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저절로 영속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관계를 늘 새롭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더 가까워지지 않는 관계는 시들기 시작하는 관계이다. 우리가 오래 사귄 친구를 으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친구를 잃기 시작한다. 사랑과 행복 속에서 인생을 함께 출발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느라 수년을 고생한 남편들과 아내들이 20년, 30년, 또는 40년이 지난 후, 왜 그들 피차의 사랑이 시들어 가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사랑이 어디로 가 버렸는가? 아마 사랑을 그만 두게 한 것은 도무지 없었겠지—발생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를 초래하였다. 부부가 자신들의 결혼은 훌륭한 결혼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순간, 그들은 활강(滑降)하기 시작하며, 재난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것이다. (68.1)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구원이 소중한 것처럼, 그분도 소중하다. 우리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그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얼마나 열렬하느냐에 상관없이,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우리는 그를 더 잘 알고, 그를 더 진실되이 사랑하며, 그에게 더 신실히 봉사하도록 힘써야 한다. 둘 중 하나는 떠내려가는 것이다—아울러 배가 부주의의 모래톱에서 좌초하는 것이다. (68.2)
 사도는 2:3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하나님의 가장 값진 선물—예수님과 구원—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를 심판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의 경험에서 하나의 경고를 발한다: 그들이 천사들의 중보(中保)로 주어진 하나님의 기별을 불순종하였을 때, 그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 구절은 아마도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것을 말할 것이다: 사도행전 7:53갈라디아서 3:19는 우리에게 이 계시가 “천사들로 말미암아 베푸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68.3)
 바울은 히브리서 2:2-3에서 보다 작은 것으로부터 보다 큰 것으로 나가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만일 고대의 이스라엘이 천사들로 말미암아 말해진 기별을 어겼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면, 우리가 주께로 말미암아 말씀해진 기별을 무시한다면, 어찌 심판을 피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우리는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죄가 그들의 죄보다 더 크다. (68.4)
 3절의 마지막 부분과 4절에서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온 기별(예수님과 그의 구원)을 그처럼 위대하게 하는 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다. 첫째, 그 기별은 어느 천사로부터도 온 것이 아니고 주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다—그리고 1장은 이미 주님이 천사들보다 탁월하시다고 기정 사실화하였다. 둘째, 그 기별은 “[그에게서] 들은 자들”—즉, 예수님의 전 봉사를 통하여 그의 능한 행위들을 보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와 함께 있었던 사도들의 증언들에 의하여 확증되었다. 셋째, 하나님은 그 기별의 신적(神的) 신임장에 대하여 입증하셨다. 기적들과 성령의 선물들은—사도행전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다—새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내린 하늘의 축복을 나타내었다. (69.1)
 예수, 사도들의 증언, 선물들—이 모든 것들은 뭔가 새롭고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 중 가장 놀라운 사건을 가리켰다—우리가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가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다. (69.2)
 만일 우리가 그것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제공하신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아야 마땅하다. (69.3)
 그러나 히브리서 2:1-4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그리고 우리는 그 핵심을 책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위험은 그처럼 큰 구원을 공공연히 걷어차 버리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위험은, 출발을 잘하고 바른 길에 들어섰던 우리가 그 진로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약속의 땅으로 향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 너무 오래 있으며, 이 땅에서의 삶의 가치가 우리의 영적 갈망과 인식을 둔하게 할 수 있다. (69.4)
 솔직히 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 바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주님과 그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그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된 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모임에 빠지면 그 클럽의 회원 자격을 상실하는 로터리 클럽 회원들보다 그것을 훨씬 덜 진지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탁월하신 주님과 그의 구원을 무시하고, 진로에서 벗어나 표류하는 엄청난 위험에 처해 있다. (69.5)
 우리가 누구이건, 교회 내에서의 우리의 위치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청소부에서 대총회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히브리서 2:1-4에 요약된 그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안전 장치 또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들은 것에 . . . 더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것은 우리가 계속 경계를 하고, 믿음을 계속 새롭게, 강하게, 그리고 자라나게 하고,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계속 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그분의 위격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우리 자신에게 일깨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선물에 대하여도 우리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그의 구속적 죽음과 구속적 하늘 봉사가 얼마나 탁월한가! (70.1)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이 마지막 날에 사는 우리들에게 그처럼 강력하게 말하는 것이다. 예수—그의 위격(位格)과 사업—에 관한 히브리서의 진리가 우리의 영혼을 말끔히 씻도록 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붙잡고 지적으로뿐만 아니라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때, 아들의 고난을 애통해 하고 경탄할 때, 우리는 이러한 사상들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할 것이며 또한 떠내려가게 할 수 없다. (70.2)
 아들의 경력-최고에서 최저로
 천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신 아들을 소개하는 1장의 논리에 대하여, 이러한 하늘의 존재들에게 홀딱 반한 사람들은 “천사들보다 더 높다고? 천만에! 그는 십자가에 죽었어”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히브리서 2장은 이러한 논점(論點)에 대하여 공격적일 뿐만 아니라 방어적 자세를 취하면서, 이러한 반대에 대하여 답할 것이다. 저자는 아들이 천사들보다 열등함은 일시적인 성질의 것에 불과하다고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아들이 성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논쟁할 것이다. (70.3)
 히브리서 2:5-9는 다양한 단계로 아들의 경력을 요약하고 있다. 천사들이 그를 경배하고 섬기는 1:5-14의 높은 신분에서, 우리는 극적인 변화를 보게 된다—그가 천사들보다 더 낮게 되신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신—인(神人)으로서 죽으신다! (71.1)
 그러나 그의 경력은 계속 이어진다. 믿기 어려운 이러한 겸양 후에, 아들은 영광과 존귀로 회복되신다. 그의 성육신과 죽으심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에 회복되신다. 그의 죽으심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의 개가로 간주된다. 이러므로 아들의 경력은 V 자형을 이룬다. (71.2)
  (71.3)
 이 다섯 구절에는 흥미로운 통찰들이 실려 있다. 첫째, 우리는 그 논의를 소개하는 시편 8:4-6의 인용구를 볼 수 있다. 원래의 문맥에서의 이 시편은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세상을 정복하라고 하신 인간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 신분상, 그 인간은 천사들보다 조금 낮을 뿐이다. (71.4)
 히브리서에서의 이 인용구가 갖는 역할에 대하여 주석가들 간에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 즉 하나님의 이상(理想)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타락 때문에, 우리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예수님을 제외하고는. 그는 완전하신 사람이시며, 그분 안에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된다. (71.5)
 이러한 해석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문맥에 참으로 부합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인용구의 기능을 그 자체의 어휘들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저자가 그 말들을 적용하는 방법에서 찾아야 한다. 9절은 무엇이 저자의 의도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사람 자체에서가 아니라 아들의 V 자형 경력에서 찾아야 한다. 나아가, 아들의 인간 경험들에 대한 이러한 농축(濃縮)은 그 장의 나머지에서 설명될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아들이 관심의 초점을 이룬다. (71.6)
 그러므로 시편 8편은 그 기능이 아들의 경력에 대한 예언이다. 그는 천사들보다 낮게 되실 사람의 아들[人子]이시다. 그러나 후에 그들보다 훨씬 높이 되실 분이시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아들의 인간 경험들로 좌절되고, 천사 숭배에 중독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강력한 답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성경은 아들의 경력을 예언하였다! 성경에는 실수도 없고, 궤도를 이탈하지도 않는다—성경을 탐구하라.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