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긴 전쟁에 관한 계시 (11:2~45)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다니엘서 10~12장은 하나의 단위로 묶여져 있다. 10장의 시작하는 말은 이상과 들은 이상(청취)을, 기원전 536년인 고레스 왕 3년으로 연대를 정한다. 그 즈음에는, 유대 포로의 첫 번째 집단이 이미 고향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일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아는 한, 다니엘은 그의 연로함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니엘 11장은 “책 중에 가장 길고 가장 자세한 신탁을”1) 포함한다. 성경의 학도들은 이 장이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장들 중에 하나라고 본다. 세기를 통하여 이 장은 해석자들을 무시하였다. 본 장의 형태는 상징적이기보다는 문자적이나, 언어는 압축되어 있으며, 때로는 간결하며 모호하다. 결과적으로, 여러 곳에서 대명사가 가리키는 것이 누구며 무엇인지, 어떤 역사적 인물이 본문의 묘사에 들어맞는지 알기 어렵다.

 성경의 어려운 부분을 다룰 때에, 우리는 먼저 분명한 구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또한 전체적으로 성경에 제시된 더 크고 생생한 묘사를 고려해야 한다. 오직 해석자가 분명한 구절의 기별을 붙잡은 후에 더 어렵고 이해에 힘겨운 구절들을 안전하게 연구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해석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덜 알고 있는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가야 하며, 그 반대로 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사람들은 모호한 성경 구절들에 더 쉽게 관심이 끌린다.

 다니엘 11장의 연구 방법으로 우리는 다음의 세 입장 중의 하나를 취할 수 있다.

 (1) 그 장이 너무 어려우므로 절망하여 그것의 내용과 기별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2) 또 다른 극단으로, 본문에 나타나는 모든 세부 사항 하나하나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맞힐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이 자만심에 예속되는 사람들은 자주 그 자만심을 예언적 상징들에 대한 극도의 문자적 해석에 결부시킨다.

 (3) 또는 더 균형 잡힌 접근 방법을 따르면서, 본문의 세부 사항이 모호하며 심지어는 불명확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므로 해석에서도 어느 정도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장에 관하여 제안된 다양한 해석들은, 대부분 16~39절의 의미와 적용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해석자들은 이 장에서 제시된 사건들 중 로마 제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하지 않는 지에 관하여 뜨거운 논쟁을 벌인다. 해석이라는 도전은 다니엘서의 다른 이상이 나오는 장들의 요점들과 주제들과 유사한 요점들과 주제들을 다룰 때에는 쉽다. 본 장의 가장 어려운 영역이 앞 장들에 나오는 세 핵심적 대구를 포함하는 것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22절은, 이 장을 다니엘 9장 25~27절과 연결하는, 패하게 되는 “동맹한 왕(a prince of covenant)”을 언급한다. 마찬가지로 31절은, 이 장을 다니엘 8장 12, 13절과 함께 묶는, “매일 드리는 제사”의 폐함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3절은, 다니엘 7장 21, 25절에 묘사된 유사한 성도들에 대한 박해를 기억나게 하는 주제—지혜로운 자에 대한 핍박—를 언급한다. 이 평행절들로 인해, 우리는 11장이 다니엘의 이상 중 먼저 보인 것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된 선과 악의 세력 사이의 긴 투쟁에 관한 보고라는 입장을 유지한다.

 본 장의 구조는 이중 대구법의 존재와 다음 장의 시작에 나오는 청취(듣는 이상)의 절정으로 가도록 결론짓는 크레센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본 장의 구조는 다섯 부분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될 수 있다.


 1. 동방과 서방의 투쟁(11:2~4)

 2. 북방과 남방의 투쟁(11:5~20)

 3. 비천한 사람의 정치적인 활동(11:21~30)

 4. 비천한 사람의 종교적인 활동(11:31~39)

 5. 마지막 때의 투쟁(11:40~45)


 11장은, 그 길이가 오직 2장과 비견되는 것으로, 보통 이상으로 길다. 그것은 10장에서 생략된 부분을 선택해서 다루고 있으며, 12장의 사건들을 예상하게 한다. 더욱이 이 장은 8장과 몇 가지 평행절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두 장이 다 투쟁 중에 있는 두 세력을 묘사한다. 8장은 동방과 서방 사이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11장은 북방과 남방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두 장이 결합되어서,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아마도 지상에 있는 투쟁의 총체성의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것을 의미하는, 나침반의 사방을 언급한다(시 89:11, 12; 겔 21:3~5 참조). 이 문학적인 비유는 전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둘 또는 그 이상의 대조되는 요소를 함께 놓은, 대조법으로 알려진다. 8장에 제시된 사건들과 11장의 사건들 사이에 가장 뚜렷한 대구들이 본 장의 끝 부분의 부록 E에 대략적으로 소개된다.
동방과 서방의 투쟁 (11:2~4)
 긴 전쟁이, 동방으로부터 온 메대—페르시아와 서방으로부터 온 그리스—마케도니아, 두 세계 제국 사이에서 정치적 투쟁으로 시작된다.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11:2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
내가...네게 보이리라
 혹자는 ‘악기드’라는 동사 형태를 “내가 네게 보이리라”로 번역한다.
참된 것
 “진리”, “진실”이라는 단어 ‘에메트’는, 다니엘에게 주어진 계시의 기별이 “참되”다고 묘사된 10장 1절과 또한 진리의 책을 언급하는 10장 21절을 연결시킨다.
세 왕이...그 후에 넷째는
 이 절에서 수적인 증가 (“셋째...넷째”, 잠 30:15~31 참조)는 페르시아 제국이 상당한 기간 존속할 것임을 지적한다.
일어날 것이요
 “서다”라는 동사 아마드는 나라의 왕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이 11장에서 자주 사용된다. 다니엘 11장 1절; 12장 1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심히 부요할 것이며
 ‘아샤르’(“부요하다”)라는 어근은, 그의 부요가 그보다 앞서 이 왕국을 다스린 모든 왕들보다 크다고 한 네 번째 왕의 엄청난 부를 묘사하기 위하여 이 절에서 세번 나온다. 본문은 또 한 이 왕이 그의 부요를 통하여 “강하여질” 것을 지적한다. 이 통치자의 부요는 바벨론을 계승한 제국의 성공을 확증한다. 다니엘 7장 5절에 나오는 두 번째 짐승에게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는 말이 발하였다(8:4 참조).
격동시켜
 원문에서 누구를 격동시키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나 “헬라국” 모두가 이 동사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
헬라
 다니엘 10장 20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다니엘 11: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한 능력 있는 왕
 성경에서, “강하다”라는 형용사 ‘깁보르’는 남성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 다. 명사로서 사용될 때 깁보르는 용사를 의미한다. 그것의 어근 ‘가바르’, “강하게 되다”다니엘 8 장 15절‘게베르’“사람”이라는 명사에, 8장 16절의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에, 9장 27절에의 “확증하다, 굳게 정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등에 나온다.
일어나서
 다니엘 11장 2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큰 권세로 다스리며
 히브리어 구문은 “다스리다”를 뜻하는 같은 어근인 ‘마샬’ 두 단어 모두에 기초된, 한 동사의 형태와 명사를 사용한다. 이 구문은 왕이 “큰 다스림으로 다스린다”고 강조하여 말한다(동족의 대격), “다스림”이라는 명사 ‘밈샬’은, 하나님이 주신 다스릴 권리를 의미하는 아람어 숄탄, 곧 “권세”와 동등한 단어다.
임의로
 다니엘 8장 4절과 같은 용어인 ‘키르초노’, 즉 “임의로” 라는 표현이 숫양에게 적용된다.
다니엘 11:4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원문은 이 왕의 짧은 다스림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가 일어날 때에” 또는 “아직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으로 번역될 수 있다.
천하 사방
 이 표현은 “모든 방향”을 의미한다. 다니엘 7장 2절8장 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원문은 문자적으로, 워라아헤림 밀러바드 엘레, 즉 “이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 들”이라는 단어가 누구를 언급하는지 문맥에서 분명하지 않다. 전통적인 이해는 그것이, 나라가 네 장군들 사이에 나누어졌기 때문에, 그의 사후에 다스릴 권리를 상속받지 못한 알렉산더의 후손들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주해)
다니엘 11:2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
 다니엘은 이상에서 이 장에 기록된 사건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먼저 경험한 것과(단 8:13, 14) 또한 앞 장들에서 그가 받은 이상에 대한 가브리엘의 해석들을 기억나게 하는 청취 중 그것들에 관하여 가브리엘로부터 듣는다. 이 장은 큰 전쟁에 관한 사건들을 참된 것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키면서 시작하므로, 이 전체 계시의 내용을 같은 단어로 요약하는, 다니엘 10장 1절21절을 반향하고 있다. 진리의 책은 그 전쟁에서 미가엘의 역할에 관한 기별을 포함한다. 요약하자면, 가브리엘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악한 세력을 대항하는 충성된 자들의 최상의 수호자인 미가엘 외에 다른 어떤 사람의 지원을 의지할 수 없다는 기별이다(단 10:21).

