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8. 물두멍과 그 받침 (나의 모든 더러움은 그리스도의 것임)
 물두멍은 성소 뜰, 곧 번제단과 성소로 가는 휘장 사이에 위치한 커다란 놋 물대야였다. 랍비는 입구와 제단, 곧 성막의 중앙을 통하여 동서로 그어진 상상의 선 남쪽에 서 있었다고 기억한다(Middoth 3:6; 출 30:18; 38:8; 40:30). 그 위치는 모세의 물두멍을 그대로 딴 솔로몬의 놋 “바다”도 마찬가지이다(왕상 7:39). 의식을 준수하기 위하여 모여든 예배자들을 향하여 그 위치는 “제단과 회막 사이”였다(부조와 선지자, 347, 348; 27, 611). (104.1)
 중앙선 북쪽, 물두멍의 반대편에는 말뚝들, 혹은 솔로몬의 성전에는 놋 고리들이 땅에 고정되어 있는 도살장이 있었다(레 1:11). 제물들은 많은 의식에 필요한 피를 제공해 주기 위하여 그들의 도살자들에게로 끌려갔다. (104.2)
 정결과 희생의 상징
 이와같이 물과 피의 상징물들은 여러 종류의 정결을 제공해 주기 위하여 성막뜰과 관련되어 서 있었다. (104.3)
 물두멍을 만드는 데 대한 하나님의 지시는 그 크기나 모양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이름은 세수통(왕상 7:30), 요리하는 솥(삼상 2:14), 화로(슥 12:6)등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마도 파다, 구멍을 뚫다, 마치 양철장이가 하듯이 망치를 가지고 둥글게 만들다, 곧 때리는 일을 가리키는 듯한 그런 근원적인 의미에서 유래된 것 같다. 시편 기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묘사할 때 이 근원적인 의미를 나타낸다(시 22:16).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팠다, 구멍을 뚫었다. 망치질을 하였다). 갈바리에서 망치와 못이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물두멍을 만들었고, 거기에서 정결한 구원의 물이 흘러나왔다. (104.4)
 모세의 물두멍은 아마도 거의 둥글었던 것 같다. 이것은 모세의 물두멍을 철저히 모방한 솔로몬 성전의 놋 바다의 모양에서 지지된다(왕상 7:23~26, 39).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른, 다른 하나의 단서는 둥근 세수대야, 사발, 망치질을 하여 반구형(半球形)으로 만든 접시 혹은 가정용 기구 등을 가리킨 그 히브리 이름이다. 그 말은 한때 솔로몬이 성전을 헌당할 때 서기도 하고 무릎을 꿇기도 했던 둥근 강도상, 혹은 놋 단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104.5)
 물두멍과 그 받침
 물두멍은 기초, 혹은 대좌(臺座)를 나타내는 데 흔히 사용되지 않는 “받침”(footing)으로 자주 언급된다(출 30:17~21, 28; 31:9; 35:16; 40:7, 11, 30; 레 8:11). 이것은 아마도 물두멍보다 직경이 다소 더 크고 테가 위로 향한 얕은 받침 접시 모양의 접시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그것 역시 물을 담았다. 이 대좌(臺座)의 중심에서부터 물두멍 자체를 지탱해 주기 위해서 하나의 받침대가 서 있었다. 그것은 백합화(Unger의 성경 사전 참조)혹은 연꽃처럼 보였다고 한다(대하 4:2~5; 왕상 7:23~26). (105.1)
 물두멍이나 그 받침 안에서는 아무 것도 지금껏 씻은 적이 없었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저장소였고, 거기에서 봉사자들은 필요한 물을 퍼냈다. 정결 의식을 위한 이런 종류의 주선은 예배자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얼굴과 손발을 씻을 물을 제공해 주는 회회교 사원 밖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성소에서 유래된 것 같다. 제단이나 거룩한 장소에서 봉사하고자 한 모든 제사장은 물두멍에서 물 의식을 통하여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도록 요구되었다(출 30:17~21). 광야 방황시절에 물두멍은 사막의 모래 위에 놓여 있었다. 이것이 순례자들의 필요에 따라 맑은 물을 제공하기 위하여 그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 곳까지 내려온 하늘의 겸비에 대한 복음 성가를 부르게 한다. 예수님은 “땅의 일”(요 3:12)에 관련된 새로 태어남을 니고데모에게 상기시켰는데, 그것은 용서, 정결, 칭의, 중생으로 이루어진다. 그분의 표현은 또한 땅으로 뻗어나가는 식물들에 대한 묘사이고,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주님은 이와 같이 당신의 제자들이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고전 6:11)이 필요함을 묘사하셨다. 물로써 이루어지는 이 영적 정결 의식은 물두멍과 그 받침이 성막 뜰에서 표상적으로 제공했다. (105.2)
 놋 거울로 만든 물두멍
