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altke and Yu, 14.
2. Kenneth A. Mathews,
Genesis 4:27-11:26, ed. E. Ray Clendenen, The New Ameri can Commentary, vol. 1B (Nashville, TN: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372, 373.
3.
‘가데스’의 긴 이름은
‘가데스 바네아’이다. 출애굽 때에 이곳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찰했지만 저들의 불신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사십년간 광야를 방랑하는 심판을 받았고(
민 13-14), 미리암이 이곳에서 죽어 장사되었고(
민 20:1), 모세가
‘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향해 명령하는 대신에 반석을 두 번 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박탈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민 20:2-13). 원래의 이름인
‘엔 미스밧’(עֵין מִשְׁפָּט,
`ên mišPä†)은
‘심판의 샘’이란 뜻이며, 위치는 브엘세바 남쪽으로 약 80 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으며 현재 북부 시내사막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가 있고 시간당 40 m3의 물을 생산하는 샘이 있다. Dale W. Manor,
‘Kadesh-Barnea’,
ABD 4:1.
‘엔 미스밧’은 유목민들이 이 오아시스에 모여서 저들의 분쟁을 해결한데서 그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보인다. Sarna, 106.
4.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창기로 여겨 취한 후에 그 값을 지불할 때 신전의 창기를 찾았으나 그 지역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창 38:21, 22).
5.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탄생하실 예수님을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했다(
눅 1:35).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오직
막 1:24와
눅 4:34에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악령들이 예수님께 굴복하고 쫓겨날 때 예수님을 부른 칭호이다.
6. 하란은 오늘날 터어키 남부의 도시인데, 주전 2000년대에 이곳은 갈대아 우르와 더불어 달신(月神)을 숭배했다. 앗시리아인들은 이 신전을 미화했고, 바벨론인들은 달신숭배를 회복시켰다. 바벨론 최후의 황제 나보니더스의 모친(104세에 사망)은 우르신전의 대사제였으며 후에 나보니더스의 딸이 대사제가 되었다. R. J. Hughes, III,
‘Haran’,
ISBE 2:614.
7. William Dyrness,
Themes in Old Testament Theology (Downers Grove, IL; Carlisle, UK: InterVarsity Press, The Paternoster Press, 1977), 58.
8. 창세기에서
‘은혜’를 의미하는
‘헨’(חֵן,
Hën)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창 6:8; 18:3; 19:19에 3회 등장하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에 의해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된 요셉에 사용된다. 그 외 사람들 사이에 은혜를 의미하는 말로
창 32:5 (H 6);
33:8, 10, 15; 34:11; 39:4; 47:25, 29; 50:4에 등장한다. 라반은 야곱에게 함께 유하기를 청할 때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이라고 했을 때 헨을 사용했다(
창 32:5).
9. 창세기에서
‘헤세드’(חֶסֶד,
Hesed,)는
‘인자’(
창 19:19; 24:17, 49; 39:21),
‘은혜’(
창 20:13; 24:12, 14; 40:14),
‘후대’(
창 21:23),
‘은총’(
창 32:10 [H 11]),
‘인애’(
창 47:29) 등 다양한 말로 개역성경에 번역되었다. 이중에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창 19:19; 24:12, 27; 32:10 (H 11);
39:21에 5회 사용되었다.
10. 창세기에서
‘야타브’(יָטַב)는 하나님과 관련해서
창 32:9, 12에 야곱이 에서에게서 보호 받기를 기도할 때
‘은혜를 베풀다’는 뜻으로 2회 사용되었다. 그 외에
‘선을 행하다’(
창 4:7),
‘안전하다’(
창 12:13),
‘후대하다’(
창 12:16),
‘좋게 여기다’(
창 34:18; 41:37),
‘득의하다’(
창 40:14),
‘기뻐하다’(
창 45:16)로 개역성경에 등장한다.
11.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또 다른 용어인
‘아하브’(אָ֑הַב,
´ähab)
‘사랑하다’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는 사용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사용이 되었다. 부모와 자식(
창 22:2; 25:28; 37:3, 4; 44:20), 부부 (
창 24:67, 30, 32), 음식(
창 25:2, 4, 9, 14), 연애(
29:18; 34:3). 그러나 창세기 외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출 20:6; 신 5:10; 7:9; 수 22:5; 23:11; 삿 5:31; 왕상 3:3; 시 31:24; 38: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호 3:1), 이스라엘의 열조(
신 4:37; 10:15), 신자(
신 7:13; 23:6; 사 43:4; 렘 31:3; 호 11:1; 14:5)를 사랑하시는 것 등등을 나타낸다.
12. 원어적 의미는
‘야훼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KJV)인데,
‘ ∙∙∙ 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는 구절은 은혜의 선행 조건이 분별력있는 행위들이 아니라 태도인 것을 말하며, 은혜를 베푸는 주체는 언제나 우월자이다. 또한 우월자의 태도를
‘헨’(חֵן,
Hën)이 나타낼 때 이것은 겸손이나 편애를 함축하고 있다. 참조, H. J. Stoebe,
‘חנן,’ TLOT 1:440-441.
13. 저스틴 말터, 암브로스, 시릴등의 교부들은 세 사람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생각하지만,
창 19:1이 지적하는 것처럼 둘은 천사였다. Thomas Whitelaw,
Genesis, ed. H. D. M. Spence-Jones, The Pulpit Commentary, vol. 1 (New York, Toronto: Funk & Wagnalls Company, 1913), 240.
14.
창 19:19-20,
‘종이 주께 은혜(חֵן, Hën)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חֶסֶד, Hesed)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 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 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15. D.A. Baer, R. P. Gordon,
‘חסד’,
NIDOTTE 2:211.
16. Ibid., 214. 아브라함의 종이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끊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인자’(חֶסֶד,
Hesed)와 긍휼을 제거하기도 하셨고(
렘 16:5), 다윗에게서
‘은총’(חֶסֶד,
Hesed)을 빼앗지 않으셨다(
삼하 7:15).
17.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551.
18.
‘선을 행하다, 기쁘다’를 뜻하는
‘야타브’(יָטַב,
yä†ab)가 요셉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애굽의 바로와 궁정 관리들은 칠년씩 교대로 오는 풍년과 흉년의 대비책으로 요셉이 내놓은 제안들을 좋게 여겼고(
창 41:37), 요셉의 형제 상봉에 대해서 기뻐하였다(
창 45:16).
19. Keil and Delitzsch, 1:14.
‘아온(악, 죄악), 하타(죄), 페샤(허물) 등을 목적어로 할 때 나사는 「(죄악, 죄, 허물)을 나르다」를 의미할 수 있다. 곧 그것들을 날라가고, 가져감으로 죄와 (형벌을 포함한) 죄의 영향들을 제거하는 것이며, 따라서 용서하다는 뜻을 갖는다.’ John S. Kselman,
‘Forgiveness (Old Testament),’ ABD 2:832. 히브리어로
‘용서하다’를 뜻하는 동사는
‘살라’(סָלַח,
sälaH’)이며
출 34:9에 최초로 등장한다.
20.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소돔을 위해 간청한 사실을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창 18:27, 30, 31, 32).
21. 대홍수 전에는 보통 평균수명이 900세쯤이었다(
창 5). 홍수 후에는 수명이 신속히 감소 하였다(
창 11). 홍수 후에 셈은 600세까지, 에벨은 464세까지,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요셉은 110세까지 야곱은 147세까지,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다.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