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유세비우스의 설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진술의 모순성과 부정확성을 어렵지 않게 지적할 수가 있다. 예컨데 유세비우스는 서슴없이 부활절 일요일을 사도적 전통이라고 고집하면서도 니산월 14일의 유월절을
“옛 전통”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비록 그 날짜는 다르지만 14일 교도들까지도 기념하고 있는 유월절을 분명히
“부활의 신비”라고 정의하고 있다.
32 그는 당시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켜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시대 착오적인 진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세비우스의 이러한 진술은 그가 로마의 감독 빅토르의 요구로 198년에 소집되었던 팔레스틴 총회에서 결의된
“교회법”을 요약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교회법에는
“주님의 부활의 신비”가 다른 날 말고 오직 주일인 일요일에만 기념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추측에 기초하여
“부활의 신비”가 이전에는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 기념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으니 대단히 잘못된 추측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보았듯이 부활절 일요일과 14일 교도의 전통에 대한 최초의 언급들은 하나같이 유월절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날로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테르툴리아누스(160-225)는
“주님의 유월절” 곧
“주님의 수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33 이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관점이었다는 것은 오리게네스(Origenes)가 초대교회가 유월절의 뜻을
“고난”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현상을 논박하기 위해서
“건너다”란 뜻의 히브리어 단어 페사(pesha)의 어원학적 의미에 호소한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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