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2 장 “포도 음료”와 관련된 단어 연구 2. 야인과 오이노스의 성경상 용례
 그렇지만, 성경은 성경에서 사용한 단어들을 정의한 사전이 아니다. 성경 단어들의 의미는 종종 그 문맥으로부터, 또 다른 귀절들에서 관련된 언어들(동족어)에서 사용된 용례로부터 추출되어야만 한다. 야인의 경우도 이와 같으니, 본 연구는 문맥이 명확하게 이 단어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칭한다고 가리키는 귀절들이 있음을 입증하여 보여 줄 것이다. (46.1)
 이사야 16:10야인이란 단어가 가장 명확하게 발효 되지 않은 포도즙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절 중 하나이다. 이 귀절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모압의 자만심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여러 경우에서 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포도원으로부터, 포도즙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거두는 것으로 집행되었다.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야인]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사 16:10). (46.2)
 이 귀절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중요한 점은 틀을 밟는 사람들이 밟고 있는 것을 야인이라고 부른 점이다. 이것은 분명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니, 그 이유는 발효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포도즙을 그냥 내버려두면 양질의 포도주가 된다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통제받지 않는 환경 속에 발효되게 놓아둔 짠 포도즙은 초(醉)가 될 뿐이다. (46.3)
 케네스 L. 젠트리는 “히브리 시(詩)에서 매우 흔한 시적인 영상(映像)적 표현은 이 귀절에 야인이 알코올 성분의 것이 되게 허용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해석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다.37 시(詩)에서는 때때로 최종 결과(포도주)는 결과를 야기시킨 물질 덕분이라는 것이 그의 논거이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취약점이 있다. 첫째로, 이사야 61:10에 나오는 시적인 영상 표현이 추수의 기쁨과 포도를 밟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틀에서 흘러 나오는 야인을 그것이 되어버린 것, 즉 발효된 포도주의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추수기, 즉 “틀에 있는 포도 음료”의 관점에서 보았다. (46.4)
 두번째로, 젠트리는 발효되기 전 상태의 짜낸 포도즙을 유대인들은 전기한 것과 같이 “틀로부터의 포도 음료(야인 미-가트[Yayin Mi-gat])”라고 불렀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젠트리와 일단의 적당론자들은 짜낸 포도즙이 야인으로 칭하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기에 틀로부터 흘러나오는 야인이 포도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야 61:10을 정상적으로 해석하면 야인이 최종 소산, 즉 발효된 포도주를 시적으로 언급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맥은 신선한 포도즙이 분명함을 가리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48:33이 그 평행절이다. (47.1)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칭하고자 야인을 사용한 명확한 실례는 예레미야 40:10, 12에 나온다. 바벨론인 총독인 그다랴는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야인과 여름 실과와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축하고 너희는 얻은 성읍들에 거하라.” 이 명령은 이웃 국가로 도망을 갔던 유대인들로 유다 땅으로 돌아오도록 북돋았고 “그 모든 유다인이 ∙∙∙ 야인과 여름 실과를 심히 많이 모으도록 하였다”(렘 40:12). 이 두 절(節)의 경우 야인이란 용어는 있는 그대로의 포도나무 실과를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 포도주를 들판에서 모을 수 없다. 이러한 사용 용례는 야인이 오직 발효된 포도주를 언급한다는 추정을 무효화시켜 버린다. (47.2)
 느헤미야 13:15야인을 새로 짠 포도즙을 칭하는 데 사용한 또 다른 예이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 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야인과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에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여기서 야인은 짠 포도즙일 개연성이 아주 높다. 왜냐하면, 그것은 안식일에 포도주 틀을 밟는 것과 함께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신선한 즙이 신선한 포도들과 그외 실과들과 함께 팔렸다. (47.3)
 애가에는 유다가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의 점령으로 야기된 대 기근 당시에 당한 신체적인 고통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은 아사 직전의 재난 가운데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부르짖었다.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 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야인이 어디 있느뇨” 하도다. (48.1)
 이 귀절에서 젖먹는 아이들은 통상적인 먹을 것과 마실 것, 즉 빵과 야인을 달라고 그 어머니들에게 울부짖는다. 점령당하고 기근이 몰아쳤을 때에 어린 아이들이 어머니들에게 평상시 마시던 취하게 하는 포도주를 달라고 하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로버트 티치아우트는 “그들이 그 어미의 품에서 죽어가며 원하였던 것은 매우 영양가가 있고, 그들의 정상적인 음식물의 일부분이었던 포도즙(야인)이었다”고 말한다.38 (48.2)
 창세기 49:11에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야인을 풍성하게 거둔다는 영상(映像)적 표현을 통하여 예언되어 있다. “포도주[야인]로 옷을 빨고 포도의 붉은 즙으로 겉옷까지 빨리로다”(공동번역). 이 영상적 표현이 나타내어진 바는 너무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기에 포도를 밟는 사람의 옷들이 넘치는 즙에 씻기어졌음을 나타낸다. 다음과 같이 배열하면 더욱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48.3)
(개역성경) (공동번역)
그 옷을 야인에 빨며 야인으로 옷을 빨고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포도의 붉은 즙으로 겉옷까지 빨리로다
(48.4)
 이 귀절은 위의 두 번역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두 절(節)이 다른 두 단어를 사용하여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는 히브리적 평행귀이다. 이 경우, 첫번째 절의 “옷”은 두번째 절의 “겉옷”에 상응하고, 야인“포도의 붉은 즙”에 상응한다. “붉은 즙”이란 말은 “포도즙”의 시적 칭호이고, 술과의 평행귀 사용 용례는 성경 시대 당시에 발효되기 전의 포도즙이 야인으로 칭하여졌음을 말하여준다. (48.5)
 아가
 야인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언급하는데 사용된 또 다른 실례들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쓴 사랑 시에 나온다. 순수한 사랑의 기쁨을 몇개의 절에서 야인에 비교하였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야인보다 나음이로구나 ∙∙∙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니 네 사랑이 야인에서 지남이라 ∙∙∙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야인에 지나고”(아 1:2, 4; 4:10). (49.1)
 이 절들에서 야인이 발효된, 취하게 하는 포도주를 언급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발효된 포도주를 “거만케 하는 것”“독사같이 쏘는 것”으로서 정죄하기 때문이다(잠 20:1; 23:32). 솔로몬이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단 포도즙에 비교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이렇게 비교한 것은 가장 적절하다. 왜냐하면, “포도즙이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목적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명백하게 주어진 것과 같이(시 104:15) 남자와 여자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39 (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