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8. 물두멍과 그 받침 (나의 모든 더러움은 그리스도의 것임)
 성막이 처음 세워졌을 때 하나님은 물두멍과 그 받침이 사용되기 전에 봉헌의 의식을 상술하셨다. 피와 기름이 있따라서 물두멍과 그 받침 위에 뿌려졌다(출 30:26~29; 40:11; 레 8:10, 11). 이 두 가지는 목격자들에게 물두멍이 예시한 봉사에 나타난 갈바리의 희생 제물의 피와 오순절의 성령의 기름이 담당한 역할을 바라보도록 표상적으로 가리켰다. 이 이중의 수단은 이스라엘의 물두멍 씻음에 활력을 부여하고 정결케 하는 말씀을 지적했다. 이 의식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물두멍을 구별하고 계심을 강조하셨고, 당신의 성도들에게 그것을 세속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경성시키셨다. (109.4)
 70인역은 물두멍 이동에 대한 마소라 원문의 지시를 첨가하고 있다. 운반하는 동안에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자색 천을 가져와서 물두멍과 그 받침을 덮을 것이고 그것을 푸른[그리고 검은] 가죽 덮개에 붙이고 막대기 위에도 그것을 붙일 것이다”(민 4:14, LXX), 성소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어디로 여행할지라도 그것들의 정결을 위한 그분의 배려가 그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계셨다. (109.5)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표상하는 물두멍
 구약의 물두멍으로 표상된 봉사는 신약의 침례를 미리 알렸다. 이 그리스도인 예식을 받아들이기 전에 제자는 회개하고(행 2:38), “옛 사람”이나 “그의 이전 생활 습관”을 버리기로 은혜에 의하여 결심해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또한 율법의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써,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한 깊은 감사가 마음속에서 날마다 뜨거워져 엄숙해 질때 그는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요 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기의 정욕과 야망을 즐겨 묻어버리겠다는 표로써 침례의 물 속으로 들어가도록 자기 자산을 허락한다(롬 6:1~8). 당신의 지상 대표자들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의 새로 태어난 자녀의 영적 부활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를 물무덤에서 일으키신다. (109.6)
 그가 “여전히 육체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지라도 거듭난 제자는 이제 후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갈 2:20)살겠다고 작정한다. 그가 그리스도인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는 동안, 그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다음의 감동적인 진리의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만일 우리가 동의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시고 우리의 사상과 목적을 당신의 뜻과 일치하도록 섞어 놓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받은 자극을 실행에 옮기는데 불과하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668). (110.1)
 하나님이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그들의 시련에서 구원하신 여러 가지 방법들—그 중 많은 것들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것들과 유사하지만—은 물 침례와 관련된 성경 이야기들로 예시된다. 베드로는 침례의 의미가 방주 안에 남은 믿는 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되었던 대홍수에 의하여 묘사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벧전 3:18~22). 바울은 홍해의 큰 물결이 “침례받은” 이스라엘의 피난을 위한 보호의 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전 10:1, 2).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구름 그늘이 당신의 굴복한 유순한 백성들을 뜨거운 광야를 편안하게 통과하게 한 것 역시 그들의 침례에 해당한 것이라고 또한 설명했다(고전 10:1, 2). 바다의 깊음까지도 반항하는 요나를 지켜 주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 버린 것을 설명한 그분의 “피의 침례”에 대한 예증이 되었다. 영감은 이 각각의 네 이야기들을 승리의 부활 전에 있는 침례의 매장과 관련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 진리들을, 성령의 역사를 중생케 하는 물에 비유함으로써 니고데모에게 공개하셨다. 이 사상들은 물두멍과 그 물로 이루어진 봉사를 통하여 오랫동안 시사되어 왔다. (110.2)
 물두멍 정결은 계속해서 반복되어야 한다
 율법은 모든 봉사자에게 성소에서 어떤 의무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깨끗이 하도록 요구했다. “먼지의 입자들이 그들에게 묻어서 거룩한 장소를 더럽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뜰에서 그들의 신을 벗도록 요구되었다. 성막 문 옆, 뜰에 놋 물두멍이 서 있었는데, 그 곳에서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어 모든 불결을 제거해야 했다. 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 특별한 준비를 하도록 요구받았다”(4T, 159).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나는 나의 주님께 봉사하고자 시도하기 전에 나의 생애를 정결케 해주는 은혜의 물줄기를 규칙적으로 적용하는가? (110.3)
 제사장들이 보여준 태도는 이스라엘에게 모본이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하나님 면전에 나왔을 때 매우 조심스럽고 매우 철저해짐으로 하나님께 대한 큰 경외심을 보인다면 그것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그분의 요구에 대하여 하나의 숭고한 사상을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하고 그분의 사업은 거룩하고 그분의 사업과 관련된 모든 것도 거룩해야 하므로 불결과 부정과 같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2T, 612). (110.4)
