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언제 예루살렘과 성전이,
“한 왕(로마 황제)의 백성(로마 군사)”에 의하여,
“홍수에 엄몰”함 같이
이 곳의 홍수는 쳐들어오는 군사(단 11:10, 22, 26, 사 8:7, 8), 혹은 도시나 국가를 파멸시키는 심판을 상징함(사 32:6, 나 1:8). 깡그리 파멸당하는
“종말”을 맞았는가. 유대인에게 배당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 즉 70주일(490년)은 서기 34년에 끝났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은 예언된 예루살렘의 파멸을 40년 가까이 지연시켰다.
각시대의 대쟁투 상권, 48. 눅 13:7 그러나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족쇄(足鎖)를 불려 만들었으며 보응의 잔을 채웠다.
GC, 35. 」 서기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폭동을 일으키자, 시리아의 총독 세스티어스(Cestius Gallus)는 3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쌌으며, 북쪽 성벽까지 침입해 들어왔으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SDABC, vol. 5, 74. 철수시에 유대 군사들의 추격에 의해 5,500명의 병력까지 상실함. 이 때야말로, 주님의 경고를 기억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망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경고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펠라(Pella)와 페래아(Peraea)로 피하여 안전했다고 한다. Eccleciastical History, iii. 5. 3. 그러나, 곧 이어 67년부터는 로마의 명장 베스파시안(Vespasian)이 진주(進駐)하여 진압에 나섬으로써, 유다 땅은 살벌한 전쟁터로 화하였으며 3년 간이나 계속된 살륙의 전쟁을 피하여 사람들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예루살렘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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