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5. 엘 샷다이—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능력이 충만하신 이)
 구원의 드라마에서 엘 샷다이(`El šadday)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아브람과 사래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이 이름은 KJV에 Almighty (전능자)로 번역되어 있다. 그 말의 의미와 그 이름을 등장시킨 배경은 그 이름이 소개되기 전에는 우리가 몰랐던 하나님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이름으로 당신을 소개하실 때 이용하신 사건과 그 배경은 무엇인가? (77.1)
 하나님을 순종한 아브람(창 12:1, 4; 13:15-18)은 갈대아 우르의 친족들을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다. 주께서 그와 사래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다시 하시고 그 아들이 장차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과 메시야의 조상이 될 것을 말씀하실 때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 말씀을 경청했다. 그러나 실망의 세월이 한 해 또 한 해 저물어 갈 뿐 그들의 무자(無子)한 상태는 아직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드디어 노부부는 그들의 애굽인 하녀 하갈을 대모로 써서 자식을 얻어 보자는 사래의 제안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나자 하나님은 그 아이를 대망의 귀공자로 받아 주기를 바라는 아브람의 소원을 외면하신다. 좌절에 빠져, 하나님을 의심하고 싶어지고,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 의심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며 노부부는 믿음으로 참고 견디면서 하루하루 막연한 생활을 계속한다. (77.2)
 아브람—사래 부부와 맺어진 하나님의 언약
 몇 년 후 엘로힘 은 다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위한 당신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언약 체결자는 맹세까지 하시며 당신의 약속을 강조하신다(히 6:17, 18; 창 17:1). 비록 노부부는 믿지 못해 웃었지만(창 17:17) 주님은 그들의 무례함을 간과하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생명력을 부으실 적기(適期)를 기다리신다. 때가 되자 그는 아브람에게 남자로서의 무기력을 자인함과 동시에 순종을 표하는 뜻에서 할례의 칼을 몸에 대도록 하신다. 이 의식은 그와 그의 자손이 언약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성스런 표였다. 의식을 치른 후 스스로 입힌 상처를 통해 상징적으로 새로운 젊음의 상징을 선사 받은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함께 성령의 도움으로 그들의 운명을 성취할 준비가 완료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생산력이 없음을 철저히 자각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행할 사람으로 무르익었던 것이다. (78.1)
 그들이 이런 단련을 통과하는 위태로운 시기에 주님은 아브람에게 엘 샷다이 로 나타나신다. 그는 먼저 그들의 이름을 바꾸시어 그것으로 그들은 이제 새로운 성품을 받은 새 사람, 즉 거듭 난 사람들이 되었다는 상징적인 표를 삼으신다. 오래 전 앤드류 주욱스(Andrew Jukes)는 그들의 이름에 숨을 세게 내쉬어야 발음할 수 있는 (ah)! 소리나는 히브리 글자를 첨가함으로써, 엘 샷다이 는 그들의 생명에 당신의 신을 불어넣으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아브람(Abram)은 아브라함(Abr-ah-am)이 되고 사래(Sarai)는 사라(Sar-ah)가 되었다. 이 개명(改名)은 하나님께서 두 노 성도의 마음을 생명의 영으로 충만케 하고 그들의 육신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셨음을 의미하는 표이다. (78.2)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 가족을 만드실 때 바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는 아담을 당신의 생명, 당신의 본성을 공유한 자로 만드셨다. 그의 몸에 전능자의 호흡이 들어가자 그는 하나의 ‘산 사람’[生靈]이 되었다. 아담의 모습은 그를 만드신 이의 형상을 닮아 건장하고 잘 생기고 순결했다”(SDABC 1:1082). 그런데 지금은 그 전능자께서 당신의 은혜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아브람과 사래의 죽은 흙덩이 몸에다 새 생명을 불어넣으신 것이다. 이 새 창조를 통해 그들은 새로운 피조물들이 되었다. (79.1)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호흡을 받았다
 백 세의 아브라함과 구십 세의 사라는 곧 아들을 낳아 부모가 되었다. 수십 년에 걸친 훈련을 통해 이 노부부는 아무도 꺾을 수 없는 믿음을 키웠고 그 믿음을 순종으로 나타내 보였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차지할 자손을 얻고 그들의 후손을 통해 세상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막연하던 약속은 갑자기 신빙성을 띠게 되었다(막 10:27; 9:23). 그들은 생명을 주는 은혜를 받았다. 그래서 죽은 것 같았던 그들 노부부에게서 여러 민족이 태어나는 역사가 이루어졌다(히 11:12). (79.2)
 그들을 다루신 하나님의 부드러운 방법을 회고하고 그들의 사상을 성숙시키기 위한 그분의 교육 방법을 더듬어 볼 때 우리는 치밀하신 엘 샷다이 의 이해와 인내를 보게 된다. 그분의 유일한 관심사는 그의 자녀들이 자라고 철들어 그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당신께서 주시는 그 많은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며 너그러운 봉사로 남들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79.3)
 이 이름의 어원적 연구는 그런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미 연구 한대로 (`El)은 강한, 또는 능력이 막강한(겔 31:11), 힘있는 자(겔 32:21) 또는 능력(창 31:29)을 의미한다. 샷다이(šadday )는 히브리어 샤드(šaḏ)에서 나온 말인데, 샤드 는 어머니의 유방(호 2:4; 9:14; 겔 16:7; 23:3, 21; 시 22:10) 또는 젖꼭지(사 32:12)를 의미하고 여자가 이 말로 묘사된 경우에는 성숙한 여인임을 의미한다. 이 낱말의 개념은 젖먹이(욥 3:12; 호 9:14)와 관련이 있고 때로는 젖먹이는 엄마를 뜻한다(욥 24:9 사 60:16; 66:11). (79.4)
