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1 장 총론
 다니엘서의 아람어는 뒷 부분의 경우 벨사살 원년 즉 기원전 553년경이 된다. 이창규역, 다니엘서 주석(서울 : 시조사, 1973), 211(SDABC, vol, 4.의 다니엘서 부분. 이후로는 다니엘서 주석으로 칭함).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아람어와 에스라서의 아람어 사이에 빠르게는 16년(553-537), 멀게는 96년(553-457)의 상거 밖에 없는 셈이 된다. (2.52)
 그런데 다니엘서에 쓰여진 히브리어는 에스겔서의 히브리어와 같은 기원전 6세기의 문체(文體)이고 다니엘서에 쓰여진 아람어는 에스라서의 아람어와 꼭 같은 기원전 6세기의 공용어(公用語) 문체인 것이다. 에스라서가 기원전 6세기의 문서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다니엘서가 바로 기원전 6세기의 다니엘에 의해 쓰여진 문체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Quimby, 33 (2.53)
 마) 사해(死海) 사본의 증언
 주지하는대로 2차대전 직후인 1947년 봄 사해의 서북방 해안 가까이의 유대광야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던 아랍인 목동(Muhammad ed Dib)에 의해 쿰란(Qumran)으로 불리우는 황량한 산비탈 일대의 동굴들에서 최선의 상태로 보존된 최고(最古)의 구약성경 사본(寫本)을 대량으로 발견해 내는 20세기의 기적을 보게 되었다. (2.54)
 감정 결과 적어도 11개의 동굴들에서 나온 이 사본들은 대부분 기원전 2세기에 필사(筆寫)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바로 쿰란 제1 동굴에서 발견된 수백개의 사본 단편들 가운데 다니엘서의 22개 절이 쓰여진 세 개의 단편(1:10-17, 2:2-6, 3:22-30)이 나왔다. (2.55)
 특히 2장 2-6절 부분 즉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바뀌는 부분인 4절부터는 역시 아람어로 쓰여 있었다. 그후 제4 동굴에서 나온 90여개의 구약성경 사본 가운데 다니엘서의 사본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제11 동굴에서도 또 다시 다니엘서 사본 2개가 다시 발견되어 다니엘서가 이미 기원전 2세기 훨씬 이전 틀림없이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밖에 없는 정통적인 구약 정경임이 고고학으로도 확증된 것이다. (2.56)
 바) 동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의 증언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 출신으로 유다의 국운(國運)이 기울던 기원전 597년 여호야긴왕을 비롯한 일만명의 유대인과 함께 제 2차로 바벨론에 포로돼 갔다(왕하 24:10-16, 대하 36:9, 10, 겔 1:1-3). 포로 당시의 그의 나이가 25세쯤이었을 것인데, 그는 바벨론 땅에서 22년 간(593-571BC) 선지자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했다. 이리하여 예레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 고토(故土)에 남아 있는 동족을 위하여, 다니엘이 바벨론의 궁전에서 봉사하고 있는 동안 에스겔은 바벨론에 잡혀 온 유대인 동족을 위해 봉사한 것이다. SDABC, vol. 8, 335. (2.57)
 그런데 바로 이 에스겔이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 바벨론에서 함께 평생을 살아 온 동료 포로 정치가-선지자인 다니엘에 대하여 3회나 언급하고 있다는 있음직한 사실이다(14:14, 20, 28:3). 이상의 세 귀절에서 에스겔은 구약의 의인 노아와 욥과 함께 다니엘을 꼽고 있다. 다니엘은 이미 생전에 살아 있는 의인으로 간주된 것이다. 에스겔이 그의 책을 그의 선지자 직분을 끝낼 무렵인 기원전 571년경에 썼다고 한다면 그 때의 다니엘의 나이는 대략 52세쯤이 되었을 것이다. 대제국의 총리를 역임하며 그 흠 없는 생애를 살면서 동족을 위해 그토록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다니엘을 에스겔이 그의 책에서 언급했음은 자연스럽고 확실한 방증이 되는 것이다. (2.58)
