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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진리
 헬라어 카리스 카이 알레쎄이아(charis kai ale-theia). 여기에서 카리스(charis)는 “호의”, “인자”,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호의”, “자비”를 뜻한다. 알레쎄이아(ale-theia)는 구원의 계획과 성육신한 구주 안에 나타난, 죄인을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진리”를 가리킨다. 여기서 카리스는 히브리어 헤세드(hesed, 참조 시 36편에 대한 추가적 설명; 욥 10:12 주석), 알레쎄이아는 히브리어 에메트(emet, “신실함”, “신뢰할 만함”)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자비”“진리”라는 문구처럼, 이 단어들도 메시야적인 배경임 이 분명한 구약의 시 85:10, 11에 함께 나타난다. 그리스도가 와서 특별히 명백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들이었다. 그분이 세상에 계실 때에, 이런 속성들로 “충만”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하여 충분하고 온전하게 계시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늘 충실하시며, 그분의 성품은 자비나 은혜 속에서 가장 온전하게 드러난다.
 예수가 성육신하기 15세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당신이 “그들 중에 거할”(출 25:8) “성소” 혹은 장막을 당신을 위해 지으라고 지시했다. 과거에 하나님의 임재가 셰키나(Sekinah) 영광의 형태로 법궤 위의 속죄소 위와 다른 곳에 나타났던 것처럼(참조 창 3:24; 출 13:21 주석), 그때 동일한 영광이 예수라는 인격 안에서 나타났다. 이 사실에 관하여 요한과 그의 동료 제자들은 목격자로서 증거하였고, 그들에게 이것은 예수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왔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런 영광은 어떤 다른 원천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히브리어에서 미쉬칸(miskan, “거처”, “장막”, “성막”)과 셰키나(sekinah, 영광스런 “임재”)와 같은 단어들은 둘 다 “거하다”, “머물다”는 뜻을 가진 샤칸(saka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헬라어에도 스케네(ske-ne-, “천막”, “장막”)는 스케노오(ske--noo-, “천막을 치다”, “장막을 치다”)와 비슷하게 연관이 있으며, 그렇기에 “거하다”, “머물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영광, 즉 거룩한 “임재”가 실제적인 성막 내에서 선민 가운데 머물렀으나, 이제 그 동일한 영광의 “임재”인 하나님 자신이 우리 주요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내에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고자 오셨다고 요한은 말한다. 바울이 롬 9:4에서 말하는 “영광”셰키나 영광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변화산에서 나타났던 “빛난 구름”(마 17:5)일 가능성도 있다. 메시야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분명한 사 11:1~10에 메시야가 올 것이 예언되었고, 문자적으로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하였다. 시 85:9, 10에 따르면, 구원의 날이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이끌어 와서 그 땅에 “거하”도록 할 것이며, 그때에 “자비”(혹은 은혜, 히브리어 헤세드[hesed], 참조 시 36편에 대한 추가적 설명)와 진리(히브리어 에메트[emet], “신실함”, “신뢰할 만함”)가 만날 것이라고 한다(참조 시대의 소망, 762). 동일한 두 단어 헤세드에메트(“자비로운”, “은혜로운”)는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히브리어 카보드[kabod])”을 보도록 허락되었을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는 가운데 함께 연결되어 있다(참조 출 33:22; 34:6 주석). 구약에 나오는 이 구절들과 메시야에 관한 다른 성경절들은 여기 1:14에서 매우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절에는, 성육신 때에 아버지의 임재로부터만 올 수 있는 영광이 성육신한 말씀 가운데 나타났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자비]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그리스도 생애의 모든 주요한 국면들은 구속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그의 동정녀 탄생은 하늘과 땅의 멀어진 가족들을 다시 연합시켰다. 그는 인성을 지니고 하늘로 돌아가시기 위하여 신성을 가지고 땅으로 내려왔다. 인간으로서 그의 완전한 생애는 순종과(요 15:10; 요일 2:6) 성화(17:19)의 모본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며, 하나님으로서 그는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준다(롬 8:3, 4). 그의 대속적인 죽음은 우리에게 집행 유예 기간을 누릴 수 있게 하였고(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37) 그가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수 있게 하였다(사 53:5, 11; 롬 5:9; 딛 2:14).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그의 생애를 믿음으로써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다(롬 5:1, 10; 빌 4:7). 그의 영광스런 부활은 언젠가 우리도 불멸을 옷 “입을” 것임을 보증한다(고전 15:12~22, 51~55).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데려가시고(요 14:1~3; 행 1:9~11), 그렇게 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를 완수하겠다는 약속을 확증한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이룰 사명의 이 다섯 가지 국면은 예언의 전체 주제였다(사 9:6, 7; 53; 61:1~3; 시 6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