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중건 활동이 기원전 409년에 완성된 것으로 할 수 있을까? 확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료는 결여되어 있지만, 몇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은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중건사업에 배정된 사람들이지만, 에스라는 주로 영적인 면에, 느헤미야는 물질적인 면에 관심을 갖도록 배정되었다. 둘째로, 느헤미야가 기원전 433년(아닥사스다왕 32년.
느 13:6)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벨론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얼마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아마도 그의 여생을 거기에 머물렀다. 예루살렘에 다시 머물게 된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에스라처럼, 도덕적 영적 재건을 위해 더욱 더 관심을 가졌음과(
느 13:7-31) 동시에, 물질적인 재건도 계속했을 것이다. 셋째로, 그의 일이 마쳐진 해에 관해서, 쁘리도(Prideaux)는 느헤미야의 마지막 활동이 페르샤왕 다리우스(Darius Nothus. 423-404 BC) 제 15년에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이 해가 바로 예언된 해인 기원전 409/408년인 것이다. 그러므로 49년 기간이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유다의 수도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구별된 기간일 수가 있다.」
Leon Wood, A Commentary on Daniel, 254, citing Barnes BD, Ⅱ, 175. Antiquities, Ⅺ. 5, 8.에도 느헤미야가 고령으로 죽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19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