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행복하려거든(시편강해) 제 4장 나의 주 나의 하나님 23. 영원한 시간의 궁전(宮殿)에서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至尊)하시니이다”(92편 8절). (244.2)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지리이다.”(92편 9절). (244.3)
 시간이 차지했던 생명의 공간에서 시간이 분리되어 다시 공간만 남게 된다는 것, 그것이 죄의 결과인 죽음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 (244.4)
영생은 결국 생명의 공간에 채워진 영원한 시간인 것이다. 그것이 “말씀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이다. 이리하여 안식일은 ∙∙∙ “구속의 기념관”으로 역사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244.5)
 시간이 썰물처럼 물러간 실낙원(失樂園)의 공허는 복락원(福樂園)을 약속하는 구속(救贖)의 복음을 통하여 상실된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다시 듣게 한다. (244.6)
 7절은 이러한 구속의 약속이 표상(表象)을 통하여 성취된 출애굽의 역사를 확인하고 있다. 쓰여진 구문부정법(構文不定法)의 동사 형태는 9절의 미완료[미래]와는 달리 지나간 역사를 말하는 과거를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훼방하는 원수는 과거 출애굽 때 그랬듯이(7절), 장래에도(9절) 파멸의 종국을 치르게 될 것이다. 패퇴(敗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의 절대 의지 때문이다. (244.7)
 출애굽은, 미래를 약속하는 구속의 시간은 소멸되고 물질로만 채워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이었고 해방이었다. 제2의 창조인 구속의 대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신 당신의 존재와 권위와 영광을 어떻게 기념하려 하셨는가? (245.1)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명기 5장 15절). (245.2)
 하나님은 당신의 “강한 손과 편 팔”이 창조해 내신 구속을 펼쳐 보이시기 위한 기념관을 첫 번째 창조처럼 또다시 동일한 시간 속에 첩(疊)을 놓아 세우셨다. 왜냐하면 범죄로 붕괴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재창조인 구속 역시, 시간을 성분으로 하는 창조의 역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상실된 시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영생은 결국 생명의 공간에 채워진 영원한 시간인 것이다. 그것이 “말씀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이다. 이리하여 안식일은 죄로 상실된 시간의 회복을 위하여 또다시 시간 속에 세워진 “구속의 기념관”으로 역사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246.1)
 에덴[실락원]에서 에덴[복락원]까지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92편 10~12절). (246.2)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며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 ”

 (92편 13~15절). (246.3)
 공간의 속박에서 해방된 들소는 한 없이 자유롭다. (246.4)
 자유에는 솟구치는 힘이 있고 감격이 있다. 그것이 우뚝 솟은 들소 뿔의 힘찬 기상이다. 그것이 살아야 하는 생명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출애굽기 20장 9절)한 후에 누리는 시간 속의 해방인 안식일의 의미이다. 그것이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긴 사람이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이사야 58장 13절) 누리는 경험이다. 그것은 상처를 고치고 아픔을 치유하는 성령의 “신선한 기름”이 부어지는 경험이며,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처럼, 궁전의 고상함을 드러내는 백향목처럼 번성하며 발육하는 성화(聖花)된 삶의 내용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에스겔 20장 12절)다고 말씀하신 이상(理想)의 실현인 것이다. (247.1)
 백향목과 종려나무의 이러한 힘찬 성장은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옮겨 심기움으로 그 영광의 극치에 이른다. 그것은 흙이 다른 땅이다. 땅이 다른 공간이다.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해진 충만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인 “하나님의 집”에 쇠함과 늙음이 있을 수가 있으랴. 그것은 회복된 영원한 시간으로 충만해진 복락원(福樂園)의 대지(大地)이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성일을 ∙∙∙ 존귀히 여기고”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경험한 사람들을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業)으로 기르리라”(이사야 58장 14절)시던 약속의 영광스런 성취인 것이다. 그것이 공간에 얽매어 포로된 세상에서 시간 속에 세우신 하나님의 궁전인 안식일을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경험한 백성이 “땅의 높은 곳”에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The Most High)을 영원히 예배하는 회복된 에덴의 가장 확실한 모습이 것이다(이사야 66장 22, 23절). (2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