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뤼소스톰과 같은 설교자가 위대한 만큼이나 그는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였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잔을 단순히 마시지 않으셨다—그는 찌꺼기까지 모두 마시셨다.
맛본다는 것은 그가
참으로 죽으셨고,
참으로 죽음을 경험하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바로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거절과 침뱉음과 채찍질, 특별히 갈바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심을 인하여 움츠려 드실 때의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을 보라. 다른 길을 열어 달라고 탄원하시면서 기도 중에 고뇌하시는 그를 보라. 세 번의 그의 애처로운 부르짖음을 들어 보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그것은 불가능한—그가 만약 세상을 구원하여 하나님께로 이끌어 와야 한다면 불가능한—일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십자가로 나아가셔서 홀로 죽으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는 죽음을 맛보셨다—단순히 신체적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곧 성경이 말하는
“둘째 사망”(
계 20:6)을 맛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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