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제 4 장 시편의 신학적 구조
 결론적으로 분석하자면, 시편은 의인과 악인의 윤리적 속성을 단순히 그것이 중요한 것처럼 그렇게 높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성의 근원과 궁극적 목표에 연관하여 하나의 도덕을 높이는 것이다(시 1, 16, 37, 73편). (80.3)
 그러므로 시편의 바탕은 구원하시고 성화시키시는 거룩한 존재에 관한 지식이 되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다(잠 9:10 비교).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사회 윤리는 성소에서 맛보는 구원의 경험에 의해 설정되었으며 또한 비롯되었다. 누가 의롭고 악한가, 살아 있는가 죽었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성소 봉사 중에 이스라엘 제사장이 내렸다. 여기서 의인은 성소에서 의로움 또는 홈 없음에 대한 선물인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 성소 신학에서는 사람이 부분적으로 의롭고 부분적으로 악할 수는 없다. 제사장의 죄 사함은 참회하는 사람을 완전히 의롭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렇게 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신령한 권위의 선언 가운 데서 오직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다. (80.4)
 시편에 나오는 상태는 이스라엘이 그들 스스로 의롭거나 죄 없음을 느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온 마음으로 신령한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다. 기타의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없는 상태이다(시 5:5~8, 15). 의인들이란 죄 없는 완전함에 이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죄 없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자신들이 죄 가운데 넘어졌을 때 참된 회개 가운데 죄를 자복하고 그들의 미쁘신 언약의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 즉 당신의 분수에 넘치는 친절과 받아 주심에 호소한다(시 4:1; 9:13; 27:7; 30:10; 31:9).1 (81.1)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시편에 나타난 것과는 다른 어떤 신앙과 구원의 방법을 그들이 가졌다고 말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시편과 선지서를 거절하셨던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약속된 구원의 왕같은 제사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안위자로 오실 존재이신 당신 자신에 관해 증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던가?(시 110:4; 눅 2:25; 요 5:39; 눅 24:27, 44). (81.2)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해석자로서 모세와 시편을 폐하지 않으셨으며 다만 성취하심으로 그들을 확중하셨다(롬 15:8). 그분은 그의 생애와 봉사를 통해 새롭고도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심으로 시편을 높이셨다. 그분께서는 이 이스라엘의 애통과 찬양의 책에 고귀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확신으로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도움과 안위를 간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죄인을 위한 사랑과 죄에 대한 당신의 진노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확실히 나타났음을 기쁘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새로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10:19~22 참조). (82.1)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 16).
(82.2)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82.3)
 신약 시대의 교회도 이스라엘의 찬미가에 분명히 나타난 죄의 개념이나 의의 기준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가 단정한 것처럼 이 표준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더한층 강화된 것뿐이다(히 10:28~31). 구세주 예수님의 교회는 이스라엘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능력의 원천을 갖되 다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를 통하여 한층 더 능력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소망과 목적이 더욱더 강화된 것이다! (83.1)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 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 6:19, 20).
(83.2)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얼마만한 찬양과 감사가 그리스도인의 입술과 마음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상달되어야 하겠는가! (83.3)
“∙∙∙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8~20).
(83.4)
 창조 기록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
 창조론은 시편의 기초이며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이다. 시편 33편의 고백보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더 많이 신뢰하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84.1)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 33:9, 6)
(84.2)
 낮에는 태양의 계속적인 주기, 밤에는 화려한 별자리의 장엄한 궤도를 바라보면서 다윗은 노래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84.3)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84.4)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 8:1)
(84.5)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고양된 사상은 인간의 고상한 근원과 영광스러운 목적을 확증하게 될 것이다. (84.6)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 .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시 8:3~6)
(85.1)
 해슬 불록(C. Hassel Bullock)이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확실한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긍정할 수는 없는 바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현실과 목표를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유효화시키지는 못한다. 동시에 인간 창조는 그를 위한 하나님의 가치 평가를 뜻하고 있다.”2 (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