 메대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의 짧은 개관이 겨우 한 절로 주어진다. 세 왕에서...그 후에 넷째는 그들 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에 나타난 수적인 증가는, 다니엘 생애의 끝에 권세를 잡게 된 이 제국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것임을 뜻한다. 교묘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난 네 번째 왕은 그의 부요를 강하게 되기 위해 사용하며 그리고 그것으로 다시 그의 부요를 증가시키는 데 사용한다. 다니엘 7장 5절에서 곰 같은 짐승에게 주어진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는 명령은 권력에 굶주린 왕에게 적절히 적용될 수 있다. 그는 아래 21절에 소개된 비천한 사람의 도래를 위한 길을 닦는다. 이 통치자의 큰 야망은 헬라 국과의 대규모적 싸움에 의해 드러난다.
다니엘 11: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메대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가 그 네 번째 왕의 이기적 열망에 의하여 물드는 것처럼, 헬라국도 성공을 지상의 표준으로 측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왕”으로 불려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단히 유명한 통치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을 돈으로 산 페르시아 왕과는 대조적으로, 이 통치자는 강한 왕이며 또는 문자적으로 ‘멜렉 깁보르’, “전사 왕”이다. 그것은 그가 어떻게 다스리는 엄청난 권력을 얻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가 사용한 ‘밈샬 라브’, “큰 권세”는 독자들에게 세 번째 짐승에게 ‘숄탄’, “권세” 또는 “다스릴 권위” 즉 이 통치자가 자기 임의대로 행한 것이 주어졌다고 말하는, 다니엘 7장 6절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단 8:4 참조).
다니엘 11:4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지상의 모든 권세는 일시적임을 보여 주기 위하여, 가브리엘은 알렉산더의 매우 짧은 통치를 지적한다. 왜냐하면, 소위 말해서, 그가 강성할 때에 죽었고, 그의 광대한 제국은 갈라져 나누였다. 천하 사방이라는 표현은 관용적이며 본문에 묘사된 사건들 가운데 거룩한 손의 개입을 의미한다(단 7:2 참조). 이 큰 제국은 뽑힐 것이며 그것의 권세와 부는 알렉산더의 후손들이 아닌 군대의 장군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이 세 절은, 그 투쟁의 범위가 동방과 서방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 대제국 중 두 나라의 이야기에 대한 매우 함축된 설명을 제시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세력을 얻고 전쟁을 일으키며, 자기 과시의 제단 위에 인간 생명을 희생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가브리엘이 말하는 마지막 요점은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 제국의 종말을 풍자한다. 그 나라들의 창건자도 그 창건자들의 자손도 그들의 권력과 부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었다.
북방과 남방의 투쟁 (11:5~20)
 북방과 남방 사이의 투쟁의 역사는, 남방이 먼저 제안하였지만 오래 가지 못한 동맹과 함께 시작한다. 이것은 북방 왕에 대한 남방 왕의 공격에 의해 이어진다. 이 긴 투쟁의 두 번째 국면에서, 공격 개시가, 궁극적으로 남방을 이기는 세력인 북방으로부터 유래된다.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11: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남방 왕
 다니엘서의 “남방 왕”을 뜻하는 멜렉 한네게브라는 칭호가 처음 나오는 곳이다. 팔레 스타인의 남쪽에는 애굽이 자리잡고 있다. 8절은 애굽의 이름을 특별히 지적한다. 거의 모든 주석가들 은 이 구절에서 “남방 왕”은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 사분지 일을 다스린 프톨레미 왕조의 왕들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 군들 중에 하나
 또는 “그의 군주 중의 하나(one of his princes)”—’싸르’라는 단어는 10장12장에서 “군(prince)”으로 번역된다. 현대 번역자들은 사령관이나 장교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왜냐하면 군(君)은 일반적으로 왕의 아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이 절 끝에 사용된 세 단어 이상이 각자 “다스리다”라는 어근 마샬에 근거 하였다. 이 동사의 어근의 강조적 사용은 최상급을 표현한다. “그에 의해 다스려진 권세는 큰 권세가 될 것이다.”
다니엘 11: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몇 해 후에
 한정되지 않은 기간이 여기서 보이는데 왜냐하면 원문은 단지 우러케츠 샤님 즉 “해들의 끝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맹약하리니
 맹약의 목적은 결혼의 수단을 통하여 두 왕국을 연합시키는 것이다.
북방 왕
 “북방 왕”을 뜻하는 칭호 ‘멜렉 핫차폰’이 여기서 처음 나온다. 본래, 성경에서 북방 왕은 비록 동방에 있으나 북방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을 공격한 앗수르와 바벨론의 메소포타미아 통치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문맥에서, 이 칭호는 시리아의 헬라 통치자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한다.
화친하리라
 히브리어 ‘메샤림’“일들을 바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문맥에서 그것은 “화친이나 맹약”을 뜻한다. 그 목적은 두 왕국 사이에 평화조약을 인치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평화 조약은 해당 왕국들의 왕족 사이의 상호 결혼을 포 함하였다.2)
이 공주의 힘이
 원문은, 힘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연합되어 오래 가지 못함을 뜻하는 ‘코아흐 핫저로아’“무력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 왕은...권세가
 이 곳에서 남성 주어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북방 왕일 수도 있고 “힘”을 뜻하는 그의 딸의 코아흐일 수도 있다. 원문은 또 다른 방법으로 그와 그의 자손으로 번역할 수 있다.
버림을 당하리라
 ‘워틴나텐 히’“그녀는 포기되리라”는 표현은 이 여인의 죽음을 뜻한다.
그를 낳은 자(Her father)
 ‘하이욜레다’라는 단어는 “그녀를 양육한 사람”이나 “그녀의 자녀”를 의미한다. 어떤 번역자들은, 원문의 모음 변화를 요구하는, 둘째를 선호한다.
다니엘 11: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어떤 번역들은 이절을 앞 절의 마지막 단어 ‘들’(히브리어로는 한 단어)과 함께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때에(In those times)” 라고 말한다.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
 문자적으로, “그녀의 가족의 구성원”이라고 말하는 족보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그녀의 뿌리의 가지로부터”라는 뜻의 히브리어 ‘민네체르 샤라셰’라고 말한다.
그의 위를
 “그의 자리”라는 뜻의 히브리어 ‘칸노’를 말한다. 이 남성 접미사는 5절에 언급된 남방 왕 이나 북방 왕과 결혼시킨 여자의 아버지를 의미할 수 있다.
그의 성에
 비록 원문에서 이 명사가 단수로 나올지라도, 그것은 집합적 의미를 갖고 있다.
다니엘 11: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그 신들과
 히브리 명사 ‘엘로힘’은 문맥에 따라, 하나님이나 신들을 의미할 수 있다(출 20:2, 3). 이 절에서 이 단어는 우상들과 평행되어 있으므로 분명 “신들”이라는 의미다.
은과 금
 이 두 금속의 순서가 역전된 또 다른 실례에 관하여 다니엘 5장 23절을 참조하라.
가져 갈 것이요
 본래의 히브리어 어구는 성경에서 승리한 군대가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전승기념품 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된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의 성전으로부터 거룩한 기명들을 가져갔다(단 1:2)
애굽으로
 이것은 남방 왕이 지배하는 땅에 관한 분명한 언급이다.
다니엘 11: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쳐들어 갈 것이나...물러가리라
 원문은 이 두 동사의 주어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북방 왕은 앞 절 끝에 언급된 마지막 사람이기 때문에, 현대 번역자들은 그를 동사들의 주어로 취한다.
다니엘 11: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그 아들들이
 문제의 인물이 북방 왕이라는 앞 절의 가정은 이 절에도 또한 적용된다.
물의 넘침같이 나아올 것이며
 이 절의 중간에, 아마도 북방 왕의 아들들 중 하나를 언급하면서, 주 어가 복수에서 단수로 바뀐다. 성경은 때때로 적의 공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홍수같이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사용한다(사 8:8; 단 9:26).
견고한 성(His fortress)
 “그의” 라는 소유격은 남 방 왕을 언급한다.
다니엘 11: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크게 노하여 나와서
 “그가 분노 중에 나왔다”는 동사 ‘워이트 마르마르는 이 절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다시금 주어가 불명확하나, 많은 번역가들은 그것이 북방 왕이라고 추정한다.
붙인 바 되리라(Defeated)
 히브리어 본문은 ‘워 닛탄...버야도’, 즉 “그의 손에 붙인바 되었다”고 말한다. 유사한 표현에 대해서는 “손”을 뜻하는 야드가 권력을 의미한다는 다니엘 1장 2절을 참조하라.
다니엘 11:12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
 원문은 ‘워람 레 바보’“그의 마음이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이다.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수천”을 나타내는 단어 립보오트는 이곳에서 많은 수의 적군들이 전투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의미한다.
다니엘 11: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다시 대군을
 원문은 “무리”라는 뜻의 단어 하몬을 사용하나, 문맥은 한 군대로 보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절을 시작하는 “그가 돌아갈 것이다”라는 동사 워샤브는 왕이 또 다른 군대를 일으키기 위하여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거나 또는 단순히 그가 다시 군대를 일으킬 것임을 의미할 수 있다.
몇 해
 히브리어 본문은 긴 기간을 뜻하면서, ‘우러케츠 하잇팀 샤님’“때들(해들)의 끝에”라는 뜻의 이라고 말한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소유”라는 히브리어 명사, ‘러쿠시’는, 일반적으로 부와 가축과 양과 염소를 포함하는 한 사람의 소유물을 언급한다(창 12:5; 13:2~6). 전쟁 상황에서 그것은 아마도 군대의 장비를 언급할 것이다.
다니엘 11: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여러 사람이
 이사야서에서와 같이 다니엘의 이상에서 “많은 사람”이라는 단어 ‘랍빔’은 이스라엘 외에 다른 족속들을 언급한다.
강포한 자
 문자적으로 본문은, ‘우버네파리체’, “강포한 사람의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아들들”이라는 명사, ‘버네’는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여기서 관계의 명사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7장 13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원문은 ‘러하미드 하존’, “이상을 서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이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정관사가 없다.
다니엘 11: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쌓고
 “붓는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샤파크’는, 바구니로 땅의 흙을 가져다가 도성의 벽의 기초에 붓는 것을 묘사한다.
토성
 도성이 포위될 때, 토성은 적군이 도성 안에 있는 그들의 목표물에 도달하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다니엘 11: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치는 자
 원문은, ‘합바 엘라브’, “그를 대항하여 오는 자”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라는 주어는 북방 왕을 말하며 “그를”이라는 목적어는 남방 왕을 가리킨다.
임의로 행하리니
 다니엘 8장 4절11장 3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영화로운 땅
 “영화로운”이라는 단어, ‘핫처비’만 나오는 다니엘 8장 9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두 표현은 모두 약속된 땅을 말한다.
다니엘 11:17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그가 결심하고
 원문은, 남방 왕을 공격하기 위한 북방 왕의 결심을 묘사하면서 워야셈 파나브, “그가 그의 얼굴을 돌이키리라”고 말한다.
전국의 힘을 다하여
 또 다른 가능한 번역은 “그 [남방 왕의] 전체 왕국을 정복하면서”이다.
화친할 것이요
 “그가 바른 의도를 가지고 그것 들을 행할 것이다”처럼 말하는 원문은 매우 모호하다.
그에게 주어
 주어도 목적어도 이 절의 이 부분에서 분명하지 않으나 그것은 주어로서 북방 왕을 그리고 목적어로서 남방 왕을 가리키고 있다고 추정 된다.
딸을
 문자적으로, 본문은 ‘우바트 한나심’“여인의 딸”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단순히 “한 여인”을 의미하면서, 다니엘 7장 13절“인자”와 여성 동등어가 되는 것으로 취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두 가지 중요한 다른 점이 있다. “여인들”이라는 단어는 한정되어 있으며(앞에 나오는 명사 “딸”도 한정하면서), 그것은 두 명사가 단수로 나오면서 한정되지 않은, “인자”와는 대조적으로 “복수”로 나온다.
이루지 못하리니
 또는 “그녀는 성공하지 못 할 것이다.” 이다.
다니엘 11:18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얼굴을... 돌이켜
 “그가 그의 얼굴을 돌이킬 것이다”라는 뜻의 단어 ‘워야세브 파나브’는 적대감을 표시한다.
섬들로
 창세기 10장 5절의 빛 가운데서 볼 때, “해변”이라는 단어 이임은 헬라 족속과 같이 해변과 섬들에서 살아가는 해양족속을 언급할 수 있다.
많이
 “많은 사람”이라는 히브리 용어, ‘랍빕’은 이곳에서 해변과 대구로 사용된다. 다니엘에서 그것의 의미에 관해서는 다니엘 9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한 대장이
 “한 지도자”라는 칭호 ‘카친’은 재판관이나 사령관에 관한 고대의 용어이다(수 10:24; 삿 11:6).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이 번역은, 이 시점에서 그 의미가 불명확한 원문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시도다.
다니엘 11: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그 얼굴을 돌이켜
 원래의 히브리어에서 이 절과 앞 절의 시작에 나오는 두 단어는 왕의 군사적 원정의 전환점을 표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거쳐 넘어지고
 이 번역은 본문을 반영한다. 이 문맥 가운데 두 단어는 전투에서 패배의 의미를 전 달할 수 있다.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북방 왕의 죽음을 표현하는 완곡어법이다.
다니엘 11: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이 어구가 어떻게 그 앞에 나오는 어구와 연결될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으므로, 이곳의 번역은 어려운 본문에 관한 단 하나의 가능한 해석을 제공한다. 이 문맥에서 “장엄, 영광”이라는 단어 ‘헤데르’“부”, “보석”, “장식” 등을 의미한다.
몇 날이 못 되어(In a few years)
 문자적으로, 원문은 ‘우버암 아하’, 즉 “몇 날이 못 되어” 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자주 “날”이라는 단어 ‘욤’은 문자적인 날보다 더 긴 기간을 나타낸다.
분노함...없이
 원문의 ‘워로 버아파임’, “코로 말미암지 않고”는 코가 분노를 나타낸다는 성경의 수사를 사용한다.
(주해)
다니엘 11: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다니엘 11: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다니엘 11: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다니엘 11: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11: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다니엘 11: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다니엘 11: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다니엘 11:12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다니엘 11: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다니엘 11: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다니엘 11: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다니엘 11: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다니엘 11:17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다니엘 11:18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다니엘 11: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11: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동방과 서방 사이의 투쟁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 펴본 것은 북방과 남방 사이의 전쟁 중에서 선택된 것에 대한 더 긴 내용에 의해 이어진다. 다니엘이 태어나기 수 세기 전에, 팔레스타인 땅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야망적인 정치적, 군사적 세력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남방에 있는, 애굽 땅은 자주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땅들을 지배하기 위한 열망에 불탔다. 유사한 방법으로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큰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은 이 같은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시도로서 큰 규모의 전쟁을 수행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 동안에, 전체 지역이 마침내 정복되었고 그 왕국에 부속되었다. 이웃의 시리아는 이스라엘 영토에 주기적으로 돌연한 습격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가 관련되어 있는 한, 북방과 남방 사이의 투쟁은 분열된 그리스마케도니아 제국과 함께 시작하지 않았다. 이 장에 제시된 용어와 이미지는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간다. 그러나 긴 전쟁에 관한 가브리엘의 담화가 연대적으로 취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본 장의 이 부분에서 묘사된 사건들은 먼저 프톨레미와 셀루커스 왕조의 통치자들의 시대에 적용되어야 한다.
다니엘 11: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다니엘 11: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다니엘 11: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다니엘 11: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11: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다니엘 11: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이 두 분열된 헬라왕국의 수도들은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디옥이다. 남방 왕은 프톨레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북방에서 나온 왕의 각 왕위의 이름은 안티오쿠스이거나 셀류커스이다. 알렉산더와 같이, 남방 왕의 군대 사령관 중 하나는 매우 강하게 되고 북방 왕에게 속한 영토를 지배하는 데 성공한다. 얼마 후에, 고대 세계의 습관대로, 두 왕국의 왕족 사이에 상호 결혼으로 맺어진 동맹을 통하여 두 왕국을 연합시키려는 진지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실패했고 남방 왕과 그의 딸에 대한 살해로 끝이났다. 남방 왕국은 아마도 세자의 주도하에 이루어 졌다고 보이는 복수를 하였다. 그들은 북방 왕국의 부와 우상들을 약탈하며 그것들은 전리품 애굽으로 가져가면서, 북방의 요새들을 공격하며 탈취하였다(단 1:2 참조). 9절10절이 남방에 대한 승리로 끝이난 이 전쟁을 개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들이 남방에 대항한 공격을 개시함으로 잃어버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하여 후에 북방에 의해 시도된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니엘 11: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다니엘 11:12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다니엘 11: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이어지는 사건들의 묘사 중, 군사적인 충돌에서 누가 무엇을 행하는지 항상 분명하지가 않다. 큰 규모의 군대의 원정이 백성들과 소유물들을 홍수와 같이 휩쓸어 간다. 그것들은 대부분 분노에 의하여 촉발되며 자만적이 되며 자주 권력의 역전으로 끝이 난다. 북방이 결국에는 승리하나, 이 승리의 대가는 엄청나다. 수만 명의 인명이 전투 가운데 살해된다. 역설적으로, 한 군대가 멸망되면, “대군”으로 언급된, 먼저보다 더 큰 새로운 군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어난다. 기대한 것보다 빨리, 또 다른 전쟁을 위하여 장비를 갖춘다.
다니엘 11: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다니엘 11: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북방의 통치자들에게 가세해서, 많은 다른 사람들이 남방 왕에 대항하여 일어난다. 다니엘의 동포 유대인들 중 어떤 사람들까지도 그들 주위에 있는 투쟁에 포함된다. 본문에 나오지 않는 이상의 해석으로 고무되어, 강포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아마도 다니엘서 자체의 이상들이 외국의 통치를 뒤엎기 위한 그들의 시도 가운데 무력에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무력을 통한 저항은 실패하며, 결국에는 북방 왕이, 아마도 예루살렘이라고 생각되는, 견고한 성읍을 사로잡음으로 끝이 난다. 패배한 남방 왕은 유다 땅을 돕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다니엘 11: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다니엘 11:17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다니엘 11:18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북방에서 출현한 교만한 지도자는 임의대로 행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가 멸망시킬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임의대로 행하리니라는 표현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라고 지혜자가 말하는 것을 예증하는, 이 장의 다른 두 곳에서도 나온다(3절36 절).3) 두 왕국을 하나로 묶으려고 시도된 평화 조약은 왕족의 상호 결혼으로 실현되나, 실패한다. 북방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두 왕중 하나는, 그가 한 대장 또는 원문이 말하는 대로 ‘카친’, “한 족속의 지도자”에 의해 멈춰질 때까지, 얼굴을 섬들로 돌이키고 많은 사람을 사로잡는다.
다니엘 11: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11: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본국으로 돌아온 교만한 북방 왕은, 패배하고, 죽으며,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20절은 무거운 세금의 부과로 이루어진 그의 붕괴될 왕국의 왕의 영화에 대하여 특별히 지적하여 말한다. 그것은 또 다른 군사적인 충돌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투쟁의 긴 역사와 북방과 남방 사이에 시도된 평화 조약은 동방과 서방에서 보여준 권력의 종말과 매우 유사한 방법으로 끝이 난다(8장), 교만과 복수에 의하여 촉발된 싸움은, 무분별한 사람과 동물의 손실로 귀결되면서, 높은 대가를 지불함으로 끝이 난다. 유대 땅은 이들 투쟁에 의하여 크게 영향을 받는다.
비천한 사람의 정치적인 활동들 (11:21~30)
 다니엘서의 해석자들 대부분은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의미심장한 전이를 발견한다. 북방 왕들은 특히 비천한 사람에 의해 대치된다. 그는 본 장의 이 부분에서 많은 주의를 끈다.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11:21 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그 위를 이을 자는
 18절19절이 동일한 말로 시작하듯이, 20절21절도 같은 말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동사의 분사 형태로 이어진 ‘워아마 드 알칸노’, 즉 “그의 자리에 대신해서 일어날 것이다”라는 진술로 시작한다. 이 어구는 앞 이야기와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비천한 사람이라
 히브리어 ‘니즈베’는 영예가 주어지는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멸시받는 사람을 묘사한다(시 15:4; 사 53:3).
나라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이곳에 서의 사상은 이 사람이 보좌에 대한 합법적인 주장을 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평안한 때(Without warning)
 다니엘 8장 25절에서 작은 뿔에 대해 말할 때, 가브리엘은, “경계하는 일 없이”라고 번역된 ‘버샬와라는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궤휼로
 “아첨”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하라 클락코트’은 감언(甘言)과 관련 있는데, “궤휼”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다니엘 11:22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군대가
 문자적으로, 본문은 ‘저로오트’, 즉 “무력”이라고 말하나, 이곳의 문맥은 “무장한 세력”을 일컫는다.
넘침을 입어
 “흘러넘치는 것”이라는 뜻의 어근 ‘샤타프’에 근거해 있는 명사와 동사가 강조를 표현하는 동족의 대격(paronomasia)을 형성하면서 이곳에서 함께 사용된다.
동맹한 왕
 이것은 또한 “언약의 지도자”를 의미 할 수 있다. “통치자, 군주”라는 단어 ‘나기드’다니엘 9장 25절에도 나오며 다니엘 9장 27절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 ‘버리트’와 관련된다. 이곳에서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11:23 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거짓을 행하여
 “속임”이라는 히브리어 명사 미르마는 궤휼로 번영하는 작은 뿔의 활동을 묘사하는 다니엘 8장 25절에도 나온다. 궤휼의 개념은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나타낸다(단 10:1, 21).
다니엘 11:24 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이 절은 “오다”는 동사 ‘보’와 결부된, “경계 하는 일 없이”라는 뜻의 ‘버샬와’라는 표현과 함께 시작한다. 두 단어는 21절에도 함께 나온다.
가장 기름진 곳에
 “부”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시만’은 기름짐을 뜻한다. 창세기 27장 28절39절“땅의 부요함”을 의미하는 “땅의 기름짐”에 대해 말한다.
노략하며 탈취한 재물
 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이것은 “세 쌍”이라 불리는 하나의 수사법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총체성의 개념을 점층적으로 표현하는 세 개의 관련된 용어를 포함한다. 여기서 그 뜻은 무력으로 취한 물건들이다.
얼마 동안
 문자적으로 본문은 시간의 제한과 한계를 뜻하는 ‘워아데트’, 즉 “때가 이르기까지”라고 말한다.
다니엘 11:25 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세워 그를 침이니라
힘을 떨치며
 역시 사역형 어간으로, “스스로 일으키다”라는 같은 뜻의 동사 ‘우르’2절에서도 발견된다.
용맹을 발하여
 원문은 “그의 마음”이라는 뜻의 ‘러바보’다.
모략
 모략을 베푸는 자나 모략의 대상이 된 자가 원문에서 분명하지 않다.
다니엘 11:26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
자기의 진미
 밭박이라는 용어는 왕궁에서 사용된 종류의 “기름진 음식”을 의미한다. 같은 단어가 다니엘 1장 5절에서 사용된다.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왕과 친밀함을 강조한다.
다니엘 11:27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마음에
 성경에서 마음은 지성적인 활동의 중심이다. 어떤 번역본들은 “지성(minds)”이라고 말한다.
일이 형통치 못하리니
 “성공하는 것”이라는 뜻의 동사 ‘챨라흐’다니엘 8장 12절에서 또한 작은 뿔의 성공을 묘사한다.
작정된 기한에 미쳐서...끝날 것임이라
 “끝”이라는 뜻의 ‘케츠’“작정된 기한”이라는 뜻의 ‘모에드’, 이들 두 명사는 또한 다니엘 8장 19절하박국 2장 3절에서 함께 사용된다. 그들은 인간 역사의 흐름에 관련된 거룩한 결정주의를 강조한다.
다니엘 11:28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
재물을
 소유물이라는 명사 ‘러쿠시’가, “많은 물건”(13절)라는 의미로 11장의 앞에서 사용된다. 이 절에서 그것은 전쟁 중에 노획한 전리품을 의미한다.
마음
 다니엘 11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거룩한 언약
 이 장이 다니엘에서 언약을 거룩한 것으로 묘사하는 유일한 곳이다. 그 표현은 또한 30 절에 두 번 나온다.
임의로 행하고
 원문은 이 번역이 분명한 만큼 분명하지 않다. 히브리어 본문은, 행동을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채 단순히 ‘워아싸’, 즉 “그가 행할 것/만들 것이다”라고 진술한다.
다니엘 11:29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작정된 기한에
 다니엘서의 여러 곳에서 “정한 때”라는 단어 ‘모에드’는, “끝”이라는 단어 ‘케츠’와 함께 엮여지나(단 8:19; 11:27), 이 절에서는 함께 붙어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라는 사상을 뜻하는 결정주의가 이곳에서도 제시된다.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라
 여기 암시된 사건들은 북방 왕이 애굽 침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본장 25~28절에서 묘사되었다.
다니엘 11:30 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
깃딤의 배들이
 원문은 키프러스(Cyprus)섬들을 가리킬 수 있는 ‘킷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예레미야 2장 10절에서, 이 장소 이름은 “깃딤 섬들(westerners)”이나 지중해 유역에 걸쳐서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적용된다, 요세푸스는 히브리 용어 깃딤은 모든 섬들과 해변의 나라들에 대해 사용된다고 말한다.4) 쿰란 문서에서, 이 용어는 지속적으로 로마인들에게 적용된다.
거룩한 언약을
 다니엘 11장 2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중히 여길 것이며
 ‘워야벤’이라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그가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혹은 “그가 관심을 가질 것이다”이다.
(주해)
다니엘 11:21 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다니엘 11:22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다니엘 11:23 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다니엘 11:24 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21절에 소개된 비천한 사람과 그보다. 앞서 다스린 왕들 사이에 문체상의 연결성이 있다. 이 연결고리는 20절의 시작과 함께 형태상 동일한 동사가 뒤따르는 “그 위를 이을 자는” 이라는 말에 나온다.

