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7. 번제단 (나의 모든 고난은 그리스도의 것임)
 랍비들은 “성막이 지워지기 전에 산당들이 허락되었고 장자에 의하여 제단 봉사가 이루어졌다”고 기억한다(출 24:5, 6). 그러나 성막이 세워진 후, 산당들은 금지되었고(레 17:8~16), 제단 봉사는 제사장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가장 거룩한 것들은 휘장들 안에서 태워졌으며(곧 성소뜰, 레 6:26 참조), 조금 덜 거룩한 것들은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먹었다. 그들이 길갈로 온 후(성막은 실로에 성전이 세워질 때까지 길갈에 14년간 머물러 있었다)산당들은 다시 허락되었고, 가장 거룩한 것들은 휘장들 안에서 먹을 수 있었고, 조금 덜 거룩한 것들은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었다(수 5:10~12, 9:6, 10:6, 7). 그들이 실로에 온 후(수 18:1)산당들은 금지되었다. 거기에는 지붕 들보가 없었으나 아래에는 돌집이 있었다(“집”은 천막과 대조되는 석조물을 의미한다. 삼상 1:24). “그리고 위에는 커튼이 있었는데, 이것은 휴식처였다(신 12:9) ∙∙∙ . 그들이 놉(삼상 21:1)과 기브온(왕상 3:4; 대상 21:29; 대하 1:3)에 왔을 때 산당들은 허락되었다. ∙∙∙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온 후 산당들은 금지되었고 다시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유업’(신 12:5~16)이 되었다”(Zebahim 14:4~8). (92.2)
 예배가 고정된 장소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조직화되었을 때 백성들은 성막의 뜰에 세워진 제단으로 갔다. 그러나 개인적인 산당들은 국가적 불안정이나 개인적 비상 사태의 때에 여전히 사용되곤 했다. 이러한 규정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발전시킨 배타주의를 암암리에 금지했다. (92.3)
 “사적(私的)인 산당은 (길갈과 놉과 기브온 등에 있는 그런)공적인 산당과 어떻게 달랐느냐? 고 히브리 현인이 질문했다. 손을 얹는 것(레 1:3), 제단 북편에서의 도살(레 1:11), 제단 주변에 피를 뿌리는 것(레 1:5), 흔드는 것(레 14:2), 단 가까이로 가져가는 것(레 2:8)등이다. 산당에는 소제 제사장 봉사(레 17:6), 봉사의 제복(출 28:43), 봉사의 그릇(민 4:12), 향기로운 냄새, 피뿌리기 위한 구획의 선(線)(출 27:5), 손발을 씻는 것(출 30:20; 40:31)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제물을 태우는 시간(아침과 저녁)에 관한 것과, 남은 것을 먹는 것(출 29:34; 레 7:17), 반드시 태워 없앨 제물을 먹는 자에게 해당되는 부정(레 7:20; 22:3)에 관한 율법들이 마찬가지로 있었다”(Zebahim 14:10). (92.4)
 부조의 제단에 대한 어떤 설명서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명세(明細)는 하나님이 십계명의 선포에 이어 모세에게 주신 것뿐이다. 비록 여호와께서는 성막 건축과 여러 세기 동안 존속하게 할 놋제단에 대한 세밀한 지시를 할 찰라였지만, 그분께서는 한동안 필요하게 될 토단(土壇)에 대하여 세심하게 지시를 하셨다(출 20:24, 25). 이 보편적인 봉사의 당(堂)은 흙무더기(왕하 5:17~19), 바위로 된 돌무덤(창 31:45~54), 돌기둥(창 28:18~22), 심지어는 하나의 둥근 돌(삿 6:19~24; 13:19, 20)등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단 하나의 조건은 그것이 어느 정도 고상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돌로 된 것이면 그것들은 어떤 철연장도 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지 않으면 안 된다(출 20:25). (92.5)
 하나님은 이 법칙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접근시키기 위하여 하늘이 마련한 것을 인간이 개선시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노력하셨다. 출애굽기 20장은 죄를 규정하는 십계명으로 시작하여 죄책감을 없애 주는 제단에 대한 기록으로 끝난다. 이해성 있는 입법자가 이 관념의 병렬(竝列)에 나타나 있다. 이제 성막 뜰에 있는 놋제단에 대하여 어느 정도 상세하게 살펴보자. (93.1)
 번제단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나무
 번제단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두 재료, 썩을 수 있는 싯딤 혹은 아카시아나무와, 영속적인 놋 혹은 구리판으로 된 덮개는 의미가 있다. (93.2)
 나무는 썩기 쉬운 물질을 시사한다(고전 3:12~15). 그것이 성막 기구들이나 건물 자체의 판자나 기둥에서건, 어디에서 보이든지간에, 싯딤나무는 상징적으로 시간의 황폐 행위에 상처를 입기 쉬운 우리 주님의 허약한 인성을 입증한다. 다윗은 의인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 1:1~3; 사 61:3)에 비교했고, 침례 요한은 이스라엘을 “나무”에 비유했다(마 3:10; 7:16~19). 예수님은 “생명나무”이시다(계 2:7, 22:2). 모세는 변변찮은 표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나타냈다. 이 키 작은 아카시아 관목은 내주(內住)하는 쉐키나를 통하여 빛나게 되었고(출 3:2~4; 시대의 소망, 23), 불타는 신성의 임재를 견뎌냈다. 성막은 인간의 육체(고전 6:19)혹은 영혼의 성전(시대의 소망, 161)에 대한 표상임과 동시에 “그리스도 교회의 표상”(Signs, 1900. 2. 14.)이므로 성소에 있는 모든 나무는 타락한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표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93.3)
