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율법은 많은 방면에서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상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언약과 율법의 상호관계이다. 더 나아가 율법과 은혜는 종종 서로 대립하는 위치에 놓였다. 그러나 둘은 구원에 필수적이다. 끝으로 구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는바 율법은 십자가와 분리될 수 없다. (562.1)
 A. 율법과 언약
 토라에 관한 성경의 첫 언급은 하나님께서 그랄에서 이삭에게 그의 뜻을 나타내시던 때인데(창 26:5) (562.2)
 그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 선물로 주신 그 땅에 머물라고 말씀하셨다(창 12:1-3). 이 선물에는 땅을 차지하고 후손이 번성하는 일 그리고 그를 포함하여 땅의 모든 나라를 위한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창 26:1-4). 이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및 모든 세대의 그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 안에 포함되었다(창 15:18; 17:7). 아브라함의 편에서 보면,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다. 즉 하나님의 권고와 명령, 율례와율법을 지켰다. (562.3)
 이 문맥에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야훼와 그의 위격 그리고 그의 명령과 그의 뜻에 단단히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은 하나였고 그 언약과 조화되었다(창 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을 우발적으로나 간헐적으로 지킨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기꺼운 마음으로 지켰다. 이삭에게 맹세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다(대상 16:17; 참조 14-18절). 그리고 약속된 메시아가 왔을 때 언약과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하나로 결합되었다(갈 3:17). (562.4)
 율법의 효력과 마찬가지로 율법의 중요성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언약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뜻을 표현한 것이며, 언약의 기초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성들이 그의 뜻을 율법에 나타내신 한 분 하나님을 잊고, 율법을 품행에 관한 일련의 형식적인 원칙으로서 혹은 제의적 규례로서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하였다고 말씀하셨다(호 8:1).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이 빠진 순종은 반역이다. 이러한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새 언약을 맺는 것이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한 번 더 하나님의 뜻이 언약과 율법 안에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야훼의 말씀이니라”(33절). (562.5)
 율법과 언약은 하나님의 뜻을 언약의 백성 즉 그의 백성에게 계시하였다. 그것은 예배의 형식과 행동을 바로잡는 일 같은 것을 훨씬 능가하는 영적 연합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드러냈다(33절). (562.6)
 이스라엘의 율법 제도와 언약 관계를 이해하려면 “언약”이란 말이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구원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언약은 하나님의 주도로 시작되었으며, 이스라엘에 의하여 흔쾌히 수용되었고, 희생제물로 승인되었다. 언약 관계는 하나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의무를 포함했는데, 이것은 언약 안에서 특정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도덕법에 의하여 정해졌다. 민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세웠고, 의식법은 도덕법을 성취하는 데 도움을 주고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는데 도움을주었으며, 건강법은 언약공동체 내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해주었다. (562.7)
 성경은두 언약, 즉 옛 언약과새 언약을 언급한다. 두 언약이 모두 하나님이 즐겨 하시는 뜻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차이점은 분명하다 둘 다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되어 있다. (563.1)
 1. 옛 언약
 옛 언약은 출애굽기 19장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하나님은 거기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미 성취하신 일을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하셨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에 서서 많은 능력을 베푸셨으므로 백성들이

   (1)그의 명령을 순종하고

   (2) 그의 언약을 지키기를 기대하셨다(5절).

