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예수님의 가르침 속의 십계명
 예수께서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법과 십계명을 향하여 자신이 품고 있는 태도를 숨기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장로들의 유전(遺傳)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승인조차 하지 않았지만(막 7:1-13), 십계명은 높이셨고 모세오경의 영속성을 분명하게 확언하셨다. (550.1)
 1. 십계명의 동등성
 한 율법사가 십계명의 동등성을 언급하면서(마 22:35-40) 시험하는 질문을 예수께 던졌다. “선생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6절). 율법사는 율법의 조항마다 그 중요도가 다르다는 견해를 지지했다. 랍비의 전통은 두 계명이 충돌할 때에는 더 큰 계명에 순종하면 더 낮은 계명에 대한 순종은 언제든지 면제된다는 견해를 지지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첫째 판이 둘째 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인간을 섬기는 일은 더 쉽게 배제될 수 있었다. (550.2)
 예수님의 답변은 두 가지 기반 즉 성경의 내용과 각 계명 간 위계(位階)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에 기초해 있다. 그는 성경에서 모세오경의 두 부분, 즉

   (1)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하는 신명기 6:5,

   (2)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는 레위기 19:18을 언급하셨다.

 암시된 계명 간 위계와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두 계명의 존재를 받아들이셨다. 첫째가 “큰”(마 22:38)계명이지만, 둘째 것이 절대로 더 작지 않다. 그것은 그와 “같이”(39절), 즉 중요성과 효력에 있어서 “동등”하다(호모이오스). 계명의 순서는 어떤 예외를 허용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두 계명 모두 동등한 수준에서 준수되어야 했다. (550.3)
 하나님과 관련된 처음 판의 네 계명과 이웃에 대한 둘째 판의 여섯 계명으로 구성된 도덕법 배후의 지배원리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서 마음, 정신, 뜻, 즉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 도덕법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서 솟아난 것이며, 그의 사랑이 인간의 삶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전체 율법의 목표다. (550.4)
 2. 십계명의 영속성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가장 직접적인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산상설교에 나타나 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550.5)
 예수님은 율법을 허물어뜨리거나 폐지하는 일을 계획하지 않으셨다. “율법과 선지자”라는 어구는 구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언급하며, “율법”이란 말은 토라 혹은 모세오경을 언급하는데, 그 중심에는 십계명 율법이 자리하고 있다. (550.6)
 마태복음 5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반복해서 도덕법을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계명”(19절), “의”(20절) 그리고 “살인하지 말지니라”(21-26절), “간음하지 말지니라”(27-30절)와 같은 계명들의 의미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명백히 십계명에 관한 언급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이루셨다. 그리스도는 또한 그의 청중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촉구하셨다(19절). 진정 율법을 파괴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해석 안에 갇혀 있는 서기관들이었다. 마태복음 15:1-6에서 예수님은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과 관련하여 이 점을 예증하셨다. (550.7)
 예수님은 또한 십계명의 영속성을 분명하게 인식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5:18). 그러고 나서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하는 것, 즉 율법에 대한 순종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19절). (550.8)
 그런 후 예수님은 살인과 간음을 금하는 율법의 의미를 설명하셨다. 율법의 자구(字句)를 존중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 율법은 내적인 동기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행동을 다룬다. 여기서 예수님은 율법의 도덕적 정의가 그의 가르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울 영원한 생명의 새 왕국에서 계속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551.1)
 유사한 점이 예수님과 젊은 관원이 나눈 대화에 나타나 있다(마 19:16-26). 그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라고 대답하시고 나서 어느 계명인지를 특정하셨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다시 말하면 십계명이었다. 여기서 “계명”(엔톨레)이란 말이 사용되었는데, 마태복음 5:18, 19에서는 “계명”(엔톨레)과 “율법”(노모스) 둘 다 사용되었다. 두 낱말은 모두 같은 것, 즉 십계명을 언급한다. (551.2)
 의도된 특정 율법이 어떤 법인지 그 대화에서 분명하게 규명되었다. 청년 부자 관원은 십계명을 지켰으나 율법주의적으로, 즉 독자적이고 도덕적이며 법적인 규정으로 지켰다. 그에게는 율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율법을 주신 분이 없었다. 예수님은 “나를따르라.”라고 말씀하셨다(막 10:21). 그러나 젊은 부자관원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고, 율법과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여전한 고립과 불확실성을 안은 채 남겨졌다. 구원은 법적인 규정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주신 분 즉 구주로부터 온다. 이스라엘은 고대로부터 이 점을 알았지만 잊고 있었다. 그들은 십계명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계명들이 하나님의 뜻의 계시이며,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초청하고 있다는 점을 잊고 있었다. (551.3)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로써 순종과 그를 따르는 일이 서로 조화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실제로 그 둘은 그렇게 결합되어 있어서 다른쪽이 없이 한쪽만으로는 단지 그리스도인의 겉치레일 뿐이다. 율법주의적인 순종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서 분리한다. 율법에 대한 참된 영적 순종은 오직 예수님을 참되게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참된 생명의 길이다. (551.4)
 예수님은 율법에 대하여 온 마음을 다한 순종을 요구하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을 때 그는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명하셨다(요 8:11). 그 사건은 율법에 대한 순종과 관련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와 그리스도를 반대되는 위치에 놓으려고 시도했다(5절). 그들은 모세에 따르면 그 여자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께 상기시켰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땅에 쓰면서 “너희 중에 죄 없는자가돌로 치라”(7절)고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님이 십계명의 폐지를 염두에 두셨다면 이 장면은 그것을 선언한 완벽한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율법의 권위를 승인하셨다. 그는“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11절). 이것은 그가 죄인을 용서하실 때마다 주신 기별이었다.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은 하나님이 처음에 그것들 위에 부여한 것과 똑같은 권위를 갖고 있으므로 열 가지 계명 모두에 대한순종은 여전히 필요하다. (551.5)
 3. 안식일 계명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과 이스라엘 지도자들 사이의 안식일 논쟁은 그가 안식일 준수와 관련한 유대인의 전통을 거부하고 개혁을 수행하였으며 안식일을 절대로 폐지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안식일에 한 노동(마 12:1-8; 막 2:23-28; 눅 6:1-5), 치유(마 12:9-13; 눅 13:10-17; 요 5:2-18; 9:1-34), 귀신을 쫓아낸 일(막 1:21-27; 눅 4:31-37 등을 둘러싼 논쟁 속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이런 개혁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의 주인이 아니라 그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 됨을보이셨다(마 12:8). 그는 제7일 안식일이 처음에 의도된 대로(창 2:1-3) 인간 가족을 위한 축복이라고 주장하셨다(막 2:27). 그는 종교적 모임에 참석하여 거기서 가르침으로써 안식일을 존중하고 준수하셨다(눅 4:16). 그의 가까운 추종자들은 그의 죽음 후에 안식일을 계속 존중하였다. 그들은 “돌아가향품과향유를준비”하였고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었다(눅 23:56; 참조 안식일). (551.6)
 D. 바울 서신에 나타난 율법
 율법에 관한바울의 견해는그의 율법 준수 특히 안식일 준수와 가르침 모두에서 나타난다. 그가 개인적으로 율법에 순종한 모습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다. 율법에 관한 가르침은 그가 개척한 여러 어린 교회에 보낸 서신들에 나타나 있다. 율법에 관한 그의 기록 일부는 오해가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하여 살펴 볼 가치가 있다. (5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