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70년 이전에 존재했던 여러 종파들 중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살아남은 것은 둘 뿐이었다. 그 하나가 기독교이며 다른 하나가 바리새 종파이다. 비극적인 전쟁의 결과로 성전을 잃는 등 너무나 엄청난 뜻밖의 변화를 겪게되면서 바리새 종파도 불가피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A.D 70년 이후에 이같은 변화를 치르면서 살아남은 바리새 종파를 랍비 유대교라 부른다. 현대 유대교의 여러 형태는 모두 이 랍비 유대교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고전적인 랍비 유대교의 안식일 사상과 그 관습에 관하여 간략히 기술하려고 한다. (66.1)
 바리새 종파의 현저한 특징의 하나는 구전(口傳)의 전통을 높이 존중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서기관 에스라와 그의 대 종회(大宗會 - Great Assembly)로 일컬어지는 법원(法院)을 계승한 자로 자처하였다. 에스라의 대 종회에서 후대의 산헤드린이 발전하였다. (66.2)
 진실로 에스라와 그의 대 종회는 모세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전 율법의 전달자로 간주되었다(Mishna, Aboth 1:1). 구전의 율법들은 구약 성경에 있는 일부 증거 본문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해석들과 적용들은 모두 저명한 랍비들의 의견으로 제시되어 종회나 학당에서 투표를 거쳐 대다수 랍비들의 지지를 얻은 것들이다. 이렇게 산헤드린이나 특정 랍비들에 의해 마련된 법률적인 결정은 비록 성경에 의해 입증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권위있는 결정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같은 성서 외적 율법은 게지로트(geziroth:랍비들의 금지 규정들〈단수는 gezerah〉) 와 탁카노트(takkanoth:종법회의나 랍비들이 마련한 긍정적 규정들〈단수 takkanah〉)로 알려졌는데 신명기 17:11절에 이러한 율법에 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같이 랍비 유대교는 전통에 비추어 해석한 구약 성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6.3)
 구전의 율법은 말 그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입으로 전해온 율법이다. 그런데 랍비들에게는 구전의 율법이 성경으로 취급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하여 구전은 감히 기록되지 못하고 그 대신에 랍비들과 그 제자들의 머리에 저장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에 의하여 구전 전통의 분량은 계속적으로 증가되어 갔으므로 기억력의 부담은 혹심하게 가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A.D 1세기와 2세기에 1, 2차 유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지도급 학자들을 상실하고 또 전쟁에 뒤따른 박해들을 치르면서 인간의 기억들이 너무나 연약한 기록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몸통에서 짤려 나간 스승들의 머리는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이리하여 이 때부터 구전의 전통이 기록되었다. (66.4)
 A.D 135년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랍비 메이르(Meir)가 자신에게 알려진 율법들을 하나의 문서로 엮었다. 그리고 이 법전에 더 많은 율법들이 추가되었으며 3세기초에는 랍비 왕자 유다(Judah the Prince)에 의해 후에 미쉬나(Mishnah)로 불려지게되는 기초적인 랍비 율법의 법전이 편찬되었다. 그리고 이 미쉬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통적인 유대인들의 생활방식을 지도하고 있는 근본적인 지침으로 남아있다. 미쉬나는 63권의 책 또는 63개의 논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마다 별개의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안식일 율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논저(論著)들은 “삽바드”(Shabbath)와 “에루빈”(Erubin)의 명칭으로 분류되었다. 미쉬나를 모르면서 유대교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신약성경을 모르면서 기독교를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67.1)
 그러나 랍비들의 해석과 입법은 끝나지 않았으며 그 확충의 과정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해서 게마라(Gemara)로 알려진 미쉬나 논저들의 방대한 확대본들이 이루어졌다. 기초적인 미쉬나 본문들과 이 본문들을 크게 확충한 게마라를 모두 합친 것이 탈무드이다. 오늘날은 두 종류의 탈무드가 알려져 있다. 하나는 A.D 400년경에 결집된 팔레스틴(또는 예루살렘) 탈무드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보다 일백여년 늦게 편찬된 바벨론 탈무드인데 이 후자가 좀더 권위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두 탈무드가 랍비들의 안식일에 관한 우리의 고찰에서 사용될 가장 중요한 자료들이다. (67.2)
 대체적으로 말해서, 아직까지 언급한 작품들은 주제별로 정리가 되어있다. 이렇게 주제별로 정리된 랍비들의 저작들 외에도 성경의 본문들을 따라 연속적으로 주석한 다른 작품들도 있는데 이 저작들을 미드라쉼(Midrashim:단수는 midrash)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미드라쉼에는 여러 유형들이있다. 그 중에 가장 오래된 유형으로 할라카적(Halakic:법률적인)인 미드라쉬들이 있고 그밖에 주해적이며 교훈적인 미드라쉬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랍비 이스마엘의 메킬타”(Mekilta), “미드라쉬 라바”(Midrash Rabbah), “시편에 관한 미드라쉬”(The Midrash on Psalms), 그리고 페식타 라바티(Pesikta Rabbati)를 참고하게 될 것이다. (67.3)