 사) 사도 요한과 바울의 증언
 요한은 계시록에서 10회 이상 다니엘서의 예언과 표상을 인용하고 있다. 만약 다니엘서를 구약 정경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면 계시록은 물론 그 밖의 요한의 기록도 의심할만 할 뿐더러 요한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서도 결함(缺陷)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방인의 사도인 사울도 적어도 그의 세 편지서에서 다니엘서를 인용하고 있어 다니엘서의 정경성 여부는 사도 바울 서신의 정경성과도 불가분한 것이다. (2.59)
 ☆ 요한계시록에 인용된 다니엘서

(요한계시록) (다니엘서)
1:7, 17:14 7:13, 14, 27, 2:45, 8:25
1:13-16, 2:18 10:5, 6
1:17 10:8-11
10:5, 6 12:6, 7
13:5-7 7:8, 11, 21, 25
20:1 2:35
20:5, 6, 15 12:1
(2.60)
 ☆ 바울 서신에 인용된 다니엘서

히 11:13, 14 단 3:25, 6:22
살후 2:3, 4 단 7:20, 25
고전 6:2 단 7:22
(2.61)
 아) 예수 그리스도의 결론적인 증언
 이상의 여러 증언 외에 우리는 다니엘서의 선지자적 직분과 다니엘서의 정경성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결론적인 확증을 가지고 있다. 감람산 위에서의 마지막 설교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세상 끝을 예언하시면서 다니엘서의 예언을 인용하시고 강조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 · ·”(마 24:15, 막 13:14참조)의 말씀을 전제로 다니엘 9:27, 11:31, 12:11의 예언을 직접 인용하셨다.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께서는 다니엘서의 기자가 다니엘임을 확인하셨고 다니엘을 선지자로, 다니엘서를 정경(正經)으로 확증하신 것이다. (2.62)
 그 밖에도 아래와 같이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는 다니엘서를 인용, 또는 배경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정경성을 의심하거나 비평하는 사람은 신분과 이유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불신은 물론 복음서에 대한 권위도 부인하는 바가 되어 결국 불신자요 반성서적인 입장임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아래에 복음서에 인용된 다니엘서의 사례와 든다. (2.63)
 나. 헬라어 사용에 대한 비평과 반증
 다니엘서의 아람어 부분(2:4-7:28)인 3장 5절에는, 세 마디의 헬라어가 사용되었다. 이 사실을 들어 비평자들은 다니엘서가 기원전 6세기 기록이 아니라, 헬라 문명이 보급된 이후인 기원전 2세기쯤에 쓰인 증거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 세 마디 헬라어는 모두 악기 이름으로 바벨론의 여러 관현악기(管絃樂器) 가운데 포함돼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어떻게 바벨론 사람들이 헬라어 악기를 쓸수 있었겠는가. (2.65)
 이러한 비평은 고고학의 증거로 반증되었을 뿐더러 오히려 다니엘서의 진실성을 드높이는 결과가 됐다. 즉 바벨론의 문서 보관소에서 발굴된 느브갓네살 당시의 설형문자 점토문서에서는 소아시아의 서안 지방의 그리이스 식민지로 헬라 문화권에 들어간 이오니아인(Ionian) 들과 리디아 사람들이, 바벨론의 건축사업을 위해 고용돼온 여러 외국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 건축기사나 공예인들이 필경 저들의 악기를 휴대하였음에 틀림 없다. 다니엘서 주석, 89 당시 동쪽과 서쪽 간에 폭 넓은 문화교류와 인적(人的) 교류가 있어 병정들과 장인(匠人)들 건축기사들이 왕래 했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Charles Boutflower, In and Around Daniel, XVII, Table III, cited by Criswell, vol. 1, 31. (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