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안식일에 대한 모독이 비의도적이고 위반자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 그는 속죄 제물을 드리면 면책되었다. ‘안식일을 모독한 자’(민 15:32-36)는 만일 그가 경고를 받고도 ‘끊쳐진’ 범행을 제멋대로 저질렀다면 마땅히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하고 과오로 그렇게 되었다면 속죄제물만 드리면 된다”(Sanhedrin. 7:8). 그러나 “행위의 시작과 끝이 과오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책임질 필요가 없다(Shab. 11:8).” 랍비 아키바는 주장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망각으로 말미암아 같은 종류의 과오들을 여러 안식일에 걸처 행했다면 그는 위반사항들을 위해서 한번의 속죄제사를 올리면 된다”고 하였다(Kerithoth 3:10). 그러나 많은 위반 행위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것들이었거나 한가지 행동이 안식일의 위반의 여러 종류에 관련되는 것이라면 각각의 위반사항에 대하여 각각의 속죄제물을 드려야 한다(Shab.72b). 만약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도 일을 하고 주중에도 일을 했으나 정확히 어느 날에 무슨일을 행했는지 그가 알지 못했을 때는 부지중에 행한 속건 제물을 바쳐야 한다”(레 5:17, 19; kerithoth 4:1). (84.4)
 랍비들의 안식일 준수의 긍정적인 측면
 앞에서 보았듯이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들의 상세한 설명을 듣다보면 랍비들의 안식일관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부담스러운 인상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일반적인 인상은 일방적이고 왜곡된 것이다. 랍비들은 안식일들을 즐거운 날(사 58:13)로 만들기 위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리고 그 일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거룩하신 분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보물 창고에 안식일이라고 하는 한 선물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하노라, 가서 그들에게 알려라”(Shab. 10b). 여기서 우리는 랍비들의 안식일 준수의 적극적인 측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85.1)
 랍비들은 그들에게 혼란스럽게 보이는 사실, 즉 출애굽기의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라”(Zekor)로 시작하고 있는 반면에 신명기의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Shemor)로 시작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자신들의 상당한 주석적인 재간을 이용하여 해결하였다. 그들은 안식일에 대해 서로 불일치하는 이 명령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마련하였다. 자주 거론되는 설명은 두 다른 단어가 “입으로 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귀로들을 수 없는 하나의 발성으로 발음되었다”는 주장이다(Shebuoth 20b). 두 번째 설명은 덜 형이상학적이고 좀더 실제적인 설것이다. “기억하고 지키라. 안식일이 오기 전에 기억하고 안식일이 온 다음에 지키라. 그래서 랍비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언제나 거룩한 것에 거룩하지 않은 것의 얼마를 추가함으로써 거룩한 것을 증가시켜야한다”고 하였다(Gen.R.9:14). 이것은 이리가 앞뒤로 움직이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엘리아자르 벤 하나니야 벤 히스기야 벤 가론은 이렇게 말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안식일을 기억하라.’ ‘주간의 첫날부터 계속해서 안식일을 마음에 간직하라. 그리하여 만약에 어떤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안식일을 위해 그것을 단장하라. 랍비 이사악이 말하기를, 너는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세듯이 세지 말고 안식일을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세라’(Mek.Bachodesh 7). (85.2)
 이처럼 랍비들에게 안식일은 그 주간의 절정이었다. 그 날은 증대해가는 기대감과 함께 다가왔다가 머뭇거리면서 떠났다. 심지어는 금식이 선포된 기간에도 안식일을 존중해서 목요일에는 온 종일 상점 문을 열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안식일은 즐거운 날이라 한 이사야 58:13을 성취시키기 위해 음식물과 술과 깨끗한 옷으로 안식일을 존중해야 했다(Taanith 1:6; Midrash on psalm 92:3). 느헤미야 8:9-12의 정신에 따라 안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안식일에는 특히 음식과 술을 사용함에 있어서 다소의 사치가 허용되었다. 안식일의 첫 식사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하여 사람들은 금요일에 덜 먹었다(pesikta Rabbati 23:6, 7). 비록 하찮은 음식이라도 그것이 안식일을 존중하여 준비된 것이라면 그 음식을 안식일의 기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돈을 적게 사용하면 그 만큼 돈을 더 적게 벌게 된다고 하였다(Shab. 118b; Lev. R.30:l). (85.3)
