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
 예수님의 세번째 비유에서 사용된 단어 하나가 이제는 영어의 일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달란트(탈랜트)라는 것으로서 어떤 특별한 기능을 뜻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당시에는 약 37 킬로그램 또는 75 파운드의 무게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후에는 이것이 금, 은, 동의 무게를 다는 단위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한 달란트가 보통 노동자의 15년 치 노임과 맞먹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뜻했다. 이 세번째 비유에서는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또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주인이 여행을 떠난 후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큰 자본을 이용해서 재산을 배로 증식시켰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 역시 자본을 갑절로 증식 시켰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다른 종들에게보다 훨씬 적은 돈을 맡긴 사실로 불만이 가득했다. 그처럼 자기에게 인색한 주인이라면 자신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힘껏 자본을 늘려 놓는다고 해도 별로 고마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연민과 언짢은 감정에 사로잡혀 땅을 파서 그 한 달란트를 묻고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41.3)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오자 앞서의 두 종은 각각 자신들의 활동을 기쁘게 보고하고 따뜻한 칭찬을 들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41.4)
 그러나, 세번째 종은 받았던 한 달란트를 뚱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반납했다. 그가 주인에게 들은 말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것이었다· 앞에서 말한 첫번째 비유의 악한 종(관리인)처럼 이 종 역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마 25:14~30)되었다. (41.5)
 이 이야기의 핵심은 첫번째 비유의 교훈과 유사하다. 즉 하늘로부터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땅의 일에도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파이를 먹을 생각에만 취해있지 말고 손 가까이에 있는 임무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41.6)
 그러나, 이 세째 비유는 그 자체의 남다른 의의를 가지고 있다· 주인은 모든 종에게 책임을 부여했다. 여기에는 우리는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갑절로 키울 수 있다는 약속이 들어 있다. 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아니라 그 달란트를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받은 상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받은 상과 같았다. (41.7)
 하늘 나라에는, 받은 것 외에는 한 푼도 더 보태어 주인에게 돌려주려 하지 않는 게으른 불평객이 자리잡을 땅이 없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강조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2~24). (42.1)
 우리의 일상 직업이 자동차나 집이나 책을 만들거나 아니면 밥을 짓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만드는 방식에 의해 우리가 꼴지어지는 것이다. 잘 건축된 가옥에는 목재 이외의 더 중요한 인격이 있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정성으로 구운 그 향긋한 냄새의 빵에는 밀가루 이외에 그 보다 더 중요한 그리스도교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다. (42.2)
 우리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시키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근면한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한다. 그들의 연령에 따라 차례로 장난감들을 제 손으로 치우게 하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설겆이를 하게 하고, 잔디를 깎게 하고, 페인트를 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동작이 느리고 솜씨가 서툴 것이다· 그러나,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일을 하도록 훈련이 쌓일 것이다. 그들은 매일 아침 담요를 정리하면서 침구 정리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제 때에 식사를 준비하면서 단순한 음식 준비 이상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42.3)
 결국 운명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달란트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두 배를 증식시킨 사람들과 동일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최소한 한 달란트씩은 가지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우리들을 보고 걸을 수 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고 부러워 할 것이다. 실명한 사람은 우리들을 보고 볼 수 있는 달란트를 갖고 있다고 부러워 할 것이다. 건강, 시간, 언변, 심지어는 아주 적은 액수의 당좌 예금까지라도 어떤 점에서는 달란트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같은 달란트들을 하나님을 위해 이웃 봉사에 충성스럽게 사용하기를 바라신다. 언젠가 필자가 읽은 글에서는 전신 마비상태의 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것을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해외 선교를 위해 기도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해외 선교 협회에 그의 이름으로 수천 불의 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42.4)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충성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그것들을 그렇게 사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의 오심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42.5)
 양과 염소를 분리시킴
 재림의 준비를 위한 그리스도의 네번째 비유는 그의 모든 비유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유에서는 인자가 모든 천사들과 함께 그의 영광 중에 강림하신다. 보좌에 앉으신 인자는 모든 사람들을 그 앞에 불러 모은 다음 오늘 날에도 중동 지방의 시골 사람들이 양과 염소를 따로 갈라놓듯이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 이 비유에서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배당되었다. (42.6)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42.7)
 의로운 백성들은 임금의 칭찬을 듣고 놀라 언제 그들이 그 같은 친절을 베풀었는가를 질문했다. 임금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였다. (43.1)
 그 다음에는 우리가 모두 잘 아는대로 임금은 왼편에 있는 “염소”들을 향하여 자기를 떠나가라고 명령했다. 왜냐하면 임금이 주리고 벗었을 때, 그리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그들이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마 25:31-46). (43.2)
 이 이야기에 분명히 강조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늘 왕국에 들어가고 못가는 것은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어떤 형태의 이웃 생활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험은 바로 여기에서 어떤 종류의 이웃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43.3)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요일 4:20)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이 말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필자의 두 형제와 더불어 이른바 좋게 말해서 형제 간의 경쟁 의식이라는 것을 가끔 경험했다. 어머님께서는 티격 태격하는 우리 형제를 보는대로 말리려고 애쓰셨다. 어느 날도 우리 형제가 서로 언짢아 있었는데 어머님이 이를 보시고 다시 말리시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방에 동쪽으로 뚫린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다투는 우리 형제들을 붙드시고 “얘들아, 너희들이 서로 다투다가 창너머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너희들의 기분이 어떻겠느냐?”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의 이 말씀을 들은 우리 형제들은 순간 머쓱한 기분이 되었다. 이 때 어머님은 또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43.4)
 필자의 어머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형제들은 그 때 그 말씀을 해주시던 시절의 어머님보다 더 늙은 몸이 되어서도 그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43.5)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장난감들을 치우고 가정의 허드렛일들을 하도록 가르칠때 그들은 자녀들의 품성 계발을 돕고 있는 것이다.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