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4 장. 안식일:소속의 기쁜 소식 II. 하나님이 안식일을 계약(언약)의 상징으로 택하신 이유들
 “나와 너”의 영적인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물체들을 통하여 “거룩함”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의 시도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책임을 져야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적 본성을 사람들이 물체화 시키거나 구상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예방책을 다 강구했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서 신성(神性)의 제2의 위격을 가지신 성자(聖子)는 인간이 되어 33년간을 이 땅에서 사셨으면서도 그분 자신의 것으로 확증을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물질적인 흔적도 남기시지 않으셨다. (110.2)
 그분은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한 일도 소유한 일도 없으시다. 그분은 책을 저술하신 일도, 개인 장서를 소유한 일도 없으시다. 우리는 그 분의 출생일자와 사망일자를 정확히 모른다. 그분은 자손도 남기시지 않았다. 그분은 빈 무덤만을 남기고 가셨는데 그 무덤 조차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그는 자신에 속한 단 하나의 “물체”도 남기시지 않았고 단지 당신의 영적 임재의 보증만을 남기시었다. 성경은 말하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한다. (110.3)
 무슨 이유로 그리스도는 자신에 관한 물질적인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처럼 신비스러운 모양으로 이 세상을 떠나 가셨는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성육신에 의하여 구주께서 이 지구에 머물러 계셨음을 상기시키는 영구적인 물질적 증거를 남겨놓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친 것일까? 이것은 영적인 관계를 “물체 숭배”로 변질시키고저 하는 항구적인 유혹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의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111.1)
 하나님께서 한 물체가 아니고 한날(日)인 안식일을 하나님과 인간의 소속관계의 상징으로서 택한 것도 바로 이같은 배려가 작용한 것이었다. 안식일은 자신을 한정하려는 인간의 시도들을 허용하지 않는 신비인 시간이기 때문에 물체의 예배를 방지하는 항구적 예방책으로서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성립된 계약 관계의 영적 본성을 상기시켜 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111.2)
 6. 언약(계약)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계약의 상징으로 선택한 여섯 번째 이유는 이 날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하나로 묶는 공동 언약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 소속의 관계는 오직 언약 쌍방이 각기의 의무들을 기억하고 존중할 때에만 지속이 가능하다. 그러면 안식일은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을 어떻게 나타내 주고 있는가? (111.3)
 하나님의 언약. 안식일이 첫번째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 행위는 아담과 이브의 출생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안식의 창조였다(창 2:2~3). 하나님의 이같은 안식은 전체 피조물은 물론이려니와 특별히 인류와 관계되는 기별을 가지고 있다.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2장(章)에서 이미 보았듯이 하나님의 안식이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과 완전성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을 뜻하고 있다. (111.4)
 인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안식이 하나님의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유용성을 의미하고 있다. 이 첫번째의 부부를 당신의 거룩한 임재로 축복해 주시기 위하여 “시간을 빼냄”으로써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당신의 관심과 유용성을 항구적으로 보장시켰다. A. 마틴(Martin)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하여 다짐한 약속이란 인류를 위해서 시간을 내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임재를 보장시키는 한 개체이다. 안식일은 이 같은 약속의 표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안식일 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성찬식의 빵이 차지하고 있는 그 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과 꼭 같이 안식일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영속성을 상기시키고 있다.”34 (111.5)
 하나님의 이같은 언약은 계약 관계 속에서 명백해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증으로 나타나고 있다(출 31:13; 겔 20:12). 인간의 불순종으로도 하나님의 첫 언약은 바뀌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죄로 말미암아 소외의 상태가 발생되자 하나님은 파괴된 계약관계의 회복을 위한 당신의 전폭적인 서약을 안식일을 통하여 보증하셨다. (112.1)
 이와같은 언약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독생자를 주시어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신 것이다(요 3:16). 칼 바르트가 정확히 설명했듯이 안식일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또 하나님께서 이미 그 계획을 이행했으며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일을 모두 실행할 것이란 사실을 함께 인간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안식일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말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사실로 나타나고 사실로 증명된 그 그렇다라는 대답을 인간에게 지적하고 있다.”35 (112.2)