 그러나 이 나무는 불멸의 금속인 동, 은, 금을 입힘으로써 손상을 당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제단은 땅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 외장(外裝)은 흰개미들의 황폐 행위에서 보호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노(爐)에서 맹위를 떨치는 불의 열에서도 지켜 주었다. 이 보강(補强)은, 또한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바쳐진 무수한 희생 제물들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93.4)
 제단을 만들기 위하여 사용한 놋
 이 기구는 그것의 바깥 덮개 때문에 “놋 단”으로 불리어졌다(출 27:2, 6; 38:2, 39:39). 그러나 이 금속의 정확한 정체를 밝혀내는 일은 어렵다. 구리는 청동과 주석이 혼합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구리와 아연이 놋을 이룬다. 순수한 구리는 이 합금들과 함께 고대에 알려졌다. 그 둘 모두에서 구리가 널리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리 제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93.5)
 제단은 브사렐이 성막과 그 기구들을 만들 때 구리로 쌌다. 약 20년 후에 다시 덧씌웠다. 이것들은 고라와 그 일당들이 아론을 반역했을 때, 거기 가담했던 250명의 족장들이 사용했던 향로들로부터 만들어졌다. 이 버려진, 반항적인 예배에 사용되었던 구리 기구들은 평평하게 펴어져 본래의 제단 덮개에 첨가해서 씌어졌다(민 16:36~40). 랍비의 전설은 그것들이 “고기 비늘”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한때 반역의 상징이었던 이 놋 향로들은 반역이 영원한 희생 제단의 봉사를 보강시켰다는 것을 지각 있는 예배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93.6)
 놋 혹은 구리는 불패(不敗)와 내구(耐久)의 상징으로 성경에 사용되어 있다. (93.7)
 “놋 산”(슥 6:1)은 난공불락과 연속성을 시사하고 또 한편으로 놋 “굽”(미 4:13)은 쳐서 깨트리고, “놋 발”(계 1:15)은 잔인한 원수에 의한 강압적인 점령과 영역의 지배를 상기시켜 준다. “하마”의 놋 가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그의 힘을 나타내고(욥 40:15~24. 특히 18절), 짐승의 놋 발톱은 그의 먹이를 잔인하게 쓰러뜨린다(단 7:19). 놋 뱀은 악마적인 뱀의 세력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장차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실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민 21:9; 요 3:14). 제단의 구리는 이와같이 힘과 내구를 나타내었다. (94.1)
 여러 세기가 지나감에 따라 구리는 차츰 푸른 동록(銅線)이 끼이게 될 것이었다. 인생의 주기에서 녹색은 봄(솟 아남)과 천연계의 끊임없는 부활과 추수의 약속에 대한 징조이다.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될 때 녹색은 희망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의 믿음의 선물을 상기시켜 준다(초기문집, 81, 참조). 영원한 속죄의 제단에서 나오는 불과 피의 준비가 없으면 성소의 모든 봉사는 완전히 아무 힘도 없게 될 것이다. 제단의 기별은 분명하다. 그것은 십자가에 바쳐진 희생 제물 때문에, 절망적인 죄의 겨울 다음에 희망의 봄이 죄인의 마음속에 솟아난다는 기별이다. (94.2)
 제단의 뿔
 제단의 네 모퉁이 각 꼭대기에서부터 구리를 씌운 나무 뿔이 위를 향해 구부러져 있었다.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전체적인 봉사의 부분을 이루었다(출 27:2, Yoma 5:5). 성경에는 뿔이 힘과 권세의 표로 사용되어 있다(시 89:24). 그것들은 다른 민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 백성의 무용(武勇)을 묘사한다(시 92:10; 132:17; 겔 29:21; 렘 48:25; 단 7:7, 8, 11, 24; 계 12:3; 신 33:17; 삼상 2:1, 10; 애 2:3). (94.3)
 뿔은 기름을 넣어 두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삼상 16:1, 13; 왕상 1:39). (94.4)
 성령의 상징으로서 이 붓는 기름(관유)은 선지자, 제사장, 권력자들을 위임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능력의 근원으로서 하늘을 그들에게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그 모든 세 직임에 대하여 기름부음을 받으셨다(행 10:38; 눅 4:17~21; 4BC, 1179; 실물교훈, 407). (94.5)
 뿔은 회중들을 소집하거나 광고를 하기 위한 악기로도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은(Halsotserah, 민 10:1~10)으로 만들어졌고, 때로는 양과 염소의 뿔로 만들기도 했다(qeren and shophar, 렘 4:5; 겔 33:3~6; 욜 2:1). 그것들은 여리고에서 전쟁에, 그리고 기드온에 의하여 사용되었고, 월삭이나 희년에 백성들을 예배하러 오도록 부르는 데 사용되었다. 특별한 기별을 전하기 위해서는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야 한다(고전 14:8). (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