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갈라디아서 5:24과
6:14에서
“십자가에 못박다”라는 말로 정의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와 율법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 즉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라는 맥락에서 발견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갈 5:24), 세상은 그에게
“십자가에 못 박”혔다(
갈 6:14).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말은 의지를 보존하는 자유의 윤리를 의미한다. 정욕과 욕망을 포함하여, 육체에 대한 자발적인 죽음은 의지를 넘겨주는 것이다. 이 본문은
갈라디아서 2:19, 20과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여기서 개인이 영적으로 못 박히는 일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경험이다. 이러한 연합에서 죽음은 의지의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결정되며 기꺼이 믿음으로 사는 삶의 방식이다. 이 문맥에서 율법은 성령을 따라 살며 행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갈 5:25). 구약을 인용하면서 바울은 율법을 사랑으로 정의한다(
14절). 그러고 나서 그 의미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15절). 그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18절)와 정욕으로부터의 자유(
24절)를 의미한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윤리적 제도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다. 율법주의와 방탕이 모두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은 그것들이 의지를 결정하는 힘으로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켜야 할 일련의 법칙으로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의 계시로서 주셨다. 하나님은 방탕하게 살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을 보장하고자 주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나 인간 의지의 행사를 제거하지 않는다. 그는 이 두 의지가 조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임을 명확히 한다. 이 같은 삶은 성령과 함께 보조를 맞추고(
갈 5:25),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에 조화될 것(
스토이케오,
갈 5:25)을 요구한다. 강조점은 성령에 있다. 그는 뜻을 지도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힘과 세상이 우리에 대하여 못 박힘 혹은 성령을 따라 행함은 그리스도교의
“규례”(
갈 6:16)라고 단언한다. 새로운 피조물의 표준(
15절), 즉 사랑의 율법(
갈 5:15), 그리스도의 법(
갈 6:2), 진리(
갈 5:7)에는 분명한 윤리적 명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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