 안식일이 보장하는 하나님에의 접근 가능성 때문에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만약에 어떤 중요한 사람에게 한달이나 그 이상의 기간을 그가 바쁘고 손이 미치지 않아 말을 건낼 수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안식일은 하나님을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다는 하나님의 보장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또 당신의 피조물들과 대화를 나누시고 친교를 맺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는 분이며 유독 안식일에 만이 아니라 어느 날에라도 기도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112.3)
 한 가족의 아버지가 안식일에 특별히 가족들을 위하여 시간을 내는 것이 단지 가족에 대한 일주 일회의 헌신의 표시가 아니라 영원한 헌신의 표시이듯이 하나님도 안식일에 당신의 피조물들과 특별히 가까이 하겠다는 다짐을 함으로써 피조물들에게 당신의 항구적인 관심과 접촉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6일의 간격으로 반복되는 안식일의 규칙성은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계시다”(시 105:8)는 사실을 계속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 (112.4)
 인간의 언약. 안식일은 하나님의 언약뿐만 아니라 인간의 언약까지 대변하고 있다. 안식일은 단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라”는 선언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출 31:13). 안식일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분이며 이 세상과의 영원한 친교를 회복시키려는 긍극적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일하시는”(요 5:17) 사실을 재확신 시킴으로서 믿는 자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책임을 떠 맡도록 권고하고 있다. (112.5)
 신자는 하나님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권고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칼 바르트가 지적했듯이 이 관계는 “간접적인 연결이 아니라 직접적인 연결이며 단순한 하나의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교제이다.”36 이같은 의무를 담당할 때 사람은 자유롭게 된다. 그 자유는 하나님을 위한, 자기 자신을 위한, 직계 가족들과 타인을 위한 자유이다. (112.6)
 구애되지 않고 하나님께 시간을 비치는 행위는 최고의 예배 행위이다. 왜냐하면 이때 사람은 생명의 기본적인 요소인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곧 시간이다. “시간이 종료될 때” 생명은 끝난다. 안식일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믿는 자는 한 안식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체 생애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에 응답한다.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을 위하여 모든 일상적인 일을 중지시킴으로서 자신의 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언약을 실천한다.37 하나님의 종극적인 소유권에 대한 인정의 표시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칠 때도 이와 유사한 목적이 이룩된다. (112.7)
 

안식일은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보장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듣고계시며, 응답하고 계시며 또 그의 피조물들과 더불어 대화와 사귐을 갖고자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따라서 안식일 뿐만 아니라 어느 날에라도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증해주고 있다.
(113.1)
 안식일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포함된 문제는 6장(章)에서 논의될 것이다. 당장의 관심은 안식일이 얼마나 의미심장하게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안식일은 인류를 위하여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항상 인간을 만나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일면에서는 안식일 준수자가 창조주를 인정하고 자신의 생명에 대한 구세주의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114.1)
 7. 구속(救贖)
 하나님께서 당신과 백성들간의 계약적인 관계를 상징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선택한 일곱번째 이유는 안식일의 구속적인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의 상징으로서 의미있는 소속관계의 경험의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우리의 헌신의 정도는 그 사람이 우리의 충성과 헌신을 받을 만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좀더 홀가분하게 자신의 직업활동을 계속하기 위하여 제 아들을 태어나기가 바쁘게 남의 양자로 주어버리는 어머니가 제 아들이 장성한 후에 자신에게 효성을 나타내 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114.2)
 믿는 자는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포기하기는 커녕 자기에게 생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교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주시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이 같은 구속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다음의 장(章)에서 논의가 될 것이다. 안식일:구속의 기쁜 소식이라는 제목을 갖게 될 이 장(章)에서는 구약과 신약에서 육체적인 안식일 휴식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더 큰 영적 안식을 가리키고 있음을 살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의 경험을 누리기 위하여 안식일에 자기의 일을 중지하는 신자는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하려는 의도를 포기하고 구원의 주(主)이시며 완성자이신 하나님께 자신이 속해 있음을 인정한다.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