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7. 번제단 (나의 모든 고난은 그리스도의 것임)
 비록 제단의 의식들은 그 후 오랫동안 중단되어 있었지만, 그것들은 여러 세기 동안 “모든 우상숭배를 정복하게 될 구주의 희생을 예표했다. 갈바리의 십자가 외에는 모든 제단을 무너뜨리”도록 하라(1904년 12월 15일, Australasian 연합회 기록). 산이 고양(高揚)을 시사하므로 라틴어계 그리스도인은 높은 곳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제단의 이름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이 사상은 고대의 “산당”과 관련된다. (98.1)
 제단을 조명하는 이름들
 올라가다의 히브리어에서 온 “번제단” 이라는 이름은(mizbah h‘aolah, 출 30:28) 희생 제물의 생명의 호소가 하나님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을 예배자로 하여금 상상케 한 연기 구름을 마음에 떠 올리게 했다. 완전히 바쳐진 제물의 증거로서 하나님은 이 연기를 즐거운 만족과 안식과 성취감으로 흠향하셨다(창 8:20, 21). 구주께서는 자기 자신을 십자가의 제단 위에 바친 지 3일 후에, 그분 역시 “위로 올라가셔서” 그분의 제사가 받으신 바 되었다는 보증을 아버지의 입술로부터 들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당신의 뿌린 피로써 당신의 화목의 봉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일이 없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2~19). (98.2)
 온전한 번제단(신 33:10)은, 희생 제물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바치는 것, 곧 헬라와 히브리 말 전번제(全播祭)가 시사한 사상을 가리켰다. 그것은 구주께서 아버지께 바치는 희생 제물로서 자기 자신을 전체적으로 바치는 것을 설명했다. 우리 역시 그분의 제자로서 날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산 제물로 주님께 완전히 바쳐야 한다(롬 12:1, 2). 히브리의 의식에서 죽임을 당한 희생 제물이 제단 위에서 남김 없이 태워지는 것처럼, 우리의 그리스도인 특권은 우리의 일상 생활의 완전한 헌신을 요구한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556). (98.3)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둔 번제단(출 40:6, 29)은 그 예배의 초점을 하나님의 전 입구 가까이에 두게 한 것이다. 안쪽 휘장 앞에 있는 영원한 중보의 금단(金壇)은 간구자가 그의 탄원을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쏟아 놓게 하는 “향기로운 향”의 분위기를 제공했다. 바깥 휘장 앞에 있는 영원한 희생 제물의 놋 제단은 대속과 속죄의 피로 영생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이 포장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제물의 “향기로운 냄새”를 나타냈다. (98.4)
 여호와 혹은 야웨 앞에 있는 제단은 영원한 심판자에게 만족을 주었고(왕하 16:14), 한편 하나님 혹은 엘로힘의 제단은 불변의 언약 준수자(시 43:4)로부터 흘러나온 은혜를 예배자들에게 상기시켰다. 이런 이름들에 의하여 드러난 신성의 두 측면은 제단 봉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단일성을 묘사한다. 공의와 자비가 그 봉사와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98.5)
 “여호와의 앞의 상”(겔 41:22), “내 상”(겔 44:16), “주의 상”(말 1:7, 8)등의 표현은 희생의 “식물”로서의 제물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언약의 식물의 부분이었다(레 3:11, 16). 그 위에 놓여진 것을 태움으로써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도록 자기 자신을 구속하는 계약을 비준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제단을 “지극히 거룩”(출 29:37)한 것으로 간주하셨기 때문에, 제단에 접촉하는 것은 무엇이나 거룩하게 되었다(학 2:11~13; 마 23:18, 19). 제자가 매일 거룩한 상태로 남아 있는 유일의 길은 골고다의 제단 위에 바쳐진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서 믿음으로 그분을 붙드는 것이다.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우리를 이 하늘 제단에 계속해서 붙들어 매소서. (98.6)
 제단에 사용된 기구들과 도구들
 제단에 사용된 여섯 기구들 역시 놋으로 만들어졌다(출 27:3). 그것들은

 1) 희생 제물들을 죽이고 자르는 데 쓴 칼,

 2) 피를 받아서 간직하는 데 쓰는 대야

 3) 불붙는 장작 위에 있는 희생 제물의 부분들을 정리하거나 “삶은 고기”(삼상 2:13~17)를 분류하는 데 쓰는 갈고리

 4) 재를 체질하여 떨어뜨리고 제거하는 데 쓰는 갈퀴와 삽(밑에서 취하여 가져간다. 렘 52:9)

 5) 타다 남은 찌꺼기를 영문 밖 지정된 “정결한 장소”로 가져가는 데 쓰는 “줄 달린 향로”라고 부른 불 옮기는 그릇(출 38:5; 민 16:17)

 6) “불똥 그릇” 혹은 숯 남비(출 27:3; 레 16:12)이었다.

