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6. 엘 아멘—진실하신 하나님 (창시자)
 여기서 우리가 연구하려는 하나님의 이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백성에게 충성을 호소한 모세의 권고에서 발견된다(신 7:9). 임종을 앞둔 민족의 영도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회고하며, 하늘을 향한 승리의 찬양으로 백조의 노래를 부른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ha—ṣur, 하—추르)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하신 하나님(Èl ámenah, á men의 여성형)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 32:3, 4). (95.1)
 자기 일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역사를 돌아볼 때의 모세는 하나님의 이 특성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보다 부요한 인식을 내포하는 새로운 명사(名詞)를 필요로 할 때, 성령께서는 엘 아멘(Èl ámen) 또는 엘 아메나(Èl ámenah)을 제안하셨다. 모세는 야훼 아멘(신 7:7-9)이란 명사를 사용한 일이 있는데, 예수께서는 이를 당신의 이름 중의 하나로 주장하셨다(계 3:14). 모세는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Èlohey ámen, 엘로헤이 아멘)이라 불렀다(사 65:16; 참고 계 3:14). (95.2)
  은 벌써 공부한 것처럼 힘과 권세를 뜻하고 그것 하나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통한다. 그 하나님의 차원의 영감은 아멘 속에 들어 있는 특성을 첨가했다. (96.1)
 아멘 은 번역되지 않은 히브리 낱말들 중의 하나이다. 이 말은 영어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언어로도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쓰이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런 말들이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쓰이게 하심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끌어 그 뜻을 찾아 알도록 도전하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말들은 사실상 번역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단어들의 뜻을 충분히 옮기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문장이 필요할 만큼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이것을 깨달은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요한복음을 영어로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은 해설을 첨가했다. “독자는 왜 우리가 ‘아멘, 아멘’을 쓰고 그 말을 감히 번역하지 않는지 그 까닭을 알 것이다”(요 8:4). 후일의 역자들은 이 말을 “진실로, 진실로”로 번역하였다. 초기의 번역자들은 샵바트(šabbaṯ, 안식일), 케루빔(keruḇim, 그룹들), 우림, 둠밈, 할렐루야 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96.2)
 아멘 의 유래와 변형
 아멘(남성 명사, 여성형은 아메나)은 “견고하다,” “확실하다,” “영구한,” “질긴”(사 22:23, 24; 33:16)을 뜻하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보통의 경우 이 말은 증언이 참되고 진실함을 의미하고(렘 42:5), “정직하고 확실한”(시 19:8; 93:5), “믿을 만한,” 그러므로 “확인할 수 있는”(창 42:20), “확실히 이루는”(대상 17:23), “확립된,” “확인된”의 뜻을 가진 말이다. (96.3)
 아멘 의 한 형태는 기둥이나 문설주의 수식에 쓰였다(왕하 18:16). 이것도 “단단한”(사 22:23, 35), “견고한”(삼상 2:35), 동시에 확인될 수 있는 “확실한”(왕상 8:26)의 뜻을 가진 말이다. 아멘 은 사람에게 적용되어 형용사로 쓰일 때, 그 사람이 신실하고 참되고 믿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말한다(렘 42:5; 사 1:21). 법정 선서에 이 말이 쓰일 때는 판결이나 합의의 조건을 수락함을 의미하며 모든 조항에 기쁘게 순응하겠다는 말이 된다(민 5:22; 신 27:15; 느 5:13). (96.4)
 옛날부터 아멘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아뢴 사실에 대해 경배자가 기꺼이 동의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비준하고, 그 관계의 의미를 전심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멘“그렇습니다!” “그래야지요!”(렘 11:5), “그렇고 말고요,” “물론이죠,” “나는 동의합니다”(민 5:22; 신 27:15 상단; 느 5:13; 8:6)라는 뜻을 가진다. 시편의 어떤 시는 끝날 때 아멘 을 거듭한 것이 있다(시 41:13; 72:19; 89:52; 참고 마 6:13). (97.1)
 KJV에는 아멘 이 16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그 구절들을 연구해 보면 엘 아멘, 엘로힘 아멘, 야훼 아멘 에 대한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발견하게 된다. (97.2)
 모세는 히브리인 포로들이 이방에 잡혀가서 바벨론의 난민촌이나 나치(Nazi) 강제 수용소에서 무서운 죽음을 경험할 것을 예언하였다. 그들은 장래에 대한 아멘(확신, 신 28:66)이 없을 것이며, 뜻있는 내일에 대한 보장도, 안정과 희망도 없을 것을 말했다(아멘“확실한 평강”[렘 14: 13] 및 “정녕”[렘 32:41]과 대조해 보라). (97.3)
 아멘 은 44번이나 “믿음” 또는 “믿었다”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믿음에 굳게 서서 요동치 않는 입장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áman, 창 15:6) 그것을 의로 여겼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모든 계획에 “아멘 !”으로 반응했음을 말한다. 야훼 의 말씀은 그의 확신의 근거가 되었고, 그에 대한 신뢰가 아브라함의 생애의 안정 요인이었다. (97.4)
