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빚어지기를 거절하는 숨쉬는 진토인 인간은 다시 진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티끌로 돌아가라” “너희 인생들아 돌아가라”(3절) 티끌로 돌아가기 전 시인은 부르짖는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돌아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지은 인간이다. 인간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인간은 티끌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진토는 하나님의 분신(分身)이지 더 이상 진토가 아니다. 히브리어로
“슈우브”(shub)인
“돌아가다”(return)는 말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회개를 뜻한다. 그러나 티끌로 돌아가는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분신으로 태어나는 중생(重生)의 산도(産道)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의 대역사(大役事). 곧
“주의 행사(work, póal)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인은 탄원한다. 돌아오신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긍휼”과
“인자”와
“은총”은 마침내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실 것이다. 그 때 비로소 곤고(困苦)와 무상(無常)으로 상실되었던 과거는 보상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우리를 회개시켜 주소서. 오셔서 덧없이 보낸 인생을 보상해 주시고
“우리 손의” 덧없는
“행사”(máasah)를
“주의” 위대한 구원의
“행사”(póal)로 영원히 의미 있게 하시고 보람되게 하소서. 손에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시인은 하나님의 손을 더욱 꼬옥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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