 그러나 연결성에도 불구하고, 주석가들은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명확한 단절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이 시점에서 본문에 언급된 어떤 왕이 “멸시할 만한” 또는 비천하다는 딱지가 붙여지지 않았다. 곧 이어지는 절들은 이 왕에게 주어진 딱지에 대한 이유들을 제공한다. 이 사람은 보좌를 주장할 합법적인 권리가 없으나, 찬탈자로서 권력의 자리에 오른다. 옛날 전쟁 방식을 통하여 승리하는 대신에, 그의 전략은 다니엘 8장 25절에 주어진 묘사에 의하면, 작은 뿔이 하듯이—평안한 때에 공격하면서, 아첨과 궤휼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가 꾀를 베풀어 제손으로 궤휼을 이루고...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이 왕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강한 군대가 그 앞에서 휩쓸려 간다(단 7:8 참조).—큰 홍수에 비 견될 사건이었다. 이 군사적 몰락은 언약의 왕의 죽음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된다. 그 사람의 칭호가 다니엘 9장 25~27절의 메시야, 통치자와 맞아떨어진다. 이 모든 구절들에서 왕은 강포한 죽음의 고통을 당한다. 본 장 23절24절은, 21절에서 오직 간략 하게 언급된, 이 권력에 의해 사용된 전략을 더 자세하게 발전시킨다. 그의 비천한 시작으로부터, 이 통치자는 전례 없는 부와 권력의 위치로 오를 것이다. 그의 침략과 나라들을 전복시키는 교활한 방법은 매우 성공적임이 입증될 것이며, 그는 그의 동맹국들을 풍성히 보상할 것이다. 그러나 24절의 끝에 그의 활동에 시간 제한이 주어졌다고 진술한다.
다니엘 11:25 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세워 그를 침이니라
다니엘 11:26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
다니엘 11:27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다니엘 11:28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
 남방 왕국을 대항한 전쟁을 수행하면서, 이 왕의 책략은 큰 군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임이 입증될 것이다. 성경 시대에 신뢰와 우정을 의미하는 “함께 먹는 것”은(창 31:44~46; 계 3:20), 망가지고 기만으로 양념될 것이다. 두 왕에게 제공된 기름진 왕의 진미는 거짓과 악한 계교라는 향신료로 섞여질 것이다. 비록 그 전략이 비천한 왕 을 위하여 역사하고 그가 다시금 승리를 얻을지라도, 온전한 승리라고 보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정한 때 끝을 위해 예약되었기 때문이다(단 8:19; 합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만은, 거룩한 언약을 거스리고 임의로 행하도록 이끈다. 이 장은, 언약을 하나님의 성소를 묘사하는 다니엘 8장 14절의 핵심 단어인 거룩함으로 묘사하는, 다니엘서의 유일한 곳이다.
다니엘 11:29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다니엘 11:30 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사건들의 흐름을 결정하신다. 작정된 때(정해진 마지막 때와는 다른)에, 이 왕은 남방에 대한 그의 공격 중에 낙심할 것인데, 왜냐하면 서방으로부터 온 세력이 그를 칠 것이기 때문이다. 킷팀은 키프러스 섬과 함께 엮인 용어이나, 후에는 “깃딤 섬”(렘 2:10)들도 언급하면서, 지중해 유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좀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이 새로운 세력을 대항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이 왕은 물러가게 될 것이며 거룩한 언약을 대항하여 그의 분노를 쏟을 것이다.
비천한 사람의 종교적인 활동 (11:31~39)
 이 왕의 활동이 성전과 성전의 매일의 예배에 영 향을 주기 시작할 때, 새로운 종교적 차원이 앞의 정치적 투쟁에 더해진다.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성소 곧 견고한 곳
 “성소”라는 뜻의 단어 ‘미크다시’는, 그것을 작은 뿔의 공격의 대상으로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다니엘 8장 11절에서도 사용 된다. 성소 건물은 전쟁 기간에 은신처를 제공할 수도 있다.
매일 드리는 제사
 “매일”이라는 명사 ‘타미드’다니엘 8장의 이상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온전한 성소 봉사를 의미한다.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
 ‘핫식쿠츠 머숍멤’, 즉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은 다니엘 9장 27절에도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다니엘의 이상을 언급할 때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마 24:15; 막 13:14 참조).
다니엘 11: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궤휼로
 다니엘 11장 21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언약을
 원문의 “언약”이라는 명사 ‘버리트’는 정관사가 없다.
아는
 “아는 것”이라는 히브리어 동사 ‘야다’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용어이다. 그것은 친밀하고 경험적인 지식을 포함한다(창 4:1; 출 6:7; 요 17:3). 아모스 3장 2절은 하나님이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 알았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인용한다. ‘야다’의 반의어는, “잊는다”이다.
용맹을 발하리라(Take action)
 “그들은 견고히 설 것이다”는 동사 야하지쿠는 “행하다”라는 뜻의 또 다른 동사 ‘아사’에 의해 이어진다. 11장 30절의 경우와 같이, 두 동사의 목적어는 특별히 지적되지 않았다. 새 미국 표준역(New American Standard Bible)은 이 두 단어를 “힘을 과시하며 행동할 것이다”로 번역한다.
다니엘 11: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지혜로운 자가...가르칠 것이나
 “지혜롭게 되다”의 어근 ‘샤칼’“분별하다”‘빈’(“지혜롭게하다. 가르치다”의 사역형)은 9장에서 두드러진다. 거기서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거룩한 계시를 알게 하므로 그를 지혜롭게 만든다.
많은 사람을
 “많은 사람”이라는 명사 ‘랍빔’14, 18절 그리고 26절에도 나온다. 다니엘 9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쇠패하리라
 이 동사의 주어는 아마도 “많은 사람”일 것이다. 35절은 지혜로운 사람의 얼마가 또한 쇠패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니엘 11:34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문자적으로 본문은 ‘예아저루 에제르 머아트’, 즉 “그들의 적은 도움으로 도움을 받을 것이다”는 뜻으로, 또 다른 동족 대격을 이루고 있다(paronomasia).
많은 사람
 다니엘 9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궤휼(Who are not sincere)로
 원문은 “아첨”21절32절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을 뜻하는 ‘바하라클라콧트’라고 말한다.
다니엘 11:35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지혜로운 자
 ‘함마스킬림’, 즉 “지혜로운 자”라고 불리는 백성의 단체가 33절에 소개된다. 그들은 다니엘 12장 3절에도 언급된다.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다른 순서로 놓여진 이 세 유사한 단어들이 다니엘 12장 10절에서 사용된다. 이 두 곳에서 그들은 고역과 박해를 겪는 ‘랍빔’, “많은 사람”을 언급한다.
마지막 때...작정된 기한
 다니엘 11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다니엘 11:36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이라
자기 뜻대로 행하며
 다니엘 11장 3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스스로 높여...크다 하며
 두 번째 동사는, 숫양, 숫염소 그리고 작은 뿔의 교만을 묘사하기 위하여, 다니엘 8장 4, 8, 11절에서도 사용된다.
비상할 말로
 “이적”이라는 히브리 용어 ‘니플라 오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대신하여 행하기로 약속한 “이적”들에 대해 말하는 출애굽기 34장 10절 에서와 같이 긍정적인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의 용어는 작은 뿔이 일으키는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다니엘 8장 24절의 용례처럼 분명히 부정적이다.
모든 신보다
 이 최상급의 표현은 최고의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다. 그것과 동등한 아람어에 관해서는, 다니엘 2장 47절을 참조하라.
형통하기를
 다니엘 11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분노하심이 쉴 때...그 작정된 일이
 이 두 표현의 의미에 대해서는, 각각, 다니엘 8장 19절다니엘 9 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다니엘 11:37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돌아보지 아니하며
 이 동사의 긍정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다니엘 11장 30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열조의 신들
 이 표현은 다니엘이 그의 하나님을 “나의 열조의 하나님”(단 2:23)으로 부르는 것과 닮았다. 아버지들이라는 단어가 “조상들”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어구는 이 왕의 조상들에 의해서 경배되는 신들을 언급한다. “신들”이라는 명사 ‘엘로헤’는, 단수나 복수로서 취해질 수 있다. 이곳에서, 그것의 의미는 복수라고 보인다. 다음 절에서 같은 명사는 단수로 주어진다.
여자의 사모하는 것
 이것은 히브리어로 정관사가 없는 불명확한 표현이다. “사모하다”라는 어근 ‘하마드’는, 가브리엘이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단 9:23; 10.11)으로 부르는 데도 사용된다. 주석가들은, “열조의 신들”“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동등하게 보면서, 이곳에서 앞의 표현과 대구가 된다고 본다. 그렇게 할 때 결합된 의미는 “여자의 사랑하는/ 예배하는 신”이 될 것이다. 이 문맥에서 “여인들”이라는 명사, 나심은 매우 불명확하다. 이방신인 담무스(Tammuz)는 구약 시대 여인들 사이에 매우 대중적이었다(겔 8:14).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이것은, 독자들에게 다니엘 8장 10, 11절에 묘사된 작은 뿔의 스스로 높임을 기억나게 하는 왕의 교만에 대한 최 상급의 표현이다.
다니엘 11:38 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세력의 신
 이 표현은 “여인의 사모하는 것”는 신을 언급한다.
그 열조가
 다니엘 11장 3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보물을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 10장 3절의, “진미”라는 뜻의 ‘레헴 하무도트’“맛있는 것”으로 번역한다. “사모하는 것”이라는 단어의 어근 ‘하마드’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니엘 11장 3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다니엘 11:39 그는 이방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취할 것이요
 원문의 뜻은 이 번역보다도 더 모호하다. 문자적으로 본문은 방어 행위인지 공격 행위인지 분명하지 않은 ‘워아싸 러미브처러 마웃짐’, “그가 가장 견고한 요새를 다룰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은 방어 행위라고 여긴다. “이방신”이 진술은 단지 앞 두절에서 한 말을 반복한다.
여러 백성을
 “많은 사람”을 뜻하는 랍범의 의미에 관하여 다니엘 9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뇌물을 받고
 “대가를 위하여”라는 진술 ‘히르’는 두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1) 정복한 땅을 이 왕의 친구들에게 매우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또는

