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의 적용은 로마의 국가적(
16~20절)이며 종교적(
21~29절)인 두 국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문자주의자들과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은 안티오쿠스라는 인물과 활동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문자주의 해석자들은 이 통치자가
14~36절에 제시되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다니엘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천년의 긴 간격이 이어진다. 그 다음
37~45절은 아직 미래에 있는 사건들에 대한 묘사로 장이 끝난다. 이와 반면에,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은
14~39절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언되어 있다고 보고
40~45절은 이 악명 높은 사람을 예언하는 일에 저자가 실패했다고 여긴다. 아처는 영적 전쟁은 믿는 남은 자를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제안한다.
1) 1. 문자주의적인 적용(“미래주의”) 문자주의자들은 이 어려운 장들을 주석하기 위하여 시도하는 데 있어서, 해석자는 이곳에서 예언이 정확할지라도, 그것은 선택적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계시는 시대의 모든 역사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모든 통치자들의 이름을 지명하지도 않는다. 왈부드에 의하면, 이 장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다른 모든 통치자들보다도 더 많은 지면이 할당되어졌는 데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의 활동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와 같이, 다니엘에게 주어진 네 번째이며 최종적인 이상은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서 시작하여 마지막 때에 최후의 이방인 통치자에게까지 미치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계시를 포함한다.
다니엘 11장은
“두 주요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로,
2~35절은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통치자들을 묘사하며, 그 다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기원 전 175~164)의 통치를 결론지으면서, 이어지는 세 번째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에 대한 주요 사건들 중 얼마를 아주 자세하게 보여 준다. 그 다음 예언은, 교회의 현재 시대의 사건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안티오쿠스의 사망으로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전체 기간을 뛰어넘는다.
두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권력을 갖고 다스리고 있을 최후의 이방인 통치자”2) 를 다루고 있는
36~45절이다. 밀러는 이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언급한다.
3) 1)
11:2~4 이 예언 가운데 발견되는 역사적 세부사항은 놀라운 것이다. 왈부드의 페르시아 네 왕의 신원 확인은 다음과 같다. 캄비세스, 거짓-스메르디스, 다리우스 1세,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와 일치될 수 있는 크세르크스 1세이다.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스는 나머지 왕들보다도 더 중요하다. 헬라국에 대항한 불행한 운명의 침공은
에스더 1장과
2장 사이에 발생했을 수 있다. 헬라의 강한 왕에 대한 묘사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온전히 들어맞는데 왜냐하면 그는 큰 권세를 가졌고
“임의 대로” 행한 절대적인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강성할 때에” 라는 말은 이 왕의 짧은 통치 기간을 지적한다. 그의 제국을 깨뜨리고 나누는 것에 대한 예언은 역사 속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의 합법적인 상속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2)
11:5~9 이 장의 이 부분은 약 150년 동안의 기간을 망라하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기원전 75~164) 시대까지 이르는 시리아 왕들과 애굽 사이에 계속된 투쟁을 말함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사를 추적함에 있어서, 예언은 여러 사건 중에서 선택하고 있다. 본문은 모든 통치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에 대한 신원 확인은 분명하다. 프톨레미 1세 소테르(Ptolemy Soter)와 셀류쿠스 1세 니카도르(Seleucus NIcator)는 서로 적대하는 통치자들의 두 계보를 시작하였고, 두 나라 사이에 막상막하의 전쟁을 벌인다. 버니게의 살해는 그녀의 오라비 프톨레미 3세 유에르게 테스(Ptolemy Euergetes)의 복수로 이어진다.
3)
11:10~20 본 장의 이 부분은 애굽에 대한 시리아의 승전으로 이끄는 사건들을 묘사한다. 이 기간 동안에 가장 탁월한 통치자는, 애굽에 대한 그의 연속된 공격이
13~16절에 망라(網羅)되어 있는, 대왕 안티오쿠스 3세(Antiochus the Great. 기원전 223~187)다. 아처가 말하듯이,
10절은 이 왕의 도래와 거룩한 땅에 대한 그의 정복을 묘사한다.
