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것이 나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 프란체스코(St. Fransis)를 생각해 보라. 옥스포드와 런던에서 바울의 서한을 가르치던 존 콜렛(John Colet)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16세기 이전에도 수없이 많았던 저 가톨릭 선교사들의 무덤들을 생각해 보라. (173.4)
중세의 말기에 가까와 오면서 임종(臨終)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말을 쓴 조그만한 책자들이 출판되었다. (173.5)
(173.6)
아르스 모리엔리(Ars Moriendi) 즉 「죽음의 예술」이란 이름의 책자들이다. 이 책자들은 임종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온갖 흉하고, 비록 하나님 자신이 분노하여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해도 죽어가는 사람은 담대하게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오 하나님, 저는 저의 죄와 당신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끼워 넣습니다.”(174.1)
모든 것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태는 비극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예언은 의도적으로 사태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고 있다.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또 하늘에서 행해지는 그리스도의 봉사와 우리들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174.2)
포드함 대학(Fordham University)의 로버트 E 멕낼리(Robert E. McNally) 교수는 예수회 수도사이기도 한데, “면죄부의 관습은 마땅히 교회의 권위에 의해 시정되었어야 했고 시정될 수 있었던” 악폐라고 말했다.22 그는 강조하여 말하기를 “이 오래 된 교회는 전반, 즉 도덕, 신학, 영성, 예배 의식, 교회 기구 등에 걸쳐 갱생과 개혁이 필요되었다”고 하였다. (174.3)
개신교도들이나 근대의 가톨릭 신도가 모두 중세 교회의 내부에서도 개혁의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낄 것이다. “교회 개혁의 문제는 루터가 등장하기 1세기 전에도 중요한 현안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었다.” 멕낼리 교수는 계속해 말하기를, “그 시대의 역사는 선량하고 분별력 있으며 유능하고 성자다운 사람들의 교회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기사로 가득 차 있다”23고 하였다. 그는 덧붙여 말하기를, 헌신적이고 재간이 뛰어난 수도승이었던 마르틴 루터에 의해 개혁 사업의 일부가 이루어졌으나,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 아직도 개혁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174.4)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교 로마가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거룩한 백성들”을 멸망시키고 제한된 의미에서 “성소”를 헐고 “타밋”제하여 버렸다는 사실을 살폈다. 즉 이교 로마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헤롯의 성전을 허물고, 구약의 의식을 끝장나게 함으로써 위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174.5)
중세 교회는 만군의 주재로서의 그리스도의 여러 특권들을 떠맡고는,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를 퇴색시켰다.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하였는가? (174.6)
1. 교황은 눈에 보이는 교회의 머리로서 절대적인 왕권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174.7)
2. 주님의 성만찬 예배를 미신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행하였으며, 성찬의 빵이 예수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존 위클립의 무리 등)을 박해하였다. (174.8)
3. 성찬 예배에 있어서 평신도들에게 포도주를 주지 않고, 또 후스의 무리들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의 상징으로서 포도주를 받아야 한다(마 26:27, 28)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박해하였다. (174.9)
4.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월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처럼 서민들도 읽을 수 있도록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을 화형시켰다. (174.10)
5. 면죄부의 매매를 공식으로 허가하고, 마르틴 루터처럼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한 은혜에 의해서만 의롭게 된다(롬 3:24; 엡 2:5)고 하는 사람들을 파문하였다. (174.11)
6.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게 하고, 고행을 하도록 하였으며, 모든 신도가 사제이기 때문에 한 분뿐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곧장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루터교도 등)을 박해하였다. (174.12)
7.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주시면서 당신의 계명을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기시겠다고 하셨는데도(출 20:8~11; 히 8:10~12) 가톨릭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 대신에 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지키도록 요구하였다. (175.1)
이러한 과오들은 모두 그 시대의 기질을 반영하는 것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다니엘 8장은 우리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 즉 그의 “타밋”이 다시 한 번 모든 백성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