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Ⅰ 부 사무엘: 왕도 없고 여호와의 말씀도 희귀함 (삼상 1-7) 제 1 장 거룩한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때에 자라남 (삼상 1-3)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하여,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세 번이나 그들의 요구를 들으라 하시고 왕 세우기를 허락하라고 하셨다(7, 9, 22절). 예루살렘 패망의 배경에서 사무엘상의 저자는 과연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묻고 있다. 이스라엘이 왕을 달라고 아우성일 때에 하나님께서 실망하시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엘가나가 자기 아내에게 한 대답 속에 도사리고 있는 하나님의 슬픈 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1:8). (55.1)
 한나의 경험 속에서 다른 두 개의 큰 상징들이 이스라엘의 왕을 구하는 애매성에 대한 복선으로 등장한다. 첫째는 성소에서 술취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지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악한 여자”(문자적으로는 “벨리알의 딸,” 16절)로 진짜 “벨리알의 아들들”(2:12)인 엘리의 악한 아들들과 한 편에 속했다고 간주된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악한 여자가 아니었다. 혹시 그녀는 그런 여자였는가? “왕 같은” 엘리는, 여호와의 성전(궁전) 의자(보좌) 위에 앉아서 그녀가 그녀의 요구한 것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그녀의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그가 알았다는 표가 없다.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였을 때에 그들이 구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었는가? 바로 이 “왕 같은” 인물 엘리가 법궤는 빼앗기고 “왕 같은,” 보좌를 이어받을 계승자인 그의 악한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보좌)에서 넘어져 죽었다. 이 모든 것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에 법궤와 “악한” 왕정에게 생겼던 일을 미리 말하는 비유로 볼 수 있다. (55.2)
 한나와 관련된 두 번째 상징은 2:1-10의 그녀의 찬양시 속에 나타난다. 이 찬송은 우선 그의 대적 브닌나에 대한 승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왕권을 가리킨다. 마지막 구절은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제3차적 적용은 실패한 왕정에 대한 고통스런 회상이다: (55.3)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2:4-5).
“[그는]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8절).
(56.1)
 이스라엘 왕조 역사의 마지막 장(왕하 25)은 이스라엘 무사들의 비극적인 패전을 묘사한다. 왕위에 등극할 왕자들이 그들의 아버지 시드기야 왕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의 눈이 뽑히고 그는 차꼬를 채운 채로 바벨론으로 이송된다(7절). 여호와께서 가난한 자를 영광과 풍부함의 자리에 올리시는 것이 아니라, 온 땅이 가난으로 찌들게 되었는데, 이는 결국 가장 “빈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들에서 일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12절). 그리고 풍자 중의 풍자는 그 책의 마지막 말 속에 나타난다. 바벨론 왕이 포로된 유다 왕 여호야긴을 부분적으로 회복시켜,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였다는 것이다(28절). 여호야긴은 죄수의 의복을 벗고 “왕의 앞에서 먹게” 되었고, 그가 종신토록 끊이지 않고 바벨론 왕으로부터 정수(定數)를 받았다(29, 30절). 그는 회복된 왕이었지만, 사는 날 동안 계속 포로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죽었다. (56.2)
 여호와께서는 엘리의 집이 “영영히” 여호와 앞에서 봉사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며(삼상 2:30), 사울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셨고(삼상 13:13), 또 다윗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삼하 7:16). 만일 엘리와 사울에게 주신 “영영히”의 약속이 그들의 죄 때문에 철회되었다면, 다윗에게 주신 약속들도 그와 같은 운명을 당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사무엘서 전체를 통하여 흘러나는 섬뜩한 암시이다. (56.3)
 이미 언급된 대로 수동적인 사무엘과 친절하나 무능한 엘리의 묘사는 첫 장들에서 왕권에 대하여 저자가 취한 애매한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한나가 아들을 얻을 것처럼, 백성은 왕을 얻을 것이며, 엘리나 사무엘이나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는가, 아니면 더 나은 길이 있었는가? 사무엘상 4-7장에서 우리가 볼 이야기들은 참으로 더 좋은 길이 있고, 적어도 과거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길은 그들이 요구한 왕 없이 하나님 앞에서 단순한 순종의 생활이다. 왕정이 몰락하고 포로 된 자들은 그 더 나은 길이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온 것인지를 다시 자문해야 한다. (57.1)
