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서 주일로 제7장 교부시대의 반유대주의와 일요일 준수의 기원
 유스티노스가 안식일과 할례와 같은 제도들을 공격하고,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자부심을 상징하는 이러한 제도들을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영벌(永)의 표라고 주장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의아하게 생 각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특별히 로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강렬한 반유대적 적대감에 이 저자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를 읽어보면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비록 유스티노스가 트리포와 냉정하고도 진지하게 대화하고자 노력한 것이 분명하지만,44) 유대인들에 대한 격렬한 공격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그의 피상적인 묘사와 부정적인 평가는 그가 그들에 대해 마음에 품고 있던 깊은 적의와 증오를 나타내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리스도인들에 게 퍼부어진 중상모략적인 반대운동에 대한 책임을 주저함없이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298.3)
그대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내신 죄 없으시고 빛이 되신 분에 대해 잔인하고 사악하고 불의한 고소를 모든 땅에 전파하는데 있어서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 다른 민족들은 그리스도 외에 그의 추종자들인 우리를 다루는데 있어서 유대인들처럼 부당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유대인들은 바로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에 대한 사악한 견해를 가지고 그것을 부추기는 바로 그 선동자들이다. ∙∙∙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사악함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사악 함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45)
(299.1)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회당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날마다 퍼부었던 저주는 그러한 긴장을 고취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 분명하다. 유스 티니아누스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299.2)
그대들은 그대들의 회당에서 힘이 닿는 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굴욕을 주고 저주한다. ∙∙∙ 그대들의 회당에서 그대들은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들을 저주하고, 단지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그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이방 인들과 그대들의 저주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46)
(299.3)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은 이 시기에 강력하게 나타났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유스티노스는 “그대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그대들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47)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인 진영으로부터 납득할만한 저항과 분노를 야기시켰다. 유스티노스는 트리포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대들에게 저항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따라서 차라리 죽음의 고통을 택한다.”48) 특별히 로마에서 감지되는 것처럼, 그 당시에 유대인들에 대한 그러한 뿌리 깊은 분노는 유스티노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안식일과 같은 유대의 주요 제도들을 공격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레간도 진술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안식일과 같은 유대인들의 제도를 “불의함으로 당연히 받아야할 형벌을 받도록 유대인들을 가려내기 위한 하나의 표식으”로 해석하였다.49) (300.1)
 이처럼 안식일을 거절하고 그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태도는 새로운 예배의 날의 도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신들을 유대인들과 구별되었음을 증거 하는데 있어서 다른 예배일을 도입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까? 유스티노스가 안티오니누스 피우스 황제에게 기독교 예배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태양의 날”에 개최되었다고 두 번 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300.2)
일요일로 불리어지는 날에(τη του ηλίου λεγομένη ημέρα) 우리는 도시 안에 살거나 혹은 도시 밖의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공동의 집회를 가지며,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도들의 기념 집들이나 선지자들의 글들을 읽는다.
(301.1)
사실상 일요일은 우리 모두가 공동의 집회를 개최하는 그런 날인데, 그 이유는 그 날이 하나님께서 어둠을 몰아내시고 최초의 물질을 만드시므로 세상을 창조하신 첫 번째 날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동일한 날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토성의 날 전 날에 십자가에 못 박았고, 토성의 날 다음 날, 즉 일요일에 그분께서는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우리가 당신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들을 또한 존중하도록 그들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50)
(301.2)
 유스티노스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의 날”에 예배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가? 유대인들과 그들의 안식일에 대하여 그가 분노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은 반역자가 아니라 순종적인 시민들이었다는 사실을 황제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추론하는 것은 납득할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다음 장에서 설펴볼 것이지만 그 시기에 로마교회는 이미 태양의 날을 존경하고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유스티노스가 그 날에 대하여 명확하게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인들의 관습보다는 로마인 들의 관습에 더 가깝게 이끌기 위해 계획적으로 노력하고 있었음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가 일요일 준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안하고 있는 바로 그 이유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입증된다. 우리가 종합적으로 다룰 세 가지 기본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301.3)
 (1)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의 날에 모인 것은 “그 날에 하나님께서 어둠을 몰아내시고 최초의 물질을 만드시므로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창조의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67, 7). 태양의 날과 첫째 날의 빛의 창조 사이의 관계는 순수하게 부합하는가? 그렇게 보기는 어려운데, 특별히 유스티노스 자신이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이교도들이 태양에 바치는 헌신과 그리스도인들이 그 태양보다 더 빛나는 존재인 그리스도께 바치는 헌신을 명확하게 비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302.1)
