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renaeus,
Adversus haereses 5, 2, 8, 4.
2) C. S. Mosna,
Storia della domenica, 95.
3) W. Rordorf는 Magnesians 9, 1과 관련해
“Ignatius의 본 구절의 진정한 중요성은 ∙∙∙ 많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설득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당대의 증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W. Rordorf,
Sunday, 140.
4) Ignatius의 편지들에 대한 번역은 E. J. Goodspeed의
The Apostolic Fathers (1950)에 기초하고 있으며,
Magnesian 9, 1만 본 연구에서 따로 번역한 것이다.
5) 선지자들이 주창자이자 본보기가 되었던 구약 속에 영적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의 개념은 우리에게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구약에 대한 Ignatius의 깊은 경의를 보여준다. F. A. Regan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Ignatius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길을 예비하는 일에 있어 선지자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기독교 고서의 저자들의 지배적 정신을 입증한다. 이러한 정신은 영감을 받아 전한 메시지와 구약의 성스러운 특성들에 대한 그들의 깊은 경외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Dies Dominica, 26).
6) 참고, Fritz Guy,
“The Lord’s Day in the Letter of Ignatius to the Magnesians,” AUSS 2 (1964):1-17. Richard B. Lewish,
“Ignatius and the Lord’s Day,” AUSS 6 (1968):46-59. Wilfrid Scott,
“A Not on the Word KYPIAKH in Rev. 1:10,” NTS 12 (1965):72-73. Kenneth A. Strand,
“An other Look at ‘Lord’s Day’ in the Early Churdh and in Rev. 1:10,” NTS 13 (1965):174-181. C. W. Dugmore,
“Lord’s Day and Easter,” Neotestamentica et Patristica in honorem sexagenarii O. Cullmann, 1962, 272-281. Robert, A. Kraft,
“Some Notes on Sabbath Observance in Early Christianity,” AUSS 3 (1965):27-28.
7) Fritz Guy, 16.
8) Kenneth A. Strand,
Three Essays on Early Church History, 1967, 45.
9) R. B. Lewis, 50. Kenneth A. Strand도 비슷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차이는 날들(days) 사이에서 생기는 차이가 아닌 삶의 방식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즉, 유대인들의 삶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징화된 삶의 새로움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Kenneth A. Strand, 45. Robert A. Kraft도 유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 본문에서 하나의 단순한(!) 안식일/일요일 논쟁을 발견하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정확히 말해 이는 ‘은혜’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유대화 되는 것)과 부활의 생명의 힘 안에서 살아가는 것, 이 두 가지의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대조일 뿐이다.” Robert, A. Kraft, 27-28.
10) 이교도와 기독교 저자들은 유대인들의 안식일 준수를 특징짓는 축제와 방탕함을 끊임없이 비난했다. Plutarch(약 A.D. 40~120년)는 유대인의
“안식일 준수-σαββατισμούς”를 당시의 사악한 미신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다(
De superstitione 3). 그는 특히 그들이 한 자리에 내내 않아 마시며(
Questiones convivales 4, 6, 2) 안식일을 보내는 것을 질책한다(
De Superstitione 8). 디오그네투스 서한(
Epistle to Diognetus)의 저자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경외하는 것과 같은 미신”을 비난한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을 금하셨다”는 유대인들의 가르침을
“불경스러운”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Epistle to Diognetus, ch. 4;
ANF I, 26. 참고, Justin,
Dialogue 29, 3;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eis 6, 16, 141, 7;
Syriac Didascalia 26; Epiphanius,
Adversus haereses 66, 23, 7; Chrysostom,
De Christi divinitate 4). 이와 같은 지속적인 비난을 감안할 때, Ignatius의 검소한
“안식일 지키기”는 이교도들과(참고, Tertullian,
Ad Nationes 1, 13) 그리스도인들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을 광신적이고 미신적인 유대인들의 안식일 준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1) Pseudo-Ignatius,
Epistle to the Magnesians 9, ANF I, 62–63.
