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본 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 성육신, 그리고 성육신 후의 그분의 생애를 특징짓는 V 혹은 U 모양의 곡선에 의하여 아들의 경험들을 볼 수 있다. 그 곡선 상의 중요한 점들을 주시하면서 V 혹은 U 곡선을 그려 보라. (65.5)
 4. 아들의 참 신성을 힘있게 확증하는 1장과는 대조적으로, 2장은 그의 참 인성을 확증한다. 이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는 모든 증거들을 본 장에서 찾아 기록하라. (65.6)
 5. 예수님이 인간이 되시면서 성취하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라. (65.7)
 6. 2:6-8에 사용된 인용구를 연구하되 그것의 원래 의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라. 이제는 2:5-9의 문단에서 그것을 연구하라. 히브리서 저자는 이 구절에 의하여 무슨 요점을 이끌어 내고 있는가? (65.8)
 7. 성구 사전을 통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된 구절들을 히브리서에서 찾아보라. 그의 고난의 결과가 무엇을 가져왔는가? (65.9)
 8. 2:10—예수님이 “온전케” 되셨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히브리서에서 그의 온전하심과 관련되는 다른 구절들을 찾아보고 어떤 결론을 내려보도록 하라. (65.10)
 9. 2:12-13에 사용된 세 인용구들을 구약의 문맥과 말하는 화자와 말을 듣는 대상자(들)에 유의하면서 살펴보라. 1:5-14에 대한 연구는 이 곳에서의 바울의 성경 사용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가? (65.11)
 10. 히브리서 2장은 전 성경 중에서 예수님의 참 인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진술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1장에서 그의 신성을 힘있게 확증된 직후에 나오는 것이다. 이 두 근본 사상들을 등과 등을 맞대게 하여 대조하려면, 한 자리에서 1:1-2:18을 읽으라.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位格) 안에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들을 찾을 수 있는가? (66.1)
 11.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처음 언급한 곳이 2:17인 것을 발견한다. 히브리서 외의 다른 곳에서 이 말들이나 사상에 대한 구절들을 신약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66.2)
 12. 2장의 어느 구절 혹은 구절들이 그대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끼쳐서, 그대의 마음에 말하고, 그대의 영적 생애를 자라나게 하는가? (66.3)
 ■ 말씀을 탐구함
 우리의 믿음은 귀중하므로 진지하게 다루라
 히브리서 2장은 논의를 분명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진전시키면서 제1장에서 연속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 절의 구분은 저자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구분은 수세기 후에 첨가된 것이다. 이것은 사상들의 크고 작은 단위들을 나누고(가끔 그러한 구분이 잘못되었을 때도 있지만), 성경절을 참고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력이 그것에 지배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66.4)
 그러므로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발견하는 것은 이렇다: 논조(論調)가 장엄하게 도식화((圖式化)되어 있어서, 마치 강이 산에서 발원(發源)하여 대양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성경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우리가 처음부터—산에서—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책 자체가 스스로를 설명하게 하라. 논의가 어느 지점으로 갑자기 비약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66.5)
 히브리서 2장의 첫 네 절은 핵심을 예증한다. 이것들은 1장에서 발전된 사상들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인데, 곧 완전하고도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아들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취하여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2:1“그러므로”를 발견한다. 제1장은 우리에게 “무엇이?(what)”를 말해 주고 있고, 2:1-4“그래서?(so what)”을 말하고 있다. 만일 1장의 사상들이 옳다면, 그렇다면 그 사상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67.1)
 논증에서의 이러한 끊김—우리가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될 여러 개의 끊김 중에서 첫 번째인—은 경고의 말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첫 독자들—그리고 우리들—은 우리의 믿음을 경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처럼 소중한 것을 경시함으로 심판을 받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67.2)
 바울은 우리의 위험을 구체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강조한다: 우리가 들은 것에서 “흘러 떠내려가는” 것(2:1)과 “그 큰 구원”을 무시하는 것(2:3). (67.3)
 어떤 번역들은 1절을 달리 해석한다. 예를 들면, 「제임스왕역」은 “어느 때고 우리가 그것들로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이유는 동일한 헬라어인 파라레오(pararreō)가 항로에서 이탈해서 표류하는 배, 또는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벗겨 나간 반지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예증들이 크게 차이가 있지만, 요지는 매우 분명하다. 즉, 어떤 중요한 것의 상실이다. (67.4)
 우리가 항로를 출발하였지만, 바람과 조수가 우리를 노선에서 멀리 이탈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다. 또는 비유를 바꾸어 본다면, 우리가 일상사로 분주한 동안 반지가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나간다. 우리가 활동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그것을 잃어버렸다—그리고 그것을 알지 못한다! (67.5)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손실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가 들은 것에 . . . 더욱 주의를”(2:1) 기울임으로써 피할 수 있다. 즉, 우리가 깨어서 부지런히 우리가 아직도 제 진로를 가고 있는지, 우리가 소중하게 보호해야 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 (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