 아멘 은 또한 “양육”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민 11:12; 에 2:7). 양부(사 49:23), 양모, 가정 교사, 또는 보모(사 60:4; 룻 4:16)의 유일한 목적은 성품을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동떨어진 용법이 아닌가? 자식을 기른다는 것은 그들을 확실한 기반 위에 안정을 얻게 해 줌으로써 장래에 대한 염려를 해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용법은 아멘“확립—굳게 세우다”의 뜻에서 일보 전진시켰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멘“오래 가다”(신 28:59)의 뜻을 가졌기 때문이다. 양육의 목적은 성품을 확립하는 것이며 그 일은 긴 시간을 요할 뿐 아니라 그 결과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98.1)
 아멘 이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태도를 말할 때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 그분의 요구에 대한 성실(신 32:20; 시 31:23; 히 2:4)과 충성(시 78:8)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의 충성(시 78:8)과 확실성(시 93:5)을 말하며, 그의 믿음이 굳게 서서 요동치 않음을 의미한다(삿 11:20, 21; 욥 4:17, 18). 아멘 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옳음을 만인이 듣도록 선포한다(창 24:48; 느 9:33). (98.2)
 아멘 의 여러 의미를 개관함에 있어서 우리는 힘, 굳셈, 충성, 불변성을 빼놓을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확인, 적극성, 비준, 합의, 믿음, 동의의 뜻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98.3)
 법적 용어로 쓰인 아멘 의 시초
 아멘 이 법적 용어로 처음 쓰인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질투의 물”에 의한 재판 절차에서였다. 아내의 정절을 의심하는 남편은 그녀의 순결 여부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민 5:11-31). 우선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제사장에게 아내를 고발하면 제사장은 아내에게 선서를 시키고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묻는다. 만일 여인이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 제사장은 종이(파피루스, 민 5:23에는 “두루마리”로 되어 있음)에 고발 내용을 기록한다. (98.4)
 그 다음 제사장은 물그릇에 성전 대야의 성수를 조금 떠 담는다. 그리고 성전 마당에서 흙먼지를 조금 집어서 물그릇에 넣고 섞는다. 그리고는 고발 내용이 적힌 종이를 그 물에 잠그고 조심스레 잘 씻는다. 그래서 이제 그 물은 기소 내용이 전부 들어간 물적 상징이 된다. 이 때 만일 그녀가 과실이 전혀 없음을 주장하면, 그 저주의 물을 마시고 순결을 증명해야 한다. 이 절차에 순복하는 뜻에서 그녀는 아멘 , 아멘으로 대답한다(민 5:22). 여인이 무죄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나 만일 유죄이면 당장 결과가 나타난다. 여기서 여인이 말하는 아멘 은 법 절차에 따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내리는 판결에 순복할 것을 엄숙히 표시하는 말이다. (98.5)
 이스라엘 백성은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후 세겜에 모여 연례적인 종교적 축제를 가지기로 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 비탈에 모이고(신 27:13-26) 제사장들은 전략적으로 법궤를 메어다 두 계곡 사이에 갖다 놓았다. 이 때 지키면 행복이 보장되고 어기면 불가불 저주가 초래되는 하나님의 법을 레위인들이 낭독했다. 조목조목 읽어 내려갈 때 백성은 잘 듣고 있다가 아멘, 아멘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의 뜻에 따를 것을 표시했다(참고 느 8:6). (99.1)
 그로부터 수백 년 후 언약궤는 소달구지에 실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다윗 왕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여호와께서 밝히 말씀하신 뜻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연도의 인파는 부주의한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만진 순간 즉사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다. 얼마 후 회개한 임금이 그날의 행사를 위해 지은 축시(祝 詩)를 낭독할 때, 견책과 재교육을 받은 백성은 진심에서 울어 나는 우렁찬 아멘!”으로 하늘이 웃사에게 내린 형벌이 지당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인 법궤의 운반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대상 16:36). (99.2)
 두 번째로 성전 준공이 진행되고 있을 때, 느헤미야는 형제들에게 변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 상인들과 혼혈 결혼으로 하나님의 법을 위배한 자들에게 도전하기를 회개하고 개혁의 언약에 가담하라고 종용한다. 이 서약은 “회중이 다 아멘!하고” 맹세함으로 비준되었다(느 5:13; 참고 8:6).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판결을 수락하고 그와 협정을 체결했으며, 하나님은 장차 그 나라를 영도하실 것을 수락하셨다. 에스라 때에도 이와 유사한 결정이 같은 방법으로 비준되었다(느 8:6). (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