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어
다트(
dat). 사람의 법과(
2:9, 13, 15; 6:8, 12, 15) 하나님의 법에(
스 7:12, 14, 21, 25, 26)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인간의 법은 권세를 가진 자들에 의해 임의로 변개되고 그러한 변개는 예언의 주제가 되기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언급했음이 분명하다. 교황권이 하나님의 율법을 변개하고자 애를 썼는가 아닌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는 수많은 교리들과 관습을 끌어들인 초기 기독교 시대의 큰 배도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가장 대담한 변개는 주일 중 예배드리는 날에 관한 문제에서 일어났다. 배도한 교회는 거리낌 없이 그것이 분명히 일요일 예배를 도입했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변개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446).
신부들을 위한 한 권위 있는 교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즉 배도한 교회]는 그 지혜 가운데 안식일 경축을 ‘주의 날’로 이전하도록 결정했다”(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Donovan translation, 1829 ed., 358). 이 교리문답은 그 대(大)종교회의의 명령에 따라 기록되었으며 교황 피우스 V세의 후원으로 출판되었다.
신약 시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중 제7일을 안식일로 지켰다(참조
행 17:2 주석).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의 전환은 점진적인 과정이었으며, 그것은 AD 150년 이전 언젠가 시작되어 약 3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이 일요일 준수를 역사적으로 처음 언급한 것은
바나바의 서신(
Epistle of Barnabas, 15장)과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의 첫 번째 변증(
Justin Martyr’s First Apology, 67장)에 나오는데, 둘 다 AD 150년경에 기록된 것이다. 양자가 다 안식일 준수를 비난하며 일요일 준수를 촉구한다.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제일 먼저 분명하게 언급한 내용은 2세기 말경에 기록된 외경인
베드로의 복음(
Gospel According to Peter)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의 저서(Miscellanies, v. 14)에 나온다.
AD 132~135년 바르 코크바(Bar Cocheba)가 주도한 유대인의 반란 이전에는 로마 제국이 유대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했으며, 기독교를 하나의 유대교 분파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반란으로 인해 유대인들과 유대교는 불신을 받게 되었다. 뒤따른 박해를 피하기 위해 그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자신들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려고 애썼다.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그 다음 3세기 동안 거듭 거듭 안식일 준수를 “유대인처럼 되는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은, 유대인 반란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준수했다는 역사적인 언급이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AD 135~150년의 기간이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의 신성성을 주일 중 첫째 날에 부여하기 시작한 때임을 지적해 준다.
그러나 일요일 준수는 즉시 안식일 준수를 대신하지는 않았으며 안식일 준수와 병행했거나 그것을 보충하였다.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두 날을 다 지켰다. 그 예로 3세기 초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으셨다고 진술하였다. 그보다 조금 후에 외경(外經)인 사도들의 헌법(Apostolic Constitutions, ii. 36)은 “안식일과 주일(主日) 축제를 지키라”고 권고하였다.
4세기 초에 이르자 일요일은 안식일보다 뚜렷하게 공식적인 우선권을 얻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그가 저술한
시편 92편 주석(
Commentary on Psalm 92)에서
“안식일에 행해야 했던 의무는 무엇이든지 모두 주일(主日)에 속하는 것이 더 적절하므로 우리는 주일로 옮겼는데, 이는 주일이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우선하며 서열에서 앞서고 더 명예롭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일요일에 대한 선호를 나타내는 가톨릭 교회의 첫 번째 공식적인 결정은 4세기에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내려졌다. 그 회의의 종규(宗規) 29조는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행하거나 토요일[안식일]에 빈둥거리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그날에 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을 특히 높여야 하며 그리스도인이므로 가능한 그날에 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유대인처럼 행하는 것이 발견될 경우 그들을 그리스도에게서 쫓아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그 회의는 안식일 예배를 위한 규정은 만들었으나 그날을 일하는 날로 지정하였다. 일요일 준수를 명하는 이 첫 번째 교회법이 안식일 준수를 피해야 할 이유로 유대인처럼 행하는 것을 지목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안식일 준수를 금하는 엄한 명령은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날에 “유대인처럼 행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실제로 4세기와 5세기의 저술가들은 거듭하여 그들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행습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예로, 400년경에 크뤼소스톰(Chrysostom)은 다수가 여전히 유대인의 방식대로 안식일을 지키므로 유대인처럼 행한다고 진술하였다.
당시의 기록들 역시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교회들이 주로 일요일 준수를 장려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AD 440년경에 교회 역사가 소크라테스는 “비록 온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가 매주 안식일의 신성한 의식을 행하고 있으나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고대의 전승 때문에 그렇게 행하기를 그쳤다”(Ecclesiastical History v. 22)고 기록했다. 같은 시기에 소조멘(Sozomen)은 “콘스탄티노플과 거의 모든 곳의 사람들은 주일 중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에 함께 모이는데, 그 관습을 로마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결코 지키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1)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요일 신성성에 대한 개념은 주로 자신들을 유대인들과 동일시하므로 박해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는 풍습을 피하려는 노력 가운데 시작되었다.
(2) 로마에 있던 교회는 일찍이 일요일 선호 사상을 나타냈으며, 로마가 점차적으로 세력을 얻어감과 동시에 초기 교회 안에서는 안식일을 버리고 일요일에 점증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3) 결국 로마의 영향력은 마리아 숭배, 성자와 천사 숭배, 성상(聖像) 사용, 사자(死者)를 위한 기도와 같은 수많은 다른 예배 행위들처럼 일요일 준수를 교회법의 문제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일요일 신성성은 로마의 감독에 의해 교회 안으로 들어온 여타 비(非)성경적인 관습들과 같은 기초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