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은 구약에 있는 창조 개념들을 반복한다. 그것은 또한 구약에서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은 어떤 정보들도 보탠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역사하신 대리인으로서 창조에 나타난다. 신약에서 다양한 성경 구절들이 이것을 진술하지만, 예수님이 또한 친히 지상 사역에서 그것을 획증하셨다. 그분은 재창조자와 치료자로서 당신이 또한 원래의 창조주였음을 확증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죄로 손상된 피조물을 그때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장의 일부로 예수님은, 당신이 또한 그 원래의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의 주인(마 12:8)이라고 주장하셨다. (515.1)
 신약은 구약의 창조 이야기를 확증한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신약의 기자들에게 잘 알려졌으며 시작에 대한 표준 이야기로 수용되었음이 명백하다. 이것은 창조 이야기가 신약에서 자구적(字句的)으로 사용된 방식에 나타나 있다. 창조의 7일 중 3일이 신약에서 직접 인용되어 있다. (515.2)
 고린도후서 4:6“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물리적으로 창조주간의 첫 날에 땅에 빛이 비취도록 명하셨듯이, 영적인 빛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인간의 마음에 비췬다. 창조주간 첫 날의 물리적인 빛이 이 영적인 적용의 기초로 수용된다. (515.3)
 이혼의 문제를 다룰 때, 예수님은 창세기 1장2장을 언급하시고 인용하셨다. 결혼의 원래적인 그리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상태가 무엇이었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9:4-5). 남자와 여자를 만드심에 대한 언급은 창세기 1:27에서 온 것이며, 남편과 아내의 연합에 대한 언급은 창세기 2:24에서 온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기 두루마리로부터 이 이야기를 아셨으며, 그분의 청중들이 그것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이런 식으로 창조의 여섯째 날의 이야기는 신약의 증언에 의해 확증된다. (515.4)
 히브리서 기자는,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다는 교훈을 이끌어낸다. 그 완전한 안식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구원을 받아들임으로써만 찾을 수 있다. 안식일은 창세기 2:1-3에서 완성된 창조의 기념이었듯이 이 재창조의 기념이다. 히브리서 4:4은 이 사실을 언급한다.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이 진술의 출처는 창세기 2:2인데, 기자는 그것을 원래의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515.5)
 A. 시간 속의 유한한 전환점으로서의 창조 주간
 신약에서 열 개의 본문이 이 세상 역사의 출발점을 규정하기 위하여 “창세”(foundation of the worl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들 중 여섯 개는 창세 “이래로” 또는 창세“부터” 일어났던 사건들을 언급한다(마 13:35; 25:34; 눅 11:50; 히 4:3; 9:26; 계 17:8). 네 개는 창세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언급한다(요 17:24; 엡 1:4; 벧전 1:20; 계 13:8). 이와 같이 신약의 기자들은 창조주간을 그 이전의 시간 및 사건들과 그 이후의 시간 및 사건들을 나누는, 시간 속의 유한한 점으로 알았다. 성경 기자들이 창조를 언급할 때, 그것은 모호한 또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것이었다. (515.6)
 이사야와 예레미야에서 이미 주목했듯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진술들은 다양한 예언들을 소개한다. 유사한 어떤 것이 신약의 구절 3-4개, 특히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사도행전 4:24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말했다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이시오.” 이것은 사실상 똑같은 요소들이 똑같은 순서로 있는출애굽기 20:11과 다름없다. (515.7)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때 본질적으로 똑같은 공식을 사용했다.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행 14:15). (516.1)
 바울은 마르스 언덕에서 동일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거기서 그의 설교를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언급한 후 그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천지의 주”(행 17:24)께 청중의 주의를 돌렸다. (516.2)
 이와 같이 사도행전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세 번의 언급은 그 후에 오는 것을 소개한다 보다 작은 규모로 이것은 에베소 3:9에도 나타나는데, 바울은 거기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을 묘사한다. (516.3)
 이 공식을 보다 더 현저하게 요한계시록 10장의 천사가 사용하는데, 그는 큰 영광으로 땅에 내려와서 그의 오른손을 하늘로 들고 맹세한다. 그 맹세는 “세세토록 살아계신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과 직함으로 한다. 그 천사가 한 맹세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적 시간과 관계가 있다. 그 맹세에서 창조에 대한 언급은 의문시되는 예언적 시간은 끝에 올 것임을 분명히 한다. (516.4)
 B. 창조에 나타난 계시와 신앙
 참하나님에 대한 천연계의 계시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나타난다. 신약에서 그것은, 이방인들이 배우기를 완고하게 거절하지만, 천연계에 일반계시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로마서 1:20에 있다. 그들은 돌아서서 그들 자신의 부도덕적인 길들의 암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이방인들이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바라보고 그분에 관해 배우지 않았을 때, 무언가를 놓쳤다. 히브리서 11:3은 우리에게 그 빠져있는 요소가 무엇이었는지 말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창조에 사용하신 “말씀”에 대한 언급은 창세기 1장으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거기서 창조주간의 각 사건은 사물들과 피조물들을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의해 일어났다. (516.5)
 C.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
 신약의 창조 사상에 도입된 새로운 주된 요소는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이다. 구약에서 숨겨져 있었거나 다만 함축된 것이 신약에서 이제 분명해졌다. 요한복음 1:1-3은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단언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516.6)
 골로새서 1:16-19은 몇 개의 동일한 요소들이 있는 비슷한 진술을 한다.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가 강조되어 있다 16절은 매번 다른 전치사로 진술한다. (516.7)
“만물이 그에게[in Him]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through Him]
그를 위하여[for Him] 창조되었고”
(516.8)
 이렇게 다른 전치사들을 사용한 점은, 이 절의 모든 다른 특징들처럼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심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그분의 창조 행위들 밖에 놓여있지 않다. 그러나 그분이 창조주이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진술은 계속된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분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유지주이시기도 하다. 창조에서의 그분의 사역은 진행 중인 과정이다. (516.9)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심은 히브리서 1:2에도 진술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이나 골로새서만큼 광범위 하지는 않다. 동일한 3단계의 연속이 관찰된다.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이시다. 왜냐하면 “또 저 [그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바로 이 아들이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3절) 계신다. 이 시리즈는 계속해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3절)고 말한다. 이와같이 히브리서의 서론에서도 그리스도는 창조자(Creator), 유지자(Sustainer) 그리고 정결자(Purifier)로 언급된다. (5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