 금요일에는 유대인 주부들이 칼라(Challah)라고 하는 특별한 빵을 구웠다. 민수기 15:17-21의 정신에 따라 제사장들을 위해서 떡 반죽에서 한 부분을 떼어내어 구운 것이다. 성전제도가 무너진 다음에는 한 덩어리의 빵을 그냥 불 속에 던지는 관습이 생겼다. 주간에는 하루에 두끼만 먹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안식일에는 세끼를 먹는 것이 칭찬받는 일로 간주되었다. 금요일 밤에 식사하고 안식일 아침 예배 후에 식사하고 안식일 오후 예배후에 간단히 식사했다. 랍비 제리카(Zerikah)는 안식일에 세 번 식사하는 관습을 출애굽기 16:25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안식일에 세끼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세 가지의 악 즉, 메사아가 오시기 전에 일어날 대 환란과 게힌놈의 보복과,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들로부터 구원을 얻는다”(Mek. Voyass 5;Shab. 118a). 물론 모든 음식은 안식일 이전에 준비 되어야 했고 미쉬나의 제 3장과 제 4장인 삽바트 논총에는 음식을 보존하는 방법들이 설명되어 있다. 안식일에는 음식을 데울 수는 없었으나 음식의 온기를 유지시킬 수는 있었다. (86.1)
 안식일은 손님을 식사에 초청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이나 또는 잠시 그 마을에 머물다가 떠나는 나그네가 너무 가난해서 안식일에 좋은 식사를 할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이 알려졌다면 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리고 금요일에나 안식일에 금식하는 것과 안식일에 애곡하는 것은 대속죄일이 안식일과 겹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86.2)
 안식일에 애곡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 문상하거나 병자를 방문하는 일도 랍비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안식일에 병자를 방문할 경우에는 방문객은 필히 “오늘은 울면 안 되는 안식일이다. 속히 회복될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Gen. R. 100:7:Shab. 12b). 안식일에는 기도할 때 조차도 탄식하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되었다. (86.3)
 안식일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할 뿐 아니라 특별한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Shab. 113b;Gen. R.ll:2). 랍비 하니나는 룻기 3:3을 근거로 주장하기를 “사람은 평일과 안식일을 구별해서 입어야 할 두벌의 옷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랍비 시므라이(Simlai)가 이와같은 교훈을 설명하고 있을 때 그의 교훈을 듣고 있던 청중이 “울며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이 평일에 입는 옷이 안식일에도 입는 옷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랍비 시므라이가 그들에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다면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소”라고 하였다. 그가 이렇게 대답한 것은 안식일에는 비록 같은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그 옷이 다른 옷이 된다는 뜻이었다(Ruth R.5:12). (86.4)
 너무나 많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위해 특별한 옷을 마련해 입었기 때문에 이방인들 사이에는 이것을 조롱 삼아 말하는 관습이 생겼다.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오래 살고 싶은가?”라고 질문하면 상대방이 대답하기를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입는 셔츠의 수명만큼 오래 살고 싶다”고 한다(Lam. R. 5:12) (86.5)
 랍비들이 안식일의 축제적 의미와 관련하여 장려한 또 하나의 관심사는 혼인관계였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다”고 한 시편 1:3을 랍비들은 금요일 밤마다 혼인의 의무를 수행하는 남편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하였다(Nedarim 8:6;3:10;Bababkama 82a). 심지어는 남편과 별거하는 아내라 할지라도 금요일 밤에는 남편과 동침할 권리를 가졌다(Kethuboth 5:9). (86.6)
 안식일이 다가오면 누구나 집안의 분위기가 특별히 밝고 유쾌한 분위기로 바뀌어질 것을 기대한다(Shab. 23b, 25b). 금요일이 되면 한 주간의 축제인 안식일의 준비로 대단히 부산스럽게 된다. 고대의 유대인 사회에서는 회당지기(Chazzan)가 소파르(Shofar, 뿔 나팔)를 불어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한 기록에 의하면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에 뿔 나팔 소리가 여섯 차례 울렸다. 한 차례는 들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중지하라는 소리로, 두 번째는 도시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장사하는 일을 그치라는 소리로, 세 번째는 안식일을 위해 불을 켜라는 신호로 울렸다. 이것은 랍비 나단의 주장이다. 그런데 나시(Nasi:산헤드린의 의장)를 역임했던 랍비 유다는 세 번째 나팔소리가 성구함을 떼 놓으라는 신호였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나팔 소리가 울린 다음에 작은 생선 한 마리를 구울 만큼이나, 또는 빵 한 덩이를 화덕에서 구어낼 만큼의 긴 간격을 두었다가 연속적으로 한 차례의 짧은 나팔 소리와 한 차례의 긴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의 나팔소리와 함께 비로소 안식일이 시작되었다(Shab. 35b). 적어도 금요일 해가 지기 30분전에는 일을 마치거나 중단해야 했다. (87.1)
 출애굽기 20:9“엿새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하는 뜻이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이대 대하여 랍비들은 대답하기를 “사람이 엿새 동안에 자기의 모든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구절의 뜻은 너희의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안식일에 쉬라는 뜻이라” 하였다. 또 다른 해석은 “안식일에는 일에 대한 생각까지도 내려놓고 쉬라는 것이라 하였다”(Mek. Bachodesh 7). (87.2)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에 시작하였다. 고대에는 이 시간이 관측으로 결정되었다. “별이 한 개 보이면 그때는 낮이다. 별이 두 개 보이면 그때는 황혼녘이다. 별이 셋이 보이면 그때는 밤이다”(Shab. 35b). 후대에 와서는 안식일이 회당의 예배로 시작되는 관습이 정착되었지만 그전의 고대에는 안식일을 맞이하는 일은 가정의 행사였다. (87.3)
