cumont, 89, I, 342.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성탄의 기념은 12월 25일로 정해졌고, 이는 동지에 무적의 신의 재탄생을 기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날을 택함으로써 ∙∙∙ 기독교의 권위자들은 그들이 억압할 수 없었던 일부 이교의 관습들을 어떻게든 정제한 셈이다.” 75) Gaston H. Halsberghe, 174. O. Cullmann, 35.
“1월 6일과 12월 25일 두 날짜의 선택은 두 날 모두 이교도의 축제날이었고 그 의미에 있어서 특히나 크리스마스의 기독교적 개념에 대한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었다.” B. Botte도 다음의 글에서 동일한 견해를 밝힌다. B. Botte,
Les Origines de la Noël et de l’
Epiphanie, 1932, 14. 1. C. Mohrmann,
“Epiphania,” Revue des Sciences Philosophiques(1937):672.
76) T. Mommsen,
Chronography of Philocalus of the Year 354, 1850, 631. L. Duchesne는 그 달력이 3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로마 순교자 증언록(Depositio martyrum)이 Sylvester(A.D, 335)를 마지막 교황으로 언급하고 있는 로마의 Depositium episcoporum에 의한 4세기 달력(Philocalian)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Bulletin critique, 1890, 41).
77) M. Righetti, II, 67. 이 견해는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데, 참고로 다음의 글들을 보라. L. Duchesne,
Christian Worship: Its Origin and Evolution, 1919, 26. O. Cullmann, 30.
“로마교회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이교적 속성의 숭배인 자신들의 빛의 축제와 그리스도 탄생의 축제를 대비시켰다.” 78) B. Botte, 14이하.
79) O. Cullmann, 32. 로마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반대와 확산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다음을 참고하라. M. Righetti, II, 70.
80) Joseph A. Jungmann, 151.
81) Eusebius,
Commentaria in Psalmos 91,
PG 23, 1169-1172.
82) Eusebius보다 훨씬 전에 Justin Martyr는
I Apology 67에서(그렇게 명확하게는 아니지만) 똑같은 두 가지 논거에 대해 언급했다. Justin Martyr,
I Apology 67, 230, 265.
83) Jerome,
In die dominica Paschae. homilia, CCL 78, 550, 1, 52. Augustine,
Contra Faustum 18, 5. Augustine은 창조의 첫날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및
이 있었고 ∙∙∙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기 때문에 일요일은 빛의 날이라고 설명한다(창 1:2-5). Augustine,
Sermo 226,
PL 38, 1099.
84) Maximus of Turin,
Homiilia 61,
PL 57, 271. 브레시아의 주교 Gaudentius(약 A.D. 400)는 주의 날이 안식일과의 관계에서 우선되었는데, 이는 그 날에 의의 태양이 나타나 유대인들의 어둠을 없애고 이교도들의 얼음을 녹이며 태고의 질서로 세상을 회복시키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Sermo 9,
De evengelica lectione 2,
PL 20, 916.
De Exodo sermo 1,
PL 20, 845). Eusebius도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빛과 태양으로부터 그 이름을 얻은 주의 날”(
Life of Constantine 4, 18,
NPNF 2nd, I, 544). 참고. Hilary of Poitiers,
Tractatus in Psalmos 67, 6,
CSEL 27, 280. Athansius,
Expositio in Psalmos 67, 34,
PG 27, 303. Ambrose,
Hexaemeron 4, 2, 7,
Epistula 44,
PL 16,
1138.
85) F. H. Colson, 94.
86) Tertullian,
On Idolatry 14,
ANF III, 70. Martin of Braga 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질책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침례를 받은 이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인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는 대신 목성과 수성의 날을 숭배하다니 이 무슨 어리석은 행동인가 ∙∙∙ 이들은 아무런 날도 아니며 다만 간통자와 마법사들이였으며 ∙∙∙ 악 속에서 죽은 것들이다”(
De correctione rusticorum, ed. C. W. Barlow, 1950, 189).
