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1 장 총론
 ▷에살핫돈(Esarhaddon · 681-669 BC) · · · 그는 아버지를 죽이는데 가담하지 않은 산헤립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사 37:38) 기원전 675년 이집트까지 정복하여 최대의 영토를 확장했으나 주변 국가들의 끊임없는 반역으로 보전이 용이하지 않게 되었다. (2.102)
 ▷아수르바니팔(Ashurbanipal · 669-627 BC) · · · 앗시리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최후의 위대한 왕으로 이집트를 재차 정복하여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테베를 노략하는등 외정(外征)에 대성했다. 특히 고대 세계 최대의 왕립도서관을 세워 고대의 각종 문헌을 수집하여 소장한 것으로 더욱 유명한데 1853년 12월 22일밤 영국 사람 랏삼(Hormuzd Rassam)등에 의해 니느웨가 확인되고 이 도서관이 발굴되었다. 이곳에 소장된 고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문서 가운데 성경 창세기의 창조와 홍수 이야기와 흡사한 점토판들이 발견되었음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2.103)
 ① 아수르바니팔 대왕 이후 그의 두 아들이 몇 년동안 다스렸으나 이미 대대적인 반역을 시작한 주변의 국가들을 제압할만한 역량을 잃은 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특히 기원전 626년 바벨론은 느브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포랏살의 영도 아래 독립을 선언하고 도전했으며 메대도 시악사레스(Cyaxares)의 영도 아래 기원전 614년 앗수르(Ashur)성을 함락시키고 612년에는 수도 니느웨가 바벨론과 메대와 스키디아(Scythians) 연합군에 의해 3개월 간 포위된 끝에 스바냐와(습 2:13-15) 나훔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나 3:1-3) 처절하게 함락되었으며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버티려던 신-사르-이슈쿤(Sin-shar-ishkun . 626?-612)왕도 함께 죽었다. Finegan, 219. (2.104)
 ② 니느웨가 함락된 뒤 앗시리아의 유민(遺民)들은 앗시리아의 최후의 통치자인 아수르-우발릿 2세(Ashur-uballit Ⅱ · 612-609? BC)의 지도 아래 유프라테스를 건너 하란(Harran)을 수도로 정하고 이집트의 지원을 받으며 재기(再起)를 꿈꾸었다. 그러나 610년 나보포랏살은 동맹국 스키디아의 지원을 받으며 또다시 하란을 점령했다. (2.105)
 ③ 때마침 이집트에서 삼틱 1세(PsamtikⅠ663-609 BC)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느고 2세(Necho Ⅱ, 609-594 BC)가 왕위에 오른 즉시, 앗시리아의 진군(殄軍)을 도와 하란을 탈환하기 위해 지원군을 이끌고 서둘러 북상(北上)했다(왕하 23:29, 대하 35:21). 때에 재위 31년을 맞이한 유다의 요시아 왕은 국제정세가 신흥 바빌로니아에 유리하게 돌아감을 느끼고 친바벨론 정책을 취하여 느고 2세의 이집트 군사를 므깃도 평지에서 맞아 북상을 저지하다가 전사하는 비운을 맞았다(왕하 23:29 이하, 대하 35:20-24). (2.106)
 ④ 앗시리아의 왕 아수르-우발릿 2세를 부추겨 하란을 탈환하려던 느고 2세의 원정은 실패로 끝나고 퇴각하면서 시리아를 비롯한 팔레스틴 일대를 공략하였으며, 특히 하란 서쪽의 유프라테스강 상류의 강변의 요충도시인 칼케미슈에 앗시리아의 진군과 함께 기지를 구축하였다. (2.107)
 ⑤ 그러나 기원전 605년 나이 많고 병약해진 나보포랏살은 아들 느브갓네살을 보내어 칼케미슈에서 이집트와 역사적인 대격전을 벌였는데 이 전쟁에서 이집트는 대패하여 팔레스틴에서의 기반을 잃고 본국으로 철수하여 그 후 다시는 이전의 강대국으로서의 위세를 영원히 회복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렘 46:2). 그리고 앗시리아의 마지막 명맥도 영원히 끊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상하던 느고 2세의 손에 요시아가 죽음으로써 야기된 이후의 사태가 바로 유다의 최후의 역사였으며 그것이 또한 다니엘서의 역사적 배경으로 전개된 것이다. (2.108)
 나. 신바빌로니아(Neo-Babylonia)
 세계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바빌로니아를 구분하고 있다. 즉 기원전 1830년부터 1531년까지 3세기 동안 존속한 바벨론 제 1왕조인 구바빌로니아(the Old Babylonia)와 그 뒤 천년 후에 같은 자리에서 1세기를 못 넘긴(605-539 BC)느브갓네살의 신(新)바빌로니아(The Neo-Babylonia)로 구분된다. 성경에는 이런 구분이 없이 바벨론(Babylon)으로 불리워져 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는 바벨(Babel)이라 부르고, 헬라어로는 바빌론(Babylon)이라 불리운다. 히브리인들은 그 뜻을 동사 “발랄”(Balal)에 결부하여, “혼잡”(confusion)으로 해석하지만 바벨론 사람들은 이를 “바비루”(Babilu)로 하여 “신의문”(gate of god)으로 부르고 있다. 본래의 어원으로 볼 때 바벨론의 뜻은 동사 “바발루”(babalu), 즉 “흩어지다, 사라지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나, 그들의 자존심 때문에 바벨론인들은 “문”의 뜻인 “바부”(babu)와 “신”의 뜻인 “일루”(ilu)의 합성어로 간주한다. (2.109)
 노아의 아들인 함의 손자인 니므롯이 홍수 후에 중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에 세운 도시인 바벨론(창 10:10, 11:9에는 바벨)은 그의 권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창 10:10). (2.110)
 그후 아라비아 사막 쪽에서 밀려온 아모리(Amorites) 족속이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남하하면서 유프라테스 강변의 도시 바벨론을 수도로 정하고, 거기서 제1왕조를 시작하여 약 3세기(1830-1531 BC)에 걸친 강력한 대제국을 이룩했다. 제1왕조의 11번째 왕인 하무라비(Hammurabi)는 하무라비법전으로도 유명하거니와 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그전까지는 미미했던 바벨론시를 고대 세계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음이 고고학 발굴에서도 확인되었다. M. C. Tenny(ed.), Pictorial Bible Dictionary(Michigan : Zondervan, 1970), 332. 또한 바벨론의 신 마르둑(Marduk)을 여러 신 위에 뛰어나게 했으며 그를 위한 신전 에테메난키(Etemenanki)를 고대 세계의 경이가 될 만큼 웅장하게 건립했다. (2.111)
 ① 제1왕조가 망한 뒤에도 바벨론은 계속 고대 세계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다가 앗시리아 제국 당시에는 봉신(封臣)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계속적인 반역으로 앗시리아의 산헤립은 기원전 689년 바벨론을 한 때 완전히 파멸시켜 끝장을 내려고까지 했으나 그 중요성 때문에 곧 다시 재건되었다. SDABD. 109. (2.112)
 ② 그러다가 기원전 626년에 이르러 바벨론의 봉신왕이 나보포랏살은 마침내 독립을 선언하고 종주국(宗主國) 앗시리아와 전쟁을 시작했으며 종내에는 메디아와 동맹을 맺고 스키디아의 지원을 얻어 기원전 612년 니느웨를 함락함으로써 앗시리아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했다. (2.113)
 ③ 기원전 605년 칼케미슈에서 이집트 대군과 앗시리아 잔군의 연합 세력을 격파함으로써 명실공히 근동(近東)의 패자(覇者)가 되었으며 같은 해 서거한 부왕 나보포랏살을 이어 느브갓네살이 등극함으로써 대제국 신바빌로니아(바벨론)의 찬란한 출범이 있게 된다. 이 신바빌로니아가 곧 다니엘서의 주요 배경인 바벨론인 것이다.

