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편의 첫 부분(1~6절)에서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하여 소리없는 언어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둘째 부분(7~11절)에서는 소리를 가진 인간의 언어와 뜻을 가진 글을 통하여 귀와 눈에 낱낱이 말씀하신다. 율법으로 표현된 히브리어 “토라”(torah)는 모세의 오경이나 십계명 뿐만 아니라 계시로 주신 모든 말씀 곧 성경을 가리킨다. 그것은 기능과 특성에 따라 율법도 되고, 증거와 교훈도 되며, 계명, 경외하는 도(道), 규례도 되는 등 여섯 가지로 나뉘어져 참으로 인간 이성의 육법 전서(六法全書)가 되고 있다. (96.1)
 그것은 값으로 치면 순금인 정금보다 더 귀하고, 맛과 즐거움으로 말하면 벌집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송이꿀보다 더 감미롭다. 이 말씀에 맛들인 다윗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편 119편 103절)라고 고백한다. 이 말씀에 맛들인 사람만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시편 34편 8절)수 있는 것이다. (96.2)
 비순수한 순수 이성
 칸트의 심형을 경이(警異)로 채웠던 저 하늘의 별들은 아직도 태고의 질서와 조화를 구가(謳歌)하며 여전히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데, 인간의 마음속에 반짝인다던 이성의 별, 인간의 도덕은 어찌 이다지도 빛을 잃고 발아래 짓밟혔는고!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감추어진 계획에 따라 합리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이성의 진행 과정이라고 장담하더니, 칸트여 이 무슨 비순수(非純粹)한 「순수 이성 비판」인가? 인간의 별인 이성 자체가 역사의 계획이나 목표를 스스로 제공하여, 별처럼 가지런히 한데 어울려 오순도순 살아가는 도덕적인 유토피아가 오기는커녕 목하(目下) 부도덕의 나락(奈落)에 떨어져 버렸으니 이 무슨 엉뚱한 「실천 이성 비판」이며 「판단력 비판」인고! 여기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밝혀진 진짜 「순수 이성 비판」이 있다. 칸트보다 1700여 년이나 앞선 사도 바울의 비수(匕首)같은 비판이다. (97.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愚蠢)하게 되어”(로마서 1장 20~22절). (97.2)
 바로 이것이다. 칸트는 모든 경험 이전의 순수 이성마저도 이미 죄의 영향을 받아 망가져 빗나가고 있는 비순수(非純쨔)한 불순(不純) 이성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죄(罪)라는 말의 대표적인 표현인 구약 히브리어의 “하타아트”나 신약 헬라어의 “하마르티아”가 모두 “목표를 빗나가다”는 뜻임은 의미 심장하다. 칸트가 내세운 비순수한 인간의 이성이 생산한 빗나 간 실천 이성의 부도덕 명세서가 여기 그 병인病因)과 함께 고시(告示)되어 있다. (97.3)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 ”(로마서 1장 28, 29절). (98.1)
 깨달을 자 누구리요
 불순(不純)한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며”,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진정한 자신을 보게 된 시인은 괴로움 중에 부르짖으며 마지막으로 탄원한다. (98.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완전〕하여

   큰 죄과(罪過)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救聽者)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편 12~14절). (98.3)
 시계는 스스로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없고 지킬 수도 없다. 천문대가 천체에서 따오는 별 시간(Star Time)만이 시계의 정확한 시간이다. 시계도 별로부터 계시를 받아야 시계 구실을 하듯, 죄때문에 빗나간 인간의 이성도 말씀의 특별 계시가 있어야 이성 구실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98.4)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예레미야 17장 9절). 빗나가 잘못 가고 있는 자신의 실상과 허물(쉐기옷)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한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를 끝내 거역하여(민수기 15장 30, 31절 참조) 뻔뻔스러운 인간이 되게 하는 고범죄(제딤)는 속죄의 여지도 없이(히브리서 10장 26, 27절 참조) 사람을 죄의 영원한 노예로 만드는 까닭에 이 큰 죄과(페솨아)에서 한사코 벗어나야 한다. (99.1)
 첫 부분에서 “엘”(El)로 한번 불리우신 영광과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은 뒷 부분에서는 말씀의 언약에 성실하신 “여호와”로 일곱번씩이나 불리워지고, 마침내 죄에 빠진 인간을 속량(廳良)하시는 “구속자(救者)이신 여호와”가 되신다. (99.2)
 그리고 끝내는 영원한 우주 공간(空間)을 뒤에 두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시간(時間)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요한복음 1장 14절)심으로써,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시간 예술(時間藝術)의 극치에 이른다. 성육신(成肉身) 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공간 예술과 시간 예술이 서로 만나 절정을 이룬 최대, 최고 그리고 최선의 특별 계시인 것이다. (99.3)
 낙엽

 류증렬


 한 잎

 두 잎 ∙∙∙

 소슬한 바람에 지는

 나뭇잎 소리.


 그 무성한 전설은

 한가닥

 붉은 회한(海恨)인 채

 내 일력(日曆)마냥 낙엽이 진다.


 생(生)에의 아쉬움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그 절규는

 또한

 내 심혼(心魂)에 공명(共鳴)하고


 못다한 미련을

 명인(鳴咽)하며 뒹구는

 쇠잔한 잔해들은

 차라리

 내 화신(化身)의 조각 조각 ∙∙∙


 아~

 낙엽이 지는 계절의 고별은

 이리도 가슴아픈

 원죄(原罪)의 탄식인가!


 다시 구속의 기도를 드려

 주님 앞에 경건히 서면

 푸른 소망이

 내 마음에 핀다.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