 만일 이스라엘이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편[에서 하실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5, 6절). 모든 백성들은 그 언약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8절)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에 한 언약이 도출되었고 언약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보여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십계명을 그들에게 주셨다(출 20장). (563.2)
 구원/해방 및 언약의 생활양식은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 함께 묶여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시고, 시내에서 십계명을 주신 그의 강력한 역사적 행적을 통하여 이 점을 분명하게 하셨다. 십계명의 전문(前文)에서 그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야훼니라”(2절)라고 말씀하셨다. 구원과 율법은 적절한 관계가 있으며, 거기에는 율법주의의 흔적이 없다. 언약의 생활양식에 따라 사는 것 혹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은 무조건적이며 값없이 주어진 구원의 결과이다.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들처럼 살지 않아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했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이니라”(레 18:3-4). (563.3)
 히브리서에 따르면 옛 언약은 흠이 있었으며(히 8:7) “없어져 가는” 것이었다(13절). 그러나 그 언약은 그 자체에 흠이 있는 것도,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편에 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도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미 이루신 것에 기초하여 제정되었다. 백성들은 언약의 조건들과 언약의 생활양식을 받아들였고 언약을 비준하는 제물이 올바로 드려졌다(출 24:1-8). 옛 언약의 흠은 그것에 대한 이스라엘의 태도,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시도했던 방식 즉 율법주의적인 정신으로 지키려 한 그들의 태도에 있었다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0-32)고 설명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것이 신약에서 바울의 교훈의 기초인 것만큼이나 율법 및 구약 전체의 토대가 되는 모세의 교훈의 기초다(참조 신 30:11-14). 바울은 로마서 9장10장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면서 신명기 30:11-14에 기록된 모세의 말을 인용한다. 바울과 모세 둘 다 같은 진리, 즉 의, 구원, 생명, 심지어 순종까지 모든 것이 오직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진리에 관하여 말한다. (563.4)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내에서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 나라는 율법에 대한 의무를 지키는 동안 하나님을 잊었다 율법의 일을 행하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은 완전한 율법주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며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을 때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564.1)
 율법과 언약은 단지 둘 다 하나님의 뜻을 구성하는 일부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13)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옛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564.2)
 2. 새 언약
 옛 언약의 효력 상실은 새로운 한 언약의 출현을 재촉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하신 것이니”(히 8:13).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다. 두 언약의 차이는 하나님 백성들의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그들을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셨다 “너희는 내게∙∙∙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하나님은 언약을 말씀하셨고 백성들은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하였다(8절). 매우 슬픈 일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다수가 은혜의 언약을 행위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체제로 만들어버렸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은 “율법에 기초한 의를 좇고”,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롬 9:30-10:3)으로 그것을 왜곡시켰다. (564.3)
 새 언약의 목적은 구원의 언약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것이 없이는율법에 대한믿음의 순종은 불가능하다. 믿음의 순종은 성령을 통하여 일하는(동시에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는 믿음의 관계 내에서 율법을 성취한다) 하나님의 뜻이다. 새 언약의 한 쪽 당사자인 하나님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렘 31:33).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 27)고 약속하셨다. 그 결과 새 언약의 방식은 기쁨을 준다. 다윗은 그것을 그렇게 이해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그리스도인 역시 새 언약의 방식을 그렇게 이해한다(히 8:7-13; 9:15). (564.4)
 두 요소, 즉 언약을 비준하는 희생제물과 성령의 임재가 언약의 성격을 결정한다. 옛 언약을 비준하는 희생제물은 시내산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새 언약을 비준하는 제물은 갈보리에서 만들어졌다. 옛 언약은 시내에서 체결되었고, 희생제물이 된 동물의 피로 즉시 비준되었다(출 24:5-8; 히 9:18-20). 새 언약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그들과 함께 처음 체결되었고(창 3:15), 아브라함에게 반복되었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비준되었다(히 9:15). (564.5)
 바울에 의하면 새 언약은 옛 언약처럼 단순히 법조문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언약이다. 새 언약 은 성령에 의하여 마음에 새겨지고, 그 내용은 변하지 않으나, 옛 언약은 돌판에 기록되었다. 첫 번째 것은사람의 밖에 있고, 둘째 것은사람 안에 있다. 진실로 율법은 성령께서 그것을 내면화하여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정죄를 가져온다. 언약은 그것이 그 사람의 밖에 놓이는 순간 쓸모없는 것이 된다(히 8:6). 그것은 회심한 사람이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하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때 새로운 언으투이 된다(롬 7:6). 두 언약을 위하여 오직 하나의 율법, 즉 십계명이 있었고, 그 차이는 순종의 종류에 있었다. 하나는 율법주의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하였다. (5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