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1 장 총론
 ▷네르갈샤르우스르(Nergal-sharusur · 560-556 BC) · · · 느브갓네살의 사위 가운데 하나로 전왕 아멜마르둑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2.121)
 ▷라바쉬마르둑(Labashi-Marduk · 556 BC) · · · 전왕 네르갈샤르우스르의 어린 아들로 재위 2개월도 못되어 나보니더스를 추대한 모반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2.122)
 ▷나보니더스(Nabonidus · 556-539 BC) · · · 느브갓네살의 사위 가운데 하나로 아들 벨사살과 함께 신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이다. 밝혀진 고증(考證)에 의하면 나보니더스는 본래 하란의 영주(領主) 나부발라쑤이크비(Nabubalatsu-iqbi)와 그곳의 월신전(月神殿)의 여제사장 수무아담카(Shumuadamqa) 사이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610년 메대와 바벨론에 의해 하란이 점령당할 때 그의 어머니가 느브갓네살의 처첩으로 잡혀 와 왕의 사랑받는 후궁이 되자 그의 아들인 나보니더스도 함께 느브갓네살의 신임과 총애를 받아 국사를 맡는 한편 아마도 느브갓네살의 딸 니토크리스(Nitocris)와 결혼함으로써 사위가 되었다. 다니엘서 주석, 143. 이렇다면 그러한 관계를 통하여 나보니더스의 아들인 벨사살은 느브갓네살의 외손자가 되어 다니엘 5장 11절“왕의 부친”이란 표현이 설명될 수도 있다. 즉 성경상의 히브리어 의미에서 “아버지”는 동시에 “조상” 혹은 “할아버지”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Gane, 21. 그렇지 않다 해도 나보니더스의 어머니가 느브갓네살의 후궁이었으므로 나보니더스는 의붓 아들이기도 하니까 앞서의 관계가 성립된다. (2.123)
 나보니더스는 기원전 553년 동부 팔레스틴의 원정에 참여하고 있던 중 신병(身病)으로 레바논에서 요양하게 되어 같은 해 그의 맏 아들 벨사살에게 왕권을 주어 동위왕(同位王)이 되게 했다. 기원전 552년 바벨론성에 귀임한 벨사살은 그의 아버지의 연호(年號)와 이름으로 본토를 다스렸지만 맹세에 있어서는 부자(父子)의 이름을 함께 써서 그가 동위의 섭정왕(攝政王)임을 분명히 했다. (2.124)
 나보니더스가 병에서 회복된 후 서북 아라비아를 원정(遠征)하여 오아시스 테마(Tema)를 빼앗아 거기서 기원전 545년까지 여러 해를 살았다. 기원전 539년 페르샤에 의해 바벨론이 함락될 때 남쪽으로 피신했던 나보니더스는 후에 바벨론에 돌아와 고레스에게 투항(投降)하였으며 이어 저 멀리 카르마니아(Carmania)의 봉신(封臣)으로 보내졌다고 전한다. Ibid., 22. 나보니더스는 정치와 군사에는 무관심하였으며 오히려 종교와 문화 특히 고고학에 깊은 흥미를 가져 많은 노력과 시간을 바쳐 왕위까지 아들에게 물리는 나약한 치세를 했다고 여겨진다. (2.125)
 ▷벨사살(Belshazzar · 553-539 BC) · · · 신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으로서의 그의 신원이 어떻게 밝혀졌는지는 전술한 바와 같다. 신병으로 요양중인 부왕의 섭정으로 기원전 553년경에 즉위하여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밤 다니엘 5장의 주연(酒宴) 후에 침입한 페르샤 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보다 상세한 역사적 배경은 5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신바빌로니아의 왕조를 도해하면 아래와 같다. (2.126)
< 신바빌로니아 왕조 >
1) 나보포랏살 (626-605 BC)

(아 들)
2) 느브갓네살Ⅱ (605-562 BC)

(아 들)

3) 아멜마르둑 (562-560 BC)

(느브갓네살의 사위)

4) 네르갈샤르우수르(560-556 BC)

(아 들)

5) 라바쉬마르둑 (556 BC)

(느브갓네살의 사위)

6) 나보니더스 (556-539 BC)

(아 들)

7) 벨사살 (동위섭정 553?-539 BC)
(2.127)
히브리 왕조 일람
(SDABC, vol. 8, 206, 207; 연대는 모두 기원전(BC)임) (2.128)
사 울 (1050 - 1011)
다 윗 (1011 - 971)
솔로몬 ( 971 - 931)

남방 유다 북방 이스라엘
르 호 보 암 (931 - 913) 여 로 보 암 (931 - 910)
아 비 얌 (913 - 911)
아 사 (911 - 869) 나 답 (910 - 909)

바 아 사 (909 - 886)

엘 라 (886 - 885)

시 므 리 ( 885)

오 므 리 (885 - 874)