 (2) 백성들의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그 땅들을 나눠주는 것이다.
(주해)
다니엘 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다니엘 11: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다니엘서에 나오는 묵시적 이상들과 그 해석들은 두 차원의 투쟁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첫째로, 수평적 차원이다. 지상의 세력들은 그들의 정치적인 야망으로 인해 충돌한다. 하지만 조만간에, 그 충돌들은 종종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 그의 제도와 특히 성소와 하나님 예배에 대한 교만하고 적대적인 태도로부터 솟아나오는 대결 속에서, 두 번째 차원인 수직적 차원 즉 종교적 투쟁의 양상을 취한다. 하나님 백성을 대함에 있어서, 이 왕은 과거에 성공적으로 입증된 같은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을, 어떤 사람에게는 아첨을 사용할 것이다. 다니엘 8장의 작은 뿔같이, 이 권력도 성소와 매일 드리는 제사를 공격할 것이다. 성소의 매일 드리는 제사는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 즉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을 우상 숭배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 대치될 것이다.
다니엘 11: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다니엘 11:34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다니엘 11:35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하나님의 언약에 진실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 세력을 저항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혜로, 그들은, 두 무리에 대한 핍박 중에, 많은 사람을 교훈한다. 다니엘의 이상의 문맥에서, 많은 사람이라는 용어는, 남은 백성 중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자와 연합하는 히브리인이 아닌 백성을 언급한다. 다니엘의 많은 사람과 지혜로운 자에 대한 용어의 사용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것과 필적된다(사 2:1~5; 53:11, 12). 다니엘서에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박해의 결과로 많은 사람 중에서 지혜로운 자와 회개하는 자가, 작정된 때에 도래할 마지막 때에 준비되기 위하여 연단되고, 정결케 되며, 희게 될 것이다.
다니엘 11:36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이라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이 왕의 활동을 묘사한 후에, 가브리엘은 이제 그의 품성으로 향한다. 36절의 시작하는 말은, 이 장에서 후렴처럼 반복되는, 이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이다. 그것들은 독자들에게 8장의 자만한 세력에 대한 묘사를 생각나게 한다. 이 세력과는 대조적으로, 시편 115편 3절“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통치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상들보다도 그 자신을 더욱 높이는 것, 거의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로 자신을 올리는 자기 강화와 불경한 야망이다.

 다니엘 7장 8절은 작은 뿔이 교만한 말을 하는 입을 가졌다고 말한다. 유사하게도, 이 왕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아직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듣지 못한 것” 또는 비상한 행위라는, 이 용어는 그의 백성을 대신한 하나님의 강한 구속 사역을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서 행할 것이라 너희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출 34:10; 강조가 첨가됨). 이 통치자의 성공은 거룩한 형벌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지속될 것인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종말의 때를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다니엘 11:37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 왕의 예배의 대상은 열조의 신들이 아니다. 다니엘이 그의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는 그를 “나의 열조의 하나님”으로 불렀다(단 2:23). 대조적으로, 이 왕의 예배는 단지 이교적이며 다신론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은 그의 열조들이 행한 예배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왕은 자주 황후가 경배한 신을 섬겼다. 그러나 이 왕은 여인들이 사랑하고 경배하는 신들에게 관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에스겔 8장 14절에 의하면, 포로 기간에 담무스라는 신은 여성 예배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 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이와 같이, 이 비천한 통치자의 경우에, 보통 섬겨진 우상들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배의 유일한 대상은 그 자신이다.
다니엘 11:38 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다니엘 11:39 그는 이방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
 이 왕의 자기 신격화에 덧붙여서, 그는 군사적인 힘을 상징하는 그의 세력의 수호자가 되는 것으로 믿는 신을 경배할 것이다. 이 이방신의 이름으로 그는 전쟁을 수행하며 그의 견고한 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들에게 그는 풍성히 보상하며 여러 백성 즉 땅의 민족들 위에 높은 지위로 승진시킨다.

 앞에 묘사된 북방 왕국과의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세의 특별한 점들, 곧 그것의 기원, 전략, 작게 시작하여 크게 되는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예배에 대한 태도 등이 이 장에서 나열된다. 기독교회의 위대한 학자인, 제롬은 본 장 21~45절이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언급한다고 논한다. 다니엘서에서 한 왕은 때때로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비범한 통치자는 한 개인을 상징하는 것보다 압제적인 정치적, 종교적 체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 장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독자는, 다시 한번, 이 세력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정해진 마지막 때(때의 마지막)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지라도, 지상 역사의 사건들은 그것을 향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앞에서 서로 투쟁한 세력들과 같이, 이 나라도 분명히 표시된 종말이라는 한정된 기간이 주어진다. 이 권세의 궁극적인 소멸과 그것보다 앞서 있는 모든 다른 주변의 투쟁들은 본 장의 마지막 부분의 주제이다.
마지막 때의 투쟁들 (11:40~45)
 남방 왕의 개전(開戰)으로 인해, 마지막 전투가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다. 북방 왕이 승리한다.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11: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마지막 때에
 “마지막 때”라는 표현인, ‘에트 케츠’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니엘 8장 17절11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이 표현은 “마지막 때”로 알려진 기간에 발생할, 본 장의 40~45절의 사건들에 대한 소개로 사용된다.
찌르리니
 “밀치고, 들이받는 것”이라는 동사, ‘이 트낙가’는, 자주 머리나 뿔로 들이받는 동물들에 대해 사용됨으로, 이것은 8장의 숫양과 숫염소에 대한 유추일 수 있다.
회리바람처럼... 마주 와서
 이 북방 왕에 의한 최종적 공격 속도와 황폐가 회리바람으로 비유되어 있다.
병거와 마병
 출애굽 사건에 발생한 일로 인해(출 15:1~4; 신 17:16), ‘레케브 우파라심’, “마병과 병거”는 자주 애굽의 군사적인 세력과 관련된다. 솔로몬 왕은 말과 병거들을 애굽에서 들여왔다고 말한다(왕상 10:28, 29).
물의 넘침같이
 군사적인 침략을 묘사하기 위하여 홍수의 은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 장의 10절다니엘 9장 26, 27절을 참조하라.
다니엘 11: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하게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영화로운 땅
 다니엘서 가운데, ‘핫체비’, “영화로운”‘에레츠 핫체비’, “영화로운 땅”이라는 용어는 약속된 땅에 대한 언급이다. 다니엘 8장 9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어떤 번역가들은 히브리어 ‘레시트’“존귀한 자들”로 번역하나, 그것은 “주요 지역”으로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단어는 성경의 첫 번째 단어이며, 그것은 대부분 보통 “태초”에로 번역된다.
벗어나리라
 그것은 단순 수동태로, 히브리어 동사 어근 ‘말라트’“피하다, 벗어나다”를 의미한다. 그것은 다니엘의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다니엘 12장 1절에도 나온다. 반대 진술에 대해서는, 아래의 42절의 주해를 참조하라. “그의 손” “권세”의 상징으로서 ‘야드’, “손”에 대해서는 다니엘 1장 2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다니엘 11:42 그가 여러 나라들에 그의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복수 명사 ‘아라츠’, “땅들”은 이곳에서 앞 절에 언급된 세 나라를 언급할 수 있으나 그것은 그 지역에서 그 나라들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굽
 애굽 땅은 팔레스타인의 남쪽에 있다. 본 장의 8절에도 그 이름이 나온다.
다니엘 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보물을
 “값진 것”이라는 단어 ‘하무도트’에 대해서는, 다니엘 11장 37, 3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두 곳에서 모두 이 용어는 금, 은 그리고 다른 값진 재료들에 적용된다.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
 성경 가운데 ‘구스’라는, 지형학적인 용어는 나일강 상부 유역을 언급하며 때때로 “에티오피아”로 번역된다. 이 절에 이름이 나오는 두 지역은 애굽의 서쪽과 남쪽에 있었으며, 그리스-마케도니아 제국 시대 동안에는, 그들이 프톨레미 왕조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 사상은 남방 왕의 전 지역이 북방 왕의 지배 아래 오게 된다는 것이다. 에스겔 38장 5절“바사, 구스와 붓”으로 이루어진, 북방으로부터 온 군주인, 곡의 “외국인 용병”을 묘사한다. 다니엘과 에스겔 모두에 나오는 이 구절은 마지막 때에 북방으로부터 온 세력에게 구스라고 이름 하는 땅이 굴복할 것에 대하여 말한다.
다니엘 11: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
 ‘미즈라’라는 용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해 뜸”이다. 성경 가운데, 동쪽에 대한 비유적인 언급은 지속적으로 긍정적이다(창 2:8; 마 2:1, 2; 계 16:12). 새 성전에 대한 그의 이상을 받는 동안에, 에스겔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으로부터 오”(겔 43:2)며 “동문으로 들어가는”(겔 43:4) 것을 보았다.
이르러
 “나가는 것”이라는 동사, ‘야차’는, 다니엘 8장 9절에서 작은 뿔의 활동의 시작을 묘사한다. 그것의 사용은, 다니엘 9장 23절에서처럼 긍정적이 될 수도 있다. “많은 무리” 다니엘 9장 2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다니엘 11: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그가...베풀 것이나
 이 절의 처음 두 단어는 창세기 12장 8절에서 아브라함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쳤다고 말하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장막을 치고 단을 쌓음으로, 아브라함은 상징적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을 나타낸다.5) 다니엘 11장 45절은 정복한 땅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고자 하는 왕의 열망을 묘사한다.
장막 궁전
 “(그의) 왕의 (장막)” 이라는 단어, ‘앞 파드노’는, 구약 전체를 통하여 오직 이곳에 나타난다. 기원은 페르시아어며, 아람어를 통하여 히브리어로 들어왔다. 이러한 형태의 사치스러운 천막은 그의 군사적인 원정에서 북방 왕의 숙소로 사용된다.
바다...사이에
 “바다”이라는 복수 명사, ‘얌임’은,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사해와, 그것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지중해에 대한 언급일 수 있다. 이 어구는 서쪽으로 지중해와 동쪽으로 페르시아만 사이에 있는 땅들을 묘사할 수도 있다.
영화롭고 거룩한 산
 히브리어 본문은 ‘러하르-처비-코데시’, “영화롭고 거룩한 산을 향하여”는, 성전이 위치해 있는 산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다(사 56:7; 시 2:6; 15:1).
그의 끝이 이르리니
 ‘우바 아드 킷초’, “그가 그의 종말에 이를 것이다”는 이 왕의 (돌연한) 죽음에 대한, 드러내지 않은, 언급이다. “오다”라는 동사, ‘보’는, 예언의 어떤 성취를 지적하는, 완성된 행위를 묘사하면서, 완료시제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워에 오제르 로’, “그를 도와주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어구는, 메시야의 죽음을 묘사하는, 다니엘 9장 26절‘워엔로’, “없어질 것”이라는 축약된 말의 더 긴 표현일 수있다.
(주해)
다니엘 11: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다니엘 11: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하게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다니엘 11:42 그가 여러 나라들에 그의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다니엘 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오래 기다리던 마지막 때(단 8:17 참조)가 드디어 도래했다. 긴 전쟁이 남방 왕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듯이(11:7), 마지막에도, 이 같은 나라가 북방에 대항하여 최종적인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는데 앞장 설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해결해야 될 중요한 사안은 “비천한 사람”(21절)과 북방 왕 사이의 관계이다. 히브리어 본문에 의하면, 비천한 사람은 21~39절에서 명확하게 북방 왕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20절과 21절이 같은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에, 본문의 불연속성은 그것의 연속성을 무시하면서까지 지나치게 강조 되지 말아야 한다. 비록 기술적으로 말해서 이 왕이 또 다른 북방 왕은 아닐지라도, 그는 그들의 합법적인 계승자가 된다고 주장한다(다니엘 5장 13절의 벨사살의 말 참조). 그와 같이, 이 구절의 문맥에서, 그를 “마지막 때의 북방 왕”으로 언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주요한 성경의 선지자들은 “북방의 대적”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항하여 공격을 수행할 마지막 실체가 되며 결국에는 패배하게 될 것임을 보았다(사 47; 렘 50; 51; 겔 38: 39).

