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7. 번제단 (나의 모든 고난은 그리스도의 것임)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의 성소 예배를 시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단 붙여 주시자 이 거룩한 불은 결코 꺼져 버리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100.6)
 광야에서 행진할 때 제사장들은 그 깜부기불에 끊임없이 향을 넣어 줌으로 향로 안에서 계속해서 점화되어 있게 했다(Signs, 1880. 7. 24.). 천막이 쳐지고 저녁 제물이 드려질 때, 제단의 나무는 빨갛게 되어 있는 숯에서 불꽃을 불어 붙여졌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해츠(E. Hatch)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101.1)
내게 불어넣어 주소서
하나님의 입김을
생기로 나를 새롭게 채우소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신이 하는대로 나도 할 수 있도록
내게 불어넣어 주소서
하나님의 입김을
내가 완전히 당신의 것이 되기까지
마침내 흙에 불과한 내가
이 당신의 불로 거룩하게 타오를 때까지
(101.2)
 백성들이 한 곳에 머무를 동안, 불이 계속 타도록 매 아침과 저녁 제단의 노(爐)에 연료가 첨가되었다. 솔로몬은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잠 26:20)라고 한 자신의 말에서 이 사실을 기억했던가? 이 하나님의 불은 솔로몬의 성전이 완성될 때까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보존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제단의 불을 다시 붙이셨다. 그리하여 거의 1천년 동안 이 하늘의 불은 이스라엘의 제단 위에서 계속해서 타고 있었다. 하늘의 사랑의 불이 그대의 마음의 제단에서 계속 불타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의 기도를 상징하는 향을 날마다 첨가시키지 않으면 그것이 꺼져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라. (101.3)
 불은 열납하고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품성의 국면을 상징한다(신 4:24; 9:3; 히 12:29; 산상보훈, 62). 이사야의 핀 숯불은 “우리의 마음의 제단에서 타고 있는 정결케 하는 진리의 불”은 물론이요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한다(2T, 337). “풀무의 불은 파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결케 하고, 고상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8T, 123). 그러나 제자가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칠 때에 그의 마음의 제단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타오를 것이다”(복음 교역자, 253). “하나님의 영이 거룩한 불꽃처럼 마음문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태워 버리고, 예수님이 들어오시게 하라. 그리하면 그분의 사랑은 부드러운 말과 사상과 행동이 되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 갈 것이다”(교회증언 5권, 494). “사람이 재산과 지성을 가지고서도 무가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불타고 있는 선(善)의 불이 그의 마음의 제단 위에서 결코 타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2T, 305).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자 구할 때 주님께서는 이 하늘의 불꽃으로 이기심을 사르어 버리고자 언제나 준비하고 계신다.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은 강렬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경험하신 후 우주를 향하여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다.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늘은 믿음으로 그분을 바친 자들을 받아주신다. (101.4)
 다른 불을 제단에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다른 불”을 제단에 결코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하셨다(출 30:9). (101.5)
 그러나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장성한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는 그들 스스로가 붙인 불로 향로를 채웠다. 참람되게도 성막 뜰로 들어가게 되자 그들은 쓰러졌다(레 10:1~7, 복음 교역자, 20). 한때 성령께서는 일단의 목사들을 견책하셨다. “먹는 데 부절제 함으로 그대들은 거룩한 불과 속된 불의 차이를 분명히 깨닫는 자격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7T, 258). 하나님의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 그것은 아벨의 제물을 받아주기도 하고, 가인의 피없는 제물을 거절하기도 한다. (102.1)
 성령께서는 경고하신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그 자신의 정신과 감정이 우세해질 것이다. 이런 것들은 거룩한 불 대신에 드려진 다른 불로 잘 대표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품성의 결함, 인간적이요 세속적인 계획, 자기 자신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올무에 걸리게 하는 유혹물을 하나님의 사업에 혼합시켰다”(목사에게 보내는 증언, 370). “주님의 사업 방법에서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속적인 불을 사용하지 말고, 주님께서 붙여 주시는 거룩한 불을 사용하라”(7T, 267). 사실, “우리 기관들에서 책임을 지는 자들은 날마다 주님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길을 택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붙인 불꽃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8T, 140, 141). 하늘의 순결한 불꽃이 우리의 마음 제단에서 타오르도록 기도하자. (102.2)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서 비치는 빛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세상의 생명과 빛으로부터 온것이다. 그는 이 빛을 그분의 사업을 행하는 데 모두가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불을 붙이는 것처럼 붙인다.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사람의 빛과 생명과 거룩함과 성화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빛은 받아들여져서 모든 선한 일에 나누어져야 한다. 많은 다른 방법으로 그분의 은혜는 또한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금이 가정이나 지역 사회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면 어디에서나 그것은 선한 모든 것을 지켜 주는 보존력과 악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힘이 된다”(5BC, 1085). (102.3)
 제단과 관련된 희생 봉사
 우리는 지금 제단이 많은 교훈을 가르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 봉사는 회개자가 그의 제물을 바치고 그의 죄를 고백하고 그의 제물을 죽였을 때 그에게서 그의 죄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그를 하늘이 받아주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제단 위에 그를 대신하여 놓여 있는 제물을 사르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 무죄로 간주되었다. 이 의식들은 모두 장차 세상 죄를 위하여 갈바리에서 돌아가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가리켰다. (102.4)
 그리스도인에게는 갈바리 제단의 십자가가 그의 생애와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고 필요한 모든 은혜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제단에 당신의 성품을 취하신 대언자를 두셨”고(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2), 중보자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피를 부으시는 바로 그 행동 가운데 나타나 계신다(4T, 395). 이 실체를 우리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간직하도록 우리는 “제단을 ∙∙∙ 척량하”(계 11:1)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102.5)
 하늘 성소의 뼈대에 나타난 갈바리의 의미를 날마다 명상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죽음의 가치와 그분의 제사장 중보에 있어서의 우리의 위치를 깨닫게 해 주신다. (103.1)
 십자가를 표상한 제단 위의 피
 우리가 제단에 예배드리러 가는 동안, 우리 때문에 마음상한 어떤 사람이 생각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마 5:23, 24). 우리가 이렇게 할 때에만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단을 향해 가고 있는 동안 우리의 마음을 살피는 일을 그치면 순결도 중지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 상한 동료들과의 화해를 찾아서 돌아가는 길은 하늘 낙원으로 더 가까이 나가는 여행이 될 것이다.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