“네 백성 중에 강포한 자”(
14절)는
“법과 공의를 범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말들은 애굽에 대항하여 싸우는 안티오쿠스 대왕과 동맹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다. 애굽의 장군 스코파스(Scopas)가 안티오쿠스 3세에게 굴복할 때, 아처는, 안디옥 정부가 거룩한 땅을 영구히 노획했다고 말한다.
4)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라는 구절은 안티오쿠스 3세의 통치 아래 유대인의 고난을 생생히 묘사한다. 시리아 왕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다. 로마의 위협 아래, 그는 그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 (Cleopatra I)와 애굽 왕 프톨레미 5세(Ptolemy V)의 결혼에 의하여 조인된 애굽과 조약을 체결했다. 새로운 알렉산더 대왕이 되기 위한 그의 야망 가운데 안티오쿠스는 헬라를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 했으나, 그는 이 전쟁에서 두드러지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패배하고 깨어져서 그의 땅으로 돌아왔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
5) 최종적으로,
2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기억되는,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Seleucus Philopator)에 대해서 말한다.
4)
11:21~23 문자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절들은 앞에서 묘사된 작은 뿔과 같이 별볼일 없는 시리아 통치자이며 역사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로 알려진 사람에게 할당(當)된 장의 시작 부분을 표시한다(
단 8:9~14; 23~25), 밀러는 그의 행위가 이스라엘에게 심원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에게 많은 주의가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에 대하여 두드러지게 기록된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제단을 더럽히고 유대 백성을 심하게 핍박했기 때문이다. 이방인 통치에 대한 관점은, 이곳에서 주로 유대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본 것이다. 그리고 안티오쿠스는 그의 부도덕한 삶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미움과 박해라는 관점에서 그려졌다.
안티오쿠스는 기만을 통해서 왕의 권력을 얻었다. 세 단어가 그의 경력을 묘사한다. 음모, 찬탈,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아처는 그가
다니엘 8장의 작은 뿔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22절은 매우 일반 적인 방법으로 애굽을 대항하여 안티오쿠스에 의해 수행된 군사적 원정에 대하여 말한다.
“동맹한 왕”의 죽음은 기원전 172년에 안티오쿠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에 적용된다.
28절과
32절 가운데, 언약이라는 용어는 유대 국가에 대하여 사용된다.
23절은 음모와 기만으로 물들여진 여러 지역들, 특별히 애굽과 맺은 안티오쿠스의 동맹에 대하여 말한다.
5)
11:24~34 왈부드에 의하면,
24~26절은, 그의 지배아래 가장 부요한 곳을 약탈한 안티오쿠스의 음모에 대하여 말한다. 시리아와 애굽 사이에 이루어진 일시적인 합의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들 나라의 어떤 통치자도,
27절과
28절에 진술된 대로, 그들의 합의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이 악한 왕은 유대 백성에 대한 그의 미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9~31절은 애굽에 대한 안티오쿠스의 침공 중 한번은, 로마에 의하여 저지된 것에 대하여 말한다. 로마의 집정관은 그가 애굽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그가 안티오쿠스 주위에 원을 그린 후 그가 그 원에서 한 발자국 나오기 전에 로마의 뜻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된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와 같이,
“깃딤의 배들(ships of the western coastlands)”(
30절)에 의하여 저지될 때, 안티오쿠스는 낙심했다(칠십인역에는, 이 배들을
“로마인”으로 언급한다). 그 후로 악한 왕은 그의 분노를, 마카비서의 두 책에 묘사된 사건들을 통하여 유대 백성에게 쏟는다(
30절). 이 왕의 편에 가담한 유대인들은
“언약을 배반하는”(
32절)자라고 했다. 안티오쿠스는 성전의 제단을 더럽혔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했으며 전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금지했다. 그는 거룩한 장소에 우상(쥬피터나 제우스 올림퍼스)을 세웠다. 이것이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었다.
