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은 정확성과 명료성을 기하여 이야기체로 주어졌다. 늘 그렇듯이, 잘못 이해함으로써 책임과 헌신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이런 명료성은 그 당시에도 필요했다. 하나님은 유일한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540.4)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 두 가지 기본적인 동기부여를 제공하셨다.

   (1) “나는 네 하나님 야훼”인 것과

   (2) “내가 너를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내었다”(출 20:2; 신 5:6)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출애굽기 20:2-17에 기록된 대로 율법을 선포하셨다. (540.5)
 십계명(출 20:1-17; 신 5:6-21)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고 다섯 영역을 포괄한다. 두 부분은 모든 관계에 영향을 준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첫 네 계명)와 동료 인간과의 관계(나머지 여섯 계명)이다. 다섯 영역은 하나님, 거룩함, 가족, 사람, 이웃과 관련이 있다. (540.6)
 먼저, 첫 번째와두 번째 계명(출 20:3-6)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배타적이며 직접적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충성의 헌신을 용납하지 않으며, 예배에 있어서는 일종의 중간 매개자 같은 상징,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 인공적 형상이라도 허용하지 않으신다. (540.7)
 두 번째 영역인 세 번째와 네 번째 계명(7-11절)은 하나님의 이름과 안식일이 거룩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존경받고 숭배되어야 한다. 그것이 망령되이(in vain) 취급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의 이름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인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거룩성은 그날을 지킴으로써 존중되는바, 그날은 시간의 거룩함 즉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거룩함으로서, 창조의 청지기들이 우주의 창조주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융화됨으로써 연합하게 한다. 안식일의 준수는 일반적인 일상 활동에서의 쉼, 참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함, 창조 세계의 신성불가침성을 존중함, 환경을 완전무결한 상태로 회복함 우리 책임 아래 일하는 자들의 권리를 보호함 등을 포함한다. (540.8)
 셋째 영역인, 다섯 번째와 일곱 번째 계명(12, 14절)은 가정은 신성하다고 증언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경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또한 결혼에 대한 불성실과 그 밖의 다른 모든 사람의 결혼 관계를 침해하는 것을 금지한다. (541.1)
 넷째 영역인 여섯째와 여덟째 계명(13, 15절)에서 인간은 신성불가침적인 존재라고 증언한다. 아무도 다른 누군가의 생명이나 소유를 앗아 갈 수 없다. 이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거슬러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일, 속여 빼앗는 일, 품삯 지급을 연기하는 일을 포함한다(참조 레 19:13). (541.2)
 다섯째 영역에서 개인과 사회는 반드시 보호를 받아야 하는바, 이는 악한 말과 사악한 욕망이 그들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짓된 증언(출 20:16) 즉 위증, 나쁘게 말하는 일, 진리를 억누르는 일, 심지어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억울한 말을 할 때 침묵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나님은 이웃의 집, 배우자, 종들, 짐승들, 그 이외에도 여하간 남에게 속한 소유를 탐내는 것을 금하신다. (541.3)
 불과 열 가지 계명의 도덕법에서 하나님은 인간 가족의 모든 욕망과 활동들을 망라하신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올리면서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다”라고 말했다(시 119:96). 그것은 “단단히 고정된” 하나님의“말씀”과 같다. 하나님의 율례, 법률, 교훈과 증언은 영원하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즐거워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셨다(89-96절). (541.4)
 2. 율법, 하나님 성품의 표현
 하나님의 율법, 특히 십계명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다. 십계명은 지금까지 늘 존재해 왔으며 그의 품성이 변하지 않는 그만큼이나 오래 존재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같듯(시 102:25-27)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히 13:8).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그의 속성을 본다. 하나님처럼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며, “야훼의 계명은 순결”하다(시 19:7, 8).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설명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롭다.”라며 율법을 높인다(시 119:172).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요약한다(요일 4:8). (541.5)
 요한의 정의는 [복음을] 훼방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적 활동에 관한 설명을 그 배경으로 한다(1-3절).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진리”“거짓”의 차이를 분별할 것이다(6절). 적그리스도의 오류는 그가 그리스도의 사명을 부인한다는 데 있다(3절). 그는 예수를 “부인하고”(요일 2:22), 따라서 아버지를 부인하는데,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이다(요일 1:2, 3).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아들과의 교제를 포함한 교제와 지식에 대한 부정이다. 거짓의 영온 활동 중인 사탄의 세력을 의미하며, 진리의 영(요일 4:6)은 믿음으로 아들과의 밀접한 교제를 세우고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13절)을 계시로 주시는 성령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의 뜻을 행하며(요일 2:17) “그의 계명을 지킨”다(3-6절). (541.6)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이론적인 것도 아니며 사색적인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존재론적 지식, 즉 그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관계적 지식, 즉 그의 품성에 관한 지식이다. 이런 강력한 지식은 생명의 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도덕적 품행을 결정한다. 즉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하여야 한다(6절).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즉 새롭게 되었으나 이전과 똑같은 옛 계명(그것이 실제로서의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과 조화된 삶의 열매를 맺는다(7, 8절). (541.7)
 계명이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바탕이 될 때 그것은 어떤 종류의 두려움, 심지어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주지 않고 “담대함”혹은 “확신”(파레시아)을 낳는다. “심판의 날”에 대한 확신(요일 4:17)은 매일의 심판에서 우리 자신의 양심의 평안함(요일 3:21)과 그리스도의 강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 대한 보증(요일 2:28)을 포함한다. 도덕적 율법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길을 정의하는데, 이는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나타낸 것이며,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다(요일 4:17). (542.1)
 죄가 없었을 때는 사랑의 원칙이 우주를 지배했다. 창조된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했다. 이런 이유로 율법사가 예수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는 말씀으로 마치셨다(마 22:37-40). (542.2)
 3. 기본적인 원칙으로서의 율법
 사랑은 도덕적 율법의 기본 원칙이다. 이것은 신약과 마찬가지로 구약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예수님과 바울의 인용문은 이 점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542.3)
 로마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성경의 진리와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등에 관한 매우 긴요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답변이 있고 나서 한 서기관이 율법의 기본 원칙에 대하여 질문했다 그는 “모든 계명 중의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라고 물었다(막12:28). (542.4)
 예수님은 율법의 기본 원칙을 설명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서 표어가 된 신명기 6:4을 언급하셨다. 그는 주변의 다른 나라들이 많은 신을 가진 것에 반대하여 참하나님 특유의 유일성을 강조하셨다. 하나이신 하나님의 첫 계명은 사랑의 계명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30). 레위기 19:18을 인용한 두 번째 계명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첫 번째 계명의 범주 안에 있어야 한다고, 즉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선언하셨다. 율법의 기본 원칙은 자아가 아니다. 그것은 자아 밖에 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같은 종류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하나 되심 안에 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참된 사랑이다. 사랑은 십계명 두 돌판의 기본 원칙인 율법의 첫째와 둘째 계명에 녹아 있다. (542.5)
 서기관의 반응은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이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선생님이여 옳소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32절) 라고 평가했다.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하나님의 도덕적 원칙에 동의하게 되면 그의 지혜와 영적 경험은 하나님의 왕국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마가는 그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34절) 라고 기록한다. (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