하나님께서 일단 태양을 경배하도록 허락하셨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대는 태양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죽음의 고통을 받았다는 사람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민족들 중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고통을 받고 그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기 보다는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여전히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대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분이 가르치신 진리와 지혜의 말씀이 태양의 에너지보다 더 밝고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심령과 마음의 깊은 곳까지라도 꿰뚫기 때문이다.51)
(302.2)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첫째 날의 빛의 창조와 그 동일한 날에 발생한 태양에 대한 숭배 사이의 일치점을 일찍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니엘루가 잘 인지하고 있듯이, “태양에게 바쳐진 그 날은 유대 주일제도의 첫 날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주의 날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일요일은 창조의 첫째 날이 재생되는 날로서 여겨졌다.”52) 그 두 주제들을 결합시킨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자못 놀랍다. 안식일(유대인들의 불충성의 표인)과 구별된 예배일을 찾는 과정에서 태양의 날이 가지고 있는 그 풍부한 상징성이 기독교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을 효과적인 대체일로 인식하였다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이러한 전제는 다음 장에서 고찰되어질 것이다. (302.3)
 (2)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의 날에 예배를 드린 이유는 그 날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었다. ∙∙∙ “그들은 그리스도를 토성의 날 전 날에 십자가에 못 박았고, 토성의 날 다음 날, 즉 일요일에 그분께서는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67, 7).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태양의 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집회를 가지는 것에 대한 정당한 동기가 되는 것으로 이미 인식되어졌다. 그러나 로르도르프가 인정하는 것처럼 “유스티노스의 첫 번째 변증서에서(67,7) 일요일 준수의 원래의 동기는 창조의 첫째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오직 부차적인 동기로 추가되었다.”53) 하지만 바르나바스와 유스티노스에 의해서 일요일 준수에 대한 부가적인 이유로 나타나고 있는 부활 모티프가 점차적으로는 일요일 준수의 주요 동기가 될 것이었다. (303.1)
 (3)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준수한 이유는 제8일째 되는 날로서 그 것이 “제칠일이 소유하지 못했던 분명한 신비스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54) 예를 들어 유스티노스의 주장에 따르면, 할례는 제8 일째 되는 날 시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주일의 첫 날에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실수와 사악함으로부터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진정한 할례의 한 표상”이었기 때문이었다.55) 더욱이 노아의 때에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8명도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신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신 제8일의 한 상징이었다.”56) (303.2)
 유스티노스가 기독교 예배에 대해 황제에게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의 날에 모인다(아마도 우리가 제안한 것처럼 황제의 마음속에 그들이 로마의 관습에 더 가깝다고 여기도록 하기 위하여)는 것을 반복 적으로 강조한 사실과 유대인인 트리포와의 논쟁에서 일요일을 역차별의 의미로 “제8일” 이라고 부르고 제칠일 안식일을 대체하는 것으로 일컫는 사실을 주의 깊이 생각해 보자.57) 그 서로 다른 두 정의는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화하도록 하게 한 두 중요한 요소들, 즉 반유대주의와 이교주의를 잘 요약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안식일을 거절하게 한 원인이 일반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과 특별히 안식일에 대한 반감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유대인들과 분명하게 구별된 사람들임을 증명하고 이교도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손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의 날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일요일 예배의 영향과 초기의 일요일 신학에 대해 살펴볼 다음의 두 장들에서 점차적으로 분명해질 것이다. (304.1)
 결론
 이그나티우스와 바르나바스, 그리고 유스티노스의 문헌들에 대한 간단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이 저자들이 속한 공동체(안디옥교회, 알렉산드리아교회, 로마교회) 안에서 반 유대적 감정들이 강력하게 증가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반 유대적 감정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교와의 그 어떤 외형적 유사성이라도 피하게 만드는 필연성을 가져다 준 사회적인 긴장과 신학적인 확신으로 점점 증가되었다. (304.2)
 안디옥에서 이그나티우스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유대화되는 것”을 정죄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삶에 따라 살”기를 명령하면서 특별히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다시 말해 유대인들의 방법에 따라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정죄하였다. 우리가 내린 평가에 따르면, 비록 마그네시안 9,1의 내용이 “주의 날이 아니라 ”주의 삶을 언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정죄하고 “유대교의 규례에 따라서 살지 말도록” 권유한 것은 유대교와의 분리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들은 유대인들과의 더 분명한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하여 일요일 예배를 도입하도록 조장하였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304.3)
 알렉산드리아의 바르나바스는 유대의 관습들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노력 속에서 우화주의적 방법으로 유대인들의 관습들과 신념들이 가지고 있던 역사적 정당성을 거부하고, “안식일의 문자적인 실행은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되는 것이었다고 단순하게 부인해 버리”는 등급 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58) 그는 안식일을 합법적으로 계승하고 그것을 대체하는 날로서 제8일을 제시하기 위하여 현재 시대를 위해 안식일이 가지고 있던 중요성과 의무 조항을 제거하였다. (305.1)
 마지막으로 로마 출신인 유스티노스의 증거자료는 다른 자료들로부터 이미 추측한 내용, 즉 심각한 반 유대적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특별히 로마교회에서 그런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인해 준다. 이러한 감정들은 유스티노스로 하여금 안식일을 “유대백성들에 대한 영벌(永罰)의 표로” 격하시키도록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59) 새로운 예배일의 도입은 유대인들과 분명히 구별됨을 증명해야할 필요성에 의해 유발 되어진 것으로 나타난다.60)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모슬렘과 유대교 기독교의 예배일이 다른 것이 그들 사이의 차별성을 보다 현저하게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