“이 악한 군주에 의한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는 이제 재난적인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6) 이 구절에 대한 문자주의자들의 적용은 그리스도 초림 바로 직전까지만 제한되지 않는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그리스도는 이러한 형태의 더럽힘을 때의 마지막에 있을 큰 환란의 시작과 연결시킨다. 그와 같이 안티오쿠스는 그의 행위가 궁극적인 훼방과 박해로 예시된 장차 나타날 죄악의 사람의 표상이 된다.
32~35절은 안티오쿠스를 반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를 묘사한다. 이 대적하는 일은 소위 아처가 말하는
“용감한 마카비 사람들”의 가족에 의하여 주도된다. 이 가족의 구성원은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느낄 때에는 안식일에도 싸우기 위하여 준비되었으며, 안티오쿠스의 편에 가담한 그의 동료 유대인들, 그의 음모에 속임을 당하여 변절한 사람들도 공격하였다. 아처가
“애국적인 지도자들”7)로 언급하는 마카비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35절은 핍박으로 인하여 정결케 하는 과정이
“때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임을 지적한다.
왈부드는
11장의 처음
35절까지는 135개 이상의 예언 진술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 중에 어떤 것도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8)고 말한다.
6)
11:35~39 밀러는 박해의 직접적인 결과는 개인과 민족을 그들의 죄악적인 행습으로부터 정결케 하며 하나님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 이라고 말한다.
35절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대한 언급은 이 장을 깨끗하게 나누는 지점을 표시한다. 왈부드에 의하면, 이 지점에까지, 바사와 헬라 제국을 다루고 예언들은
“세밀하게 놀라운 정확성으로” 성취된다. 하지만,
36절에서, 전적으로 다른 변화가 시작된다.
“어떤 주석가도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정확한 성취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9) “셀류쿠스 왕조와 유대인 애국자들 사이의 투쟁은” 35절과 함께
“끝이 난다.”10) 이 절들에 나온 많은 역사적인 자료들은 안티오쿠스의 생애나 그의 죽음에 조화되지 않는다. 첫째로,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죽지 않았고 페르시아에서 죽었다.
“모든 신보다 크다”할 왕은 마지막 날에 세상을 통치하며, 그에 대해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장차 나타날 로마의 통치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다름 아닌
7장에 나타난 작은 뿔이며, 그의 끝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발생 할 것이다(
살후 2:3~10).
36~39절은 그의 성격을 묘사하나, 그것에 이어지는 절(
40~45절)들은 그의 전쟁에 대하여 말한다. 전에 언급하였듯이, 밀러는 이 통치자를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나, 아처에게 있어서, 그는
“마지막 날의 짐승” 곧 무신론자이거나 불경건한 독재자다.
7)
11:40~43 40절은 시대의 마지막을 특징지을 군사적인 투쟁에 대하여 말한다.
36~39절에 언급된 왕은, 남방과 북방으로부터 나온, 두 세력 모두에 의해 공격 받게 될 것이다. 왈부드는 앞서서 나오는 남방 왕에 대한 언급은 애굽을 언급하는 것이나, 이 곳에서 그것들은 거룩한 땅의 남방에서 유래되는 군사적이며 정치적인 세력의 지도자, 즉 아프리카 군대라고 보이는 것을 언급한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유사한 방법으로,
“북방 왕”은, 팔레스타인 북쪽에 위치한 모든 나라들의 연맹인 좀 더 광범위한 실체이다(
겔 38장), 남방 세력(밀러에 의하면, 아랍민족권이라고 봄)
이 적그리스도를 공격할 때, 그는 복수하며 결정적으로 그것을 쳐부순다. 애굽의 세력은 마침내 패배 한다. 비록 호된 싸움을 겪지만
36절에서 왕은, 그 리스도가 재림하기까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지속한다. 그는 그를 침공한 사람들을 반대로 공격하며, 애굽을 포함하여, 그들의 나라로 쳐들어간다. 그의 승리는 그에게 큰 부요를 얻게 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그의 통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소수의 지역들이 그의 통치에서 벗어난다.