 마지막 때에, 북방으로부터 온 군대는, 애굽의 군사력을 기억나게 하는 사항인, 병거와 마병(40절)으로 싸운다(출 15:1~4; 신 17:16), 더욱이, 병거와 기병대로 장비를 갖춘, 북방으로부터 온 군대는, 이 장에서 깃팀을 군사 세력이나, 서부 해변에서 온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어구인 많은 배와 연합한다(30절). 모든 다양한 군사력 사용하면서, 마지막 때의 북방 왕은, 약속된 땅을 포함하여(단 8:9) 많은 나라들을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다(단 9:26: 11:10).

 세 나라가 그의 지배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들은 에돔, 모압, 암몬의 존귀한 자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부조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들 세 이웃해 있는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친척들이다(창 19:36~38; 창 25:30). 그들의 땅은 유대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신 2:4~23). 이곳에서 그들에 대한 언급은 독자로 하여금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미친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를 기억나게 한다(라합, 룻, 나아만, 느부갓네살, 고레스 등). 애굽 땅은 점령될 것이며, 그것의 보물 또는 “값진 것들”이 약탈되면서, 애굽의 서쪽과 동쪽의 땅들은 복종될 것이다. 그와 같이, 결국에는, 북방 왕은 앞에서 이 권세에 의해 지배된 전 지역을 수복(修復)한다.
다니엘 11: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
다니엘 11: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북방 왕은 남방, 북방, 서방에 대한 온전한 통치를 획득한다. 그 다음, 동방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는 바다 사이에 있는 땅과 영화롭고 거룩한 산이라고 묘사된, 성전이 있는 산을 정복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라고 질문한다. 왕은, 거룩한 산을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하는 목적으로 수행하는 주요한 군사 원정 동안에 그의 진영으로 만들면서, 바다 사이에 그의 장막 궁전을 베풀 것이다. 그러나 이 온전한 승리라고 보이는 순간에,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그를 번민케 한다. 동쪽은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반면에, 북쪽은 긍정적이 되거나 부정적이 될 수 있다. 이곳에서, 동쪽과 결합하여,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 되며(기원전 539년의 바벨론의 멸망, 참조) 다니엘 12장 1절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개입을 지적한다.

 미가엘이 일어날 때, 이 마지막 때의 북방 왕은 멸망되며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그와 같이, 큰 전쟁에 대한 기록과 또한 세상의 잔인한 전쟁들과 깨어지기 쉬운 동맹을 통하여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일에 세상이 비참하게 실패하는 것을 포함하는, 다니엘의 가장 긴 장이 끝난다.
적용
 학자들 사이에 다니엘 11장의 처음 네 절의 주어는 바사와 헬라국이라는 데 대하여 일반적인 일치가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5~13절도 분열된 헬라 왕국의 기간을 포함한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14절로부터 다양한 적용들이 시작된다. 교회 역사에 대한 적용(“역사주의”)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한 적용을 14b와 15절에 제한하며, 그 후에 이어지는 것은, 국가적인 국면(16~20절)과 종교적인 국면(21~39절)에 있는, 로마의 세력에 대한 좀 더 긴 묘사로 본다. 이 적용은 40~45절에 묘사된 사건들은 미래에 두며, 이곳에서 해석자는 가장 신중함과 겸비함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교회 역사에 대한 적용(“역사주의”)

 이 장에 제시된 예언의 진리는 10장에서 하나님 자신의 나타남과 12장에 기록된 그의 맹세에 의하여 인쳐진다.”6) 다니엘서 11장의 언어는 2, 7, 8장에 나오는 상징적인 언어와는 같은 방법이 아닌 “문자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각 문장이 상당한 양의 정보를 압축하고 있는 것처럼 거의 암호 수준으로 비밀스럽다. 많은 대명사들은 분명한 선행사를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니엘서의 다른 장들이 제국들과 넓은 범위에 걸친 역사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이 장은 자주 개인들에 대해 말한다. 상당한 양의 세부 사항으로 인해, 해석자는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숲은 구원의 위대한 계획에 대한 역사와 하나님 백성의 영원한 운명이다. 맥스웰은 마지막 때까지 책의 이 부분을 인치라는 것은 그것의 본문에 대한 옛 해석이 “부적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백히 진술한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해석만이 참된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7)고 말한다.


 1) 11:2~4

 고레스 대왕의 죽음 후에, 그의 자리를 계승한 페르시아의 세 왕은, 그의 아들 캄비세스(기원전 530~522), 거짓 스메르디스 또는 바르디야(기원전 522)라고 불리는 찬탈자 그리고 다리우스 I세 (기원전 522~486)였다. 네 번째 왕은, 성경에서 에스더와 결혼한 페르시아 왕으로 알려진 아하수에로 즉 크세르크스(기원전 486~465)였다. 헬라인들은 살라미스(기원전 480)와 플라테아(기원전 479) 전투에서 그를 물리쳤다. 셰이는 말하기를 “예언의 목적은 페르시아 역사에 대한 온전한 고찰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권력이 행동의 무대 위에 소개되는 시점까지 그것을 추적하는 것이다.”8)라고 말한다. 후에, 알렉산더에 의해 연합되고 지도된, 헬라 군대는, 메대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다. 알렉산더가 바벨론의 옛 도시를 재건하여 그것을 자기의 수도를 만들려는 초안을 작성하고 있을 때에, 그는 32세의 나이에 돌연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주요한 장군들은, 알렉산더의 아우와 아들을 제거하며, 그 제국을 사등분으로 나누어, 그들 사이에 싸움을 벌인다. 가장 서쪽은 카싼더가, 북쪽은 리시마쿠스, 동쪽은 셀류쿠스 그리고 남쪽은 프톨레미가 차지하였다.


 2) 11:5~9

 5절에 언급된, 강하게 되는 남방 왕은 프톨레미 1세 소테르(기원전 323~280)이나, 그보다 더 강하게 되는 장군은 셀류쿠스 1세 니카도르이다. 이 절의 끝과 6절의 시작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6절 시작에서 “그들”은 더 이상 위에 언급한 두 왕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프톨레미 2세와 안티오 쿠스 2세를 가리킨다. 이 절의 나머지 부분은, 안티오쿠스의 두 번째 부인인 버니게(B 잘 알려진 비극의 자세한 사항이 주어진다. 버니게의 부친 프톨레미 II세의 죽음 후에, 안티오쿠스의 첫 번째 부인인 질투심이 많은 라오디게(Laodice)는 버니게와 안티오쿠스와 그들의 아들을 살해하였다. 7절에서, 버니게의 오라비, 프톨레미 3세(기원전 246~221)가 누이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하여 결심한 것을 묘사한다. 이 일에서 그는 성공하였으며, 먼저 약탈된 애굽의 우상들과 신상들을 회복함으로, 애굽인들은 그를, 유에르게테스(Euergetes), “은인”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맥스웰과 셰이와는 대조적으로, 두칸은 이 구절이나 절들이 이어지는 분열된 헬라왕국에 적용하지 않는다. 그가 이 장 가운데 발견하는 로마 제국에 대한 유일한 언급은 4절의 마지막 단어에서 끝난다고 본다. 그는 8장에서와 같이, 다니엘 11장은 로마 왕국을 거의 드물게 언급하는데...5절에 소개된 사건들은 연대적으로 로마 제국 후에 오며, 전통적인 해석 학파가 언급하듯이, 프톨레미나 셀류쿠스 왕조의 헬라 나라에 적용되지 않는다.”9) 8장11장 사이에 주어진 평행절은, 북방 왕과 작은 뿔이, 둘 다 북쪽으로부터 기원하면서, 같은 세력을 나타낸다. 5절을 시작하면서 북방 왕과 남방 왕에 대한 추정은 추상적이며 은유적이 된다. 북방은 악한 세력을 나타내나, 남방은 하나님이 없는 인간 권력을 대표한다. 더욱이 북방-남방의 단위는 총체성과 지상적 공간의 개념을 표현할 수 있다.


 3) 11:10~15

 두 왕조 사이의 싸움과 전쟁은 수세기를 통하여 지속된다. 10~12절은, 기원전 217년에 발생한, 라피아(Raphia) 전투를 묘사한다. 훈련된 코끼리들이 이 전투에서 사용되었으며, 수만 명의 군인들이 죽임을 당했고 수천의 군인들이 부상을 당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안티오쿠스 3세는, 13절에 묘사된 애굽을 대항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한다. 애굽의 내부적 정치 혼란이 14절에 “여러 사람이 일 어나 남방 왕을 칠 것”이라는 말에 암시된다. 프톨레미는 외적인 문제에도 직면하는데, 마케도니아의 빌립이 안티오쿠스 3세와 동맹을 맺기 때문이다. 15절은 유대 땅에 대한 온전한 지배로 귀결된 안티오쿠스 3세의 큰 군사적 성공에 대해 말한다. 셰이는 14b, 15절이 유대 백성을 압제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더럽게 한, 악명이 높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를 언급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맥스웰에 의하면, “네 백성 중에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는 말씀은, 로마 제국의 일어남을 묘사한다. 그는 “강포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 백성을 깨뜨리는 자와 찬탈하는 자”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은, 유대의 권세를 깨뜨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멸망시키며, 그것의 기구 중에 얼마를 그들과 함께 로마로 가져간, 로마인들을 언급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14절은 간결한 예언 싸개에 로마 역사를 쌌다”10) 고 말한다.