(디 브 니) (885 - 880)
여 호 사 밧 (872 - 848) 아 합 (874 - 853)
여 호 람 (854 - 841) 아 하 시 야 (853 - 852)
아 하 시 야 ( 841) 요 람 (852 - 841)
아 달 랴 (841 - 835) 예 후 (841 - 814)
요 아 스 (835 - 796) 여 호 아 하 스 (814 - 798)
아 마 샤 (796 - 767) 요 아 스 (798 - 782)
아 사 랴 (790 - 739) ※ 여 로 보 암 II (793 - 753) ※
(웃 시 야) 스 가 랴 (753 - 752)

살 룸 ( 752)
요 담 (750 - 731)※ 므 나 헴 (752 - 742)

브 가 히 야 (742 - 740)
아 하 스 (735 - 715)※ 베 가 (752 - 732)※
히 스 기 야 (729 - 686)※ 호 세 야 (732 - 722)
므 낫 세 (697 - 642)※
아 몬 (642 - 640) ※표한 왕들은 전 왕과 섭정함으로써 중복되는 재위년을 가진 왕들임. 베가의 경우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죽임으로써 실제로 왕국을 다스리기 10년전인 752 BC로 계산한 것임.
요 시 야 (640 - 609)
여 호 아 하 스 ( 609)
여 호 야 김 (609 - 598)
여 호 야 긴 (598 - 597)
시 드 기 야 (597 - 586)
(2.129)
 다.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가) 통일 왕국 시대(1050-931 BC)
 기원전 1405년경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이 초대 왕으로 취임할 때까지 약 400년 간은 무질서와 배도(背道)가 특징이 된 사사(士師)시대를 경과한다(삿 17:6, 21:25). 사사시대의 연대에 관하여는 SDABD, 210 참조. 구약 성경에는 초대 왕인 사울이 몇 년 간 재위(在位)했는지를 확실히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누가가 기록한 사도 바울의 설교에는 약 40년 간으로 기록되었다.(행 13:21) (2.130)
 그 후 다윗이 40년 간을 다스리면서(대상 29:27) 왕국의 확고한 기초가 놓이고 역시 40년 간 다스린 솔로몬에 이르러(왕상 11:42)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솔로몬의 하나님께 대한 배도와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20년 간이나 계속된 무리한 건축공사는 마침내 하나님의 징계와 민심의 분열 ,그리고 안팎의 반역을 초래하여 통일왕국의 기초가 무너지고 만다. (2.131)
 솔로몬이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둘로 쪼개져서 남쪽은 솔로몬의 어리석고 지모(智謨) 없는 아들 르호보암에 의해 다윗의 혈통이 이어지는 유다 왕국이 섰으며(왕상 12:1-19), 북쪽에는 솔로몬 때에 그의 폭정에 항거하다가 이집트에 망명했던 신하 여로보암이 돌아와 왕이 된 북방 이스라엘 왕국이 섰다(왕상 11:26-40, 12:25-33). 이리하여 사울 때로부터 솔로몬 때까지 계속된 통일 왕국시대는 120년 만에 무너지고 기원전 931년 남북왕조로 나뉘게 된 것이다. (2.132)
 나) 북방 이스라엘 (931-722 BC)
 그 후 북방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와 사르곤 2세에 의해 망하기까지 약 209년 간 20명의 왕이 재위했으나 오므리와 아합 사이에 디브니(885-880)를 포함시키면 20명이 되고, 제하면 19명이 된다(왕상 16:21, 22). 한결 같이 모두 악한 왕이었다. 북방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은 계속되어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아등 쟁쟁한 선지자들이 부르심을 받아 회개와 개혁의 기별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의 진정한 부흥이나 개혁도 없이 결국 인내와 자비의 선지자 호세야의 부르짖음을 마지막으로 그 패역은 죄악의 잔을 채워 결국 기원전 722년 수도 사마리아가 포위 3년 만에 앗시리아 군에 함락되고 백성들은 가장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하거나 포로되어 감으로써 북방 이스라엘은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왕하 17:3-18) (2.133)
 「북방 왕조에게 내린 멸망은 직접 하늘에서 내린 형벌이었다. 앗수르 사람은 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려고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하였다. 사마리아가 함락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예언하기 시작한 이사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앗수르 대군을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사 10:5)고 하셨다.」(선지자와 왕, 291.3) (2.134)
 다) 남방유다(931-586 BC)
 남방 유다도 345년 동안 20여명의 왕이 뒤를 이으면서 패역할 때마다 개혁과 부흥의 기별을 가진 선지자들 즉 미가, 이사야, 나훔, 하박국, 스바냐, 요엘, 예레미야 등이 때 맞춰 보내졌고 이따금 아사, 여호사밧,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등 비교적 선한 왕들도 나왔으나 결국은 패역과 불순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눈물의 선지자 예례미야의 호소도 아랑곳 없이 바벨론에 의하여 세 차례나 포로된 끝에 기원전 586년 8월 마침내 예루살렘이 느브갓네살에게 함락됨으로써 폐허가 된 채 예언한 대로 70년의 포로생활을 계속하게 된다(렘 25:11). (2.135)
 바로 이러한 막바지에 접어든 남방 유다의 역사가 곧 다니엘서 직접적인 배경이 되기 때문에 이를 다음의 남북 왕조의 일람과 함께 약술하여 다니엘서 이해에 도움을 삼고자 한다.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