 사무엘상의 첫 세 장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엄청난 자유를 허락하신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은 순종할 수도, 거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에 관하여 그분의 섭리는 능동적이며, 온 우주에 대한 그분의 주권은 확고하다. 그는 한나의 태를 닫으실 수도 있다. 또 다시 그것을 열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2:25)고 하는, 엘리의 아들들에 관한 무서운 심판은 하나님의 계속적인 주권을 증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조물주의 뜻을 따라 혹은 반대하여 결정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잠잠치 않으시며, 의와 공의가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하신다. (57.2)
 ■말씀을 적용함
 1. 여호와의 도움, 인간의 도움. 한나의 생애를 주요 본보기로 삼아 아무 인간도 도울 수 없는 때에, 그녀가 어떻게 여호와께로부터 위안을 얻었는지를 나타내는 말씀들을 노트에 기록하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어떻게 그녀를 강하게 하고 격려하였는지를 나타내는 구절들을 기록하라. 다음과 같은 물음을 자신에게 물어 보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움을 마다하기가 쉬운가, 아니면 사람들을 통하여 주시는 도움을 마다하기가 쉬운가? 왜 그런가?” (58.1)
 2. 교회가 수준 미달일 때. 많은 사람들이 악하고 불충실할 때에 한나와 엘가나가 충성된 예배자로 남기 위해 거룩한 관습을 유지한 것을 통하여 나는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가?(노트에 답을 기록하라). “공식적”인 교회와 다른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있는가? 무슨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까? 지도력의 부족이나 악한 지도자 때문에 교회가 배도할 것처럼 표류할 때에도 나는 교회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두 문단으로 그것에 대한 반응을 기록하라. (58.2)
 3. 신실한 부모 노릇과 신실하지 못한 부모 노릇. 한나와 엘가나의 사무엘 양육 성공에서부터 기독교인들은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홉니와 비느하스 양육에 실패한 엘리, 또 아들들을 잘못 교육한 사무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성경은 왜 홉니와 비느하스의 어머니나 사무엘의 두 아들의 어머니를 언급하지 않는가? 부모가 자녀 교육 기술이 없어서 실패하였는지 아니면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택권을 마음대로 사용하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지 간단하게 논하라. (58.3)
 4. 하나님의 부름을 들음. 사무엘과 엘리는 그 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식으로 말씀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밤중에 들리는 소리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더 좋아하는가? 가부간에 그 이유는 무엇인가? 노트에 생각을 기록하라. (58.4)
 ■말씀을 연찬함
 1. 섭리와 자유. 사무엘상 1-3장에서 “섭리”에 관한 해석 중에 두드러진 것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다(1:5, 6)는 말씀과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2:25)는 말씀이다. 사무엘상 1-3장의 연구에 기초하여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섭리적 개입 사이의 긴장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라. 어떤 이들은 이 두 문단이 인색(吝嗇)하고 전단적(專斷的)인 하나님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려 하지만, 그대는 이 장들에서 참을성이 많으시고 관후(寬厚)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증거를 볼 수 있는가? 다음의 자료들을(할 수 있으면 다른 것들도 포함하여) 참고하여 여러 저자들이 당혹스런 말씀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알아보라. (59.1)
아써 S. 맥스웰,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3:145-154.
엘렌 G. 화잇, 부조와 선지자, 569-580.
F. D. 니콜 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4:461-467.
 한두 문단으로 연구자의 결론을 요약하라. (59.2)
 2. 메시야. 사무엘상 2:1-10의 한나의 기도에는 이스라엘 왕을 메시야(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칭한 첫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그 단어는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예수를 그(the)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다윗 계통의 그(the) 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단어는 풍부한 구약적 역사를 담고 있다. 성구 사전을 이용하여 구약에서 그 단어의 용례와 의미를 연구하되 특히 사무엘상․하, 시편, 이사야 등을 중점적으로 보라.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적고, 그것들이 그 단어들에 부여된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주의하라. 그리고 좋은 성경 사전에서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 항을 읽어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사전의 기사는 간단하다. New Bible Dictionary (2판), 763-772에 있는 R. T. 프랜스(R. T. France)의 기사 “Messiah”는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종합적으로 잘 조사하였다. (59.3)
 ■말씀의 추가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