 4) 11:16~20

 16절의 시작과 함께, 이 이상은, 영화로운 땅 즉 팔레스타인에 대한 로마의 정복을 묘사한다. 17~19절은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er)와 여자의 딸인, 애굽의 클레오파트라 여왕과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카시우스 롱지누스(Cassius Longinus)는 “그의 수욕을 씻고” 율리우스의 살해로 끝난 음모를 지도한 한 대장이다. 율리우스의 오만함은 그의 군대가 단 하루에 430,000명의 게르만인들을 살해했다는 그의 자랑스러운 진술에서도 예증될 수 있다. 그의 계승자는, 20절에서 그의 역할이 간략하게 언급되고 그의 통치하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시저(가이사) 아우구스도(Caesar Augustus)이다. 그의 통치로부터, 모든 로마 왕들은 “황제”와 동의어인 아우구스도(augutus)로 불리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셰이의 적용은, 북방 왕이라는 칭호가 이 절로부터 이 장의 40절에 이르기까지 나오지 않으므로, 그가 16절이 로마 제국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맥스웰의 해석과 유사하다. 비슷하게도, 그는 21절22절이, 그의 통치 아래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티베리우스(Tiberius)를 언급한다고 제안한다.


 5) 11:21~24

 21절은 로마 제국을 계승한 종교적인 세력을 “비천한 사람”이라고 진술한다. 다니엘 11장의 다른 모든 지도자들같이, 그는 그의 적대감의 관점에서 제시된다. 이 권세는 지상의 작은 위치에서 부터 큰 세력으로 자라났다(23절). 그것은 언약을 깨뜨리며(23절)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그의 옹호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하여 부를 약탈한다(24절). 맥스웰에 의하면, 이 묘사는 기독교회가 그리스도의 복 음에서 떠났을 때의 활동에 들어맞는다.

 22절에 패하게 될 “동맹한 왕(the prince of covenant)”은 예수 그리스도와 로마인들에 의한 그의 처형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21절이 어떻게 반역된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어렵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셰이는 이 권세에 대한 묘사와 영적인 투쟁은 오직 23절에서 시작된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6) 11:25~30

 셰이에 의하면, “다니엘 11장 23~30절은 이제 과거가 된 사건들로 역사적 해석이 가장 어려운 구절이다.”11) 이 구절을 역사에 적용하는 것은 최소한 다섯 가지 다른 접근 방법이 있다. 맥스웰은 이 구절들이 “교황 우르반(Urban) 2세에 의해 시작된 십자군 전쟁—적의에 찬 로마 기독교의 중대 한 현상이며 가장 탁월한 예증 중 하나—의 시기를 예언한다”12)고 말한다. 남방 왕에 대한 공격(24, 25 절)은, 애굽에서 출현한 칼리프(후에, 술탄이 됨)에 대한 첫 번째 십자군 전쟁이다. (맥스웰과 셰이 모두는, 비록 십자군 전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후 일천 년 이상 지난 후에 발생했지만, 남방 왕은 애굽이라는 입장을 유지한다.) “깃딤의 배들(ships of the western coastlands)”이라는 표현은 이슬람교도들이 십자군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고용한 헬라의 해군 함정들을 나타낸다. 비록 십자군들이 결국에는 패할지라도, 그들은 설탕, 목화, 유리 거울, 동방의 다른 재화들을 가지고, 부유하게 되어 본국으로 돌아온다(28절).

 두 왕이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것은 “십자군 전쟁을 현저하게 특징짓는 배반 행위와 위선을 요약한다.” 거기에는 상호간에 불신이 있었다. 이것은 주로 기독교 동맹들 사이에 나타났으나, 또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슬람교도들과 성읍 사람들과 맺은 평화 조약을 많이 위반하는 일이 있었다. 비록 이슬람교도들이 “이단자”로 여겨졌으나,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은 “거룩한 언약”을 신실히 믿는 자들이었으며(28, 30절),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의 대제사장의 계속적인 봉사를 불명확하게 하는 기독교의 탈을 쓴 체제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 “중세의 기독교회가 다니엘서에서 나쁘게 그려진 것”13)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7) 11:31~39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으로 31절에 묘사된 행위는 일천 년 동안 백성들을 예수의 제사장 봉사로부터 떠나게 하고 동맹한 왕(prince of the covenant)에 대한 그들의 접근 권리를 박탈한 체제로부터 유래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한 지상의 종교적인 세력이 그리스도의 사역 제치고 자신의 활동으로 그 자리를 채운다.”14) 32~34절은 다니엘 7장 25절12장 7절에도 묘사된 성도들에 대한 큰 박해를 묘사한다.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는 “지혜로운 자”(33절)는 왈덴스인들 (Waldenses), 후쓰인들(Hussites), 제칠일침례교도 들(Anabaptists), 휴그노교도들(Huguenots), 박해와 역 박해 시대에 하나님께 충성됨을 유지한 경건한 로마 가톨릭 교인들이다.

 모든 신보다도 그 자신을 높인 왕(36~39)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을 죽일 권리를 주장하고 또한 십계명을 변경시킨 교회의 권세를 나타낸다. 도움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그것의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군대들을 고용하며, 교회는 “세력의 신”(38절)을 신뢰하였다. 그와 같이, 다니엘 11장의 기별의 적용은 7장8장의 적용과 같은 것으로서 미 기별들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를 가리고 충성된 자를 박해한 정치적, 종교적 실체의 활동을 모두 묘사한다. 이 사실은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라는 표현 속에 잘 요약되었다. 이 권 세는 또한 훼방의 죄를 짓는다.


 8) 11:40~45

 “마지막 때(time of the end)”와 “때의 마지막(end of time)” 사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셰이는 전자를 “어떤 사건이 일어날, 역사의 구획으로서의 기간...’때의 마지막’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인간 역사의 끝이 되는, 시간의 한 시점”15)으로 정의한다. “북방 왕”은 영적인 권력을 대표하나, “남방 왕”은 그들의 무기로서 이성을 사용하는 세속적인 권력을 나타낸다.

 맥스웰은, 40~45절에 대한 그의 적용 가운데, “로마 기독교의 경력과 종말에 분명히 부분적으로 필적되는”16) 45절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화롭고 거룩한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대한 은유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인 하늘 성소를 상징한다. 성전이 위치한 산의 지배는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의 최상권에 관한 북방의 침해를 상징한다.”17) 그와 같이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본 장의 북방 왕은 같은 종교적 권세에 의한 지상에서의 최상권의 기간을 나타낸다고 결론짓는 것은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이거나 결정적인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절에 언급된 전투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요한계시록 16장에 더 자세히 묘사된다. 그것은 본질상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 전투는 현대의 이스라엘 국가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의 싸움터는 좀 더 넓으며, 온 세상에 미친다. “이 최종적인 싸움으로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하늘 군대는 승리자로 나타날 것이다. 사탄과 그의 모든 군대는 지상에서의 이 최종적인 큰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할 것이다.”18)

 두칸은 이 구절의 균형과 구조는 엄격한 문자적 역사적 해석에 대하여 경고한다고 말한다. “일곱 단계에 걸친 그것의 발전은 (일곱째 단계는 때의 마지막이 됨) 해석의 우화적, 상징적 측면을 더 지지한다.”19) 장래에 일어날 지상의 정확한 사건들에 관련해서, 맥스웰은 “지혜는 그것들이 실제로 발생하기 까지 우리가 그것들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성경 예언들의 주된 목적은 특별한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앞선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으며, 오직 그것들이 성취된 후에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한 것이다. (요 13:19; 14:29; 16:4), 하늘로 승천할 때에,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행 1:7)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 하시며 그가 그것을 비밀에 부치기로 선택하심을 말씀했다. “미래에 대한 시간표를 자세히 만들려는 충동은 수세기를 통하여 많은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을 당혹하게 하였다.”20)


 개인의 삶의 적용

 다니엘서는 인류의 궁극적인 운명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며, 멸망이 아니라 구원임을 가르친다. “악은 돌이킬 수 없게 최종적으로 끝이 난다. 그 날은 악으로부터 돌이킨 모든 사람에게 기쁨의 날이 될 것이며 악에 의해 미혹당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는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21) 11장에서, “적대적인 사람들은 속이며, 기만하며, 서로 죽이며, 그 다음 그들의 습관이 된 교만과 분노를 하나님 그 자신을 대항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극적으로 표현된다.”22) 골딩게이는 외적인 투쟁, 내적인 분열 또는 더 큰 권세에 의한 잠식으로 이끄는 권력의 사용이라는, 이 장에서 떠오르는 역사의 패턴을 추적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왕들의 본성이다. 그들은 항상, 결혼 동맹이나 무력의 사용을 통하여 추구하는, 교묘한 최종적인 승리를 열망한다.”23)

 인간 존재는 그들이 행하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해결 할 것에 대하여 질문이 생긴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쉘(Abraham Joshua Heschel)은 기록하였다.


 역사는 무엇인가? 전쟁들, 승리 그리고 또 전쟁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는다. 많은 눈물이 흘려진다. 후회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많은 두려움이 생긴다. 그들의 공포가 미움으로 바뀔 때에 생기는 잔인함의 희생자들에 대하여 누가 심판 자리에 앉아 심판할 것인가? 악인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는 것으로부터 사악한 잔혹행위를 지키는 것은 쉬운가? 세상은 피에 물들여졌고, 그 죄악은 끝이 없다. 모든 희망은 포기되어야 할 것인가?

 낙망으로부터 선지자들을 구원해 준 것은 그들의 메시야에 대한 이상이었고 회개할 수 있는 인간의 여지(餘地)에 대한 사상이었다. 그 이상과 그 사상이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24)


 세계적인 문제 해결은 세상의 사건들에 대한 하 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윌리암 더니스(William Dyrness)는 말한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성경 선지자들의 묘사는 “하나님의 장래의 승리, 그분이 받으실 옹호, 그의 통치에 관한 큰 이상이었다. 그 이미지들은 많은 측면을 갖고 있고 생생하기 때문에 체계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부과된 모든 범주를 깨뜨린다.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참으로 그들을 흥분시킨다. 그들 주위를 가득 채운 멸망과 비참 속에서도 희망이 있었다.”25)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살아가며 동료 인간들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가 되어야 한다. 결국,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거기서 살고 일했기 때문에 바벨론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진실한 신자들이 오늘날 우리의 세상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그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긴 전쟁에 관한 가브리엘의 계시에서 분별될 수 있는 거룩한 섭리가 우리의 날마다의 생애에 역사하고 있다.

 아더 키오우(G. Arthur Keough)는 “역사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야망적인 사람들의 업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운명은 무덤에서 끝이 난다.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만이 죽음을 정복하며, 그는 그의 승리를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제공한다”26)고 기록하였다.
참고
 1 Baldwin, 178.

 2. Peter-Contesse and Ellington, 285.

 3. Collins, 380.

 4 Josephus, Antiquities, 1.6.1.

 5. U.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vol. 2 [Jeruselem : Magnes, 1992 reprint], 301)는 그것을 “이상적인 정복”이라고 말한다.

 6. Shea, Daniel, 230.

 7. Maxwell, 279 (강조는 원문 가운데 나오는 것임).

 8. Shea, Daniel, 240.

 9. Doukhan, Secrets, 168.

 10. Maxwell, 291.

 11. Shea, Daniel, 254.

 12. Maxwell, 293.

 13. Maxwell, 296.

 14. Shea, 260..

 15. Ibid, 263.

 16. Maxwell, 296.

 17. Ibid. 297.

 18. Shea, Daniel, 268.

 19. Doukhan, Secrets, 174.

 20. Maxwell, 297.

 21. Keough, 120.

 22. Maxwell, 278.

 23. Goldingay, 293.

 24. Heschel, 1:185.

 25. W. Dyrness, Themes on Old Testament Theology (Downers Gorve, IL : InterVarsity Press, 1977), 234.

 26. Keough, 112.
부록 E — 다니엘 8장과 11장 사이의 구조적인 평행절들
다니엘 8장 다니엘 11~12장 1절
서론(13절) 서론(2절)
정치적인 국면 종교적인 국면 정치적인 국면 종교적인 국면
4절
숫양이 임의로 행하며
11절
“비천한왕”이 군대의 주재에 대하여자신을 높인다.
3절
강한 왕이 임의대로 행함
21절
비천한 자가 일어나서 언약의 왕에 대하여 자신을 높임
5~7a절
서방과 동방의 투쟁
9, 10, 23, 24a절
이기고 지는 투쟁들
5~14절
남방과 북방 사이의 투쟁
22~27절
북방과 남방 사이의 투쟁
7b, 8b절
서방이 승리하고 자랑하나, 그 권세는 돌연히 깨어짐
12, 13; 24b, 25절
비천한 자가 승리하며, 번영하며, 자신을 성소, 성도, 만주의 주에 대하여 높인다
15~18절
북방이 승리하며 자랑하나, 한 대장에 의하여 중단됨
28~43절
비천한 자가 승리하며, 자랑하며, 성전, 성도들 그리고 신들의 신보다 자신을 높임 (깃딤의 배들에 의하여 중단됨)
8c절
마지막이 권세의 깨어짐과 분열로 표시된다.
14, 25c절
비천한 자가 멸망중에 끝이 난다.
19, 20절
멸망과 파괴로 표시된 종말.
44, 45절
돌연한 멸망을 통한 비천한 자의 종말
26절
이상의 인침
12장 4절
이상의 인침
절정(14절)
성소가 회복됨
절정(12:1)
미가엘의 일어남
부록F 다니엘 11장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과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
 교회 역사의 적용은 로마의 국가적(16~20절)이며 종교적(21~29절)인 두 국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문자주의자들과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은 안티오쿠스라는 인물과 활동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문자주의 해석자들은 이 통치자가 14~36절에 제시되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다니엘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천년의 긴 간격이 이어진다. 그 다음 37~45절은 아직 미래에 있는 사건들에 대한 묘사로 장이 끝난다. 이와 반면에,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은 14~39절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언되어 있다고 보고 40~45절은 이 악명 높은 사람을 예언하는 일에 저자가 실패했다고 여긴다. 아처는 영적 전쟁은 믿는 남은 자를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제안한다.1)


 1. 문자주의적인 적용(“미래주의”)

 문자주의자들은 이 어려운 장들을 주석하기 위하여 시도하는 데 있어서, 해석자는 이곳에서 예언이 정확할지라도, 그것은 선택적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계시는 시대의 모든 역사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모든 통치자들의 이름을 지명하지도 않는다. 왈부드에 의하면, 이 장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다른 모든 통치자들보다도 더 많은 지면이 할당되어졌는 데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의 활동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와 같이, 다니엘에게 주어진 네 번째이며 최종적인 이상은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서 시작하여 마지막 때에 최후의 이방인 통치자에게까지 미치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계시를 포함한다.