 탈무드가 완성된 이후에도 랍비들은 유대인들의 여러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법률적인 결정들을 내놓았다. 이러한 법률적인 의견들을 레스폰사(responsa)라 부른다. 그 동안 이러한 자료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방대한 자료들을 요약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아마 가장 읽기 쉬운 요약집은 12세기에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편집한 술칸 아룩(Shulchan Aruch)이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자료들에 안식일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아래에서 보게 될 것이다. (67.4)
 안식일의 중요성
 유대교에서 안식일 보다 더 중요한 제도는 없다. 안식일의 중요성에 근접하는 제도가 있다면 할례가 있을 뿐이다. 랍비들에 따르면 안식일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토라의 교훈들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Hullin 5a; J. Berakoth 1:5).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죄로부터 멀리 보호받는다”는 말이 있다(Mek. Vayassa, 6). 랍비들의 한 설교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오 나의 백성들아 보라. 너희들은 십계명 전부를 파기시켰다. 그렇지만 만약 네가 한 계명을 지킨다면∙∙∙ 나는 너희를 용서하겠다. 그러면 이 하나의 계명은 어느 계명인가? 그것은 안식일에 관한 계명이다”(Pesikta Rabbati 27:4). 안식일 문제를 다른 “삽바타”(Shabbata) 논저들은 미쉬나에 있는 논저들 중에서도 가장 긴 것이며 다른 논저들에서도 안식일의 주제들이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67.5)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적 특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창조주를 증거하는 방식의 하나로 인식되었다(Mek. Bachodesh 8).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거룩성을 더해주고 있다. 왜 사람들이 안식일에는 상점문을 닫는가? 그가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가? 그가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신 그분이 엿새 동안에 그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을 이렇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43:12) 하였다”(Mek. Shabbata 1). (68.1)
 이스라엘이 안식일의 준수에 성공하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특권과 다복함과 구원이라는 세가지 큰 선물들이 약속되었다(Mek. Vayassa´ 5). 무엇보다도 최후의 구원이 안식일의 올바른 준수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랍비 시므온 벤 요하이(Simeon ben Yohai)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안식일의 율법에 따라 두 안식일을 지킨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Shab. 118b). 랍비 레위(Levi)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단 하루만이라도 안식일을 적절하게 지킨다면 다윗의 자손이 올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모든 계명과 대등하기 때문이다”(Ex. R. 25:12). 진정한 회개(“돌아옴”)와 안식일 준수(“안식”)가 구원의 조건이며 메시야의 오심을 촉진하는 방편이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사야 30:15절이 인용되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한다.” (68.2)
 학가다(Haggada)에 나타난 안식일
 유대교의 가르침은 내용상으로 두 개의 범주로 나뉘어지는데 그 하나가 할라카(Halakah:율법)이고 다른 하나가 학가다(Haggada:전승적 지식)이다. 우리가 먼저 살펴보려 하는 학가다는 엄격한 신학적인 질문들과 사색들을 담고 있어서 행위의 표준들을 제시하고 있는 학가다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시므온 벤 라키쉬(Simeon ben Lakish)는 안식일을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깨친 사람으로 자긍하고 있는 왕이라 할지라도 자기 종에게 말하기를 ‘하루는 네 자신을 위해 일하고 여섯날은 나를 위해 일하라’ 한다. 이것이 세상의 방식이다. 그러나 복 받으신 분, 거룩하신 분은 그렇지 않다. 거룩하신 분 복 받으신 분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이다. 나의 자녀들과 여섯날은 너희 자신을 위해 일하라. 그리고 나를 위해서는 하루만 지켜라.”1 (68.3)
