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B. 2세기부터 5세기까지의 안식일과 일요일
 우리는 위에서 초기 기독교의 문헌적 증거들을 통하여 특별히 4세기와 5세기에 안식일과 일요일 두 날에 대한 언급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처럼 두 날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고 그 중에서도 논쟁적인 성격의 언급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법이 공포된 이후에 두 날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316.4)
 예컨대 한편으로「사도 헌법」(Apostolic Constitutions)은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의 준수를 강조하고 노예들에게는 5일만 일을 시키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여가를 주어 교회에 출석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라오디게아 공회의가 토요일에 일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316.5)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의 논쟁에 대한 또다른 언급은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A.D. 407년 사망)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는 유대인들과 희랍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교회가 1000개의 당파로 분열되었다∙∙∙ 여러분들은 이제 왜 바울이 할례를 복음의 뒤엎어짐이라고 말했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중에는 유대인들의 날과 동일한 날에 금식하고 유대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고상하게나 또는 고상하지 않게 그리고 비열하게 견디고 있다.”31 (316.6)
 특별히 4세기 중엽으로부터 5세기에 이르는 기간의 문헌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안식일의 금식에 관한 논쟁은 일요일과의 관계에 있어서 안식일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고 밀리고 있는 사실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들이기도 하다. 로마와 그 밖의 몇몇 서방 지역에서는 안식일의 금식이 주간의 규칙적인 관행으로 채택되어 안식일이 우울하고 버림받은 날이 되고 있었으나 북 이탈리아의 밀라노 같은 서방의 다른 지역들과 동방 교회들 전체는 이같은 변화를 저항하였다. 이러한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중요한 증언은 히포의 감독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A.D. 430사망)의 여러 진술들과 그의 후년의 동시대인이었던 요한 카시안(John Cassian)의 진술들 속에 나타나고 있다.32 (317.1)
 또 이때로부터 반세기나 1세기를 더 앞으로 나아가 보면 이그나티우스 저작의 개찬자와 「사도헌법」으로 부터 강력한 논쟁적 음성이 나오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의 날에 그리고 유월절 안식일이 아닌 안식일에 금식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살인자이다.”33 “만약에 어떤 성직자가 주님의 날과 안식일에 금식하는 것이 발견되면 직책을 박탈하라. 그리고 만약 해당자가 평신도이 면(교인으로서 활동을: 역자 추가) 중지시켜라.”34 (317.2)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교회가 2세기에 안식일 준수를 배척했을 때 표시된 안식일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바르나바스(Barnabas)와 로마의 유스티노스 마르튀르(Justin Martyr)의 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35 이 때로부터 약 2세기가 자나간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의 시대가 되면 전체 기독교 세계에 토요일 안식일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일요일 안식일과 토요일 안식일 사이에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317.3)
 요약
 일요일이 토요일을 대신하여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휴식의 날로 정착되는 과정은 길고도 느렸다. 2세기까지는 어느곳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일요일을 준수한 구체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 2세기에 이르러 일요일과 관련된 최초의 언급은 알렉산드리아 로마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 두 도시는 제칠일 안식일을 가장 일찍부터 배척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교회만이 토요일을 일요일로 대체시키고 있었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한 기독교 세계 전체는 일요일과 안식일을 함께 존중하였다. (317.4)
 더군다나 주간의 일요일이 처음으로 존중되기 시작할 때도 그 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을 뿐 휴일이 아니라 노동하는 날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주간의 일요일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게 된 것은 본래 일년에 한번씩 부활절 일요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던 것이 주간 단위로까지 확장된 것이었다. 부활절 일요일은 또 레위기 23:11에 연례적인 행사로 지시된바 그 해에 처음으로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의 전에 바치던 유대 인 절기를 본받은 것이었다. (317.5)
 끝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로 일요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만드는 경향이 발전하였다. 이로써 제칠일 안식일과 일요일 사이에 갈등이 광범위하게 증폭하게 되었고 급기야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역에 걸처 일요일 안식일이 토요일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단지 에티오피아만이 예외적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함께 존중하는 전통을 유지했다. (318.1)
 부기
 로마의 유스티노스 마르튀르(Justin Martyr)가 일요일에 관해 남긴 언급(1 Apology 67)을 ANF 1:186에서 발취하여 말미에 부기하고자 한다. (318.2)
 “일요일이라고 일컫는 날에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한 장소에 함께 모여 사도들의 회상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용하는대로 읽는다. 낭독자의 낭독이 끝나면 사회자가 말로 교훈하여 이러한 선행들을 본받도록 권면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나서 기도한다. 그리고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기도가 끝나면 빵과 술과 물을 들여온다. 그리고 사회자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대로 기도하고 감사한다. 그리고 백성들이 아멘이라고 말하여 동감을 표시한다. 각 사람들에게 빵과 술과 물을 나누어주고 이미 감사를 나타낸 그것들에 참여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자에게는 집사들을 통해서 한 조각씩 보내진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과 자원하는 사람들은 각기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만큼(헌금)을 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회자에게 보관된다. 그리고 사회자는 그것을 가지고 고아와 과부와 그 밖의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궁핍하게 사는 사람들과 묶여 있는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우거하는 나그네들과 한마디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고 돌본다. 그러나 일요일은 하나님께서 어둠과 물질에 변화를 일으켜 세상을 창조하신 첫째날이며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한 첫째 날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모이는 날이다” (3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