 다니엘 11장은 “두 주요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로, 2~35절은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통치자들을 묘사하며, 그 다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기원 전 175~164)의 통치를 결론지으면서, 이어지는 세 번째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에 대한 주요 사건들 중 얼마를 아주 자세하게 보여 준다. 그 다음 예언은, 교회의 현재 시대의 사건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안티오쿠스의 사망으로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전체 기간을 뛰어넘는다.

 두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권력을 갖고 다스리고 있을 최후의 이방인 통치자”2) 를 다루고 있는 36~45절이다. 밀러는 이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언급한다.3)


 1) 11:2~4

 이 예언 가운데 발견되는 역사적 세부사항은 놀라운 것이다. 왈부드의 페르시아 네 왕의 신원 확인은 다음과 같다. 캄비세스, 거짓-스메르디스, 다리우스 1세,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와 일치될 수 있는 크세르크스 1세이다.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스는 나머지 왕들보다도 더 중요하다. 헬라국에 대항한 불행한 운명의 침공은 에스더 1장2장 사이에 발생했을 수 있다. 헬라의 강한 왕에 대한 묘사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온전히 들어맞는데 왜냐하면 그는 큰 권세를 가졌고 “임의 대로” 행한 절대적인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강성할 때에” 라는 말은 이 왕의 짧은 통치 기간을 지적한다. 그의 제국을 깨뜨리고 나누는 것에 대한 예언은 역사 속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의 합법적인 상속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2) 11:5~9

 이 장의 이 부분은 약 150년 동안의 기간을 망라하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기원전 75~164) 시대까지 이르는 시리아 왕들과 애굽 사이에 계속된 투쟁을 말함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사를 추적함에 있어서, 예언은 여러 사건 중에서 선택하고 있다. 본문은 모든 통치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에 대한 신원 확인은 분명하다. 프톨레미 1세 소테르(Ptolemy Soter)와 셀류쿠스 1세 니카도르(Seleucus NIcator)는 서로 적대하는 통치자들의 두 계보를 시작하였고, 두 나라 사이에 막상막하의 전쟁을 벌인다. 버니게의 살해는 그녀의 오라비 프톨레미 3세 유에르게 테스(Ptolemy Euergetes)의 복수로 이어진다.


 3) 11:10~20

 본 장의 이 부분은 애굽에 대한 시리아의 승전으로 이끄는 사건들을 묘사한다. 이 기간 동안에 가장 탁월한 통치자는, 애굽에 대한 그의 연속된 공격이 13~16절에 망라(網羅)되어 있는, 대왕 안티오쿠스 3세(Antiochus the Great. 기원전 223~187)다. 아처가 말하듯이, 10절은 이 왕의 도래와 거룩한 땅에 대한 그의 정복을 묘사한다. “네 백성 중에 강포한 자”(14절)는 “법과 공의를 범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말들은 애굽에 대항하여 싸우는 안티오쿠스 대왕과 동맹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다. 애굽의 장군 스코파스(Scopas)가 안티오쿠스 3세에게 굴복할 때, 아처는, 안디옥 정부가 거룩한 땅을 영구히 노획했다고 말한다.4)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라는 구절은 안티오쿠스 3세의 통치 아래 유대인의 고난을 생생히 묘사한다. 시리아 왕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다. 로마의 위협 아래, 그는 그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 (Cleopatra I)와 애굽 왕 프톨레미 5세(Ptolemy V)의 결혼에 의하여 조인된 애굽과 조약을 체결했다. 새로운 알렉산더 대왕이 되기 위한 그의 야망 가운데 안티오쿠스는 헬라를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 했으나, 그는 이 전쟁에서 두드러지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패배하고 깨어져서 그의 땅으로 돌아왔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5) 최종적으로, 2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기억되는,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Seleucus Philopator)에 대해서 말한다.


 4) 11:21~23

 문자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절들은 앞에서 묘사된 작은 뿔과 같이 별볼일 없는 시리아 통치자이며 역사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로 알려진 사람에게 할당(當)된 장의 시작 부분을 표시한다(단 8:9~14; 23~25), 밀러는 그의 행위가 이스라엘에게 심원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에게 많은 주의가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에 대하여 두드러지게 기록된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제단을 더럽히고 유대 백성을 심하게 핍박했기 때문이다. 이방인 통치에 대한 관점은, 이곳에서 주로 유대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본 것이다. 그리고 안티오쿠스는 그의 부도덕한 삶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미움과 박해라는 관점에서 그려졌다.

 안티오쿠스는 기만을 통해서 왕의 권력을 얻었다. 세 단어가 그의 경력을 묘사한다. 음모, 찬탈,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아처는 그가 다니엘 8장의 작은 뿔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22절은 매우 일반 적인 방법으로 애굽을 대항하여 안티오쿠스에 의해 수행된 군사적 원정에 대하여 말한다. “동맹한 왕”의 죽음은 기원전 172년에 안티오쿠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에 적용된다. 28절32절 가운데, 언약이라는 용어는 유대 국가에 대하여 사용된다. 23절은 음모와 기만으로 물들여진 여러 지역들, 특별히 애굽과 맺은 안티오쿠스의 동맹에 대하여 말한다.


 5) 11:24~34

 왈부드에 의하면, 24~26절은, 그의 지배아래 가장 부요한 곳을 약탈한 안티오쿠스의 음모에 대하여 말한다. 시리아와 애굽 사이에 이루어진 일시적인 합의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들 나라의 어떤 통치자도, 27절28절에 진술된 대로, 그들의 합의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이 악한 왕은 유대 백성에 대한 그의 미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9~31절은 애굽에 대한 안티오쿠스의 침공 중 한번은, 로마에 의하여 저지된 것에 대하여 말한다. 로마의 집정관은 그가 애굽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그가 안티오쿠스 주위에 원을 그린 후 그가 그 원에서 한 발자국 나오기 전에 로마의 뜻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된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와 같이, “깃딤의 배들(ships of the western coastlands)”(30절)에 의하여 저지될 때, 안티오쿠스는 낙심했다(칠십인역에는, 이 배들을 “로마인”으로 언급한다). 그 후로 악한 왕은 그의 분노를, 마카비서의 두 책에 묘사된 사건들을 통하여 유대 백성에게 쏟는다(30절). 이 왕의 편에 가담한 유대인들은 “언약을 배반하는”(32절)자라고 했다. 안티오쿠스는 성전의 제단을 더럽혔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했으며 전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금지했다. 그는 거룩한 장소에 우상(쥬피터나 제우스 올림퍼스)을 세웠다. 이것이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었다. “이 악한 군주에 의한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는 이제 재난적인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6)

 이 구절에 대한 문자주의자들의 적용은 그리스도 초림 바로 직전까지만 제한되지 않는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그리스도는 이러한 형태의 더럽힘을 때의 마지막에 있을 큰 환란의 시작과 연결시킨다. 그와 같이 안티오쿠스는 그의 행위가 궁극적인 훼방과 박해로 예시된 장차 나타날 죄악의 사람의 표상이 된다.

 32~35절은 안티오쿠스를 반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를 묘사한다. 이 대적하는 일은 소위 아처가 말하는 “용감한 마카비 사람들”의 가족에 의하여 주도된다. 이 가족의 구성원은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느낄 때에는 안식일에도 싸우기 위하여 준비되었으며, 안티오쿠스의 편에 가담한 그의 동료 유대인들, 그의 음모에 속임을 당하여 변절한 사람들도 공격하였다. 아처가 “애국적인 지도자들”7)로 언급하는 마카비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35절은 핍박으로 인하여 정결케 하는 과정이 “때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임을 지적한다.

 왈부드는 11장의 처음 35절까지는 135개 이상의 예언 진술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 중에 어떤 것도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8)고 말한다.


 6) 11:35~39

 밀러는 박해의 직접적인 결과는 개인과 민족을 그들의 죄악적인 행습으로부터 정결케 하며 하나님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 이라고 말한다. 35절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대한 언급은 이 장을 깨끗하게 나누는 지점을 표시한다. 왈부드에 의하면, 이 지점에까지, 바사와 헬라 제국을 다루고 예언들은 “세밀하게 놀라운 정확성으로” 성취된다. 하지만, 36절에서, 전적으로 다른 변화가 시작된다. “어떤 주석가도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정확한 성취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9) “셀류쿠스 왕조와 유대인 애국자들 사이의 투쟁은” 35절과 함께 “끝이 난다.”10) 이 절들에 나온 많은 역사적인 자료들은 안티오쿠스의 생애나 그의 죽음에 조화되지 않는다. 첫째로,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죽지 않았고 페르시아에서 죽었다. “모든 신보다 크다”할 왕은 마지막 날에 세상을 통치하며, 그에 대해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장차 나타날 로마의 통치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다름 아닌 7장에 나타난 작은 뿔이며, 그의 끝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발생 할 것이다(살후 2:3~10). 36~39절은 그의 성격을 묘사하나, 그것에 이어지는 절(40~45절)들은 그의 전쟁에 대하여 말한다. 전에 언급하였듯이, 밀러는 이 통치자를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나, 아처에게 있어서, 그는 “마지막 날의 짐승” 곧 무신론자이거나 불경건한 독재자다.


 7) 11:40~43

 40절은 시대의 마지막을 특징지을 군사적인 투쟁에 대하여 말한다. 36~39절에 언급된 왕은, 남방과 북방으로부터 나온, 두 세력 모두에 의해 공격 받게 될 것이다. 왈부드는 앞서서 나오는 남방 왕에 대한 언급은 애굽을 언급하는 것이나, 이 곳에서 그것들은 거룩한 땅의 남방에서 유래되는 군사적이며 정치적인 세력의 지도자, 즉 아프리카 군대라고 보이는 것을 언급한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유사한 방법으로, “북방 왕”은, 팔레스타인 북쪽에 위치한 모든 나라들의 연맹인 좀 더 광범위한 실체이다(겔 38장), 남방 세력(밀러에 의하면, 아랍민족권이라고 봄)

 이 적그리스도를 공격할 때, 그는 복수하며 결정적으로 그것을 쳐부순다. 애굽의 세력은 마침내 패배 한다. 비록 호된 싸움을 겪지만 36절에서 왕은, 그 리스도가 재림하기까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지속한다. 그는 그를 침공한 사람들을 반대로 공격하며, 애굽을 포함하여, 그들의 나라로 쳐들어간다. 그의 승리는 그에게 큰 부요를 얻게 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그의 통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소수의 지역들이 그의 통치에서 벗어난다.


 8) 11:44, 45

 이 장의 마지막 절들에 묘사된 투쟁은 상당한 기간에 지속된다. “적그리스도는 예루 살렘 성전을 그의 사령부로 사용할 것이다.”11) 동쪽으로부터 오는 소문은, 이천만 명의 사람들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이 전쟁의 초점인 거룩한 땅(계 19:13~21)으로 내려오는 동안에 일어나는 거대한 침략을 언급한다.12) 또 다른 침략이 북방으로부터 보고된다. 왕은 그의 상응하는 공격을 감행하며 그의 장막 궁전을 아름답고 거룩한 산 위에 세우는 데 성 공한다. 이 전쟁은 재림 때까지 쉬지 않는다. 결국 에, 왈부드는, 거짓 선지자와 함께, 이 이방인의 때에 나타나는 최후의 세계 지도자는, 불 못에 던져진다(계 19:17~20:6)고 말한다. 이 장에서 얻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사건들을 말씀하시므로 역사를 지배하는 최상의 지식과 권능을 갖고 있다”13) 는 것이다.