12) A. P. Hayman, ed., and trans.,
The Disputation of Sergius the Stylite Against a Jew,
CSCO 339, 75. 당시의 시리아 그리스인들, 예를 들어,
“기름과 무교병을 회당에 준”(20:12) 이들이 채택한 근거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Sergius는 그것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라, 기독교가 좋은 것이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침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보라, 유대교 또한 그렇다면 나는 적당히 유대교와 어울리며, 안식일을 고수할 것이다”(22, 15, 77). Hayman은 이 본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지적을 한다.
“주상고해자 세르기우스의 반박(Disputation of Sergius the Stylite)이 여기서 A.D. 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시리아의 고질적 상황들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끌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3세기의 야곱파 교회의 정전들에 대한 3세기 Didascalia의 경고로부터, 기독교 권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교의 준수 사항들의 영속적 힘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 시리아 뿐 아니라 동방 전체와, 종종 서방에서도 교회는 끊임없이 유대인들의 방식을 좇는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문제들로 갈등을 겪었고, 이러한 현상은 Marcel Simon이 자신의 종합적인 연구에서 입중해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반유대적 비판들은 추상적 차원의 신학적 사려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 교회의 입지와 관련한 매우 실제적인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Ibid., 75.
13) 초대교회의 안식일 준수와 관련해서는 5장에서 기술한 나사렛파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논의를 참고하라.
Gospel of Thomas 2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세상에서부터 금식하지 않으면, 하늘 왕국을 찾지 못할 것이며; 안식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못하면 아버 지를 보지 못할 것이니라”(Hennecke,
New Testament Apocrypha, 1963, I, 514). 이 복음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경향들은 안식일 준수의 문자적 해석을 지지한다. Justin Martyr은
Dialogue 47에서 이들 가운데 이방인들에게 안식일 준수를 강요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를 구분 짓고 있는데, 이는 곧 안식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Martyrdom of Polycarp 8, 1은 Polycarp의 죽음이
“어느 한 안식일 축제” 때에 일어났다고 기록한다. 그 구절은 문서에 기록된바(12:2, 13:1을 보라)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그들 가운데 일부가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Syriac Didascalia와
Constitutions of the Holy Apostle의 추가적 참고 문헌들에 대한 논의는 이 장의 맨 뒷부분을 참고하라.
14) 라오디게아 공의회의 Canon 29(약 A. D. 360)는 안식일 예배를 비난하고 일요일에 대한 특별한 경외심을 표현하기 위해 그 날에 일하는 것을 금지한 사실을 명백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쉼으로써 유대인을 좇아서는 안 되며, 대신 그 날에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대신 안식을 취하므로 가능한 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주의 날을 지켜야 한다. 유대인의 방식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Mansi II, 569, 570). 그러나 Canon 16에서는 안식일이 가진 특별한 속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성서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일과 관련하여 복음서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Canon 49, 51. Athanasius는 독자들로 하여금 안식일 준수에 빠지지 말기를 권고한다(
Epistolae festales 14, 5 PG 26, 1421). 참고,
De Sabbatis et circumcisione 5,
PG 28, 139. Ps-Athanasius,
Homilia de semente 13,
PG 28, 162. Cyril은 구도자들에게 유대교를 멀리하라고 경고한다(
Catecheses 4, 37,
PG 33, 502). Basil은 다음 글에서 안식일 준수를 옹호하는 이단자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기록하고 있다,
Epistula 264, 4,
PG 32, 980.
Epistula 265, 2,
PG 32, 988. John Chrysostom은 회당을 다니며 유대인들의 축제,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안식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John Chrysostom,
Adversus Judaeos 1,
PG 48, 843, 856, 941. Gregory of Nyssa는 안식일과 일요일을 형제와 같은 날로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안식일을 모욕하는 그대들은 어떤 눈으로 주의 날을 바라보는가? 두 날이 형제와 같은 날이며, 다른 한 날을 해하면 남은 다른 날도 해친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고 있는가?”(Adversus eos qui castigationes aegre ferunt, PG 46, 309). Palladius(약 A.D. 365-425)는
Lausiac History로 알려진 자신의 초기 수도원 생활을 기록한 글에서 안식일과 일요일 두 날을 지켜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한다(7, 5; 14, 3; 20, 2; 25, 4; 48, 2). 다른 참고 자료로는 C. Butler,
“The Lausiac History of Palladius II,” Texts and Studies 6, 1904, 198 이하를 보라.