 물두멍은 이스라엘의 여자 예배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바친 잘 닦여진 구리나 놋 “거울”로 만들어졌다(출 38:8; 30:17~21). 그런 금속제 거울들이 성지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많이 출토되었다. 성서적 지화법(指話法)에서 거울은 율법의 한 기능, 곧 죄를 드러내 주는 것을 예시한다(약 1:23~25; 고후 3:17, 18). 시내산에서 처음 주어졌을 때 여자들의 이 상징적 선물의 의미는 단단하게 싼 봉오리였다. 15세기 후에 동정녀 어머니는 베들레헴에서 그 꽃이 활짝 피어나게 했다. 나사렛 예수의 인성은 우리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과, 우리가 실제로 처해 있는 상태, 두 가지를 다 같이 비춰보는 하늘의 거울이다. 그분의 육신, 사랑의 성육신, 완전히 준수된 십계명 조항들의 전시(展示)가 경배하는 나사렛 처녀를 통하여 우주에 제공되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마침”, 곧 율법의 목표이시다(롬 10:4, telos), 가브리엘은 정결의 하늘 연꽃의 실질은 여인의 선물이다라고 선포할 수도 있었다. (105.3)
 성막 문에 모이는 여자들은 성전을 짓고 있는 일꾼들과 함께 봉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거울이 매일의 몸 치장에 필요한 것을 보여 준대로 해왔었다. 그러나 외모적인 미(美)가 하나님의 이상을 충족시킬 수 없다(삼상 16:7). 역사가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殿)의 “문” 만큼이나 성장했다고 기록했다. (105.4)
 그들은 거기서 더 풍부한 경험을 얻고자 탐하듯이 열망했던가? 그들이 호렙산을 관 씌운 영광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상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의 거울을 브사렐의 용해시키는 불꽃과 변화시키는 망치에 맡겼는가? 그들의 행동은 외모적인 것에서 돌이키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나타냈다. 그들의 생활 경향이 바뀌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귀하게 여기던 이기심의 도구들을 버리게 된 것이다. 반 세기 전에 렘멜(H. H. Lemmel)이 쓴 메세지에 유의하는 자에게는 자아가 더 이상 매력적인 것이 못된다. (106.1)
눈을 예수께 돌려
그 얼굴을 주목하라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에
세상 영화는 사라지네
(106.2)
 거울은 하나님의 율법의 상징이다
 죄인이 그의 구주의 생애를 명상할 때, 성령께서는 그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는 “죄악 중에 출생”(시 51:5)한 자기 자신을 인정할 자세가 된다. 성경은 하늘이 그런 통찰력을 주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는 “발바닥(날마다의 보행)에서 머리(그들의 사상)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사 1:6)임을 깨달은 사람들에 대한 예로 충만해 있다. 이와같은 자아인지(自我認知)를 통하여 “완전한” 욥까지도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 6)라고 탄식하게 되었고, 한편 흠없는 이사야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사 6:5)이라고 부르짖었으며, 하늘의 “은총을 크게 받은” 다니엘도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 하였”(단 10:8)다는 것을 인정했다. (106.3)
 거룩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죄를 깨닫고 나면 성령께서는 회개자의 마음에 변화와 정결에 대한 갈망을 일으켜 준다. 그리고 그의 변화된 시각으로 거울을 다시 보면 그는 전에 “속박의 율법”으로 보았던 것이 완전한 “자유의 율법”(약 2:12)임을 발견한다. 그는 괴로운 양심에서 정결을 얻고,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의 짐에서 벗어나고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106.4)
 그러나 율법은 그를 정결케 하고 해방시키는 데 무력하다. 그 효력은 그의 죄악적인 마음과 용서의 필요를 나타내 주는 데 불과하다(롬 3:20; 7:7~13). 거울—물두멍은 똑같이 본질적인 제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넓은 일을 하도록 그 봉사를 확장시키셨다. 놋 거울이 물두멍과 그 받침으로 꼴 지워진 후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침을 당한 반석에서 나온 물로 채우도록 요구하셨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자연의 훼손된 상(像)을 반영했던 것이 이제는 그 정결을 위한 하늘의 수단으로 번쩍이게 되었다. (106.5)
 침을 당한 반석에서 나온 깨끗한 물
 주님께서는 물두멍의 풍부한 역할을 위한 물을 깨어진 바위에서 마련하셨다(출 17:5, 6). 간음의 의심을 받는 여자와 관련된 의식에서는 물두멍에서 떠 온 “거룩한 물”만이 사용될 수 있었는데(민 5:17), 이것은 물두멍에서 떠온 물이 의식적(儀式的)으로 정결하다고 생각했고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1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