 

 

  (2.114)
 ④ 성경에 이 바벨론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유다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회복된 후 위문사절을 보냈던 므르닥발라단(Merodach-baladan)의 경우였다(사 39:1-8, 대하 32:31, 왕하 20:12-19). 당시 바벨론에서는 갈대아(Chaldean)족의 추장인 므르닥발라단이 바벨론의 왕으로 나서서 앗시리아에 대항하다가 곤경을 당하던 때였기 때문에 팔레스틴의 강력한 반앗시리아 국가인 유다와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고자 사절을 파견한 것이었다. (2.115)
 ⑤ 그 후 므르닥발라단은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와 그 아들 산헤립에게 대패하여 독립 항쟁은 좌절되고 말았다. (2.116)
 ⑥ 기원전 626년 므르닥발라단의 자손으로 같은 갈대아족인 나보포랏살이 또 다시 바벨론의 왕이 되어 독립을 선언하였고 마침내 성공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대제국 신바빌로니아의 기초를 놓았다. (2.117)
 ⑦ 기원전 605년 칼케미슈에서의 결전에 아들 느브갓네살을 출전시켜 승리를 거둔지 얼마 후인 그해 8월 나보포랏살은 재위 21년(626-605 BC)만에 서거함으로써 같은 해 9월 이집트 접경의 전역(戰役)에서 급히 돌아 온 아들 느브갓네살에 의해 왕위가 계승된다. 느브갓네살 이후의 바벨론 왕들과 역사를 아래에 도표와 함께 요약한다. (2.118)
 ▷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Ⅱ․ 605-562 BC) · · · 신바빌로니아를 대제국으로 만든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칼케미슈 전투에서 느고 2세의 이집트를 이기고 시리아와 유다를 포함한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이집트 접경까지 이른 기원전 605년 8월에 서거한 부왕을 이어 왕위를 계승한 후 43년 간을 재위했다. 605년의 팔레스틴 제1차 정복시에 다니엘을 비롯한 세 친구들을 볼모로 잡아갔고 기원전 597년에는 반역한 여호야긴과 에스겔 선지자등 일만명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기원전 586년에는 눈먼 시드기야와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가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파괴했다(왕하 25:8-11).

 다니엘서 1장부터 4장까지는 실제로 느브갓네살 치세 하의 다니엘의 선지자적 경험이 그 내용이 되고 있으며 예레미야, 에스겔등 동시대 선지자들에 의해서도 수십번 언급되어 있다. 그의 이름의 뜻은 “나부(Nabu 신)는 경계(境界)를 지키소서”(May Nabu protect the boundary)이다. Desmond Ford, Daniel(Nashiville : Southern Publishing Assn., 1978), 26. 이외에도 , “나부는 아들을 보호하소서,” 혹은 “나부는 나의 형제를 보호하소서”등의 뜻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본문의 뜻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19)
 ▷ 아멜마르둑(Amel-Marduk · 562-560 BC) · · · 느브갓네살의 약하고 무능한 아들로 성경에는 에윌므로닥(Evil-Merodach)으로 나온다(왕하 25:27-30). 부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후 잡혀온 유다 왕 여호야긴을 포로생활 37년 만에 석방시켰고 후대했음을 본다(렘 52:31-34). 그러나 그의 매형 가운데 하나인 네르갈샤르우스르에 의해 재위 2년 만에 살해당하였다.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