 40년의 방황 기간에 놋 화로 혹은 향로는 거룩한 불을 한 진영에서 다음 장소로 옮기기 위하여 제사장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99.1)
 제단의 격자 모양의 석쇠 아래에서 재를 옮길 때 제사장은 속죄일에 입은 것과 동일한 흰옷을 입게 되어 있었다. 재를 갈퀴질하여 밖으로 끌어내면 제사장은 그것을 동편 제단 곁(레 6:10, 11; Tamid 1:4), 곧 성막 입구 쪽에 쌓아 두었다. 재는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4T, 121). 사실 히브리어 “받아들이다”는 말은 “재로 바뀌었다”는 뜻이다(시 20:3). 이 재는 이와같이 희생 제물이 여호와 앞에 완전히 바쳐졌고 열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념탑으로 서 있었다. (99.2)
 재는 가끔 굴욕(삼하 13:19), 통회(단 9:3; 마 11:21; 눅 10:13), 비탄(에 4:1, 3; 욥 2:8; 렘 6:26), 무가치(욥 13:13; 사 44:20), 치욕(겔 28:18; 말 3:21), 고통과 슬픔(시 102:16; 애 3:16; 사 61:3), 염증(욥 30:19)등을 나타내는 은유로 성경에 사용된다. 재를 나타내는 히브리어(eper)는 가벼운, 날아가는, 몸이 재빠른 등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온 것인데 그것은 생기 없는 것이라는 사상을 전달한다. 이런 관념들은 제단 앞에 쌓여 있는 잿더미를 이해하는 데 부수적인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거기서 그것들은 바쳐진 희생 제물로 표상된 모든 인간의 방법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불에 노출될 때 아무것도 없어져 버렸다고 조용히 부르짖는다. (99.3)
 제단에서 나온 재
 이 잿더미는 대리 희생 제물이 완전하게 불타버렸다는 것을 경배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한동안 제단과, 뜰로 들어가는 입구 휘장 사이에 남아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사르어진 재는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증거였다. 이 재들은 성소 뜰에서 서둘러 치워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들이 주는 격려와, 그것이 제시하는 경고가 의식 참석자들의 생각에 깊이 새겨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이 타다 남은 찌꺼기 위에는 “다 이루었다”(요 19:30)는 글귀가 표상적으로 기록되었다. 이 재들은 또한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리켰다. 아삽은 성전 뜰에 들어가서 이 잿더미를 보았을 때 그것을 제일 먼저 깨달았다. (99.4)
 그는 그것이 “저희 결국”(시 73:17)에 대한 기념탑임을 즉시 깨달았다. (100.1)
 제단에서 재를 옮기고 나면 제사장은 그의 특별한 옷을 벗고 그의 정규적인 옷을 입었다(레 6:10, 11). 적당한 시간이 지나간 후에 그는 그것을 그릇에 담아 개인의 속죄 제물을 태우는 “영문 밖 정결한 장소”로 가져갔다. 이 장소는 그리스도께서 히브리 백성들만 위해서가 아니고 온 세상을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었다(히 13:11, 12). “성벽 바깥”의 이 장소는 사실상 제단의 연장이었다. 왜냐하면 그 위에서 특별한 속죄 제물의 시체들이 태워졌기 때문이다(레 16:27; 6:30). 이 재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단에서 끌어내려졌고, 한동안 그분의 죽임당한 장소 가까이에 있는 굴 속에 눕혀져 세상에 보여졌고, 목격한 모든 사람이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100.2)
 금단에서 타버린 향의 재와, 촛대에서 타버린 심지는 놋제단의 재를 옮길 때 그것들과 함께 섞여졌다. 이것은 이 세 봉사의 상호 관계를 시사했다. 새벽에 놋단에서 취한 불은 등불을 밝히는 데 사용되고, 또 향을 붙이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제 날이 저물면 그 재들은, 조명과 중보가 제단불을 통해서 가능케 된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100.3)
 제단에 사용된 연료
 랍비들에 의하면 필요할 경우에는 전 나무와 호두나무와 그밖에 다른 나무들도 사용될 수 있었지만, 제단을 위한 최초의 선택은 무화과나무였다. 다만 금지된 나무는 “감람나무와 포도나무”였다(Tamid 2:3~5). 구원의 드라마에서 무화과나무가 담당한 최초의 역할은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무용하고 불안한 나뭇잎 앞치마를 제공한 것이었다(창 3:7).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동안의 그 마지막 등장 역시 그 허세 좋은 잎에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그것은 말라버리고 해가리개로서도 가치 없게 되었다. 히브리 민족의 사랑의 결실 없음을 나타내고 있는 그것들은 독선적인 위선과 허식의 표상이 되었다(마 21:19, 20).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태우고 있는 무화과나무 장작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불태운 범죄와 위선적인 말투에 대하여 속삭였다. (100.4)
 제단 위의 불
 브사렐이 성막과 그 기구들을 완성한 후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회막을 세웠고, 그 봉사자들과 성소 자체는 그들의 성무(聖務)에 바쳐졌다. 이같은 예식 후에 아론은 최초의 희생 제물을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쳤다. 즉시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었다(레 9:24). 오래 전 에덴동산의 출입문에서 아벨의 제물을 인정해 주기 위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살랐다”(부조와 선지자, 71; 창 4:4).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홍수 후 가족의 헌신을 위하여 바친 노아의 번제물에 대하여(창 8:20, 21), 성전 헌당 때에 솔로몬의 재물에 대하여(대하 7:1), 그리고 갈멜산 위에 다시 쌓은 여호와의 제단 위에 올려 놓은 엘리야의 제물에 대하여(왕상 18:38; 3T, 285) 응답하셨다.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