8)
11:44, 45 이 장의 마지막 절들에 묘사된 투쟁은 상당한 기간에 지속된다.
“적그리스도는 예루 살렘 성전을 그의 사령부로 사용할 것이다.”11) 동쪽으로부터 오는 소문은, 이천만 명의 사람들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이 전쟁의 초점인 거룩한 땅(
계 19:13~21)으로 내려오는 동안에 일어나는 거대한 침략을 언급한다.
12) 또 다른 침략이 북방으로부터 보고된다. 왕은 그의 상응하는 공격을 감행하며 그의 장막 궁전을 아름답고 거룩한 산 위에 세우는 데 성 공한다. 이 전쟁은 재림 때까지 쉬지 않는다. 결국 에, 왈부드는, 거짓 선지자와 함께, 이 이방인의 때에 나타나는 최후의 세계 지도자는, 불 못에 던져진다(
계 19:17~20:6)고 말한다. 이 장에서 얻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사건들을 말씀하시므로 역사를 지배하는 최상의 지식과 권능을 갖고 있다”13) 는 것이다.
2. 신구약 중간 시대의 적용(“과거주의”) 다니엘 10~12장은 이 전체의 책이 그 절정을 이루는 긴 결론 부분을 구성한다. 골딩게이는
다니엘 11장의 초점이, 소위 그가
“교만한 이방인 전사”14) 로 부르는, 안티오쿠스 4세의 경력에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여긴다. 콜린즈는 왕의 계승에 대한 긴 예언은 뚜렷한 특색으로 꼴 지워진다고 말한다.
“그것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까지 내려오는 헬라 역사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그림을 그린다.” 이 점은 포피리(Porphyry)에 의하여 정립되었으며, 제롬 (Jerome)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15) 페르시아에 관한 구절은 철저하게 축약된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를 보여 준다. 이것은 제롬으로 하여금 예언의 영은 역사적인 자세한 사항을 보존하는 데 관심이 있지 않으며 오직 가장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요약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주석하도록 이끌었다. 포르테우스에게 있어서, 이것은, 임박한 장래에 대한 저자의 예보로 끝나는,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까지에 이르는 과거 역사 중에서 선택된 사건들에 대한 해설이다. 포르테우스는,
다니엘 11장을, 이 장에서 유대인 관찰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하나님 자신에 대한 도전에 이르기까지, 그것과 함께, 그 자체를 드러내는 정치적인 세력의 과정을 본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은 불가피하 게 보인다”16) 고 말함으로 요약한다. 본 장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능동적인 역할을 감당하시기 때문에 인간 역사가 의미가 있다고 가르치는 이스라 엘의 위대한 선지자의 반열에 서 있다.
1)
11:2~4 콜린즈는,
7장에서 페르시아는 네 날 개를 가진 표범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따라서 네 왕이
다니엘 11장 2절에 언급된다고 주장한다. 오직 페르시아의 네 왕의 이름이 성경 가운데 언급된다. 고레스, 다리우스(다리오), 크세르크스(아하수 에로) 그리고 아닥사스다이다(
스 4:5~7), 이 네 왕의 이름이 이곳에서 떠올려진 것이다. 그러나 큰 부요함으로 부해지는 네 번째 왕에 대한 묘사는 크세르크스가 아니라 다리우스 3세 콘도만누스(Darius Condomannus)이다. 콜린즈에 의하면, 제국의 부요가 이 왕의 통치 아래 그 정점에 도달한다는 진술은,
“역사적인 정보에 의해서라기보다 극적인 효과 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강한 왕은, 그의 중요성이 단지 권력이라는 견지에서 평가된 알렉산더이다.
“임의대로” 행하는 왕은
11장 가운데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이다.
