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실하심
 1) 자기 백성을 돌보심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신실하게 돌보신다.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충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도록 방주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셨고, 격노한 물결 속에서 방주를 든든하게 지켜주셨을 뿐 아니라 무사히 새로운 세계에서 살도록 하셨다(창 6:18; 7:1, 23; 8:1). 홍수 후에 인류와 생명체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돌보심은 무지개를 언약의 표로 허락하신 것 속에 나타났다(창 9:15-16).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나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임없이 베푸시는 분임을 이삭의 배우자인 리브가를 찾았을 때에 고백하였다(창 24:27). 도망자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며 지켜줄 것을 약속하셨고, 야곱은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신실하셨음을 고백하였다(창 28:15; 32:10). (123.2)
 2) 언약을 성취하심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언약 속에서 발견이 된다. 하나님은 창세기 3:15의 원복음을 주신 이래로 하나님은 신실하게 구속사를 주관하신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구속사의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이스라엘의 탄생을 예견하게 된다. 불임과 사기와 배반과 기근 등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또한 구속사의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부조들의 부적절한 처신과 실수와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할 복음전도의 사명을 맡은 이스라엘을 준비하셨다. 무엇보다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창조 언약의 축복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아니하고 모든 민족에게 유효하다. (124.1)
 5. 오래 참으심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다. 창세기 6:3에 백이십 년의 유예 기간을 홍수 전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셨다. 이미 라멕이 일부다처제를 도입하고 살인을 예찬하는 등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의 악행이 하늘에 사무쳤지만 하나님은 일 세기가 훨씬 넘는 백이십년의 세월을 저들에게 허용하셨다. 죄악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기까지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다. 백이십년의 기간을 하나님이 제한하신 인간의 수명 연한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주장은 홍수 후에 백이십년을 넘게 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21 (124.2)
 하나님의 거룩성에 비추어 볼 때 죄악 세상이 지속되는 것은 공의의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류의 타락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는 하나님의 참으심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125.1)
 하나님은 이방 세계에 대해서도 오래 참으신다. 창세기 15:16‘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400년이 넘는 세월이 아모리 족속에게 허용되었다. 하나님은 저들의 죄악의 열매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그들을 용납하셨다(레 18:24-28). (125.2)
 하나님이 제시하신 기간의 제한은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분은 인내와 사랑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125.3)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죄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준다. 하나님이 참으시는 기간은 은혜를 베푸시는 때이다.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종말의 때도 들어가 있다. 예수님은 마지막이 언제 임할지에 대해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마 24:36). (125.4)
 참고 문헌
 1. Waltke and Yu, 14.

 2. Kenneth A. Mathews, Genesis 4:27-11:26, ed. E. Ray Clendenen, The New Ameri can Commentary, vol. 1B (Nashville, TN: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372, 373.

 3. ‘가데스’의 긴 이름은 ‘가데스 바네아’이다. 출애굽 때에 이곳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찰했지만 저들의 불신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사십년간 광야를 방랑하는 심판을 받았고(민 13-14), 미리암이 이곳에서 죽어 장사되었고(민 20:1), 모세가 ‘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향해 명령하는 대신에 반석을 두 번 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박탈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민 20:2-13). 원래의 이름인 ‘엔 미스밧’(עֵין מִשְׁפָּט, `ên mišPä†)은 ‘심판의 샘’이란 뜻이며, 위치는 브엘세바 남쪽으로 약 80 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으며 현재 북부 시내사막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가 있고 시간당 40 m3의 물을 생산하는 샘이 있다. Dale W. Manor, ‘Kadesh-Barnea’, ABD 4:1. ‘엔 미스밧’은 유목민들이 이 오아시스에 모여서 저들의 분쟁을 해결한데서 그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보인다. Sarna, 106.

 4.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창기로 여겨 취한 후에 그 값을 지불할 때 신전의 창기를 찾았으나 그 지역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창 38:21, 22).

 5.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탄생하실 예수님을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했다(눅 1:35).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오직 막 1:24눅 4:34에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악령들이 예수님께 굴복하고 쫓겨날 때 예수님을 부른 칭호이다.

 6. 하란은 오늘날 터어키 남부의 도시인데, 주전 2000년대에 이곳은 갈대아 우르와 더불어 달신(月神)을 숭배했다. 앗시리아인들은 이 신전을 미화했고, 바벨론인들은 달신숭배를 회복시켰다. 바벨론 최후의 황제 나보니더스의 모친(104세에 사망)은 우르신전의 대사제였으며 후에 나보니더스의 딸이 대사제가 되었다. R. J. Hughes, III, ‘Haran’, ISBE 2:614.

 7. William Dyrness, Themes in Old Testament Theology (Downers Grove, IL; Carlisle, UK: InterVarsity Press, The Paternoster Press, 1977), 58.

