㉑ 한편 성벽이 무너지는 혼란한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한 시드기야는 여리고 쪽으로 도주했으며 추격해 온 바벨론 군사들에게 잡혀서 느브갓네살의 야전 사령부가 주재한 리블라에 끌려 와 그의 목전에서 아들들이 죽임당하는 참상을 겪는다. 아마도 이 끔직한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아버린 왕의 눈을 뜨라고 명령을 받았을 것이며 화가 치민 느브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그의 두 눈마저 뽑혀졌다.(
왕하 25:4-7, 19-21, 렘 52:10).
눈을 감은 시드기야 왕 앞에 무엇이 아른거렸을까. 아마도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렘 38:17-21). 반역을 선동한 방백들도 함께 처형되고 시드기야왕은 눈이 뽑힌 채 죽기까지 옥살이를 했다(
왕하 25:1-7, 렘 52: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대하 20:20).
기원전 626년에 부르심을 받아 40년 간을 침몰당하는 조국과 함께 민족의 고뇌 속에서 비탄에 젖은 외로운 모습으로 왕과 백성들에게 회개하면 살 것이라고 호소하고 애곡한 예레미야의 노력도 효 혐이 없었다. 그는 바로 10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을 도와 나라와 민족을 앗시리아의 손에서 건졌음을 상기하면서 그도 거룩한 성과 동족을 바벨론의 파멸로부터 건져보려고 안간 힘을 다했으나 그는 그러한 히스기야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동족과 함께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하기로 택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백성을 권면하다가 또 다시 배역의 길로 나서 이집트로 망명한 무리들에게 끌려 이집트 땅 다바네스로 가서 거기서도 회개의 권면을 계속하다가(
렘 41:17-43:13), 전설에 의하면 거기서 동족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SDABC, vol. 8, 564-567. 
느브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 1703년판 네덜란드 성경의 동판화. 로메인데후겐 작.

유다인들의 이동은 기원전 605, 597, 586년에 있었는데, 느부갓네살이 팔레스틴에서 소요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최대로 7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포로로 붙잡혀간 것으로 추정된다. 유랑민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그 중심지 중 하나는 바벨론 도성의 남동쪽인 니푸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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