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7 ► 네 소원대로 되리라
 본문 : 마 15:21-28, 참조:막 7:24-30
 어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붙들려 마음 아파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딸의 눈은 번들번들 이상하게 돌아가고 귀신은 때때로 딸로 하여금 신기한 행동을 하케 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인 모를 병으로 점점 허약해 가게 했다.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병을 고치기 위해 이 의원 저 의원 찾아다녔으나 모든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갔으며 오히려 병이 악화돼 그 증세만 점점 심해졌다.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해보아도 딸에게는 아무런 효험이 없었으며 이방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간청도 해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차도(差度)가 없었다. 딸의 병만 낫는다면 어머니로서 무엇이든지 하겠건만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65.1)
 귀신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죄악된 행동을 통해서이다. 부당한분노, 자기혐오, 타인에 대한증오심, 포르노 영상물, 성적인 범죄와 변태적인 행위는 귀신의 영향을 불러들이는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일단 귀신이 들리면 두뇌나 인격이나 육체적인 삶에 공격을 받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고 괴로운 상념(想念)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또한 악마적 힘에 의해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도 귀신 때문에 병이 들어 파리해지고 있었다. (65.2)
 딸 때문에 속앓이하던 이 여인에게 하루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한창 그 지방을 떠돌아다니던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던 베니기아 지방에는 유대인들이 더러 살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오고가던 메시야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유대 땅에 예수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다윗의 자손으로 자신을 메시야라고 선포했고 온갖 불치병과 난치병을 말씀으로 고치며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분을 만나 뵙고 싶은 소원이 일어났다. (66.1)
 “아, 내가 만날 수만 있다면 딸의 병도 고침을 받을 수 있을텐데,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66.2)
 그러나 자기는 이방인이고 그분은 유대인이요, 더구나 이방인 땅에 살고 있는 자신이 갈릴리 지방에 계시는 분을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태는 이 여인을 가나안인이라 했고 마가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했다(막 7:26). 유대인들은 셈의 후손들이지만 이 여인이 살던 지역 사람들은 저주받은 함의 후손들로 고대 가나안 족속에 속했으며 주로 우상 숭배자들이었다. (66.3)
 AD 30년 늦은 봄,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을 떠나 전도하기 위해 북서쪽으로 향했다. 이 여인의 딱한 사정을 아셨는지 이스라엘 지중해 해안 쪽 베니기아 변경에 있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사실 이 전도 여행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사는 팔레스틴 지역 밖을 나간 처음의 전도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이 전 세계로 향할 것을 암시하는 뜻깊은 전도 여행이었다. 두로와 시돈 지방에 이르니 거기에는 갈릴리에서처럼 예수님을 괴롭히거나 고소하기 위해 따라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예수님은 여러 날 여행하시느라 너무 피곤하여 조용히 쉬면서 여독(旅毒)을 풀고자 한 집에 들어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이방인 땅에서도 조용히 쉬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66.4)
 “아, 내 딸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67.1)
 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 나섰다. 뛰는 가슴을 억제하며 주님이 계신다는 곳으로 마구 달려갔다. 딸의 병만 낫게 해 준다면 무엇이든지 할 작정이었다. 예수님이 쉬시고 계시는 집에 들어가 그분을 뵙자마자 발 앞에 넓죽이 엎드려 완전히 굴복했다. 주님을 만난게 가슴 벅차서인지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마음을 잘 가다듬어 소원을 정확하게 아뢰었다. (67.2)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67.3)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뜻이다. 소문만 듣고도 이 여인에게 믿음이 생긴 것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은 고통 당하는 딸과 자신을 동일시 여기는 모성애(母性愛)의 애끓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67.4)
 가나안 여인은 딸에 대한 지극한 모성애로 애절한 호소를 했으나 웬일인지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고 집에서 나와 그냥 길을 가시는 게 아닌가!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자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데 포기할 수도, 그냥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묵묵 부답(默默不答)이신 주님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거듭 간청하였다. (67.5)
 “주여 저를 도와 주소서.” (67.6)
 “주여 저를 도와 주소서.” (67.7)
 망설이던 제자들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68.1)
 “주님 이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68.2)
 그러나 예수님께서 웃으며 받았다. (68.3)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68.4)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주고 받는 대화를 엿들은 여자는 소외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예수님 앞으로 뛰어가 절하며 애원하였다. (68.5)
 “주예 저를 도우소서.” (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