15) 참고. Johannes Quasten,
Patrology, 1953, I, 90-91. E. Goodspeed,
Apostolic Fathers, 1950, 19. William H. Shea,
“The Sabbath in the Epistle of Barnabas,” AUSS 4(July 1966):150. J. B. Lightfoot,
The Apostolic Fathers, 1890, I, part 1, 349. A. L. Williams,
“The Date of the Epistle of Barnabas,”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34(1933):337-346.
16) J. B. Lightfoot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그 상황 ∙∙∙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불화를 보여주고 있는 그 상황은 그 도시[알렉산드리아]의 인구 상태와 일치하며, 그들 중 다양한 요소들이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었다.” J. B. Lightfoot,
The Apostolic Fathers, 1926, 240.
17)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n Knowledge, 1908, ed. A. Harnack,
“Barnabas”라는 단어를 보라. Constantin von Tischendorf도 다음과 같이 유사한 지적을 한다.
“그것은 유대교로부터 나와 신약의 영향 아래에서 구약의 일부 특성들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Constantin von Tischendorf.
Codex Sinaiticus, ed. 8, 연도 불명, 66.
18) James Parke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르나바스 서신 전체는 참 이스라엘로써의 교회에 대한 해설이다. 유대인들과 약속과 관련된 좋은 것들을 나누거나 그러한 시도조차도 그것은 이단에 속한다. 흔치 않은 심각한 어조와 남다른 호소를 통해 저자는 그와 같은 잘못된 관대함에 대해 청중들에게 주의를 준다.” James Parkes,
The Conflict of the Church and Syngogue, 1934, 84.
19) W. H. Shea는 유대인들의 근본적 신념들에 대한 Barnabas의 체계적 공격에 대한 간결한 요약을 제시하고 있다. W. H. Shea, 154-155.
20) J. B. Lightfood, 239.
21) W. H. Shea, 151.
22) L. Lebreton and J. Zeiller,
The History of the Primitve Church, 1949, I, 442. 동일 저자는 유대교의 위험성에 맞선 Barnabas의 격렬한 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은 타당한 설 명을 제시한다.
“우리는 결론으로 다음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의 당시 거대한 영향력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를 살펴봄으로써 유대인들의 위험성과 그에 대한 격한 반응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큰 영향력은 기독교 전파 이전에 Philo의 저작과 문헌 속에서 발견된다. 기독교 시대의 초기 몇 세기에도 그 영향력을 지속되었고 교회를 위협했다. 특히 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두드러졌으며 그들의 유대교식의 추세와 더불어 외경 복음서들이 읽혀졌다.” Ibid., 443.
23) E. Goodspeed, 40-41.
24) J. Lebreton, 441. 저자는
“Barnabas는 율법을 또한 우화화했던 수많은 유대인 번역학자들의 모본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고 설명한다. ibid. 참고, Philo,
De migratione Abrahami 89.
25) Jerome,
In Ecclesiastem II, 2, PL 23, 1157.
26) C. S. Mosna는 Barnabas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논증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예배를 정당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적절하게 언급하고 있다. C. S. Mosna,
Storia della domenica, 26.
27) Tertulian은 그를
“철학자이자 순교자”로 명명한다(
Adversus Valentinianus 5). I Apology의 첫 장에서 Justin은 자신을
“유스티노스(Justin), 프리스쿠스(Priscus)의 아들이자 바키우스(Bacchius)와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플라비아 네아폴리스 도시의 후손”으로 소개한다; 참고, Eusebius,
HE 4, 11, 8.
28) F. A. Regan,
Dies Dominica, 26.