87) 크리스마스 경우에도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의 한 축제로부터 빌려왔음을 분명히 인정하고자 했다. 각주 70을 보라.
88) F. A. Regan,
Dies Dominica, 157에서 이러한 관점이 잘 설명되고 있다.
89) 예로 Justin Martyr는 성경적 본문에 기초해 그리스도와 태양을 연관시키다.
“그분의 진리와 지혜의 말씀은 태양의 광선보다 더욱 열정적이며 더 많은 빛을 허락한다. ∙∙∙ 이로써 성경도 동일하게 말한다, ‘그분의 이름은 태양 위로 솟을 것이다.’ 스가랴 또한 말하기를, ‘그의 이름은 동양이라’”(
Dialogue 121,
ANF I, 260).
90) 시편 84:11에서는 태양의 칭호를 하나님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시편 72:17은 메시야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참고, 이사야 9:2; 60:1-3, 19-20; 스가랴 3:8.
91) 계시의 내용을 시작하면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계 1:16).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앞에서 변형되셨을 때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 졌더라”(마 17:2). 추가적인 본문들과 그 논의를 위해서 F. A. Regan,
Die dominica, 157-163을 참고하라.
92) E. Lohse는 이 가능성을 인정한다.
“하나의 기여 요소는 분명 기원전 1세기부터 행성을 따라 이름 지어진 7일 주간이 헬라-로마 세계에서 점차 채택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토성의 날은 일반적으로 불운한 날로 여겨졌는데, 반면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특별히 좋은 날로 인식되었다.” E. Lohse,
“σάββατον,” TDNT VII, 29.
93) Eusebius,
Commentaris in Psalmos 91,
PG 23, 1169-1172.
94) Justin,
I Apology 67.
95) Justin,
Dialogue, 121.
96) Macrobius는 태양이
“동양에서는 날(the day)을 열고 서양에서 닫는”다고 말한다(
Saturnalia 1, 9, 9).
“Herculeus는 바다 깊숙한 곳에서 으르렁대는 태양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 태양은 떠오를 때에 마치 붉게 달아오른 철이 물속에 담겨질 때와 같이 맹렬히 타오른다.” Juvenal,
Satirae 14, 280.
97) Melito of Sardis,
Fragment Villb, 4, SC 123, 233. Zeno of Verona는 종종 기독교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태양의 비유를 사용했다. 그는 개종자의 침례 의식을 태양이 바다에 담기는 모습으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을 믿는 이들에게 약속된 불멸의 영광과 비교했다(
Liber II, 46,
PL 11, 503A, 504).
98) F. H. Colson, 92.
99) B. Botte, 21.
100) F. H. Colson, 93.
101) Maximus of Turin,
Homilia 61, PL 57, 371.
102) Eusebius,
Life of Constantine 4, 18,
NPNF 2nd, I, 544.
103) 몇 학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지지한다. Franz Cumont는
“일요일이 거룩한 날로 일반적으로 인식되게 된 것은 분명 태양의 날에 부여된 우월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Franz Cumont, 163. P. Cotton도 이와 유사하게
“이교도들이 쓴 태양의 날(Sun-day)이 기독교의 일요일(Sun-day)을 예배를 위한 유일한 날이자 우월성을 지닌 날로 교회 안으로 끌어온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기록한다. P. Cotton, 130. 참고, F. H. Colson, VI. O. Cullmann은 2세기 중반의 태양의 날과 부활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2세기 중반부터 ‘일요일’이라는 용어는 앞선 ‘주의 날’을 위해 존재했다. 즉 그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구속적 행동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이미 태양의 상징성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O. Cullmann,
The Early Church, 1956, 29. 하지만 Cullmann은
“주의 날”이라는 명칭이
“Sunday” 보다 이전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증하지 못했다.
104) Jerome,
In die dominica Paschae homilia,
CCL 78, 550, 1,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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