 일몰 직전에 안식일의 등잔에 불을 켜는 것은 안식일을 환영하는 가장 오래된 관습의 하나였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분명히 이 관습은 이미 잘 자리잡혀 있었다.9 여인이 있는 집에서는 불을 켜는 책임과 특권이 여성에게 있었다. 그리고 안식일의 등잔에 불이 켜지게 될때 비로소 가족들은 안식일이 당도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면 안식일을 축복으로 성별하는 키두쉬(Kiddush. 성별)예식이 뒤따랐다. 유대인들은 이 예식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출 20:8)한 성경의 명령으로 생각하고 이행하였다. (87.4)
 유대인들의 현인들은 이 성경절에 기초하여 가르치기를 “안식일이 들어오면 우리는 포도주 잔을 놓고 그 위에 그 날을 축복하는 기도를 암송함으로써 안식일을 성별한다”고 하였다(Mek. Bachodesh 7). 랍비 유다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시는(출 20:11) 여러 다른 방식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위한 축복을 규정하심으로써 안식일을 성별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는 안식일이 도착하면 포도주 잔을 놓고 그 위에 축복의 기도를 낭송함으로써 안식일을 거룩하다고 선언한다”(Pesikta Rabbati 23:6). 대체로 여인들은 확정된 시간 표에 기초된 적극적인 실천 사항들을 지키지 못해도 양해가 되었지만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에는 꼭 자리를 지켜 식구들과 같이 키두쉬를 암송하거나 들어야 했다(Shebuoth 206). 이 키두쉬 끝난 다음에 예식이 다음에 안식일의 첫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가 시작될 때는 노래를 불렀다. “안식일이 오면 우리는 안식일의 노래라는 시편을 노래하며 안식일을 환영한다”고 하였다(Midrash on Psalm 92:3). (87.5)
 후대에 와서 금요일 저녁 식사 전에 회당에 모이는 것이 관습화되었을 때는 회당예배를 마치고 가족이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가 양손을 자녀들의 하나 하나에게 얹어 차례로 축복을 하고 안식일의 천사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아내에게 잠언 31장을 낭송했다. 그리고 이 다음에 키두쉬를 낭송하고 식사를 했다. 랍비 요세(Jose)에 의하면 “안식일 저녁에 회당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한 사람에게 선한 천사 하나와 악한 천사 하나씩 합해서 두 천사가 동행한다. 그리고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 등잔 불이 켜있고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고 침대에 이불이 펴있는 것을 보면 선한 천사가 ‘다음 안식일에도 이렇게 될지어다’하고 소리친다. 그러면 악한 천사가 마지못해 ‘아멘’하고 화답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때는 악한 천사가 ‘다음 안식일에도 이와 같이 될지어다’라고 소리치면 선한 천사는 할 수 없이 ‘아멘’ 이라고 화답한다고 랍비들이 가르쳤다”(Shab. 119b) (88.1)
 안식일 아침에는 가족들이 여느 날들보다도 다소 늦게 일어나서 만약 회당이 안식일의 제한 거리 안에 있으면 회당으로 간다. 안식일 아침의 회당 예식은 다른 날들의 예식과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질병이나 다른 질고들을 언급하는 기도들이 생략되어 안식일에는 보통 때의 열 여덟 개의 축도가 일곱 개로 줄어든다는 것이었다(Midrash on psalm 92:3). (88.2)
 정오쯤에 안식일의 두 번째 식사를 했다. 사람들은 안식일의 음식들은 비록 식은 음식들이라 할지라도 다른 날들의 식사보다 더 맛있다고 주장하였다(Pesikta Rabbati 23:8). 유대인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회자되었다. “하나님은 맛있는 음식으로써 안식일을 축복하셨다. 우리들의 스승이신 왕자 유다(Judah the prince)는 안식일에 안토니우스를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식은 음식들이 그 앞에 제공되었다. 그가 그 음식을 먹어 보니 맛이 있었다. 또 한번은 그가 평일에 안토니우스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운 음식을 그에게 제공했다. 안토니우스는 음식을 먹고 그에게 말하기를 지난 번에 먹었던 음식이 더 맛있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왕자 유다는 대답하기를 ‘이 음식에는 어떤 양념 하나가 빠졌다’고 했다. 그러자 안토니우스는 그가 질문하기를 ‘그러면 왕궁의 주방에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하였다. 이에 대답하기를 ‘안식일이 빠졌다’라고 하였다. ‘당신은 진실로 안식일을 소유하고 있는가?’(Gen. R. 11:4). (88.3)
 점심 식사 후에 휴식 시간이 있었다. 오후 늦게 사람들은 베드 하미드라쉬(Beth ha-Midrash!-미드라쉬의 집)라고 부르는 회당 학교로 갔다. 그 시간에 혼자서 성경을 읽는 것보다는 안식일 오후에 강론에 참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졌다. 공부와 토론과 강의로 이루어진 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오후 민하(Minha-예물 또는 소제)예배가 있었다. “민하 예배의 이전에는 안식일에 성문서(聖文書:Hagiographa)를 읽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것들을 암송하고 그 뜻을 새길 수가 있었으며 만약 어떤 목적 때문에 자신의 암송과 해석을 검사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성문서의 사본을 취하여 찾아볼 수 있었다”(Lev. R.15:4). (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