 학가다의 특징은 그것이 비유와 전설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생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대화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 있다. 다음의 대화는 안식일이 주간의 다른 날들과는 달리 제7일인 그 날 다음에 짝수의 날이 뒤따르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과 후기 히브리어에서 키다쉬(Kidash)라는 단어가 “거룩하게 한다”“약혼 시키다”라는 두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안식일이 거룩하신 분 복 받으신 분에게 직접 말했다. ‘모든 날에게 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짝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분, 복 받으신 분이 대답하셨다. ‘이스라엘의 회중이 네 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섰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말한 특별한 것을 기억하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하라’(출 20:8)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중이 네 짝이 되리라 한 것이다”(Pesikta Rabbati 23:6). (69.1)
 많은 유대인들은 기원 1세기의 랍비 하니나(Hanina)와 얀나이(Jannai)가 행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안식일을 맞이한다. 랍비 하니나는 가장 좋은 옷을 갈아입고 안식일이 시작되는 석양에 서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오라, 여왕인 안식일을 맞이하러 가자.” 랍비 얀나이(Jannai)도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다음과 같은 말로 안식일을 영접한다. “오라, 외 신부여! 오라, 오! 신부여!”(Shab. 119a). 금요일 밤은 신랑과 신부의 신방이 치러지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69.2)
 안식일의 은유는 다르게 나타나고도 있다. 이스라엘은 신부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되고 안식일은 그 둘이 하나가 되는 시간으로도 등장한다. 이러한 비유들은 모두 안식일을 이스라엘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특권으로 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교도들에게는 안식일이 마치 남의 아내와 같은 날이기 때문이다. 랍비 요하난(Johanan)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 세상의 일들에 비추어 말한다면 만약에 어떤 왕이 그의 왕비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들 사이에 끼어 들어와서 그들을 방해한다면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사형의 처벌에 처해지지 않겠느냐?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다시 하나되는 것이다. 일렀으되 그것은 이스라엘의 자녀들과 나 사이의 표징이라(출 31:17) 하였다. 그러므로 할례받지 아니한 어떤 비유대인이 그들의 사이에 끼어든다면 죽음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Deut. R. 1:21). (69.3)
 앞에서 말한 비유는 랍비 요세 벤 하니나(Jose ben Hanina)와 랍비 시므은 벤 라키쉬(Simeon ben Lakish)의 “안식일을 지키는 이방인은 죽어야 마땅하다”(Sanhedrin 58b; Deut. R. 1:21)는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안식일을 주셨으며 이방인들에게는 주시지 않았다(Mek. Shabbata 1;Ex. R. 25:11)는 것이다. (69.4)
 안식일에 대한 이같은 배타적인 사상의 당연한 결과가 곧 안식일 계명이 시내산에서 최초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랍비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2 물론 다른 주장들도 있기는 하다. 그 하나에 따르면 안식일은 아담에게도 알려졌으며 “안식일의 찬송시”로 이름 붙여진 시편 92편은 그의 작품이라 하였다. 아담은 자기가 창조된 그 날에 죄를 지었으나 안식일이 그를 위해 중재에 나섰으므로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 낙원에서 쫓겨나지 않았다고 한다(Pesikta Rabbati 23:6; 46:1). 이 주장에 따르면 그 이후에 안식일은 모세의 때까지 잊혀졌다고 한다(Pirke de Rabbi Eliezer, 18). (70.1)
 안식일이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이러한 주장들은 야곱과 요셉을 포함하는 여러 부조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주장들과 마찬가지로 신 구약 중간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더 많이 논의되었다(Pesikta Rabbati 23:9). 모세가 광야로 도주하기 전에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안식일을 지켰다는 믿음도 있었다(Ex.R. 1:28; 5:18). 산헤드린 56b는 넷째 계명과 다섯째 계명이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또는 만나의 기적이 일어나기(출 16) 전에 마라에서(출 15:25)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특별 계시의 일부로 주어졌음을 입증하려 했다. 랍비들은 “너희 하나님이 너를 명하였다”(신 5:15-16)는 성경절 자체가 시내산 이전에 이 계명이 계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전에 아담과 하나님, 그리고 천상의 다른 존재들 이외에 누가 어디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는지를 구체적으로 주장한 내용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