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1 부 안식일과 쉼 제 5 장  안식일, 재창조의 새로운 숨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광야의 시험을 막 끝내고 공공 봉사의 삶을 막 시작하려던 시점의 한 안식일에 희년의 메시지인 이사야 61장 1-2절을 찾아 읽으시던(눅 4:18-19) 예수님의 결의도 무릇 그와 같았을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를 전파하는” 안식일의 사명은 간구와 고난이 중첩하는 자신의 십자가 희생에서 비로소 “다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61.3)
 그러나 예수님이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심의 풀어쓰기가 십자가에 이르는 주님의 고난의 이야기로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주님의 구속의 이야기가 십자가 이야기로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십자가의 이야기가 주님의 구속의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예수님의 “쉬게 하심”“다 이루어지는” 수많은 나머지 기록들이 있다. 안식일, 쉼의 날, 고른 숨의 날에 숨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이루신 그 많은 병 고치심, 죄 용서하심, 복음 전하심, 그 어느 것 하나도 그의 “숨 내쉼”과 우리를 “쉬게 하심”“다 이루심” 아닌 것이 없다. 숨의 날에 병 고침을 받은 그 많은 사람들, “한 편 손 마른 사람”(마 12:9-14; 막 3:1-6; 눅 6:6-11),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자”(눅 14:1-6), “벳세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삼십 팔 년 된 병자”(요 5:1-18),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요 9)들, 그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께 나아가 그의 “숨 내쉼”에 의해 “쉬게 함”을 얻은 사람 아닌 자이겠는가? 이들의 고침 받은 삶, 이들의 구원받은 삶, 이들의 숨돌린 삶이 모두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심의 풀어쓰기요 그 “다 이루심”일 것이다. 그리고 어찌 그 “다 이루심”의 이야기가 신약성경의 안식일에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겠는가? 우리들의 고침 받은 이야기, 우리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재창조가 “다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또 남아있는 것이다. (61.4)
 우리에게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숨 거두신” 그 사랑과 거룩의 큰 숨을 우리의 호흡에서 확인하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선언하신 그 “다 이루심”을 우리의 구원에서 확인하는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무엇보다 우리가 주의 “다 이루심”을 피차 고백하는 날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셨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숨은 나의 숨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적 숨이며 내가 숨쉬고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시고”(갈 2:20) 마지막 “숨을 거두신”(눅 23:47. NIV)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서” 사는 것(갈 2:20)이다. 이 삶이 안식일 신앙의 삶이다.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