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104편 천연계를 노래함
 하나님께서 시간에 순서를 정하심
 태양과 달이 인간과 동물을 지배하는 신이라고 하는 세상에 편만한 견해와는 달리 이 영감적인 작가는 태양과 달이 모두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의 정해진 궤도를 따라 돌도록 명령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있다. (377.1)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시 104:19)
(377.2)
 이는 네번째, 날에 관한 창조 기록의 기별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로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창 1:14). 시간 자체가 우주를 조정하신 조물주의 통제 아래 있다. 인간의 절대적인 시간 조정에 관한 지식은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의 두 천체 시계인 태양과 달의 변동으로부터 온다. 창조는 질서 정연하게 잘 되었으며, 그럼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시 19:1 참조). 빛과 어두움의 규칙적인 변동은 모두 피차의 활동에 방해받지 않고 음식을 위해 노동할 수 있도록 인간과 동물의 생활을 균형지게 유지시키는 데 기여한다(시 104:20~22). 인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낮에 일하고 저녁에 일상의 노동에서 쉬도록 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시 104:23).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 풍요와 성장을 위해 여유를 마련해 주시고자 인간 생활에 순서를 가져다 주신 것이다. 어느 아랍 사람이 말한 것처럼 “저녁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이다.” (377.3)
 인상적인 것은 위험한 사자들이 먹이를 구하는 것에 대한 시인의 신학적인 이해이다. 그들이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 한다는 것이다. 사나운 동물들을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견해는 욥에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재차 반복된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욥 38:41). (378.1)
 하나님의 행적에 대한 반응
“여호와여 주의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 하나이다”
(시 104:24)
(378.2)
 시인이, 존재하는 만물의 순서와 아름다움과 목적을 이해했을 때 그는 이 모든 것에 관한 지혜로 인해 감동을 받았다. 그에게는 지음을 받은 모든 실체가 자체를 초월하여 거룩하신 손을 가리키며 조물주의 인장(stamp)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동물들조차도 그들이 하늘을 날든지 땅에 어슬렁거리든지 바다에서 헤엄을 치든지 간에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모든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 12:9, 10). 인간과 동물이 모두 동일한 창조주에 의해 고안되고 만들어졌으므로,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행적의 조화와 일치를 찬양하는 하나의 우렁찬 심포니를 부르는 근본적으로 연합된 통일체인 것이다. 인간을 섬뜩하게 하는 “리워야단” 같은 거대한 바다 괴물(욥 41:사 27:1; 시 74: 13, 14) 조차도 여기서는 그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존하는 창조주의 “노리개감” 으로 여겨진다(시 104:26과 비교) (378.3)
 피조물은 생명의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있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의 결과에 대해 만족하신다(시 104:31). 그분께서는 당신이 존재케 하신 생명을 적극적으로 유지하신다. (379.1)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시 104:27, 28)
(379.2)
 모든 생명체는 호흡과 음식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 그분 없이는 모든 피조물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380.1)
“∙∙∙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시 104:29)
(380.2)
 주님께서는 자비로운 아버지로서 모든 사람과 모든 생물체를 보살피신다(시 145:15, 16과 비교). 야훼는 생명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창 2:7)었다. 인간이 죽을 때 이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되돌아간다(전 2:7). 이 엄숙한 진리는 각 사람에게 그의 조물주께 영광 돌리고 영화롭게 하는 양도할 수 없는 책임감을 부여해 준다(단 5:23 참조). 모든 사람은 각기 다윗이 믿었던 것처럼,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개인적으로 지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380.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 하셨나이다”
(시 139:13)
(380.4)
 여기에 하늘 왕국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백성들이 영원한 송영을 부를 이론적 근거가 있다. 모든 나라와 족속들의 음성이 하늘의 기쁨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380.5)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4:11)
(381.1)
 시편 104편조차도,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모든 생물체 로부터 새 생명을 낳게 하시는 데서 “창조”(히브리 어 ‘bara’)—창 1:1에 사용되었던—라는 특별한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381.2)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 104:30)
(381.3)
 이스라엘의 믿음은 하나님의 영—“전능자의 기운”(욥 33:4)—이 각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땅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식물의 성장조차도 야훼 하나님의 영에게 그 원인을 돌리며, 활동적인 하나님에 의해 행해지는 재 창조의 계속적인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381.4)