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수님이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심의 풀어쓰기가 십자가에 이르는 주님의 고난의 이야기로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주님의 구속의 이야기가 십자가 이야기로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십자가의 이야기가 주님의 구속의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예수님의
“쉬게 하심”이
“다 이루어지는” 수많은 나머지 기록들이 있다. 안식일, 쉼의 날, 고른 숨의 날에 숨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이루신 그 많은 병 고치심, 죄 용서하심, 복음 전하심, 그 어느 것 하나도 그의
“숨 내쉼”과 우리를
“쉬게 하심”의
“다 이루심” 아닌 것이 없다. 숨의 날에 병 고침을 받은 그 많은 사람들,
“한 편 손 마른 사람”(
마 12:9-14; 막 3:1-6; 눅 6:6-11),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자”(
눅 14:1-6),
“벳세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삼십 팔 년 된 병자”(
요 5:1-18),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요 9)들, 그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께 나아가 그의
“숨 내쉼”에 의해
“쉬게 함”을 얻은 사람 아닌 자이겠는가? 이들의 고침 받은 삶, 이들의 구원받은 삶, 이들의 숨돌린 삶이 모두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심의 풀어쓰기요 그
“다 이루심”일 것이다. 그리고 어찌 그
“다 이루심”의 이야기가 신약성경의 안식일에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겠는가? 우리들의 고침 받은 이야기, 우리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재창조가
“다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또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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