29) Eusebius,
HE 4, 12, 1:
“황제 Titus Aelius Adrian Antoninus Pius Caesar Augustus에게 ∙∙∙ 나 Priscus의 아들, Justin이 ∙∙∙ 이 탄원을 바칩니다.” Johannes Quasten은 두 개의 Apologies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두 문서는 모두 황제 Antoninus Pius에게 보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150년 전 전쟁의 신 Quirinus 아래서 태어났다’(Apology I, 46)는 그의 기록을 고려할 때, 이 글들이 집필된 시기는 148년과 161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장소는 로마였을 것이다.” Johannes Quasten 19. Dialogue에 관해 Quasten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Dialogue 20장에 첫 번째 Apology의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Apologies 이후에 쓰인 것이 분명하다” ibid., 202. Eusebius는 그 대화가 Dialogue의 1장과 9장에서 언급되고 있는바 대략 바르코케바 반란의 시기에 에베소에서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Dialogue가 약 20년 전에 일어난 정확한 논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 Justin은 실제 논쟁으로는 Dialogue의 틀을 만드는 측면에서만 활용하고, 글을 쓸 때에는 로마의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글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타당해 보인다. 그가 그 일이 있고 20년 후에 에베소가 아닌 로마에서 글을 썼다는 것은, Justin이 로마 내의 유대인들의 비난으로부터 기독교를 변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30) James Parkes, 101. 참고,
Dialogue 19 and 22.
31) Justin,
Dialogue 18, 2, Falls,
Justin’s Writings, 175.
32) W. Rordorf,
Sabbat, 37.
33)
Dialogue 19장에서 Justin은 아담, 아벨, 노아, 롯, 멜기세덱을 특별히 인용하고 있다. 46장에서는 다소 다른 이름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34) J. Daniélou는 Justin의 추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앞선 내용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도 안식일을 금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그분은 유대인들의 악함으로 인해 그것을 제정할 수밖에 없으셨고, 결과적으로 볼 때 그분은 교육적 차원의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킨 후 바로 그것을 없애고자 하자 하셨다.” J. Daniélou,
Bible and Liturgy, 234.
35) Justin,
Dialogue 23, 1, 2, Falls,
Justin’s Writings, 182.
36) Justin,
Dialogue 16, 1과 21, 1.
37) Justin,
Dialogue, 16, 1 and 21, 1.
38) Justin,
Dialogue 23, 3, Falls,
Justin’s Writings, 182.
39) Ibid.
40) Justin,
Dialogue 29, 3.
41) Ibid.
42) Justin,
Dialogue 12, 3, Falls,
Justin’s Writings, 166.
43) Justin,
Dialogue 16, 1 and 21, 1, Falls,
Justin’s Writings, 172, 178. Justin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Dialogue 16)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의도된 표식들을 구분하면서, 더불어 안식일과 할례에 대해 언급한 것은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 출입을 금지했던 Hadrian의 법령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참고,
Dialogue 19, 2-6; 21, 1; 27, 2; 45, 3; 92, 4). 92장에서 Hadrian의 칙령을 언급하는 것은 심지어 더욱 명확해 보인다. Justin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예지력을 통해 그 백성들[즉,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할 만하고, 또한 다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할례와 안식일이 주어졌다고 숨김없이 진술하고 있다. Falls,
Justin’s Writings, 294. 마찬가지로 Pierre Prigent는 Justin에 따르면 안식일과 할례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주어진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쫓겨날 만한 때가 올 것이며 그곳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Pierre Prigent,
Justin, et I Ancien Testament, 1964, 265, 251.