 8. 창세기에서 ‘은혜’를 의미하는 ‘헨’(חֵן, Hën)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창 6:8; 18:3; 19:19에 3회 등장하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에 의해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된 요셉에 사용된다. 그 외 사람들 사이에 은혜를 의미하는 말로 창 32:5 (H 6); 33:8, 10, 15; 34:11; 39:4; 47:25, 29; 50:4에 등장한다. 라반은 야곱에게 함께 유하기를 청할 때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이라고 했을 때 헨을 사용했다(창 32:5).

 9. 창세기에서 ‘헤세드’(חֶסֶד, Hesed,)는 ‘인자’(창 19:19; 24:17, 49; 39:21), ‘은혜’(창 20:13; 24:12, 14; 40:14), ‘후대’(창 21:23), ‘은총’(창 32:10 [H 11]), ‘인애’(창 47:29) 등 다양한 말로 개역성경에 번역되었다. 이중에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창 19:19; 24:12, 27; 32:10 (H 11); 39:21에 5회 사용되었다.

 10. 창세기에서 ‘야타브’(יָטַב)는 하나님과 관련해서 창 32:9, 12에 야곱이 에서에게서 보호 받기를 기도할 때 ‘은혜를 베풀다’는 뜻으로 2회 사용되었다. 그 외에 ‘선을 행하다’(창 4:7), ‘안전하다’(창 12:13), ‘후대하다’(창 12:16), ‘좋게 여기다’(창 34:18; 41:37), ‘득의하다’(창 40:14), ‘기뻐하다’(창 45:16)로 개역성경에 등장한다.

 11.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또 다른 용어인 ‘아하브’(אָ֑הַב, ´ähab) ‘사랑하다’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는 사용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사용이 되었다. 부모와 자식(창 22:2; 25:28; 37:3, 4; 44:20), 부부 (창 24:67, 30, 32), 음식(창 25:2, 4, 9, 14), 연애(29:18; 34:3). 그러나 창세기 외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출 20:6; 신 5:10; 7:9; 수 22:5; 23:11; 삿 5:31; 왕상 3:3; 시 31:24; 38: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호 3:1), 이스라엘의 열조(신 4:37; 10:15), 신자(신 7:13; 23:6; 사 43:4; 렘 31:3; 호 11:1; 14:5)를 사랑하시는 것 등등을 나타낸다.

 12. 원어적 의미는 ‘야훼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KJV)인데, ‘ ∙∙∙ 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는 구절은 은혜의 선행 조건이 분별력있는 행위들이 아니라 태도인 것을 말하며, 은혜를 베푸는 주체는 언제나 우월자이다. 또한 우월자의 태도를 ‘헨’(חֵן, Hën)이 나타낼 때 이것은 겸손이나 편애를 함축하고 있다. 참조, H. J. Stoebe, ‘חנן,’ TLOT 1:440-441.

 13. 저스틴 말터, 암브로스, 시릴등의 교부들은 세 사람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생각하지만, 창 19:1이 지적하는 것처럼 둘은 천사였다. Thomas Whitelaw, Genesis, ed. H. D. M. Spence-Jones, The Pulpit Commentary, vol. 1 (New York, Toronto: Funk & Wagnalls Company, 1913), 240.

 14. 창 19:19-20, ‘종이 주께 은혜(חֵן, Hën)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חֶסֶד, Hesed)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 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 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15. D.A. Baer, R. P. Gordon, ‘חסד’, NIDOTTE 2:211.

 16. Ibid., 214. 아브라함의 종이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끊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인자’(חֶסֶד, Hesed)와 긍휼을 제거하기도 하셨고(렘 16:5), 다윗에게서 ‘은총’(חֶסֶד, Hesed)을 빼앗지 않으셨다(삼하 7:15).

 17. Kenneth A. Mathews, Genesis 11:27-50:26, 551.

 18. ‘선을 행하다, 기쁘다’를 뜻하는 ‘야타브’(יָטַב, yä†ab)가 요셉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애굽의 바로와 궁정 관리들은 칠년씩 교대로 오는 풍년과 흉년의 대비책으로 요셉이 내놓은 제안들을 좋게 여겼고(창 41:37), 요셉의 형제 상봉에 대해서 기뻐하였다(창 45:16).

 19. Keil and Delitzsch, 1:14. ‘아온(악, 죄악), 하타(죄), 페샤(허물) 등을 목적어로 할 때 나사는 「(죄악, 죄, 허물)을 나르다」를 의미할 수 있다. 곧 그것들을 날라가고, 가져감으로 죄와 (형벌을 포함한) 죄의 영향들을 제거하는 것이며, 따라서 용서하다는 뜻을 갖는다.’ John S. Kselman, ‘Forgiveness (Old Testament),’ ABD 2:832. 히브리어로 ‘용서하다’를 뜻하는 동사는 ‘살라’(סָלַח, sälaH’)이며 출 34:9에 최초로 등장한다.

 20.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소돔을 위해 간청한 사실을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다(창 18:27, 30, 31, 32).

 21. 대홍수 전에는 보통 평균수명이 900세쯤이었다(창 5). 홍수 후에는 수명이 신속히 감소 하였다(창 11). 홍수 후에 셈은 600세까지, 에벨은 464세까지,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요셉은 110세까지 야곱은 147세까지,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다.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