“이 저자가 알렉산더의 품성의 고상한 측면이나, 통일된 세계로 하여금 헬라 문화의 축복을 향유하게 하려는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암시가 주어지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한 경이적인 사람으로 기억하였다.”17) 그의 돌연한 죽음과 제국이 사등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이곳에서와
다니엘 8장 8절에 주어진다. 명목상으로 그를 계승할 그의 아우와 아들은 살해되었다.
2)
11:5~13 맥스웰과 왈부드와 같이, 콜린즈는 그 활동이
5~12절에 묘사된 왕들을 역사적으로 일치시키는 표준을 따른다. 포르테우스는
7절이 프톨레미 3세 유에르케테스에 의해 수행된 라오디게아 전쟁(Laodicean War)에 관한 간략한 보고를 전한다고 말한다. 프톨레미에 관련하여, 콜린즈는, 시리아를 왕이 정복한 후에, 그가 예루살렘에 와서 애굽의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는 대신에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는 요세푸스의 말을 인용한다. 필로파토르는 안티오쿠스 3세를 라피아 전투에서 물리쳤다. 하지만,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안티오쿠스 3세는 그의 제국을 동방으로 확장시킨 그의 성공으로 인해
“대왕”으로 알려졌다. 이 왕은 그의 조직하는 능력과 정치인으로서보다 그의 군사적 용감무쌍함으로 더 유명하다. 기원전 200년의 유명한 파네아(Paneas) 전투에서 애굽에 대한 시리아의 승리와 함께, 유대 땅은 프톨레미 왕조에게서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 아래로 옮겨졌다.
3)
11:14~20 14절에 나오는 남방 왕에 대항하여 일 어날
“많은 무리”에 대한 언급은 분명히 알 수 있으나, 이 절의 나머지 부분은 불분명하다. 다시금, 이 시점에서, 콜린즈는 요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한다.
‘우버네 파리체 암머카’,
“네 백성 중에 강포한 자”라는 말은 부정적인 평가를 포함한다.
18) 이
“강포한 자들은 비의도적으로 다니엘의 계시를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19) 문제가 된 이상은 가장 그럴듯하게
에스겔 7장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당시에 유대는 애굽을 지지하는 단체(the Tobiads)와 또 다른 시리아를 지지하는 단체(the Oniads)의 분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시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스코파스의 수비대를 습격했을 때, 유대인들은 스코파스와 그의 용병을 대항하여 안티오쿠스 3세 편에 가담했다.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임의로 행하리니”라고 말하는,
16절은, 안티오쿠스가 예루살렘에서 영접 받는 장엄한 환영행사를 묘사한다. 그가 그 도시를 점령할 때, 유대인들은 그를 한 구원자로서 환영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유대의 종교적인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성취시키는 대신에, 그것은 헬라화 된 도시국가가 되었다.
학자들은
17절에 언급된 나라가 누구의 나라를 언급하는지 프톨레미의 나라인지 셀류쿠스의 나라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나누어져 있다. 그들은 모두 프톨레미 에피파네스와, 여자의 딸—이 여왕과 프톨 레미 집안에 대한 그녀의 충성심에 대한 저자의 찬양을 반영하는 최상급적인 표현—인, 클레오파트라 1세의 결혼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18절은 헬라를 정복하고자 하는 안티오쿠스의 야망과 로마에 의한 그의 패배에 대해 말한다. 그의 오만함을 끝장낸, 한 대장(
‘카친’,
“한 지도자” 또는
“집정관”)은 마그네시아(Magnesia)전투의 승리자인 루시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Lucius Cornelius Scipio)이다. 안티오쿠스는 로마에 조공을 바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벨 신의 성전을 약탈하는 동안 기원전 187년에 엘리마이스 (Elymais)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계승자(Seleucus IV Philpator)의 통치는 절박한 재정적인 상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4)
11:21~28 포르테우스에 의하면, 저자는 이제 그
“당대의 역사”에 대한 묘사를 시작한다. 역사주의자에 따르면,
21절에 나오는 비천한 사람은
다니엘 7 장과
8장의 작은 뿔과 같이 지속적으로 다니엘서가 조소하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이다. 이 장의 가장 길고 가장 중요한 부분(
21~45)은,
“놀라울 정도로 기민한”20), 이 왕의 통치에 할당되었다. 공개적인 전쟁 없이, 이 사람은, 정당히 셀류쿠스의 아들들에게 속한 보좌를 찬탈하였다.
