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6 장 재림소망의 임박성과 거리감
 나는 로마역 대합실에서 오후 2시 30분 플로렌스행 특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기다리던 기차의 희미한 형체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연신 초조하게 시계와 철로 사이를 번갈아가며 보았으나 열차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30분? 한 시간? 왜 기차가 늦을까? 기계 고장, 전기 고장, 아니면 이 태리에서 흔히 있는 갑작스런 파업 때문일까? (86.1)
 거의 2천년 동안 많은 열렬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이 분명히 지연되고 있는 이 “지연”(delay)에 대해 각기 다른 형태로 고민해 왔다. 그들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기도해 왔다. 현세의 고통과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 요한계시록에 있는 순교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계 6:10)라며 부르짖어 왔다. (86.2)
 거의 20세기가 흘러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신약 성경의 선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21세기가 다가오는데 과연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86.3)
 본 장의 목적. 본 장은 재림의 시간적 요소에 관한 전반적인 성서적 교훈들을 점검하므로 이런 중요한 몇 가지 질문에 해답하고자 한다. 재림의 때에 관한 올바른 이해는 잘못 가르쳐진 소망과 기대감으로부터 신자들을 구한다. (86.4)
 본 장의 특별한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강림의 소망에 관한 구약과 신약의 임박성과 거리감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임박성과 거리감 사이의 긴장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해결책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86.5)
 제  1 부 재림의 임박성과 거리감
 1. 구약의 재림의 임박성과 거리감
 신약에는 재림에 대한 기대가 임박성과 거리감이란 두 다른 상반된 관점에서 표현되어 있다. 이 두 관점 사이에 있는 긴장은 재림에 관한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켰고 또 사상을 달리하는 상이한 학파들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먼저 이런 긴장이 구약에서는 일찌기 어떻게 제시되어 있는지를 알아 보자. (86.6)
 아모스. 초기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아모스는 주의 날을 다메섹, 가자, 에돔, 모압, 유다 그리고 이스라엘 위에 내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맥락 속에서 선언하고 있다(암 1:3~2:6). 예루살렘은 불로 멸망당할 것이며(암 2:5),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애굽에 의해 파멸될 것이다(암 3:9~11). 아모스는 이런 절박한 하나님의 임재 너머에 그가 세계적인 심판의 날(암 7:4, 8:8, 9, 9:5)과 그리고 구원과 회복의 날(암 9:13~15)로 묘사하는 더 먼(종말론적인) 여호와의 날을 보고 있다. (86.7)
 스바냐. 여호와의 날의 가까움과 거리감 사이에 똑같은 긴장이 스바냐의 기별 가운데서도 발견된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습 1:14)1라고 선언한다. 이 임박한 하나님의 임재는 유다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이름 없는 원수들의 손에 멸망당하는 것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습 2:1~3:7). (87.1)
 이러한 절박한 역사적 심판의 맥락에서 스바냐는 백성들이 더 먼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도록 호소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습 3:8). 이 최후의 심판의 목적은 심판 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과 유대인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습 3:9~20). (87.2)
 이사야.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날의 가까움을 메대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하여 선언하고 있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사 13:6).2 이 절박한 역사적 멸망의 맥락에서 이사야는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두 워지고(사 13:10),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을”(사 13:11) 심판의 날을 묘사하고 있다. (87.3)
 이 여호와의 마지막 날이 멀다는 의미는 때때로 이사야와 다른 선지자들에 의해 “말일”, “그날”, “그 후에”와 같은 명확치 않은 구절로 표현됐다(사 2:2, 20; 호 3:5; 겔 38:16; 렘 30:8; 욜 2:28, 29 참조). (87.4)
 제 2 부 신약의 재림의 임박성과 거리감
 1. 임박성
 재림의 소망에 대한 임박한 기대감과 미래의 실현 사이에 있는 긴장은 신약에서 더욱 분명하게 발견된다. 앞 장에서 연구한 “임박성의 구절들” 외에도 많은 다른 구절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몇 개의 중요한 예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롬 13:11, 12; 고전 7:29; 빌 4:5 참조)3라고 편지한다. (87.5)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 또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 “길이 참고” 또 불평하지 말기를 권하고 있다(약 5:8, 9). 같은 모양으로 베드로도 신자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기를” 호소한다(벧전 4:7; 히 10:25 참조). 성경의 마지막 책도 “반드시 속히 될 일”(계 1:1)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4는 확증으로 끝을 맺는다. (87.6)
 2. 거리감
 말씀들. 이러한 “임박성의 구절들”과 함께 재림을 더 먼 미래로 잡는 다른 구절들이 있다. 거리감이 있다는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재림 전 징조에 의해 암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제야” 라는 말과 아울러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재림이 있기 전에 상당한 시간이 경과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87.7)
 거리감은 또한 예언된 많은 재림 전의 형편 곧 전쟁의 증가, 자연의 재난, 그리고 악의 증가 등이 성취되는 데 요구되는 시간에 의해 암시되어 있다. 거리감은 이런 조건들이 성취된 후에도 “끝은 아직 아니니”(막 13:7; 마 24:6)라는 진술에 의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