 2.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과거주의”)

 다니엘 10~12장은 이 전체의 책이 그 절정을 이루는 긴 결론 부분을 구성한다. 골딩게이는 다니엘 11장의 초점이, 소위 그가 “교만한 이방인 전사”14) 로 부르는, 안티오쿠스 4세의 경력에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여긴다. 콜린즈는 왕의 계승에 대한 긴 예언은 뚜렷한 특색으로 꼴 지워진다고 말한다. “그것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까지 내려오는 헬라 역사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그림을 그린다.” 이 점은 포피리(Porphyry)에 의하여 정립되었으며, 제롬 (Jerome)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15) 페르시아에 관한 구절은 철저하게 축약된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를 보여 준다. 이것은 제롬으로 하여금 예언의 영은 역사적인 자세한 사항을 보존하는 데 관심이 있지 않으며 오직 가장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요약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주석하도록 이끌었다. 포르테우스에게 있어서, 이것은, 임박한 장래에 대한 저자의 예보로 끝나는,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까지에 이르는 과거 역사 중에서 선택된 사건들에 대한 해설이다. 포르테우스는, 다니엘 11장을, 이 장에서 유대인 관찰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하나님 자신에 대한 도전에 이르기까지, 그것과 함께, 그 자체를 드러내는 정치적인 세력의 과정을 본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은 불가피하 게 보인다”16) 고 말함으로 요약한다. 본 장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능동적인 역할을 감당하시기 때문에 인간 역사가 의미가 있다고 가르치는 이스라 엘의 위대한 선지자의 반열에 서 있다.


 1) 11:2~4

 콜린즈는, 7장에서 페르시아는 네 날 개를 가진 표범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따라서 네 왕이 다니엘 11장 2절에 언급된다고 주장한다. 오직 페르시아의 네 왕의 이름이 성경 가운데 언급된다. 고레스, 다리우스(다리오), 크세르크스(아하수 에로) 그리고 아닥사스다이다(스 4:5~7), 이 네 왕의 이름이 이곳에서 떠올려진 것이다. 그러나 큰 부요함으로 부해지는 네 번째 왕에 대한 묘사는 크세르크스가 아니라 다리우스 3세 콘도만누스(Darius Condomannus)이다. 콜린즈에 의하면, 제국의 부요가 이 왕의 통치 아래 그 정점에 도달한다는 진술은, “역사적인 정보에 의해서라기보다 극적인 효과 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강한 왕은, 그의 중요성이 단지 권력이라는 견지에서 평가된 알렉산더이다. “임의대로” 행하는 왕은 11장 가운데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이다. “이 저자가 알렉산더의 품성의 고상한 측면이나, 통일된 세계로 하여금 헬라 문화의 축복을 향유하게 하려는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암시가 주어지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한 경이적인 사람으로 기억하였다.”17) 그의 돌연한 죽음과 제국이 사등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이곳에서와 다니엘 8장 8절에 주어진다. 명목상으로 그를 계승할 그의 아우와 아들은 살해되었다.


 2) 11:5~13

 맥스웰과 왈부드와 같이, 콜린즈는 그 활동이 5~12절에 묘사된 왕들을 역사적으로 일치시키는 표준을 따른다. 포르테우스는 7절이 프톨레미 3세 유에르케테스에 의해 수행된 라오디게아 전쟁(Laodicean War)에 관한 간략한 보고를 전한다고 말한다. 프톨레미에 관련하여, 콜린즈는, 시리아를 왕이 정복한 후에, 그가 예루살렘에 와서 애굽의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는 대신에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는 요세푸스의 말을 인용한다. 필로파토르는 안티오쿠스 3세를 라피아 전투에서 물리쳤다. 하지만,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안티오쿠스 3세는 그의 제국을 동방으로 확장시킨 그의 성공으로 인해 “대왕”으로 알려졌다. 이 왕은 그의 조직하는 능력과 정치인으로서보다 그의 군사적 용감무쌍함으로 더 유명하다. 기원전 200년의 유명한 파네아(Paneas) 전투에서 애굽에 대한 시리아의 승리와 함께, 유대 땅은 프톨레미 왕조에게서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 아래로 옮겨졌다.


 3) 11:14~20

 14절에 나오는 남방 왕에 대항하여 일 어날 “많은 무리”에 대한 언급은 분명히 알 수 있으나, 이 절의 나머지 부분은 불분명하다. 다시금, 이 시점에서, 콜린즈는 요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한다. ‘우버네 파리체 암머카’“네 백성 중에 강포한 자”라는 말은 부정적인 평가를 포함한다.18) 이 “강포한 자들은 비의도적으로 다니엘의 계시를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19) 문제가 된 이상은 가장 그럴듯하게 에스겔 7장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당시에 유대는 애굽을 지지하는 단체(the Tobiads)와 또 다른 시리아를 지지하는 단체(the Oniads)의 분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시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스코파스의 수비대를 습격했을 때, 유대인들은 스코파스와 그의 용병을 대항하여 안티오쿠스 3세 편에 가담했다.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임의로 행하리니”라고 말하는, 16절은, 안티오쿠스가 예루살렘에서 영접 받는 장엄한 환영행사를 묘사한다. 그가 그 도시를 점령할 때, 유대인들은 그를 한 구원자로서 환영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유대의 종교적인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성취시키는 대신에, 그것은 헬라화 된 도시국가가 되었다.

 학자들은 17절에 언급된 나라가 누구의 나라를 언급하는지 프톨레미의 나라인지 셀류쿠스의 나라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나누어져 있다. 그들은 모두 프톨레미 에피파네스와, 여자의 딸—이 여왕과 프톨 레미 집안에 대한 그녀의 충성심에 대한 저자의 찬양을 반영하는 최상급적인 표현—인, 클레오파트라 1세의 결혼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18절은 헬라를 정복하고자 하는 안티오쿠스의 야망과 로마에 의한 그의 패배에 대해 말한다. 그의 오만함을 끝장낸, 한 대장(‘카친’“한 지도자” 또는 “집정관”)은 마그네시아(Magnesia)전투의 승리자인 루시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Lucius Cornelius Scipio)이다. 안티오쿠스는 로마에 조공을 바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벨 신의 성전을 약탈하는 동안 기원전 187년에 엘리마이스 (Elymais)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계승자(Seleucus IV Philpator)의 통치는 절박한 재정적인 상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4) 11:21~28

 포르테우스에 의하면, 저자는 이제 그 “당대의 역사”에 대한 묘사를 시작한다. 역사주의자에 따르면, 21절에 나오는 비천한 사람은 다니엘 7 장8장의 작은 뿔과 같이 지속적으로 다니엘서가 조소하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이다. 이 장의 가장 길고 가장 중요한 부분(21~45)은, “놀라울 정도로 기민한”20), 이 왕의 통치에 할당되었다. 공개적인 전쟁 없이, 이 사람은, 정당히 셀류쿠스의 아들들에게 속한 보좌를 찬탈하였다. 22~24절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역사적 자료 모두에 의하면, 탐욕스럽고 낭비하는 이 왕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개략을 준다.

 콜린즈에 의하면, 22절에 언급된 동맹한 왕의 죽음은, 다니엘 9장 26절에도 언급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보편적으로 현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21)고 말한다. 24절에서 저자는 안티오쿠스가 행하는 것이 “얼마 동안”만 성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비록 힘 있고, 괴이하고, 수수께끼와 같은 폭군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활동에 한계를 정해 놓으셨다는 것에 대한 신뢰할 만한 진술이다. 25~27절은 안티오쿠스의 첫 번째 애굽에 대한 침략과 배반과 기만으로 특징지어진, 이어진 프톨레미 4세와의 협상에 대해 말한다. 28절에 관해 주석하면서, 콜린즈는, 안티오쿠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며 그 성곽에 수비대를 주둔시킨, 기원전 143년에 있었던 사실에 주의를 돌린다. 그는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일을 행했다.


 5) 11:29~35

 29절은 안티오쿠스의 애굽에 대한 두 번째 침략에 대해 말하며, 이어지는 절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의 집정관에 의한 그의 수욕과 기원전 168년에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공격을 보고한다. 콜린즈의 견해에 의하면, 31절은 기원전 168~167년의 사건들을 겹쳐 놓는다. 그 당시에,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에 있는 토비아드들의 지도권을 재정립하였다. 이 절의 두 번째 부분은 이 악한 왕이 성전과 그 희생제사에 행한 것을 보고하며 멸망케하는 미운 물건을 세운 것에 대해 말한다. 8장9장은 또한 이 사건들에 대해 언급한다.

 32절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유대인들의 저항에 대해 말한다. 책의 저자는, ‘마스킬림’“지혜로운 자”(33절)—비폭력 노선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의 한 단체—에 속한다. 고난과 심지어는 순교를 통하여, 그들은 승리하고 하늘로 높아지는 지위를 얻는다(단 12:3; 사 53:11). 비록 지상의 이곳에서 그들은 적은 도움을 받을 지라도(34절), 그들은, ‘랍빔’“많은 사람”(35절)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정한 때는 다니엘 8장 19절11장 27절에 언급된 것과 같다. 중대하며, 고통스럽고 그리고 두려운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적은 도움”과는 대조적으로, 일시적인 순간의 고난은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으로 인도해 들이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22) 그와 같이, 박해의 기간을 한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심히 어려운 어둠의 날 동안에 나온 믿음의 표현”23) 이었다.


 6) 11:36~39

 이 절들은 연대적인 사건들의 순서로 계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왕의 품성과 활 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사건들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의 성전에 대한 지상적 공격으로 부터 하나님 자신에 관한 천상적 공격으로 이어진다. 안티오쿠스는, 그가 그의 주화에 바실레오스 안티오쿠 데우 에피파누스(BASILEOS ANTIOCHU THEOU EPIPHANOUS), “안티오쿠스, 현현한 하나님”24) 이라는 칭호를 새겨 넣을 때, 신들에 대하여 반역적인 것이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포르테우스는,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가장 명백한 훼방이었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지나칠 수 없는 도전—그의 중재가 요구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안티오쿠스는 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한 죄악을 지었다. 왕이 그의 열조의 신들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37절의 진술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대적인 태도라기 보다 무시함에 대해 말한다.

 안티오쿠스는 제우스의 제사를 높였으나, 그가 다른 신들에 대해 비관용적이 되었고 그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제우스 신을 경배하도록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서, “세력의 신”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문자적인 의미에서 안티오쿠스의 예배의 형태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조롱하는 칭호”이다. 콜린즈는 다니엘이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을...공경할” 것이라고 말할 때에, 그는 “과장적 주장에 몰두해 있는 것”25) 이라고 말한다. 그의 열조가 하지 못한 일을 안티오쿠스가 하는 것은 아폴로(Apollo)의 의식을 예루살렘에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종교를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또한 지역 주민을 지배하는 온전한 권위와 반역적인 것으로 발견되는 어떤 사람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그의 병사들을 위한 영지를 설치했다(39절). 포르테우스는 이 절들이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이룬다는 견해를 명백히 거절한다. 그는 이러한 견해는 선입견에 기초되어 있으며 본문에 대한 건전한 주석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7) 11:40~44

 어떤 다른 학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콜린즈와 포르테우스는 40절을 “기록된 역사”(ex. eventu, 과거 사건들)로부터 참된 예보적인 예언으로의 전환을 표시하는 것으로 본다. 골딩게이는 다니엘의 독자들에게 그것은 “그것들이 발생하기 전에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 성경 예언의 본질이 아님”26) 을 상기시킨다. “때의 마지막”은 35절—위기가 그 결말에 이르러 해결되는 역사의 기간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세 학자는 이 구절의 주어는 여전히 같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데 동의한다. 적그리스도에 관한 후기의 그리스도인 전통에서, 안티오쿠스는 “신화적인 인물로 치부된다.” 에돔, 모압, 암몬(41절)은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대적이었으며, 비록 그들이 그의 동맹으로 나열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안티오쿠스가 그들을 공격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은 전체 장의 중심 사상인 시리아와 애굽 사이의 긴 적대감의 절정의 부분을 이룬다. “동북에서 소문이 이르러”(44절)는 독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후퇴한 산헤립의 경우와 같이(사 37:7; 왕하 19:7), 왕들이 먼 군사적인 원정 중 그들의 부재시에, 본국에서의 반역의 소문에 대한 그들의 취약성을 상기시킨다.


 8) 11:45

 이 절은 왕이 그의 장막 궁전을 이스라엘 땅에 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승리는, 오랫동안 최후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된 장소인, 세 계의 중심에서 일어날 최후의 싸움을 선포한다.27) 콜린즈 의하면 “그의 끝이 이르리니”라는 말은 안티오쿠스의 죽음을 묘사한다. 그가 엘리마이스에 있는 성전을 약탈하려고 했기에 “정신 착란으로 침을 받은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전설에 불과한 것이다. 마카비서에 나오는 그의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설명은 세부 사항에 있어서는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일치하는 한 가지 점은, 왕은, 그가 성전을 약탈하려고 시도한, 페르시아에서 죽었다는 것이다.28) 포르테우스는 모든 사람이 다니엘서의 이 구절을 안티오쿠스의 죽음에 관한 잘 확증된 역사적 사실에 조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29)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여간, 우리는 이 예언의 부분적인 성취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1. Archer, 127.

 2. Walvoord, 252.

 3. Miller, 290.

 4. Archer, 132.

 5. Miller, 296.

 6. Ibid., 300.

 7. Archer, 141.

 8. Walvoord, 269.

 9. Walvoord, 270.

 10. Archer, 143.

 11. Miller, 312.

 12. Archer, 148.

 13. Miller, 313.

 14. Goldingay, 293.

 15. Collins, 377.

 16. Porteous, 150.

 17. Ibid. 157.

 18. Collins, 380.

 19. Goldingay, 297.

 20. Ibid., 299.

 21. Collins, 382.

 22. Goldingay, 303.

 23. Porteous, 168.

 24. Collins, 386.

 25. Ibid., 388.

 26. Goldingay, 305.

 27. Ibid.

 28. Collins, 380.

 29. Porteous,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