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10 장 성소와 2300주야(단 9장)
 ① 바벨론에 포로된 백성들은 많았지만, 오직 소수의 남은 무리(remnant)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 차례의 석방령에 응하여 가나안으로 돌아갔고, 성전 중건에 참여했다(사 10:22, 2:64, 8:15- ).

 ② 중세기 로마 교황권의 억압이 깨어진 1798년 이후,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1844년을 전후하여 마침내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나타났다(계 12:17, 14:12). (193.149)
 차. 안식일의 회복
 ①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포로 되어 가게 한 죄악인 우상 숭배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안식일을 범함으로 이른 저주를 기억하고(겔 20:12-14, 18-21, 22:26), 석방 후에는 철저한 안식일 준수를 위한 개혁이 추진되었다(느 10:31, 13:15-22). 이것은 이미 그 이전에 예언된 회복 운동이었다(사 58:12-14).

 ② 1844년 이후 공개된 하늘 성소의 빛에 따라 (계 11:19), 하늘 지성소의 언약궤가 공개되고, 그 가운데 변함 없이 기록된 제칠일 안식일 준수 운동이 일어나, 마침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온전히 가지고 지키는 남은 무리인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형성을 보게 되었다. (193.150)
 5. 성소와 선민(選民)의 운명과 도전
 「(. .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각시대의 대쟁투, 상권, 45.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단 9:25, 26). (193.151)
 가. 예루살렘의 멸망 — 제국 로마
 위의 성경절에서 (괄호)속의 구절은, 이미 연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그 다음에 일어날 26절 중반 이하의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를 가리키는 연대적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 즉 기원전 457년에 예루살렘 회복령이 내린 후, 7주와 62주, 즉 69주(483년)가 경과하고 난, 서기 27년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심으로써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의 직분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삼년 반 후인 서기 31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는 끊어져 없어지셨다(26절 상반). (193.152)
 예수께서 돌아가신 31년 이후, 이번에는 “그 성읍” (the city), 즉 기원전 457년에 내린 중건령으로 재건된 25절의 그 예루살렘과, “그 성소”(the sanctuary) 즉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기 위하여 “한 왕의 그 백성”(the people of a prince)이 홍수처럼 쳐들어오는데, “오게 되어 있는” (The prince who is to come), 그 왕이 거느리는 백성이라는 것이다. (193.153)
 8장 10-13절에서, 올 것이 예언된 왕은 누구며, 그의 백성은 누구인가, 이미 연구한대로 그것은 이탤리 반도에서 일어나, “남편”인 이집트와, “동편”인 헬라와, 소아시아, 그리고 “영화로운 땅”인 팔레스틴을 향하여 뻗어내려온 8장의 작은 뿔인 로마제국인 것이다(8:9). (193.154)
 9장 26절8장 10-13절에 예언된 사건들을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93.155)
 그런데 26절의 문맥에서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끊어져 없어짐,” 곧 십자가에 돌아가심이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실상 26절의 예언은, 예수께서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의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지상 생애의 마지막 주일 동안, 예수께서는 자주자주 자신의 죽으심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인과(因果)관계로 연관지어 말씀하셨다(마 21:37-41, 23:37, 38, 눅 21:20-24, 23:28-31).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그 거민의 장래의 운명을 내다보시며 탄식하시고(마 23:37, 38), 흐느껴 우시기까지 했다. (193.156)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1-45). (193.157)
