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7. 번제단 (나의 모든 고난은 그리스도의 것임)
 “뿔은 어떤 동물들에게 있어서 공격과 방어의 무기이다. 이 표상을 사용하여, 한나는 그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했었다”(Signs, 1881. 10. 27.). 다윗은 야웨를 “그의 구원의 뿔”로 높였다(삼하 22:3; 시 18:2; 눅 1:69). 계시자의 이상(異像)은 우리를 기뻐하게 할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분의 보좌 위에서 그는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신 어린양이 그의 완전한 힘의 증거로서 “일곱 뿔”로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계 5:6). (94.7)
 그분의 재림 때에 밝은 빛의 뿔들이 구주의 손과 옆구리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그분의 능력의 근원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합 3:4). (95.1)
 이 모든 사상은 제단 뿔의 의미를 알려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들은 그 힘을 나타냈고, 기름과 아울러 피로써 성별 되었다(출 40:9, 10; 30:23~28). 하나님의 어린양과 성령의 봉사를 나타내는 두 표상은 뿔의 본래의 의미에 권위를 더해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특별한 의식들을 행하는 동안 제사장이 그것 위에 남긴 삼홍색 글씨는 제단 바로 아래 이루어진 피의 못처럼 그 무언의, 그러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웅변적인 호소를 전했다(계 6:9; 창 4:10). 동시에 이 양홍색 기초 위에 튕기어진 피는 영원하고 전능한 영의 붙들어 주심을 선포했다. (95.2)
 제단의 뿔은 속절없는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복수를 피해가는 도망자들은 뿔을 붙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여호와의 보호 아래 놓고자 노력했다(암 3:14; 렘 17:1; 왕상 1:50~ 55).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자와 범죄한 자에게는 이 피난처가 무효였다(출 21:13, 14). 살인자 요압이 거기로 도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제단에서 끌어 내어 죽이라고 명령하셨다(왕상 2:28~34). 이것은 또한 솔로몬을 반역한 결과를 같은 방법으로 피하고자 한 아도니야의 무서운 운명이었다(왕상 1:50~53; 2:23, 24). 그러나 겸손한 탄원자를 기다리고 있는 상급을 기억했을 때 다윗은 영감으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 84:3)고 노래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많은 참새보다 훨신 더 귀중하다는 보증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신다(마 10:31; 눅 12:7). (95.3)
 제단 뿔에 붙들여 매인 제물
 제물들은 아마도 돌이나 흙으로 만든 본래의 제단들 위에 붙들어 매어져 죽임을 당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막 뜰에 있는 제단 위에서는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예배의 중심부를 둘러싼 지역에 도살의 장소가 “여호와 앞 단 북쪽”으로 지정되었다(레 1:5~11). 그러나 이곳이 너무 붐빌 때는 제물이 임시로 제단 뿔에 동여매여지게 되었다(시 118:27). 이것은 짐승들이 이미 그들의 능력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시사했는가?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하여 그분을 노래한 아이들은 그분께 대하여 이 말을 적용시켰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군중 가운데 있는 어느 누가 시편 기자의 다음의 예언 역시 그분께 해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던가?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시 118:26, 27; 마 21:9; 23:39). (95.4)
 다윗이 머물러 있기를 바랐던 것은 이 곳이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산 제물”(롬 12:1, 2)로서 자기 자신을 사랑의 줄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 갈바리의 십자가에 동여매야 한다. “그대들의 재산과 친구들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붙들어 매라”(교회증언 5권, 299)고 성령께서는 권유하신다. (95.5)
 “교인들은 자신과 그들의 소유를 하나님의 제단 위에 개인적으로 올려 놓아야 한다”(교회증언 5권, 469).
 “나는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부모들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을 제지하고자 한 누군가에 대하여 화를 내었다. 그들은 산 믿음으로 날마다 자녀들을 주님의 제단에 붙들어매지 않았다”(교회증언 5권, 36). “봉사하는 천사들은 이와같이 하나님께 바쳐진 자녀들을 지켜 줄 것이다”(교회증언 1권, 417). (96.1)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눈물로 하나님의 제단을 덮는 슬픔과 낙담에 의해서가 아니고 의의 태양의 광채를 지님으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도록 권유하신다”(RH, 1892. 10, 11.). 골고다를 향한 사랑에 강권되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비록 내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요 10:18)고 단언하였을지라도 기꺼이 스스로를 겟세마네에 붙들어 매는 일을 허락하셨다. 영원하신 영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을 더욱 사랑하도록 가르치신다. (96.2)
 “그리스도의 사명, 너무도 희미하게 이해되고, 너무도 어렴풋이 알려져 있으며 그분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갈바리의 십자가의 제단의 신비로 내려오도록 부른 그 사명은 사람의 마음에 차츰 공개될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 다른 모든 사랑의 사명의 원천과 원칙이 발견된다는 것도 알려질 것이다. 도시와 마을과 세상의 큰길과 샛길에서 활동하는 모든 진실한 선교 일꾼들의 동기가 되어 온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RH, 1894. 10. 30.). 악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폭도들에게 “그를 잡으라”(마 26:48)고 명령했지만 (96.3)
겟세마네를 찾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다가 그를 결코 찾지 못했을 텐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사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쇠가 그를 결코 결박하지 못했을 텐데(작자 미상).