 “말씀의 물두멍”에 대한 “충성된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의 관계(엡 5:26, Henry Alford, 신약주석)와 그 세밀한 요구들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성경을 연구하고 순종하게 하는데 오늘날도 똑같이 중요하다. (111.1)
 물두멍에서 씻은 손발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이나 성소로 가져갈 때마다 그들의 손발을 씻었다(출 40:32). “여호와의 기구를 매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라고 복음 선지자가 표현한 그대로 성막 뜰에서 반복된 물두멍의 기별은 여전히 우리에게 끊임없는 정결을 유지하도록 요구한다. 이 매일의 생애의 정결이 없으면 칭의가 그리스도인 발전의 다음 단계인 성화, 곧 성소의 기구들의 상징학(symbology)과 그것들을 통하여 실천된 의식들에 의하여 가르친 성화로 나아갈 수 없다. 이 정결을 찾고자 한 다윗의 결심이 우리의 결심도 되어야 한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시 26:6, 73:13). (111.2)
 물두멍의 봉사는 오직 아론 계통의 제사장 직분으로 태어난 자들에게만 적용되었다. “왕같은 제사장들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출생”을 통하여 그분의 봉사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복음의 여러 분야를 대표하는 “주님의 기구들을 멜” 때 우리 역시 “중생의 물두멍”으로 표상된 실체와 그것이 초래한 정결이 우리의 생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딛 3:5; W. J. Conybeare, The Epistles of Paul). (111.3)
 제사장의 성별에 물두멍의 물이 필요되었다
 물두멍의 물은 대제사장의 성별과 관련된 의식에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대표자로서 모세는(레 8:6; 출 29:4) 아론의 완전한 정결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를 물두멍에서 길어온 물속에 잠갔다. 우리의 대제사장의 경험에 있는 이 단계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한번 야고보와 요한에게 질문하셨다.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느냐”(마 20:22; 눅 12:50). 아론을 침례 주는 일에 나타난 모세의 이 행동은 그리스도의 지도 아래 있는 모든 목자들의 여행길에 하나의 이정표로 표상되었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의 침례 “매장”이 완전한 위탁을 나타낸 것임을 마음에 명심하도록 호소했다(롬 6:1~11). 이 처음의 목욕을 근거로 오직 손(매일의 활동)과 발(순례자 여행의 발걸음)은 그 후의 씻음이 필요할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세족 예식에서 상징되었다(요 13:10). (111.4)
 여러 가지 다른 의식들이 물두멍에서 이루어졌다. 희생 제물의 부위들이 제사장에 의하여 제단 위에 놓여지기 전에 씻겨졌다(레 1:9, 13). 랍비들은 간음을 의심받는 여자를 판정해 주고자 할 때는 “제사장이 사기 그릇을 가져와서 물두멍에서 떠온 물을 그릇에 절반이 되게 부었다”(Sotah 2:2)고 기억한다. 그리고 성소에서 가져온 먼지를 그 표면에 뿌렸고, 이 물은 그의 남편이 고소문을 기록한 두루마리에서 글씨를 쓴 잉크를 지워 버리는 데 사용되었다. 먼지와 잉크를 지우는 데 쓴, 물로 이루어진 이 한 첩의 약은 송사당한 여자가 마셨다. 죄가 없는 자에게는 이 행동이 변호가 되었고 그는 단순히 그에 대한 반감 때문에 고소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11.5)
 장막절 동안의 물 의식들
 장막절기의 매일에 물두멍에 공급해 주는 수원인 광야의 바위와, 예루살렘의 실로암 못에서 직접 가져온 물은 여러 가지 의식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만일 이 물통이 덮여 있지 않으면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 침을 당한 반석에서 계속적으로 용솟음쳐 나온 기적적인 물줄기를 기념해 주는 물두멍에서 물을 사용했다(Sukkah 4:10). (112.1)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대제사장은 다섯번 자기 자신을 물에 잠갔다. 그리고 낮 동안에 행해진 의식 동안에는 물두멍에서 떠온 금주전자 속에 들어있는 물로 자주 손발을 씻었다(Yoma 4:5). 이 예증들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이루는 모든 활동에 있어서 죄와 불결을 씻어 주는 샘에 의하여 우리가 정결한 상태로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112.2)
 성막의 뜰에 그처럼 분명하게 눈에 뜨인 물두멍의 끊임없는 존재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매일의 발걸음에서 더럽혀진 그리스도인도 역시 끊임없는 정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번의 목욕이 일생 동안을 위하여 결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이 최초의 목욕의 중요성을 정말로 강조하신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 13:10). 제사장들은 “죽기를 면”하기 위하여(출 30:17~21) 정결의 의식을 준수하도록 강요되었다. 이 진리를 마음속에 간직할 때 “내가 너를(개인 혹은 개별적으로)씻지 아니하면(계속적으로)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고 하신 우리 주님의 경고는 특별한 힘으로 그분께 바쳐진 상태로 가까이 지내도록 우리에게 도전한다. 하나님은 얼마나 철저한 분이신가! 그리고 그분의 충성된 제사장으로 부르신 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그리고 생애의 순결을 얻도록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준비는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 그러나 아스라엘이 여기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의 장소는 성막 뜰에 있는 물두멍에서였다. “죄와 부정을 씻기 위하여” 다른 샘을 찾은 자들은 더러워진 그대로 남았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에게는 “한 침례” 밖에 없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행 4:12). 이 샘을 무시하면 우리 주님을 공공연하게 수치스럽게 하고 결과적으로 영원한 손실을 당하게 된다. (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