22~24절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역사적 자료 모두에 의하면, 탐욕스럽고 낭비하는 이 왕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개략을 준다.
콜린즈에 의하면,
22절에 언급된 동맹한 왕의 죽음은,
다니엘 9장 26절에도 언급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보편적으로 현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21)고 말한다.
24절에서 저자는 안티오쿠스가 행하는 것이
“얼마 동안”만 성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비록 힘 있고, 괴이하고, 수수께끼와 같은 폭군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활동에 한계를 정해 놓으셨다는 것에 대한 신뢰할 만한 진술이다.
25~27절은 안티오쿠스의 첫 번째 애굽에 대한 침략과 배반과 기만으로 특징지어진, 이어진 프톨레미 4세와의 협상에 대해 말한다.
28절에 관해 주석하면서, 콜린즈는, 안티오쿠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며 그 성곽에 수비대를 주둔시킨, 기원전 143년에 있었던 사실에 주의를 돌린다. 그는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일을 행했다.
5)
11:29~35 29절은 안티오쿠스의 애굽에 대한 두 번째 침략에 대해 말하며, 이어지는 절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의 집정관에 의한 그의 수욕과 기원전 168년에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공격을 보고한다. 콜린즈의 견해에 의하면,
31절은 기원전 168~167년의 사건들을 겹쳐 놓는다. 그 당시에,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에 있는 토비아드들의 지도권을 재정립하였다. 이 절의 두 번째 부분은 이 악한 왕이 성전과 그 희생제사에 행한 것을 보고하며 멸망케하는 미운 물건을 세운 것에 대해 말한다.
8장과
9장은 또한 이 사건들에 대해 언급한다.
32절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유대인들의 저항에 대해 말한다. 책의 저자는,
‘마스킬림’,
“지혜로운 자”(
33절)—비폭력 노선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의 한 단체—에 속한다. 고난과 심지어는 순교를 통하여, 그들은 승리하고 하늘로 높아지는 지위를 얻는다(
단 12:3; 사 53:11). 비록 지상의 이곳에서 그들은 적은 도움을 받을 지라도(
34절), 그들은,
‘랍빔’,
“많은 사람”(
35절)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정한 때는
다니엘 8장 19절과
11장 27절에 언급된 것과 같다. 중대하며, 고통스럽고 그리고 두려운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적은 도움”과는 대조적으로, 일시적인 순간의 고난은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으로 인도해 들이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22) 그와 같이, 박해의 기간을 한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심히 어려운 어둠의 날 동안에 나온 믿음의 표현”23) 이었다.
6)
11:36~39 이 절들은 연대적인 사건들의 순서로 계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왕의 품성과 활 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사건들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의 성전에 대한 지상적 공격으로 부터 하나님 자신에 관한 천상적 공격으로 이어진다. 안티오쿠스는, 그가 그의 주화에 바실레오스 안티오쿠 데우 에피파누스(BASILEOS ANTIOCHU THEOU EPIPHANOUS),
“안티오쿠스, 현현한 하나님”24) 이라는 칭호를 새겨 넣을 때, 신들에 대하여 반역적인 것이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포르테우스는,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가장 명백한 훼방이었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지나칠 수 없는 도전—그의 중재가 요구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안티오쿠스는 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한 죄악을 지었다. 왕이 그의 열조의 신들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37절의 진술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대적인 태도라기 보다 무시함에 대해 말한다.
