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너는 크리스천 컨넥션(Christian connection) 교파에 속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견해들은 당시의 여러 교단이 동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재림운동이 무르익어 갈 때, 그는 침례교회의 일원이었고 위스콘신 주의 잡지사의 부편집인으로 고용되었지만 재림운동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재림운동에 가담하여 매우 신속히 재림운동의 선구자로서 그 자리를 굳혔으며, 매우 영향력 있는 직임을 받았으니, 곧 제임스 화잇 후임으로 <시조>지의 편집인이 되었다. 그후 그는 <아메리칸 센티널>지를 발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패시픽 건강 저널>이 된 것이다. 그는 1868년에 <속죄>, 1886년에 <에덴에서 에덴으로>를 포함한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다. (44.1)
 죠셉 H. 와그너는 자신의 건강상 질병 때문에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1889년 그는 사망하였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문제는 1888년 대총회시 토의 사항이 되었다. 이때 그의 아들인 엘리엇 J. 와그너는 교회내에 잠재해 있던 반 아리안주의를 마지막으로 반박하였으며,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속성을 적립하는 데 필요한 성서적 기초를 세워 놓았다. (44.2)
 엘리엇 J. 와그너(1855~1916)20
 엘리엇 J. 와그너(Ellet J. Waggoner)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문제에 연관된 체계적 그리스도론을 발표한 최초의 재림교 신학자였다. (44.3)
 그는 위스콘신 주 바라부Baraboo)에서 출생한 후, 미시간 주 배틀크릭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뉴욕 주에 있는 벨레뷰(Bellevue) 의과 대학에서 공부한 후 의사가 되었다. 그는 배틀크릭 위생병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대학 병원의 의사로서 진료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설교자로서보다는 복음증거자로 활동하였다. (44.4)
 그는 글쓰는 재능을 발휘한 후에 자기 아버지의 지도하에, 1884년 <시조>지의 부편집인으로 부름받았다.21 2년 후 그는 수석 편집인이 되었고, 1891년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였다. 1892년부터 1902년까지 그는 영국에서 일하였는데, 처음에는 <현대 진리>지의 편집인으로, 그후 남부 영국 합회의 초대 합회장이 되었다. 그가 미국에 귀국한 후, 이혼과 재혼 문제로 교회에서 떠났으며, J. H. 켈록 밑에서 배틀크릭 대학 신학 교수로 남은 기간을 보냈다.22 (45.1)
 와그너는 매우 많은 책을 써낸 신학자였다. 다수의 팸플릿과 수백 가지가 넘는 논설 등 중요한 책들을 남겼다.23 그러나 와그너는 그의 동료인 A. T. 존스와 함께 미네아폴리스 1888년 대총회 회기 중에 행한 역할 때 문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들은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주장을 함으로써 재림교회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와그너에게 이 주제는 오직 그리스도론 조명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었다. (45.2)
 1884년 초기에 와그너는 일련의 논문들을 <시조>지에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서 천사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드리듯 똑같은 경배를 그리스도께 드리므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천명하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는데 이는 사람으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며, 만물이 그에 의해 지은 바 되었으며 천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듯 동일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분께 예배드린다. 그(하나님)는 당신의 독생자를 주심으로—만물이 그에 의해 창조되었고 천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듯 동일한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드리니—이는 사람으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4 (45.3)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기간에, 와그너는 총회 기간 동안 신학 논제가 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연속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는 발표한 것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으나, 총회가 끝난 직후 동일한 주제에 대한 논문을 네 번에 걸쳐 연속해서 출판하였다.25 이 출판물의 의미는 이것들이 그가 총회 시 발표한 주제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논문들은 다음해인 1890년에 출간된 <그리스도 그의 의>라는 책의 첫 네 부분에서 발견된다. (45.4)
 이 책은 와그너의 그리스도론의 가장 지배적인 사상을 포함한다.26 (46.1)
 그 당시에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서 반—아리안 사상이나 혹은 양자설의 개념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가?’라는 문제를 와그너가 취급함에 따라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야기되었다. (46.2)
 그리스도가 진실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와그너는 그가 하나님이라 호칭되는 많은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였다.27 아직도 이런 관점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는 하나님이란 이름이 “어떤 위대한 업적의 결과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스스로 그분의 것이다.”28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형상이다(히1:3). ∙∙∙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모든 속성을 지니고 계시다”29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셨다(요 14:8, 9; 10:33; 8: 58)는 사실을 그리스도 자신이 가장 분명하게 가르치셨다.30 와그너는 골로새서 1장 19절에 있는 바울의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2장 9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는 이 사실을 “가장 확실하고도 모호하지 않은 증거”31로 발표하였고 15번이나 이 개념을 반복하여 드러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묘사하였다. 와그너는 골로새서 1장 15~17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32 히브리서 1장 8~10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 주여 태초에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33 (46.3)
 그러면 누가 감히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가 만물의 창조자란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가?”34 많은 사람이 주장하듯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근거해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신성을 부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35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골 1:15)라고 선언할 때의 바울의 표현에 의거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와그너는 또한 관찰하기를 그분은 “창조주시며 피조물이 아니라”36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47.1)
 그러나 와그너까지도 “과거 어느 시점에 그리스도가 출현하셨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으며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나오셨(요 8:42;1:18)으나, 그 시간은 너무 아득한 영원 전의 과거라 유한한 이해력을 가지고는 실제로 시작이 없다고 할 그런 때였다”고 믿은 것이다. 37 (47.2)
 마지막으로 와그너는 강조하기를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으로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 그 자체이시며 출생과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을 보유하신다. ∙∙∙ 그는 자신의 권리 가운데 불멸을 소유하고 타인에게 불멸을 수여할 수 있음”38을 강조하였다. 이 점이 와그너가 “그는 여호와 곧 스스로 있는 자”라고 정당하게 부를 수 있다고 결론지은 이유이다.39 (47.3)
 그리스도는 본래부터 하나님과 똑같은 본질이시고 스스로 자신 안에 생명을 지녔다는 와그너의 견해는 미네아폴리스 총회 때 대표자들의 시야에 새로운 시각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그의 입장은 많은 대표자들에 의해 반대를 받은 요인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질이심을 확실히 느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만 이 그를 의롭게 하여 은혜로 구원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47.4)
 이 요점에 관한 와그너의 공헌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것과 함께 결정적인 것이었다. 프룸은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시킨다. “1888년에 와그너는 그후에 발표된 엘렌 G. 화잇의 많은 기사들의 도움이 없이도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47.5)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재성에 관해서뿐 아니라 그분 개별적 자존성 그리고 그분의 무한성, 동등성과 무소부재에 관해서도 그러했다.”40 (48.1)
 엘렌 G. 화잇은 자신이 와그너의 말을 들은 후에 발표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우리 앞에 제시되었다”41고 하였다.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역사하심을 나타내었다. 와그너의 해석은 그가 그때까지 항상 믿어 왔고 자신의 저서 가운데서 진술해 왔던 것에 대한 신학적인 논증이었다. (48.2)
 엘렌 G. 화잇(1827~19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