44) 일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유대인들을 향한 Justin의 조심스러운 접근의 일부는 긴장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호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Justin이 다음의 가능성(그러나 그가 시인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거절한), 즉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도록 설득하지 않는 한 모세의 율법을 계속해서 준수해온 개종한 유대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았는가?(
Dialogue 47). 그는 유대인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회개한 자들에게
“면죄”를 약속하지 않았는가?(Ibid., 94). 그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즉, 그리스도인들]는 그들도 그리스도의 자비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Ibid., 96). 한편으로는 Justin이 유대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 개개인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호소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면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신실한 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한 그의 염려가 그들을 적에서 친구로 만들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Dialogue 96장의 바로 다음 문장에서, Justin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분[즉, 그리스도]은 우리의 적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적이 유대인들이라는 것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Justin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진리와 그것을 전하는 자들에 대한 그들의 거부와 역사적 반대의 연속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133장에서 선지자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반항의 태도에 대해 반복 언급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실로 그대의 손은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다. 이는 바로 그대가 그리스도를 죽이고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그대는 우리를 증오하고(권력을 쥐고 있을 때마다) 죽이고자 한다. ∙∙∙ 그대는 그분과 그분께 속한 자들을 끊임없이 저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대와 모든 인류를 위해 기도한다.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도 축복하라고 그분께서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Falls,
Justin’s Writings, 354-355.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Justin의 언급처럼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며 또한 한 무리의 사람들로써
“쓸모없고 반항적이며 믿음이 없는 민족”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Dialogue 130).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 평가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로마 제국과 날선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어떻게 Justin이 안식일과 할례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부과하신 불충의 표식으로 해석하고, 그 결과로 오직 그들만 형벌을 받게 되어
“예루살렘에서 추방을 당해 다시는 그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Dialogue 92).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유대인들의 신념과 규례에 대한 체계적 비난의 문맥 속에서 Justin이 유대인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Celsus의 것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Celsus는 가장 체계적이고 매서운 공격의 차원에서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공공생활에 참여해 제국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고했다. 둘 모두 그들의 공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감정적 호소의 방식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45) Justin,
Dialogue 17, Falls,
Justin’s Writings, 174, 173. 유대인 고위 관계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방을 퍼뜨리는 일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근거들로 입증된 다.(1) 그 비난에 대한 Justin의 3중 반복(
Dialogue 108 and 117),(2) Origen의 유사한 비난(
Contra Celsum 6, 27. Ibid., 4, 32),(3) Eusebius의 증언(그는 이전의 글에서 예루 살렘의 유대인 관계자들이 사방에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새로운 이교가 나타났다고 알리고 다니는 유대인들에게 사도들을 보냈다는 내용, 또한 이 사도들이 서면 위임장을 갖고 있었으며 어디서든 그리스도인들이 틀렸음을 입증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In Isaiam 18, 1
PG 24, 213A),(4) Celsus에 의해 전해지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토론(그는 당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퍼부은 전형적인 비난과 관련해 가장 완벽한 목록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있어서 유대인들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W. H. Frend,
Martyrdom and Persecution in the Early Church, 1965, 178-204.
46) Justin, Dialogue 16 and 96, Falls,
Justin’s Writings, 172, 299. Justine은 매일 회당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저주가 표명했다고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그러한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Epiphanius와 Jerom은 그들 때에도 그와 같은 관행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piphanius,
Adversus haereses 1, 9. Jerom,
In Isaiam 52, 2.
47) Justin, Dialogue 96, Falls,
Justin’s Writings, 299. Justin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인 개종자들의 증오심은 민족적 유대인들과 비교해 그 배나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충 분히 주목할 만한 견해다. 그는 기록하기를
“개종자들은 ∙∙∙ 그대들 [즉, 유대인들] 만큼이나 그분의 이름을 모독한다. 또한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대들의 모본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우리들을 괴롭히고 죽이려 안간 힘을 쓴다.” Justin,
Dialogue 122, Falls,
Justin’s Wiritings, 337.
48) Justin,
Dialogue 96.
49) F. A. Regan,
Dies Dominica, 26. 참고.
Dialogue 19, 2-4; 21, 1; 27, 2; 45, 3; 92, 4.
50) Justin,
I Apology 67, 3-7, Falls,
Justin’s Writings, 106-107.
51) Justin,
Dialogue 121, Falls,
Justin’s Writings, 335. 참고,
Dialogue 64 and 128.
52) J. Daniélou,
Bible and Liturgy, 253, 255. 태양의 날과 일요일의 기원의 인과관계는 다음 장에서 연구되고 있다.
53) W. Rordorf,
Sunday, 220.
54) Justin,
Dialogue 24, 1.
55) Justin,
Dialogue 41, 1.
56) Justin,
Dialogue 138, 1.
“8명의 영혼들”에 대한 언급은 신약의 베드로전서 3장 20절과 베드로후서 2장 5절에서 발견된다. J. Daniélou는 홍수 때에 산을 덮은 물
“15규빗”에 대한 Justin의 진술도 여덟째 날에 대한 하나의 타탕한 근거로 간주한다. J. Daniélou,
“Le Dimanche comme huitiéme jour,” Le Dimanche, Lex Orandi 39, 1965, 65.