 이 곳의 “권고받는 날”은 말할 것도 없이 유대 민족을 위해 마지막으로 배당된 70주일 기간을 가리킨 것이며(단 9:24), 바야흐로 그 기간이 유대인들의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 끝나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이 존재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시요 메시야이신 자신의 구주를 끝까지 거절한 개인의 영원한 운명이, 곧 배반자 유다의 마지막이요, 그토록 많은 은혜를 누려온 택하신 민족이면서도 자신들의 메시야를 거절한 민족과 나라의 영원한 운명이 어떠함을 드러낸 것이, 예루살렘의 파멸에서 드러난 것이다. 동시에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끝까지 거절한 채 영원한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대비(對比)시켜 연속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마 24장, 눅 21장, 막 13장). 각시대의 대쟁투 상권, 45. (193.158)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은 메시야를 거절한 유대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저버리게 될 때의 형편을 드러낸 것임이 9장 26절의 교훈이다(눅 2:34, 말 3:1-6, 4:1-3). (193.159)
 「예수께서는 듣고 있는 제자들에게 배역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 특별히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까닭으로 그들에게 임하게 될 보응의 징벌이 있을 것을 선언하셨다.․․․그 두려운 시간은 갑자기, 그리고 신속히 이를 것이었다. 그리하여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하셨다. 곧 로마인들의 우상 숭배를 표상하는 깃발(軍旗)들이 예루살렘 성벽 몇 마일 밖에까지 뻗어와서 거룩한 땅에 세워지는 것을 볼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도망하여 안전을 찾아야 했다」(각시대의 대쟁투 상권, 45). (193.160)
 그러면, 언제 예루살렘과 성전이, “한 왕(로마 황제)의 백성(로마 군사)”에 의하여, “홍수에 엄몰”함 같이 이 곳의 홍수는 쳐들어오는 군사(단 11:10, 22, 26, 사 8:7, 8), 혹은 도시나 국가를 파멸시키는 심판을 상징함(사 32:6, 나 1:8). 깡그리 파멸당하는 “종말”을 맞았는가. 유대인에게 배당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 즉 70주일(490년)은 서기 34년에 끝났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은 예언된 예루살렘의 파멸을 40년 가까이 지연시켰다. 각시대의 대쟁투 상권, 48. 눅 13:7 그러나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족쇄(足鎖)를 불려 만들었으며 보응의 잔을 채웠다. GC, 35. 」 서기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폭동을 일으키자, 시리아의 총독 세스티어스(Cestius Gallus)는 3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쌌으며, 북쪽 성벽까지 침입해 들어왔으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SDABC, vol. 5, 74. 철수시에 유대 군사들의 추격에 의해 5,500명의 병력까지 상실함. 이 때야말로, 주님의 경고를 기억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망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경고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펠라(Pella)와 페래아(Peraea)로 피하여 안전했다고 한다. Eccleciastical History, iii. 5. 3. 그러나, 곧 이어 67년부터는 로마의 명장 베스파시안(Vespasian)이 진주(進駐)하여 진압에 나섬으로써, 유다 땅은 살벌한 전쟁터로 화하였으며 3년 간이나 계속된 살륙의 전쟁을 피하여 사람들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예루살렘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193.161)
 서기 69년, 네로 황제를 이어 베스파시안 장군이 로마의 황제가 되자, 이번에는 그의 아들인 타이터스(Titus) 장군이 아버지를 이어 유대인의 반란 진압에 나섰다. 마침내, 서기 70년 4월, 8만명의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최후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예루살렘성은 전쟁 피난민과 때 마침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유대인으로 수백만을 헤아리는 초만원을 이룬 때였다. 5개월 이상 계속된 포위 기간 동안에 기근과 전염병, 자중지란(自中之亂)에 의한 살륙으로 빚어진 성안의 참상은 필설(筆舌)로 묘사할 수 없음이 당시 현장에서 이 사실을 목격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해 두렵도록 상세히 기록되었다. Josephus, The Wars of the Jews, Book V. ch. II- Book VI. ch. X. (193.162)
 기록에 의하면 70년 5월 초부터, 7월 말까지에만 10만명의 유대인이 성 안에서 죽었으며, 예루살렘이 함락된 9월까지 11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포로를 분류하는 며칠 동안 1만 천명이 굶어 죽었으며, 9만 7천명이 산 몸으로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SDABD, 561. 화려 장엄한 예루살렘 성전만은 보존하기를 바랐던 타이터스의 소원과 노력도 아랑곳 없이, 복수심에 불타는 분노한 로마병정들에 의해, 8월 30일, 성전은 불바다가 되었고, 마침내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물론, 이에 관련된 다니엘서의 여러 예언을(8:11-13, 9:26, 27, 11:31)졸지에 성취시켰다. (193.163)
 나. 끝까지 계속될 싸움—교황로마
 「······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6 하단, 27 하단) (193.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