안티오쿠스는 제우스의 제사를 높였으나, 그가 다른 신들에 대해 비관용적이 되었고 그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제우스 신을 경배하도록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서,
“세력의 신”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문자적인 의미에서 안티오쿠스의 예배의 형태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조롱하는 칭호”이다. 콜린즈는 다니엘이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을...공경할” 것이라고 말할 때에, 그는
“과장적 주장에 몰두해 있는 것”25) 이라고 말한다. 그의 열조가 하지 못한 일을 안티오쿠스가 하는 것은 아폴로(Apollo)의 의식을 예루살렘에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종교를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또한 지역 주민을 지배하는 온전한 권위와 반역적인 것으로 발견되는 어떤 사람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그의 병사들을 위한 영지를 설치했다(
39절). 포르테우스는 이 절들이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이룬다는 견해를 명백히 거절한다. 그는 이러한 견해는 선입견에 기초되어 있으며 본문에 대한 건전한 주석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7)
11:40~44 어떤 다른 학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콜린즈와 포르테우스는
40절을
“기록된 역사”(ex. eventu, 과거 사건들)로부터 참된 예보적인 예언으로의 전환을 표시하는 것으로 본다. 골딩게이는 다니엘의 독자들에게 그것은
“그것들이 발생하기 전에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 성경 예언의 본질이 아님”26) 을 상기시킨다.
“때의 마지막”은
35절—위기가 그 결말에 이르러 해결되는 역사의 기간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세 학자는 이 구절의 주어는 여전히 같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데 동의한다. 적그리스도에 관한 후기의 그리스도인 전통에서, 안티오쿠스는
“신화적인 인물로 치부된다.” 에돔, 모압, 암몬(
41절)은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대적이었으며, 비록 그들이 그의 동맹으로 나열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안티오쿠스가 그들을 공격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은 전체 장의 중심 사상인 시리아와 애굽 사이의 긴 적대감의 절정의 부분을 이룬다.
“동북에서 소문이 이르러”(
44절)는 독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후퇴한 산헤립의 경우와 같이(
사 37:7; 왕하 19:7), 왕들이 먼 군사적인 원정 중 그들의 부재시에, 본국에서의 반역의 소문에 대한 그들의 취약성을 상기시킨다.
8)
11:45 이 절은 왕이 그의 장막 궁전을 이스라엘 땅에 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승리는, 오랫동안 최후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된 장소인, 세 계의 중심에서 일어날 최후의 싸움을 선포한다.
27) 콜린즈 의하면
“그의 끝이 이르리니”라는 말은 안티오쿠스의 죽음을 묘사한다. 그가 엘리마이스에 있는 성전을 약탈하려고 했기에
“정신 착란으로 침을 받은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전설에 불과한 것이다. 마카비서에 나오는 그의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설명은 세부 사항에 있어서는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일치하는 한 가지 점은, 왕은, 그가 성전을 약탈하려고 시도한, 페르시아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28) 포르테우스는 모든 사람이 다니엘서의 이 구절을 안티오쿠스의 죽음에 관한 잘 확증된 역사적 사실에 조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29)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여간, 우리는 이 예언의 부분적인 성취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1. Archer, 127.
2. Walvoord, 252.
3. Miller, 290.
4. Archer, 132.
5. Miller, 296.
6. Ibid., 300.
7. Archer, 141.
8. Walvoord, 269.
9. Walvoord, 270.
10. Archer, 143.
11. Miller, 312.
12. Archer, 148.
13. Miller, 313.
14. Goldingay, 293.
15. Collins, 377.
16. Porteous, 150.
17. Ibid. 157.
18. Collins, 380.
19. Goldingay, 297.
20. Ibid., 299.
21. Collins, 382.
22. Goldingay, 303.
23. Porteous, 168.
24. Collins, 386.
25. Ibid., 388.
26. Goldingay, 305.
27. Ibid.
28. Collins, 380.
29. Porteous,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