57) J. Daniélou는 제8일에 대한 상징성이 첫 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에 대한 일요일의 우수성을 드높이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영리한 견해를 밝힌다. 주목할 만한 것은 Justin이 다음의 두 가지 의도를 갖고 구약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안식일은 일시적 제도일 뿐이며 또한 유대인들에 대한 처벌로써 주어진 것이라는 논지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식일에 대한 일요일이 갖는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교부들은 제8일에 대한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구약에서 단서가 될 만한 추가적
“근거” 본문들을 발견했다. 이러한 노력은 그 날의 상징성을 통해 안식일/일요일 논쟁에서 하나의 효과적인 논증적/변증적 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기도 했다. J. Daniélou,
Bible and Liturgy, 257.
58) Ibid., 230-231.
59) Ibid., 233쪽.
60) 안식일을 거부하고 일요일을 채택한데 대한 반유대적 동기들은 이후 초기 교부들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미 발생한 현상에 대한 이차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의 본문들이 제시하는 증명적 가치는 그 질에서 더 낮은 것일 수밖에 없다. 이번 장에서 다루어진 자료에 대한 부록을 참고로 하며, 우리는 이후의 본문들은 거의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본문들은 이미 드러난 결론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Origen(약 A.D. 185-254)은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던 만나를 통해 모세 당시에 이미 하나님께서 안식일보다 우선하는 일요일을 허락하셨다고 설명한다.
“만일 말씀에 따라서 그때 하나님께서 주의 날에 만나를 내리셨고 안식일을 중단시키신 것이 분명하다면, 유대인들은 우리의 주의 날이 그들의 안식일보다 우선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안식일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 하늘의 빵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이해해야 한다. ∙∙∙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일요일에 하늘로부터 끊임없이 만나를 내려주신다”(In
Exodum honiliae 7, 5,
GCS 29, 1920).
Epistle to Diognetus의 저자는 안식일 준수와 유대인의 축제를
“불경스러운” 미신으로 여기며 혹독하게 비판한다(4장).
Syriac Didascalia (약 A.D. 250)에서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행할 악에 대한 예견의 측면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지우는 하나의 끊임없는 애도의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는[즉, 모세] 성령을 통하여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이었다. 그분은 백성들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떠한 일을 할 것인지, 또한 그때에 모세의 형상을 한 그분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을 아셨다. ‘누가 그대를 지명하여 우리를 판단하라 하는가?’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을 일찍이 영원한 애도의 속박에 가두고, 그들을 위해 안식일을 구별하여 정했다. 이는 그들이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분을 거절하고 구주를 붙잡아 죽임을 당하게 했으므로 애도해야 마땅한 것이다”(21장, Connolly, 190~191). 이 문서의 저자는 계속해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애도를 모방했다”는 주장을 교묘한 방법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분명 이것은 안식일 준수를 막기 위한 상당히 인상적인 방법이었다. Eusebius는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게 된 이유로 유대인들의 불충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들[유대인들의 불충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은 안식일 축제를 빛의 부활로 옮기고, 참 안식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주님께 속한 구주의 날, 인류 가운데 그분의 일을 이루시고 죽음을 이기신 세상의 구주가 속한 빛의 첫 날(the first day of light)을 전해주었다”(
Commentaria in Psalmos 91,
PG 23, 1169). F. A. Regan은
“그러한 변화를 이끄신 분은 그리스도 자신이셨다”라고 단언하는 Eusebius에 대해
‘지나친 과장’의 피해자(a victim of
“gross exaggeration”)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Dies Dominica, 56). 아마도 Eusebius는 스스로 신뢰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몇 단락 후 그가 언급한 것을 다시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모든 안식, 안식일에 관련해 규정된 모든 것을 주의 날로 이동시켰다. 그 이유는 주의 날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우월한 날이며, 유대인들의 안식일보다 더욱 가치 있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Commentaria in Psalmos 91,
PG 23, 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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