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혜(חֵן, Hën)
 대홍수의 심판 때에 노아는 ‘야훼’‘은혜’(חֵן, Hën)를 입었다(창 6:8).12 온 인류가 극도의 부패로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시고, 그를 통해 인류가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멸절되었을 것이다. 온 세상의 부패를 보시는 주님은 그중 한 사람의 의인도 간과하지 않고 구원해 주신다. 노아를 부르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노아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이다. 심판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이 본래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창세기 6:9은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의 개인적인 덕성 때문이 아니라 노아와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밀접한 관계 때문인 것을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말로 표현한다. (117.1)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 하나님을 대접하였다. 동양의 예절로 ‘내가 주께 은혜(חֵן, Hën)를 입었사오면’이라는 말로 정중하게 세 명의 하늘 손님을 접대하였다(창 18:3).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긴 했으나 그중 한 분은 ‘야훼’ 하나님이셨다(히 13:2).13 하나님이 인간의 초청에 응하여 인간과 함께 만찬을 드시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극한 호의를 베푸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야훼’ 하나님을 대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했다. 이삭의 출생에 대한 약속을 받았으며,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간청은 응답을 받았다. (117.2)
 하나님은 두 천사를 소돔에 파견하셔서 의인 롯을 구원하셨다. 롯은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חֵן, Hën)와 ‘변함없는 사랑’(חֶסֶד, Hesed)때문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도피하는 길에 만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성읍 소알로 도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를 요청했다(창 19:19, 20).14 하나님은 그의 주저하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간청을 들어주셨다. 소돔성의 의인들을 위한 아브라함의 간청과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한 롯의 간청이 대조된다. 롯의 단호하지 못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29). (118.1)
 2) 인자와 은총(חֶסֶד, Hesed)
 ‘헤세드’(חֶסֶד, Hesed)는 성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나타낸다. 이것은 구약에 246회가 등장하며, 용례 중 3분의 1 가량은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충성된 자, 그의 백성 이스라엘, 일반적인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성향과 혜택을 베푸시는 행동들을 묘사한다.’15 창세기에서 최초로 사용된 곳은 창세기 19:19에 롯이 소돔에서 구원 받을 때이며, 이야기 중에서 하나님의 ‘헤세드’가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배우자를 찾아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성에 갔을 때 우물가에서 드린 기도에서이다. 그의 기도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헤세드’(חֶסֶד, Hesed)를 베푸셔서 신붓감을 순적하게 만나도록 하셨다(창 24:12, 14, 27).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사랑은 부조의 시대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그 자녀들에게도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길을 발견할 것이다.’16 (118.2)
 3) 선을 베품(יָטַב, yä†aB)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하나님의 은총(‘헤세드’)을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고백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 32:9 [H 10]). 하나님은 파렴치하게도 속임수로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을 버리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사랑하셨다.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는 문자적으로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 보다도 나는 작습니다’는 뜻이다. 자신의 작음을 고백하는 히브리어 ‘카톤’(קָטןֹ, qä†ön)은 ‘작다, 무가치하다’는 뜻이며, 그는 아우로서의 자신의 부당한 행동을 하나님께 통회하는 심정으로 고백하였다.17 하나님은 부족한 인간 야곱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큰 떼를 이루게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셨다. 에서와의 관계 때문에 야곱은 심히 큰 부담을 가졌지만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יָטַב, yä†aB)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יָטַב, yä†aB )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해서 그는 전진하였다(창 32:9, 12). 하나님은 야곱을 에서의 손에서 보호하심으로 그에게 큰 선(善)을 베푸셨을 뿐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태어나게 하심으로 온 세상에 미칠 큰 선(善)을 베푸신 것이다. (119.1)
 하나님은 요셉에게 ‘인자’(חֶסֶד, Hesed)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חֵן, Hën)를 받게 하셨다’(창 39:21). 하나님은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살아서 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인생의 한 밤중에 처한 요셉에게 은총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기민한 지혜와 남에 대한 세심한 배려의 정신을 주셔서 사람들에게 간수장 뿐 아니라 바로와 그 신복들에게 호감을 얻게 하셨다.18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애굽을 포함한 열국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이스라엘의 부조들로 생명을 건지도록 섭리하셨다. 하나님의 자비는 개인을 넘어 복의 근원으로 이웃과 모든 민족에게로 퍼진다. (120.1)
 3. 용서하심
 1) 원복음과 가죽옷
 창세기 3:15의 원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창세기 2:17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을 경우에 분명히 임하게 될 죽음의 위협을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도록 하셨다. 인류의 시조들의 타락을 심판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신다는 말을 명백하게 하지 않았지만, 이미 선고 속에 용서가 함축되어 있으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죄인 대신 고난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셨다(창 3:21). (120.2)
 2) 죄의 고통을 짊어지신 하나님
 대홍수 후에 노아가 드렸던 제사를 흠향하신 하나님은 대홍수의 원인이 되었던 인류의 사악한 마음 상태가 전과 다름없이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창 8:20. 비교, 창 6:5). 하나님이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을 감수하시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죄를 짊어지실 것을 예견하게 한다. (121.1)
 용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한 기사 중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창세기 18:24)와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창세기 18:26)에서 ‘용서하다’는 용어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창세기에서는 이 표현이 이곳과 요셉의 형들이 야곱을 장사 지낸 후에 요셉에게 용서를 빌 때에 사용된다(창 18:24, 26; 50:17).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나사’(נָשָׂא, näSä´) 인데 그 기본적 의미는 ‘들어 올리다, 나르다, 취하다’이다. 죄악을 가져가서 짊어지는 것이 용서인 것이다.1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121.2)
 의인 오십 명에서 열 명이 되기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소돔을 위해서, 소돔 속의 롯을 생각하며 간청했다. 의인을 감축하는 매 단계마다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다.20 하나님이 의인의 수효를 반복해서 감축하신 것을 통해 하나님의 본 마음은 처벌이 아니라 용서와 회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돔은 의인의 수효가 부족해서 뿐 아니라 의인이 더 이상 그 속에 살 수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에 멸망하였다. (122.1)
 3) 관계의 회복
 창세기는 용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용서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을 기록한다. 예를 들자면 야곱과 에서,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절뚝거리며 자기를 향해서 걸어오는 야곱을 향해 에서가 달려가 부둥켜 안고 울 때에 이미 용서는 성취되었다(창 32:31; 33:4). 요셉이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물리고 형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울 때에 이미 형들을 용서했다(창 45:1, 2). 그 후에 발생한 상대방을 향한 호의적 행위들은 완전한 용서가 성취되었음을 증거한다. 용서 속에서 서로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다. (122.2)
 4) 부조들은 용서 받은 이들임
 이러한 기술 방식을 하나님과 부조들의 이야기에 적용하면 부조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용서 받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을 때마다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애굽 왕 바로를, 그랄 왕 아비멜렉을 책망하시고, 아브라함의 일을 해결하셨다(창 12:17; 20:3). 범죄하여 위기에 처한 상황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은 틀림없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죄를 반복한 이삭도,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여 축복을 가로 챈 야곱도 용서 받은 자이다. 저들이 쌓은 제단들의 역사가 저들의 회개의 여정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연약한 자들을 이스라엘의 부조로 세우시고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격려하시며 구원사를 이끌어 가신 것을 볼 수 있다.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모습은 출애굽과 함께 저들이 지시 받아 건축한 성소 속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