 샷다이“모든 것이 풍부한 분”이란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낱말은 하나님의 넘치는 선의(善意)를 주목하게 한다. 이것은 세상을 온통 덮으리 만치 풍부한 은혜와 진리의 홍수를 베푸신 예수를 통해 전시되었다. 엘 샷다이 란 이름은 오경(五經)에 일곱 번(창 17:1; 28:3; 35:11; 43:14; 49:25; 출 6:3) 나오는데, 모두 하나님의 풍부한 은사와 능력을 강조한다. 은 없이 샷다이 만 사용된 것으로는 발람(민 24:4, 16), 나오미(룻 1:20, 21), 시편 기자들(시 68:14; 시 91:1)의 경우가 있고, 그 밖에도 선지서에 세 번(사 13:6; 겔 1:24; 욜 1:15), 욥기에 31번 나온다. (80.1)
 샤드(šaḏ)에서 파생된 동사 샤다(šaḏah)는 위급한 가뭄에 풍족한 비를 내려 살려주는 경우와 같이 “적시다,” “붓는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리고 이 낱말은 풍성한 복을 부어 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싯딤” 골짜기(창 14:3, 10)란 이름은 어원적으로 이 낱말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동산처럼 물을 잘 댄”곳이란 뜻이다. 이 골짜기에는 샘들이 많고 녹음이 짙고 수목이 무성하다. 그러므로 무성(茂盛)하다는 말 속에는 이런 개념이 들어 있다. (80.2)
 다른 히브리어의 경우처럼 엘 샷다이 는 반대로 파괴적 범람을 뜻하는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이 말은 적군이 쳐들어와 도성을 홍수처럼 뒤덮은 것을 묘사하기도 한다(시 137:8; 렘 47:4, 7; 호 10:2). 하나의 낱말이 살려주고 돌본다는 의미로도 쓰이고 파멸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 차이는 간단하다. 알맞고 적당하면 도움이 되나 과도하면 파괴적이다. 엄마의 젖이 너무 많이 나오면 젖 빨던 아이가 숨이 막히는 것과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80.3)
 「70인역」은 엘 샷다이 를 번역하기 위해 몇 개의 헬라어를 동원했다. “하나님(theos),” “주(kurios),” 다섯 번은 “충분하신 분(hikanos)”이라 했고, 대개는 “전능하신 분(pantokratōr)”이라 했다. 이 말이 KJV에서는 Almighty (전능자, 계 1:8; 4:8, 등)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제롬(Jerome)이 사용한 omnipotens [omnipotent ]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Pan-은 Pan-Am의 경우에서처럼 “범(汎)-”의 뜻을 가진다. 독재자를 의미하는 Auto-krat의 둘째 음절은 판토크라토르(pantokratōr)의 셋째 음절과 어원이 같다. 그래서 판토크라토르“만인의 통치자”로 번역된다. (80.4)
 이교의 가르침은 참된 것을 왜곡한 것
 이교의 내막을 살펴보면 많은 하늘의 진리가 왜곡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엘 샷다이 란 이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그 이름을 문자적으로 풀이할 때 “전능한 젖가슴을 가진 이”란 뜻이므로 은유적으로 “모든 것이 풍만한” 또는 “복을 부어주는 전능자”란 뜻을 가지므로 거기서 유방이 여럿 달린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 풍습이 나왔다.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던 다이아나 신은 몸통 전면(前面)에 엄청나게 큰 유방이 여러 개 달린 괴상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힌두교인들은 오늘날 그와 유사한 기괴한 여신들을 섬긴다. (81.1)
 요약: 구원의 드라마에서 엘 샷다이 께서 처음 행하신 일은 아브람과 사래를 새롭고 발랄한 사람으로 일변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그의 생명의 영을 불어넣으신 일이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이 칭호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복을 물 붓듯 부어 주시는 분임을 말해 준다. (81.2)
 신약의 복음서들은 그리스도를 그의 구원의 보혈과 변화시키는 은혜를 사랑으로 값없이 인류에게 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행 20:28).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아버지는 오순절 때 그의 헌신적인 제자들에게 “이른 비”를 억수 같이 부으셨다(행 2:17, 33). 목마른 제자들에게 예수는 아직도 그의 초청을 연장하신다: “와서 값없이 마음껏 넘치도록 마시라”(요 7:37, 38). 또 하나님은 약속하시기를 “네 입을 크게 벌리라. 내가 네 입을 채우리라”(시 81:10)고 하신다. 그는 당신의 교회에게 확언하시기를 그들이 “이방인들의 젖을 빨며 왕들의 가슴을 빨 것이요”(사 60:15, 16), 그 풍성함으로 배부르리라 하신다. (81.3)
 엄마가 젖먹는 아들을 따뜻한 품에 안고 편안하게 보살피는 것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신다(사 66:10-13). 엘 샷다이 는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신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밧모 섬에 유배된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가슴”에 금띠를 두른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신다(계 1:8, 13). 사도 요한이 쓴 이 “가슴”이란 말은 남자의 가슴과 여자의 가슴을 모두 일컫는 마조스(mazos)가 아니라 여성 곧 어머니의 가슴만을 일컫는 마스토스(mastos)였다. [현대의 “유방 절단 수술”mastectomy라 한다.] 여기 요한계시록에 그리스도는 금 촛대들로 상징된 각 시대의 당신의 백성에게 봉사하시려고 띠 띤[준비한], 모든 것이 충분하고 모든 것이 풍만하신 제사장으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다. 그를 따르는 모든 무리는 요한계시록에 “일곱 금 촛대”로 묘사되어 있다. (82.1)
 오 주여, 주께서 매일의 봉사를 하실 때 우리를 기억하시고, 또 주님을 노래하도록 가르쳐 주소서. (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