(96.4)
 당신의 아버지께 바쳐진 헌신이 완전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실상 충성된 종의 맹세를 반복했다. “나는 나의 주인(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나의 아내(교회)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의 자녀들(신자 개개인, 히 2:13)을 사랑합니다. 나는 자유를 얻어가지 않겠습니다”(출 21:5; 시 40:6; 히 10:5). 우리는 그분을 십자가의 제단에 붙들어 맨 사랑(출 21:5)과 순종(빌 2:8), 열심(시 69:9)과 기쁨(히 12:2; 시 16:11)이라는 네 가닥으로 이루어진 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러분은 이와같이 그분의 제단과, 여러분의 제단에 붙들어 매어져 있는가? (96.5)
 뿔은 방어와 공격을 시사하고 반면에 면류관은 왕들과 승리자를 말한다. 희생과 중보의 제단 뿔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중재를 나타내고 반면에 은혜의 보좌뿐 아니라 친교의 식탁 위에 있는 면류관은 왕과의 교제를 기대하게 한다. 뿔은 승리자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면류관은 그분을 만왕의 왕으로 선포한다. (96.6)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갔을 때, 제사장은 “산 제물”(롬 12:1, 2)로서의 그분의 봉헌을 나타내기 위하여 “아기를 그의 팔에 안고 제단 앞에서 그 아기를 쳐들었다”(시대의 소망, 52). (96.7)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분의 지상 생애는 제단을 위한 하나의 준비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난과 굴욕의 비결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리키신다”(RH, 1900. 7. 17.). 놋제단과의 접촉은 진실한 회개자에게 용서와 거룩함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율법의 한 구절보다 “무릇 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출 29:37; 마 23:19)고 선포된 것이 그에게는 의미 심장하게 귀중하다. (97.1)
 제단은 성소 뜰 의식들의 중심이었다
 많은 제사장 봉사는 제단, 특히 그 불과 피에 직접 의존되었다. 하나님의 “하늘 횃불”(CS, 30)로 붙여진 제단 불과의 접촉 없이는 어떤 속죄 제물이 바쳐지거나 감사 제물이 드려지지 않고, 어떤 진설병이 굽혀지거나 등불이 켜지지 않고, 향도 타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아 희생의 제단—하나님과 영혼 사이에 지정된 만남의 장소—에서 우리는 마음을 살피고, 내주하는 그리스도의 필요를 드러내 주는 하늘의 횃불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다”(Signs, 1901. 1. 9.). 이스라엘의 년중 절기와 금식은 물론 전체적으로 정해진 매일의 의식들도 이 하늘 불꽃 없이는 행해질 수 없었다. 성막 뜰 한복판에 이 제단이 모든 예배의 기초로 서 있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와 가납해 주는 하늘의 불 없이는 우리의 구원이 불가능할 것이다. (97.2)
 그 성서적 명칭은 제단의 여러 기능들을 시사한다. 기본적인 히브리 말, “제단”은 글자 그대로 “도살장”을 의미한다(mitzbeah, 출 28:43; 29:12, 44). 성전에 대한 그의 이상을 기술하면서 에스겔은 가끔 이 일반적 용어를 사용한다(겔 43:13~27). 그러나 그 선지자는 드물게 쓰는 두 용어, 하렐(harel) 즉, “하나님의 산”(겔 43:15 난외주)과, 아리엘(ariel), 곧 “하나님의 사자(獅子)”(겔 43:15, 16)를 소개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제단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Gesenius, Hebrew Lexicon, Art. ariel)시온산을 기술하기 위하여 전에 Ariel을 사용했었다(사 29:1, 2 난외주). 이 언급들은 “유다 지파의 사자”(창 49:9, 10)와 하나님에 의하여 확인되기 여러 해 전 “멀리 떨어진 산” 위에서의 운명의 만남의 장소와 관련되지 않는가? 미쉬나(Middoth 4:7)는 아리엘이 성소 자체를 기술한다고 이해한다. (97.3)
 성경에서 묘사하는 “산”은 고양(高揚)은 물론 능력, 안정, 내구 등을 시사한다. 이사야와 에스겔이 그것을 하렐로 부르기 여러 세기 전에 주님께서는 모리아산(창 22:2, 14, 보다, 제공하다, 택하다에 대한 히브리어 raa에서)을 이삭의 희생의 장소로 지시하셨다. 후에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는 곡식 타작을 위하여 이 바위를 사용했다(삼하 24:18~25). 이 장소에 다윗이 제단을 쌓았고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다(대하 3:1). 9세기 후에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첫째 성전의 옛 터 위에 재건된 둘째 성전에서 예배하셨다. 오늘날 이 반석, 사크라(Sakrah)는 예루살렘에 있는 오마르(Omar)의 회회교 사원 안에 갇혀 있다. 이 고대의 한 통으로 된 돌 때문에 그것은 “바위 돔”(The Dome of the Rock)이라 불리어진다. 그 곳은 두 차례 복수의 칼이 제지당한(첫째번은 아브라함의 씨를 살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두번째는 이스라엘의 무구한 백성들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장소로 특징지어진다(창 22:12; 삼하 24:19; 대상 21:15, 16). (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